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분 이야기가 나온 김에 면적이나 부피가 뭘 의미하는지 생각해보자. 아직까지는 개인의 거친 아이디어라 두서가 없을 수도 있다. 먼저 면적은 면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유클리드 원론의 핵심은 직각의 정의다. 유클리드는 공리에 직각을 쓰면서도 정작 직각이 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 우리는 직각이 90도라고 생각한다.
https://namu.wiki/w/%EC%9C%A0%ED%81%B4%EB%A6%AC%EB%93%9C%20%EA%B8%B0%ED%95%98%ED%95%99
그런데 통계학으로 들어가보면 직각은 90도가 아니다. 직각은 직각을 이루는 두 성분이 서로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계학에서 두 성분(변수)은 상호독립관계인 것을 직각이라고 할 수 있다. https://drhongdatanote.tistory.com/14 다시 말해 독립변수라는 전제에 대하여 종속변수 둘 사이에 독립이 성립하면, 직각이다. 그런데 둘이 상관이 없으려면 둘은 전제에 대하여 상관이 있어야 한다. 뭔 말이냐?
국민과 정치인이 있고, 정치인은 다시 여와 야로 나뉜다는 말이다.
이는 구조론의 시공간중첩과 관련이 있다. 구조론에서 시공간중첩은 어떤 전제 하나에 대하여 진술 2가 대칭된 상태를 말한다. 이때 각 진술(2)는 서로 대칭하는 동시에 일정 비율로 순서가 있고, 마찬가지로 전제와 진술2 또한 서로 대칭하는 동시에 일정 비율로 순서가 있다.(이 비율은 전제에 의해 상대규정되는 가치(값, value)이다)
통계학에서 어떤 두 성분을 규정하려면 둘은 상호 종속성이 없어야 한다다. 가령 통계 조사를 할 때 키와 몸무게를 조사한다고 치자. 이때 키와 몸무게는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으므로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무슨 말이냐, 키가 커도 몸무게가 작을 수 있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도 키가 작을 수도 있다. 키가 크면 무조건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아예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뭔가? 키와 몸무게의 비율은 몸매라는 절대성분에 의해 그 비율이 상대적으로 규정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둘은 상관없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몸매라는 전제를 두면 아예 상관이 없다고도 말할 수는 없다. 두 비율이 한계를 넘으면 사람이 죽으니깐. 가령 남녀 수의 비율을 보면 남자의 수와 여자의 숫자 사이에 직접 상관은 없지만 사회를 두고 보면 둘 사이에 비율은 사회의 분위기 즉 문화를 따르게 되어 있다. 한국사회의 경우 남아선호 때문에 남자가 많은 것이다.(이때 남자의 수는 무한정 증가하지 않는다. 반드시 멈춘다. 왜냐하면 남자가 너무 많아지면 사회가 붕괴하고, 사회가 붕괴하면 남자라는 개념 자체가 불성립 하니깐. 해당 사회는 멸종한다.)
이런 삼각관계를 기하학에 적용하면 x와 y라는 좌표가 가지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x와 y가 직각이며 동시에 좌표축이 된다는 것은 각각에 대해서는 독립이나, 면적이 정의되는 공간에서는 종속이라고 친 것이다. 그러므로 3차원을 넘으면 되면 면적이나 부피를 정의할 수 없게 된다. 직각을 정의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질량을 3차원과 엮어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왜 피타고라스 정리는 제곱에 의해 정의되는가? 제곱이라는 연산이 아니라 면적이 선보다 먼저 정의되고 난 후에 그것을 제곱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그리고 면적과 선의 관계는 곱셈으로 표현한 것이고, 실제로 곱셈은 덧셈의 덧셈을 의미하며, 이는 묶음이라고 달리 말할 수 있다. 몇 번 묶였는지 헤아리는게 곱셈이다.
직각삼각형에서 두 변의 제곱의 합은 대각선의 제곱의 합과 같은게 아니라, 대각선 즉 면적을 인수분해하면 가능한 두 성분이 나오는 것이며, 상관하지 않는 두 성분은 직각을 이룬다고 수학적으로 정의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각선이 두 선 사이에 대각선인게 아니라 면적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선형대수학에서 두 성분이 교차하는 것을 두고 '점'이라고 하는데, 그건 점이 아니라 면적이다. 당신 눈에는 그게 점으로 보이겠지만 이미 수학적으로 면적은 성립하였다. 값을 구할 수도 있고.
