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524 vote 0 2020.05.11 (19:55:43)



    실용과 경험의 위험


    실용주의자는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그 기준이 되는 나라는 것은 도대체 누구지? 나의 감각? 나의 감정? 나의 가족? 나의 국가? 나의 세계? 순간적인 나도 있고 일관된 나도 있다. 둘은 충돌한다. 10년 후의 성공을 위하여 이 순간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과연 합리적인가?


    왜 10년 후의 나를 위해 지금의 내가 희생해야 하는 거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것보다 정승처럼 놀다가 개처럼 죽는게 낫지 않을까? 단기적으로 실용적인 것은 장기적으로 실용적이지 않을 수 있다. 논을 팔아 자식을 대학 보냈더니 대졸 실업자가 되었고 그냥 두었더니 부동산이 폭등해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어느 쪽이 합리적인 선택인지 판단할 수 없다. 지금 실용적인 것이 나중에는 비실용적으로 되기가 다반사다. 이명박의 실용주의가 2007년 대통령 당선에는 합리적이었지만 2018년 감옥행에는 비합리적이었다. 이런 것은 개인 기준으로는 판단할 수 없고 집단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졸부가 되느니 대졸 실업자가 되는게 나을 수도 있다. 돈은 혼자 벌지만 대졸은 친구도 대졸이므로 세력이 만들어진다. 실용은 지금 이 순간의 한 개인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어 일관된 삶을 살 수 있는지 또 동료와 함께 할 수 있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것이 합리주의다. 


    실용을 긴 호흡으로 보고 개인이 아닌 인류의 차원으로 넓혀서 판단하면 그것이 합리주의다. 실용이냐 합리냐는 단기적, 국소적으로 범위를 좁혀서 볼 것인가 아니면 장기적, 전체적으로 범위를 넓혀서 볼 것인가다. 그런데 철학이란 것은 개인의 단기적인 적응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즉 실용주의는 반철학인 것이다.


    경험주의도 마찬가지다. 경험에는 착각이 많다. 경험을 엄격하게 검증하면 바로 그것이 합리주의다. 개인의 경험을 인정하기로 하면 미아리 점쟁이가 잘 맞춘다. 내가 경험했는데 용하더라고. 이명박의 내가 해봤는데 시리즈와 같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은 귀신을 직접 봤다고 대답한다. 


    심지어 꿈을 믿는 황당한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과는 진지한 대화가 불가능하다. 운 좋게 음모론을 몇 번 맞추면 확신을 가지고 개소리를 하게 된다. 개인의 경험을 인정하기로 하면 다들 특정 지역 출신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조센찡이 어떻고 부라쿠민이 어떻고 피해 경험을 내세운다. 일본의 혐한 논리와 같다.


    여성이 어떻고 성소수자가 어떻고 하며 게시판에서 떠드는 개소리는 모두 당사자가 직접 경험한 것이다. 중의학이 대박을 친다. 침을 맞고 뜸을 떴는데 참 용하더라고.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이런 쪽으로 가면 아주 비뚤어진다. 중요한 것은 협력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반칙을 일삼는 자와 어느 의사가 협력하겠는가?


    중의학이냐 양의학이냐는 병을 치료하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다자가 협력할 수 있느냐가 기준이다. 한쪽은 엄격하게 검증하는데 다른 쪽은 주먹구구로 한다면 손발을 맞출 수 없다. 까놓고 말하자. 다들 귀신 봤잖아. 꿈이 맞았잖아. 점쟁이가 참 용하잖아. 음모론이 진짜잖아. 괴력난신을 추종한다. 환빠들이 확신을 가진다.


    창조과학회를 제지할 수단이 없다. 왜 개인의 경험은 모두 거짓인가? 그것은 두뇌의 판단이 아니라 호르몬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다들 호르몬의 작용을 경험으로 착각한다. 원시의 생존본능과 호르몬의 지배를 받아서 퇴행행동을 하는 것이다. 일제히 바보가 되고 마는 것이다. 호르몬은 언제나 이성을 이긴다. 


