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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571 vote 0 2003.06.30 (22:38:49)

최근 성공하고 있는 『엽기적인 그녀』, 『동갑내기 과외하기』, 『옥탑방 고양이』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른바 『문단』이라 불리우는, 이 나라에서 제법 먹어준다는 정체불명(?)의 기득권시스템을 통한 등단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20대 인터넷작가가 쓴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로 옮겨져서도 대박을 냈다는 점이다.

 디시인사이드의 합성그림들은 인터넷의 쌍방향 의사소통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충무로의 오래된 금언 중 하나는 베스트셀러소설이 영화화되면 쪽박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다. 1996년에 나온 전설적 베스트셀러 김정현의 『아버지』를 기억하는가? 소설로 200만부 판매에 영화관객은 고작 5만명 들었다.

이 나라에는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신춘문예니 혹은 문학지의 추천을 받는 등단절차니 뭐니 하는 요상한 것이 있다. 가끔  등단을 거치지 않은 아웃사이더의 작품이 출판으로 대박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작품들도 영화로 옮겨지면 쪽박을 면치 못하므로서 역시 함량미달이라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김정현의 『아버지』, 김진명의『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우혁의『퇴마록』이 대표적인 쪽박의 사례가 된다. 김홍신의 『인간시장』이나 김정빈의 『단』도 넓게 보면 그러한 아웃사이더의 범주에 해당될 것이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기성문단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작품이 의외로 대박이 나면 점잖은 문학평론가들에 의해 한국독자들의 수준낮음 때문이라거나, 소설 『아버지』가 때마침 터진 IMF 덕을 보았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박통신드롬 덕을 보았다는 식으로,  경박해진 요즘 젊은이들의 유행의 변화에 운좋게 편승한 요행수로 치부되곤 했다.

그러나『엽기적인 그녀』, 『동갑내기 과외하기』, 『옥탑방 고양이』의 경우는 다르다. 뭐가 다른가? 트렌드의 변화에 힘입었다는 점이 다르다. 일과성의 돌풍이 아닌 것이다. 출판보다 시장이 더 큰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먹힌다는 점이 증명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왜 옛날 아마추어 작가의 베스트셀러와 달리 요즘 인터넷작가의 작품은 대박이 나는 걸까? 퇴마록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퇴마록도 PC통신에 연재되어 네티즌들에게 먼저 알려졌지만 요즘 뜨는 『엽기적인 그녀』류와는 다르다. 우선 판타지라는 점이 그러하다.

문학평론가들은 판타지는 일단 논외로 친다. 평론의 대상으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옛날 대본소에서 빌려보던 무협지 취급을 하는 것이다. 퇴마록은 영화로 성공하지 못하므로서 그들 오만한 평론가들의 콧대를 꺾어놓는데 실패했다.

『엽기적인 그녀』들은 판타지가 아니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로 옮겨져서도 성공했다. 일과성의 이변이 아니다. 결정적으로 트렌드의 변화와 상관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트렌드의 변화는 엄청 무섭다

 나의 오류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다시 돌이킬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스노우캣 다이어리

트렌드는 무섭다. 예컨대 TV에서 전유성의 개그가 배상룡의 코미디를 밀어내듯이, 대중음악이 고전음악을 밀어내듯이, 서태지 이후 뽕짝이 거덜났듯이, 충무로의 영화가 대학로의 연극을 밀어내듯이, 새로운 물결이 기존의 질서를 송두리째 뒤엎어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주류질서의 전복이다. 그렇다면 이거 장난이 아니다. 긴장해야 한다.

예컨대 여중생들이 읽는 하이틴문고가 제법 팔렸다든가, 혹은 삼류작가의 엉터리시집이 뚱딴지 대박을 낸다든가 해도 기성문단은 전혀 긴장하지 않는다. 그래봤자 추리소설이나 판타지문고처럼 서점의 한 귀퉁이를 차지할 뿐이기 때문이다. 주류질서는 완강하다.  

방송작가 김수현이 시청자를 웃기고 울린다 해도 문단은 흥~하고 콧방귀 뀌고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다. 김수현의 방송대본이 책으로 나와서 좀 팔리기는 하지만 그래봤자 안쳐주는 아줌마군단이다. 독서시장의 근간을 건드리지는 않는 것이다.

왜 트렌드가 문제인가? 팝은 결코 혼자오지 않는다. 팝이 문제인 것은 통기타와 청바지와 함께 오기 때문에 문제이다. 팝은 삶을 바꾸고, 생활을 바꾸고, 문화를 바꾸고, 철학을 바꾸고 급기야는 정치까지도 바꿔버리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엽기적인 그녀』, 『동갑내기 과외하기』, 『옥탑방 고양이』들의 성공에서 그러한 조짐을 읽을 수 있는가? 있다. 일과성의 돌풍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다. 『인터넷+방송+영화+출판시장』을 통째로 삼켜버릴 가능성이 있다. 팝이 클래식을 밀어내듯이 주류질서가 밑바닥에서부터 전복되는 수가 있다.