빨간 점을 보지 말고, 녹색 빗선을 봐야하고, 녹색 빗선은 곧 파란색 대각선으로 함축된다.
그게 면적의 정의이다. 면적이 x와 y 축으로 인수분해되면 선(여기선 각 좌표축)이 되는 것이다.
구조론을 보면 밀도, 입체, 각, 선, 점이 있고, 이때 각이 기하학의 면적에 해당하는데
면적을 면적이라고 보면 구조론의 각과 기하학의 면적이 같은 것을 기술한다는게 납득이 안 되지만
"상관없는(상호 종속하지 않는) 두 성분이 교차(동시에 만족)하는 것을 직각이라고 말한다"라고 보면
구조론의 각을 이루는 두 선은 입체라는 전제 아래에서 서로를 침범하지 않아야(상관하지 않아야) 하므로, 사실상 "직각"의 개념과 같은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구조론적으로 보면 모든 각은 직각이 된다. 직각이 아닌 각은 없다.
다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각이라는 것은 각이 아니라 두 직선 사이에서 길이로 표현되는 비율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직선은 길이가 없으므로 자체적으로는 길이를 정의할 수 없으나, 연역적으로 보면 면적에 의해 두 직선은 한정되므로 각각은 길이를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이런식으로 보면 부피도 마찬가지의 원리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귀납적이 아니라 연역적으로 유클리드 기하학을 재해석 하는 것이다. 면적은 선이라는 하위 개념으로 하향표현, 즉 연역적으로 표현하게 되고, 실제로 그것은 곱이나 루트로 표현한다. 이때 루트와 곱은 방향이 반대이고 수학사에서 곱이 먼저 발견되고 루트가 나중에 발견됐지만,
자연은 언제나 루트가 먼저이다. 자연은 연역이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면적은 네모가 아니며 하나의 정보이고, 편의상 네모로 표현했을 뿐이라고 봐야 한다. 우주는 백만가지로 다양한 거 같지만 우주 외부로 보면 1인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내부가 천만가지라도 외부에 대하여 내부는 상대적 균일을 이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귀납적 사고관을 통해, 선을 곱하여 면적을 얻는다고 생각하므로 두 선이 다양하다고 생각하지만, 면적 입장에서 보면두 선은 다르지 않다. 애당초 분리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선이라고 차용하여 표현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선이라는 것도 없다. 그것은 구조론에서 4번째에 해당하는 정보의 한 단계일 뿐이다.
이게 무슨 쓸모가 있냐? 선형대수학을 확 쓸어버릴 수 있다. 더 엄밀하면서도 더 단순화 시켜 정의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선형대수학(행렬)과 데이터사이언스(통계과학)을 근간하는 현 인공지능도 단번에 정리될 수 있다.
사실 선형대수학은 이름부터 틀려먹었다. 선형성을 근본하기 때문이다. 선형성은 곧 어떤 둘의 대칭을 귀납적으로 본 것이다. 어떤 둘은 자체적으로는 대칭할 수 없고, 대칭의 전제가 있어야 대칭할 수 있다. 선이 있으려면 먼저 면적(각)이 전제되어야 한다. 물론 선과 점의 관계를 기술하는게 선형대수학이니 아예 틀리지는 않았다.
왜 피타고라스 정리가 성립하냐고? 직각과 면적과 대각선을 그렇게 정의했으니깐. "면적 = 대각선"이니깐.
우연히 두 선분의 제곱의 합이 대각선의 제곱의 합과 일치하는게 아니라, 정의에 들어있는 개념이다. 선형대수학 공부해보신 분이라면 한 방에 정리될듯. 벡터에서 헷갈리는게 죄다 이거니깐. 벡터는 방향과 크기가 있는 양이 아니라, 대각선이며, 이는 면적의 표준화된 표현 방식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방향이 있다는 말은 교차점과 원점이 동시에 정의된다는 말이고, 이 또한 대각선, 즉 면적을 의미.
참고로 선형성의 핵심 정의 둘은 1) 중첩superposition과 2) 동일성homogeniety 이다. 비록 연산으로 정의하지만, 구조론의 삼각관계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XHfKCNkLfmg&list=WL&index=3&t=2118s
Superposition중첩 > 덧셈 교환법칙 >> 너랑 나랑 다르냐?