    왜? 인간은 10만 년 전 들판을 뛰어다니던 부족민의 삶에 맞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문명은 1만5천 년 전에 갑툭튀한 것이며 자연의 본래와 맞지 않다. 인류는 이상한 세계로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다. 문명중독에 걸려서 본 모습을 잊어버렸다. 본래로 되돌아갈 수 없다. 자연스러운 원시인의 삶으로 돌아가기는 불능이다. 


    개는 늑대에서 왔지만 늑대의 본성을 잊어버렸다. 늑대는 오륙 년밖에 살지 못하는데 개는 15년씩이나 산다. 인간은 원래 40살 정도만 살도록 되어 있다. 80살씩 사는 현대인의 모습은 유전자의 설계에 없는 다른 것이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와버렸다.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다.


    당신이 실용으로 믿는 것들은 찰나의 느낌이며 당신이 경험으로 믿는 것들은 호르몬의 작용이다. 합리주의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합리주의란 순간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판단하는 것이며, 개인이 아닌 집단의 일원이 되어 판단하는 것이다. 왜? 바로 그것이 철학이다. 철학은 남에게 말을 거는 자격을 얻게 한다.


    길게 보고 크게 보는 시선을 얻은 자가 타인에게 말을 걸 자격이 있다. 요령이나 꼼수나 실용이나 경험이나 잔재주는 혼자 알고 있어라. 타인에게 말을 걸려면 서로 간에 공유하는 가치를 찾아야 하며 개인적인 것은 개인에서 끝나야 한다. 70억 인류가 일제히 한 방향으로 가려면 70억이 합의할 수 있는 것을 말해야 한다.




[레벨:9]회사원

2020.05.12 (08:57:27)

당신이 실용으로 믿는 것들은 찰나의 느낌이며 당신이 경험으로 믿는 것들은 호르몬의 작용이다. 합리주의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합리주의란 순간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판단하는 것이며, 개인이 아닌 집단의 일원이 되어 판단하는 것이다. 왜? 바로 그것이 철학이다. 철학은 남에게 말을 거는 자격을 얻게 한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4808 처음 방문하시는 분께 1 김동렬 2020-05-24 3664
4807 정의당과 심상정의 오판 3 김동렬 2020-05-22 4410
4806 제논의 궤변 image 1 김동렬 2020-05-22 4133
4805 교육의 목적은 집단적 자아실현에 있다 2 김동렬 2020-05-21 3822
4804 집단의 권력과정power process 1 김동렬 2020-05-20 3774
4803 유나바머 1 김동렬 2020-05-20 4136
4802 소승과 대승 1 김동렬 2020-05-19 3991
4801 구조주의 교육으로 갈아타자 3 김동렬 2020-05-19 3617
4800 사이트를 개편하며 1 김동렬 2020-05-17 4273
4799 준표와 중권의 삽질대전 1 김동렬 2020-05-17 4069
4798 교육이냐 반교육이냐 1 김동렬 2020-05-15 3947
4797 진정한 교육으로 갈아타자 1 김동렬 2020-05-14 3672
4796 철학의 탄생 1 김동렬 2020-05-13 3255
4795 철학의 실패 2 김동렬 2020-05-13 3350
4794 유물론 유심론 구조론 1 김동렬 2020-05-12 3498
4793 철학은 죽었다. 그리고 부활한다. 9 김동렬 2020-05-12 4377
» 실용과 경험의 위험 1 김동렬 2020-05-11 3524
4791 회원가입 및 등업요건 변경안내 4 김동렬 2020-05-11 3625
4790 문제는 가방끈이 아니라 방향이다 1 김동렬 2020-05-08 4032
4789 구조론 제자의 의미 2 김동렬 2020-05-06 3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