인터넷 만화 파페포포 메모리즈가 대박이라는데
이번에는 만화다. 심승현작가의 인터넷만화『파페포포 메모리즈』가 40만부의 대박을 내고 외국시장을 공략할 채비를 갖추었다 한다. 정헌재작가의 『포엠툰』도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출판가에 인터넷만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고 있다.

아래는 한겨레 기사 부분발췌

‘나’를 주인공 삼은 자전적 만화가 뜬다

『나의 오류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다시 돌이킬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어두운 방 한구석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독백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잠깐, 주인공은 하얀 고양이 커다란 두 눈에서 나오는 눈물 줄기가 마치 분수처럼 쏟아진다 맞다. 바로 만화다. 그런데 달랑 이 한 컷뿐이다. 왜 우는지 알려주는 앞이야기도 없고, 이어지는 뒷이야기도 없다.

올해 초 출간된 권윤주씨의 만화 『스노우캣 다이어리』는 늘 이런 식이다. 만화라면 만화고, 일기라면 일기다. 『봄이 오는 건 싫어』 또는 『하품을 많이 해서 계속 눈물이 났는데 눈물이 계속 나니까 슬퍼졌다』는 등의 이야기가 한 컷씩 짤막하게 이어진다. 『이런 만화도 다 있나』 싶을 법한 간단한 만화. 그리고 주인공은 언제나 바로 작가 자신이다.

새로운 만화가 몰려오고 있다. 만화가 자신이 바로 만화의 주인공이 되는 만화들이다. 소재는 작가의 실제 생활 그 자체다. 기존 만화들처럼 슈퍼맨으로 변신해 악의 무리와 싸우며 지구를 지키지도 않고, 현세에 환생한 이집트 왕자와 슬픈 사랑에 빠지지도 않는다. 『열심히 살자』거나 『세상은 그래도 살아갈 만한 것』 따위의 메시지도 내세우지도 않는다.

역시 최근 책으로 출간된 정철연씨의 『마린 블루스』도 정씨 자신이 감기에 걸린 이야기, 혼자 극장에 간 이야기, 비오는 날 그냥 울적해진 이야기 등 20대 청년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작품이 연재되는 정씨의 홈페이지(marineblues.net)에 하루 3만명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높다.

최근 주요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10위권에 빠지지 않고 있는 히트작 『포엠툰』도 작가 자신의 실연 경험 등 내면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펼쳐놓는다. 『퍼굴이의 푸른 공작소』 등도 비슷하다.

질풍노도의 시대는 오는가?
『새로운 소설』+『새로운 영화와 드라마』+『새로운 만화』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된 자궁은 인터넷이다. 그 도도한 흐름에 새로운 언론형태인 오마이뉴스와 딴지일보, 서프라이즈를 포함시켜도 무방하다.

요즘 뜨는 카툰에세이는 기존의 카툰과는 개념이 다르다. 기존의 카툰은 어떤 작품이든 자세히 들여다 보면 메시지가 있고, 기승전결이 있고, 반전이 숨어 있다. 그런데 그게 없다. 반전의 묘미도 없고 메시지도 없다. 그냥 푸념 비슷한 거다.

어떤 만화평론가는 40만부씩 나간다는 카툰에세이에 대해 『그게 무슨 카툰이냐? 이건 카툰에 대한 모욕이다』 하고 분개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카툰이 아니다. 이건 전혀 새로운 거다. 그렇다면 긴장해야 한다. 다음 까페나 디시인사이드 한귀퉁이에 연재되던 플래시가 세상을 바꿀지도 모른다.  

세익스피어는 무엇을 바꿔놓았나?
중세유럽의 고전극은 중국의 경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창한 의상을 걸친 무사가 무대에 등장하여 과장된 동작으로 자기 키의 두배 쯤 되는 커다란 칼을 요란하게 휘두르다가 내려가는 식이다. 이걸 바꿔놓은 사람이 세익스피어다.

세익스피어가 대단한 일을 한 것은 아니다. 고전극의 온갖 복잡한 규칙들을 무시해버렸을 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3일치의 법칙이니 혹은 비극에 희극적 요소가 섞여서 안된다니 하는 온갖 잡다한 희곡의 규칙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죄다 부인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세익스피어가 얻은 것은? 리얼리티다.

인터넷에 출몰하고 있는 『새로운 만화+소설』의 공통점은 기존의 규칙을 깨부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규칙들도 다 필요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필요해서 만들어놓은 규칙을 깨부수고도 소설이 되고 만화가 되는가? 된다.