Homogeniety동일 > 곱셈 교환법칙 >> 너랑 나랑 부모가 같냐?
해석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대강 이해하고 넘어갑시다.
선형성Linearity에서 두 선의 교점은 반드시 원점을 지나야 한다는 개념이 나오는 이유는
정의가 원래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
대각선으로 선형성이 정의되기 때문입니다.
현재 선형대수의 정의가 귀납적이라 정확한 표현은 아니겠지만 스칼라와 벡터의 관계는 하위와 상위 정보의 관계이며, 선과 면적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연립방정식의 해를 구하는게 아니라 두 방정식(=연립방정식)의 중첩(공통) 원인을 찾는 것이며, 그것은 기하학에서 대각선이자 스칼라에 대한 벡터가 됩니다. 벡터가 화살표로 표현되는 이유도 그것이 선에 대한 면적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고요. 스칼라처럼 그냥 선이면 화살표가 빠지죠. 지금처럼 축에다 화살표를 그리는 건 무식한 짓입니다. 축은 화살표가 없어야 하며 벡터에만 화살표를 그리는게 맞습니다. 어쨌건 수학자들도 엄밀한 표현을 위해 나름 고민한 겁니다. 다만 유클리드의 대전제가 틀렸을뿐.
관련 구조론 글
http://gujoron.com/xe/gujoron_ebook/7259
http://gujoron.com/xe/gujoron_ebook/7260
http://gujoron.com/xe/gujoron_ebook/7261
해당 링크 글에 이미지가 없네요..
상위정보에 대한 하위정보로의 분해(연역)라고 하는게 더 나을 것 같네요.
제가 구조론의 밀도 입체 각 선 점에 대한 이해가 특히 부족한데 진전에 분명히 도움을 주십니다.
선형대수의 선형성의 개념은 중복으로 떡칠되어 있는 인식(귀납)론적 개념입니다.
제가 언급한 각의 경우에도 기하학에서는 면적과 각을 따로 다루는데,
구조론으로 보자면 면적은 없고 면적성(性)은 있습니다.
구조론에서 다루는 각도 우리가 생각하는 기하학에서의 각과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즉 "구조론의 각"과 "기하학의 각"은 일대일 대응이 되질 않습니다.
다만 구조론 저자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언어를 차용한 것뿐입니다.
물론 이때문에 더 헷갈리기는 하죠.
구조론의 각을 읽으면서도 머리는 기하학의 각이라고 자동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구조론에서 각은 정보 혹은 존재가 성립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성립하는 3번째 단계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듯 좌표상의 각은 자연의 실체가 아니란 거죠.
제 본문에도 언급했듯이 직각은 없으며,
더 나아가 기하학의 각도 없습니다.
현 기하학은 정적 대상을 바탕으로 기술한 것으로
동적 대상 바탕인 구조론과는 방향이 완전히 반대입니다.
(방향만 반대가 아니라 구성요소의 정의도 모두 다릅니다. 글자가 같다고 하여 같은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가령 선형대수에서 벡터는 "크기와 방향이 있는 양"이라고 설명하는데,
좌표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두 선의 교차점에 제3의 선이 중첩된 것을 말하며,
이때 원점(교차점)에 대하여
크기(단순히 길이나 각이 아니라 두 선에 대하여 중첩된 상대적인 비율)가 규정된 것입니다.
사실 선형대수에서는 '각도'나 '직각'이라는 개념을 무리하게 사용하므로
각도 보다 더 본질적인 개념인 '비율'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다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벡터가 필요이상으로 번잡해진 게 사실입니다.
공대생 중에 '벡터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이해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가령 우주공간에 직선으로 화살표를 그릴 수 있겠습니까?
직선 하나만 그어서는 화살표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직선의 앞과 뒤를 화살표라고 한다면, 직선의 어느 방향을 앞이라고 해야 할까요?
설령 어느 한 부분을 앞이라고 쳐도 그게 앞이라는 근거는 '정적 단일 대상'에서는 정의할 수 없습니다.
물론 벡터는 동적대상을 다룬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으나
운동을 말하기 이전에 운동이 뭔지부터 과학적으로 재정의 되어야 합니다.
운동은 운동이 아니거든요.
