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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079 vote 0 2022.04.04 (14:49:00)

    미국인들은 자유를 위해 죽고, 영국인들은 명예를 위해 죽는다고 한다. 식민지를 수탈해서 밥먹는 영국 해적들이 해적에서 귀족으로 신분을 세탁하려면 명예가 필요한 것이다. 기사 작위라도 하나 얻어놔야 한다. 미국은 땅이 넓으므로 이웃과 마찰하느니 서부로 옮겨가면 된다. 


    미국에서 유독 자유가 강조되는 이유다. 만원 지하철에서 누가 칼을 꺼내 흔든다면? 그건 자유가 아니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텍사스 넓은 땅에서 누가 허공에 총을 쏘아대면? 자유다. 20만 평씩 소유하고 있으므로 총알이 이웃집까지 날아가지 않는다. 농부에게 20만 평씩 땅을 나눠주는 링컨의 홈스테드법 덕분이다. 


    윌 스미스가 농담이 선을 넘어버린 크리스 록에게 주먹을 휘둘렀다가 욕을 먹는 이유와 같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가 극단적으로 강조된다. 이웃집 행태가 성가시면 서부로 이주하면 되고. 한국은 영토가 좁아서 그런 자유가 없다. 미국에는 없는 명예훼손과 모욕죄가 있는 이유다. 비좁은 한반도 안에서 살을 부대끼고 살려면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사회의 시스템은 생산력과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생산은 도구를 사용한다. 한국은 땅이 좁아서 호미든 낫이든 손잡이가 짧다. 유럽인들의 낫은 조선낫과 달리 손잡이가 길다. 미국식 자유와 한국식 자유의 차이는 도구의 손잡이 길이와 같다. 자연환경과 비례하는 것이다.


    도구는 인간과 대상을 연결한다. 인간측을 조절할 수도 있지만 대상측을 조절할 수도 있다. 칼을 사용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분류가 다르다. 어린이용 칼과 성인용 칼과 군사용 칼이 있다. 칼로 자르는 대상에 따라 분류가 달라지기도 한다. 돼지 잡는 칼과 닭 잡는 칼이 같을 수 없다. 


    사람과 대상 사이에 대칭이 있고, 내부 조절장치가 있고 서로 간의 균형이 있다. 문제가 있다면 그 칼을 쓰는 사람을 바꿔서 해결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칼을 들이대는 대상을 바꿔서 해결하기도 한다. 칼은 도구다. 도구는 언제나 적절히 조절된다. 항상 복수의 해결책이 있다. 선택지가 없는 궁지로 몰리지 않는다. 


    진보는 사람을 바꿔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보수는 대상을 바꿔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젊은 사람에게 칼을 넘기라고 하면 진보주의가 되고 그 칼로 강도를 찔러라고 하면 보수주의가 된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 천칭저울이 있다. 저울의 한쪽 접시에는 사람이 계량되고 다른쪽 접시에는 대상이 계량된다. 사람이 잘해서 수확이 늘 수도 있고 날씨가 좋아서 수확이 늘 수도 있다. 이런 구조가 있다면 보나마나 그 사람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거짓말은 어떤 것일까? 천칭이 없고 균형이 없어 극단적이다.


    이성? 좋다. 절대이성으로 가버렷! 조금의 융통성도 없다. 성찰? 좋다. 절대성찰로 가버렷! 생태주의? 좋다. 절대생태로 가버렷! 유기농? 좋지. 절대유기농으로 가버렷! 채식주의? 좋지. 절대채식으로 가버렷! 우유 한 방울도 먹으면 안 돼. 진정성? 좋다. 절대진성성으로 가버렷! 노력? 좋지. 절대노력으로 가버렷! 


    모든 거짓말의 공통점은 인간을 궁지로 몰고, 외통수로 몰아서 사람을 옭아매고, 작은 골방에 가두려고 한다는 점이다. 인간을 옴쭉달싹 못하게 만들려는 지식권력의 악의가 숨어 있다. 흉악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절대노력, 절대생태, 절대유기농, 절대채식, 절대이성, 절대순수, 절대진정성, 절대반성, 절대사과, 절대성찰로 가버렷. 인간을 기계로 쥐어짜는 짓이다. 무서운 일이다. 


    비뚤어진 지식권력의 폭주 속에 악마가 숨어 있다. 종교적 결벽증과 같다. 아무리 순수해도 하느님의 테스트를 통과할 수는 없지. 아무리 채식을 해도 하느님의 매서운 눈초리를 피할 수는 없지. 그게 인간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악행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스님은 하루살이를 삼키게 될까봐 하품도 못한다. 개미를 밟을까봐 걷지도 못 한다. 악마는 그 집요함 가운데 있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자들이 예수의 이름을 팔아 인간을 십자가에 매달고 있다. 성찰과 진정성의 이름으로 마녀사냥에 분주하다. 조국을 찌르고 또 찌르는, 죽은 박원순을 관에서 꺼내 부관참시하는 지식폭력의 집요함 말이다. 


    절대성찰, 절대진정성의 이름으로 태연하게 사람을 죽이면서 자신에게는 절대면죄부를 부여한다. 언어의 사슬로 사람에게 강아지 목줄을 채우는 지식인의 악행이 깡패보다 무섭다는 진실을 나는 폭로하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이 종교적 극단으로 가는 이유는 상대를 자극하여 반응을 끌어내려는 소인배의 관종본능 때문이다. 그게 동물의 무의식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진실은 언제나 인간과 자연 사이에 겹쳐져 있다. 집단과 개인 사이에, 중심과 변방 사이에 걸쳐져 있고 그사이에 조정하는 균형자가 숨어 있다. 이쪽에서 잘못해도 저쪽에서 수습하면 된다. 저쪽이 막혀도 이쪽을 타개할 수 있다. 진실은 항상 복수의 선택지가 제공된다. 명분을 놓치면 실리로 보상받으면 되고, 실리를 손해 보면 명분을 비축하여 나중 실리로 교환하면 되고, 언제나 살길은 있다. 단 네거리에 있고 막다른 길에는 없다.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이고 인간은 피아간에 연결의 접점만 관리하면 된다. 진 것을 사석으로 이용하여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긴장된 대칭구도만 유지하면 답은 자연의 기세에 의해 저절로 얻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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