이전에도 규칙을 깨부수려는 노력은 있어왔다. 그러나 실패했다. 규칙을 깨면 작품이 팔리지 않는다. 왜?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팔린다. 전에는 안되던 것이 왜 이제는 되는가?

디테일의 묘사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엽기적인 그녀』라면 신림동 술집이나 오류동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 부천역이나, 석촌호수나 다 실제로 존재하는 우리주변의 친숙한 공간들이다. 소설가가 지어낸 가상의 어떤 공간이 아닌 현장감있는 공간들인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리얼리즘이다. 작가가 꾸며낸 훈계조의 가짜가 아닌, 친구와 술집에서 대화하듯이 우리 이웃의 친숙한 이야기를 썰로 풀어내는 것이다. 세익스피어가 성공한 것은 고전극의 규칙을 깼기 때문에 아니라, 그 규칙이 사라진 빈 자리에 리얼리티를 채워넣었기 때문이다.

깨기는 쉽다. 채워넣기는 어렵다. 그 어려운 것을 성공시켰다는 점에서 다른 것이다. 카툰에세이도 마찬가지다. 보통사람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기발한 생각을 그림으로 풀어낸 것이 기성만화의 카툰이라면, 인터넷 카툰에세이는 누구나 한번쯤 해보는 생각해보는 평범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독특한 리얼리티가 있다.  

인터넷의 본질은 쌍방향 의사소통

 마린 블루스의 캐릭터 성게 ⓒ마린 블루스

인터넷을 모태로 하는 새로운 물결의 공통점은 형식을 파괴한다는 점, 관객이 실제로 경험한 친숙한 공간과 소재를 다룬다는 점, 훈계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는 점 들이다. 이들의 공통된 코드는? 쌍방향 의사소통의 시도이다.

인터넷의 쌍방향성을 독자들의 쪽글 정도로 이해해서 안된다. 쌍방향성은 독자들의 참여에 의한 확대재생산이다. 예컨대 개그콘서트에서 개그맨 이정수가 『분위기 다운되면 또 돌아온다』하고 청중들에게 말을 거는 것과 같다. 이는 작가와 독자의 눈높이가 일치할 때만 가능하다.

작가가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기존의 방식과는 본질에서 다르다. 무엇인가? 관객은 개그맨이 퍼뜨린 유행어를 실생활에서 써먹는다. 『아햏햏』도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지만 그것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독자들이 그것을 실생활에서 써먹으므로서 재생산이 되는 것이다.

인터넷기반의 만화+소설+영화+코미디에서부터 디시인사이드의 합성사진과 서프라이즈의 칼럼들에 이르기까지, 인터넷매체 기반의 작품들에 공통되는 요소는 독자와의 수평적인 눈높이에서 독자의 쌍방향적인 참여를 염두에 두고, 친구와 농담따먹기를 하듯 관객에게 말을 거는 독특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며, 바로 그것이 성공의 비결인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곧 관객과의 호흡의 일치를 위해 딴지일보의 김어준은 『졸라』『씨바』를 욜라리 외친 것이다. 이러한 본질을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거기서 트렌드라인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서프라이즈의 진로 또한 마찬가지다. 딴지일보의 허접함을 비웃고, 오마이뉴스의 실수를 꾸짖어주고, 개벽이의 합성사진에 얼굴을 찌푸리는 오만한 자세로는 결코 트렌드의 변화를 따라올 수 없다. 낙오될 뿐이다.

왜? 그것은 시대와의 호흡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가짜의 시대는 가고 진짜의 시대가 온다. 보통 사람은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는 특별한 생각, 기발한 발상이 먹히던 시대가 가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그러므로 누구나 쌍방향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독자들에 의해 확대재생산될 수 있는 평범한 생각이 먹히는 시대가 온다.

진정성이 생명이다. 꾸며낸 가짜는 표시가 난다. 물론 『옥탑방 고양이』도 작가가 꾸며낸 소설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공간, 그 감성, 그 분위기는 누구나 한번쯤 느껴본 즉 살아서 펄떡펄떡 뛰는 진짜다. 거기서 훈훈한 체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왜 인터넷은 강한가? 독자들의 안목에 의해 진짜와 가짜가 초 단위로 감별되기 때문이다. 『졸라』라도 좋고 『씨바』라도 좋다. 진짜라면 마땅히 심장의 고동소리까지 전달되어야 한다.

기성문단이니 조중동이니 하는 집단은 절대로 알아챌 수 없는 그런 것이 인터넷엔 있다. 작가와 독자가 동일한 시간대를 공유한다는 생생한 느낌 말이다. 바로 그것을 낚아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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