물리학을 전공하셨다면,
관성계에서의 운동은 운동 대상 혼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우주공간에서 시속 1000km으로 달리는 물체가 있다고 한들
똑같은 속도로 달리는 물체 입장에서는 정지한 거라는 거죠.
즉 인간의 느낌에서 다루는 운동과
자연의 실제에서 나타나는 운동은 다릅니다.
자연에서는 운동이 결정되면, 이후에는 그냥 관성에 의해 쭉 가는 겁니다.
그리고 물리학에서 정의하듯이 쭉 가는 건 등속운동이므로
사실 운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일반인이 느끼는 운동은 가속운동이거든요.
걸을 때는 계속 가속을 해줘야 쭉 가기 때문입니다.
즉 운동을 결정한다는게 중요한 거고 쭉 움직이는 건
운동의 본질과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상식대로 움직임을 상상하는 순간 운동의 실제와는 멀어지는 겁니다.
직선의 앞뒤는 직선만으로는 정할 수 없습니다.
앞 뒤는 '두 하위 직선'이 또다른 '하나의 상위 직선'과 교차가 성립할 때,
상위 직선에서 하위 직선으로 '방향성이 있다'라고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냥 아무 이유없이 벡터임을 나타내고자 화살표만 그려두는 것은 성의가 없는 겁니다.
(물론 벡터가 상대성이론과도 관련이 있으므로 화살표도 나름 의미가 있긴 할 것)
근데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선형대수에서도 마찬가지로
두 좌표축에 하나의 선을 그리면 이러한 방향성이 성립은 한다는 겁니다.
물론 원점을 통과해야 하죠.
그래야 구조론의 중첩, 즉 자연(논리)의 실제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때문에 선형성의 조건 중 하나가 원점 통과인듯 합니다.
사실 선형성은 면적 혹은 곱셈을 정의하기 위한 전제입니다.
구조론으로 보자면 상위 정보와 하위 정보의 관계를 정의해보려는 거죠.
선형대수의 벡터는 길이가 없는 두 선의 직교 상에 제3의 선을 상대적으로 그려넣는데,
구조론의 연역방향으로 그려보자면, 먼저 '길이가 있는 선 하나'를 그어놓고
다음 이와 교차하는, '길이가 있는 두 선'을 각도와 상관없이 그어야 합니다.
어차피 각도는 필요없습니다. 길이로 비율만 알면 되기 때문입니다.
가만 보니깐 벡터에서 정의된 여러 연산도 이런 개념을 반영하고는 있는것 같네요.(내적, 외적 등)
이런 점에서, 삼각함수나 각의 개념을 없애버리면 선형대수가 훨씬 논리적으로 바뀔 텐데 아쉬울 따름입니다.
여기서 제가 '선의 길이'라 하여 마치 크기가 있는 것처럼 표현하였는데,
사실 크기는 사건의 매 단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양의 단계에 이르러 규정됩니다.
다만 이해를 돕고자 크기 개념을 사용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수학에서 선하나는 크기가 없으므로 점 하나와 외견상으로는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정보의 연결 개수가 차이날 뿐입니다.
무한 길이가 있다고 한들 전부는 곧 전무와 동일하므로 그냥 어떤 1일뿐이라는 거죠.
한편 선형대수에서는 선형성을 정의할뿐 비선형성은 단순히 선형성이 아닌 것으로 정의됩니다.
뭔가 구린 거죠.
구조론은 '외내부 관계 > 중심주변 관계 > 내내부 관계'로 정의되며,
여기서 부분의 각 관계가 선형성의 정의에 비교적 부합하며
다시 전체적으로 선형이 3중으로 중첩되어 선형성을 이루면서도 각각이 또한 선형성을 이루므로
실제로 사건은 비선형으로 나타나며,
내부에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때,
random 현상(선형성에 의한 시간 > 공간 성립)이 반드시 필요하므로,
결과적으로 비선형은 확률적으로 실현됩니다.
하여간 구조론의 입체는 정육면체가 아니고, 각은 각도가 아니며, 선은 직선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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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겐벨류와 면적 개념을 연결해주신 것은 아이겐벨류와 면적을 동시에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수학책 보다 훨 좋은 설명이네요. 감사합니다.
같은 논리로 입체의 특정 단면(관점,투영,프로젝션?)을 면적(각)으로 볼 수 있을까요?
면적의 특정 단면(?)은 선?
밀도의 특정 관점이 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