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446 vote 0 2019.05.02 (18:18:31)

    악의는 없다.


    선의는 있어도 악의는 없다. 어떤 사람이 악행을 한다면 나쁜 마음을 먹고 악의적으로 나쁜 짓을 하는 게 아니다. 의도가 없다는 말이다. 그들은 마음은 텅 비어 있다. 악의라는 것이 마음속에 가득 들어차 있는 것이 아니다. 흉계, 음모, 거짓 따위를 쟁여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진짜 악당도 있다. 그 경우는 나쁜 짓을 반복하다가 악행이 습관이 된 것이다.


    선의 실패가 악이다. 선은 실체가 있지만 악은 실체가 없다. 선은 절대로 존재하지만 악은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선은 의도가 있고 비전이 있고 계획이 있지만 악은 그에 대칭되는 무엇이 없다. 악은 악의라는 나쁜 계획을 가지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선의 뒤를 살살 따라다니며 방해하거나 왜곡한다. 선은 스스로의 힘으로 전진하지만 악은 선에 빌붙어 기생한다.


    이명박이 악당인 이유는 마음속에 악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선과 악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선과 악이 섞이면 악이다.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섞이면 마이너스다. 밥과 재가 섞이면 반밥이 아니고 쓰레기다. 이명박도 뭔가 잘해 보려는 마음은 있었다. 그러나 순수한 선이 아니면 안 된다. 여기서 진보도 교훈을 얻어야 한다. 선에 철저해야 한다.


    선한 의도를 가졌으므로 악한 수단을 좀 섞은들 어떠리 하는 생각이 위험하다. 그게 이명박 정신이다. 순수한 악은 없다. 악당은 부하도 악당이어야 한다. 악당이 주군에게 충성할 리 없다. 그러므로 악은 자체모순에 의해 붕괴한다. 박정희라는 악당 밑에 차지철이라는 악당이 있으면 궁정동의 총성은 울리고야 마는 것이다. 악은 수명을 연장하려고 싸움을 건다.


    전쟁이라는 더 큰 악을 끌어내면 상대적인 필요악이 된다. 2차대전이 4년씩 끈 이유는 4년 동안 끝없이 신무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장군멍군은 계속된다. 독일도 처음은 압도적이지 못했다. 준비되지 않는 상대를 기습으로 이긴 것이다. 독일이 이긴 원인은 잠수함과 전차와 비행기를 거듭 개량했기 때문이다. 연합군이 전열을 가다듬고 대응하면 신무기로 응수한다.


    연합군도 신무기로 응수한다. 독일군은 잠수함과 전투기와 신형전차로 이기려고 했고 연합군은 레이더와 암호해독과 물량작전으로 응수했다. 독일의 전격작전을 소련은 종심작전으로 극복했다. 이렇게 장군멍군이 이어지는 동안 악은 생명을 유지한다. 더 이상 신무기가 나오지 않고 새로운 전술이 나오지 않으면 상황은 종료된다. 악은 나름 창의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라즈니쉬의 오리건 캠프가 4년간 연명한 것도 그들의 히피행각에 나름 창의적인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4년간 쇼를 하다가 에너지 고갈로 망했다. 그들은 나름 신선한 시도를 했다. 돈 많은 엘리트를 끌어들인 것이다. 여성을 간부로 우대한 것이다. 종교가 죄의식을 강요한 데 비해 엘리트주의로 우월감을 선사했던 게 먹힌 것이다. 우월감을 주려면 쇼를 해야 한다.


    쓸데없이 오리건주의 주민과 마찰한 것이 망하는 원인이 되었다. 현지인과 타협하여 조용히 살면 되는데 언론을 탈 목적으로 괜히 방송에 출연하여 주민을 도발한 것이다. 오리건주를 모욕하는 역할은 라즈니쉬의 비서 쉴라가 맡았다. 그동안 라즈니쉬는 침묵하였다. 그의 목적은 진정한 비전의 제시가 아니라 인류를 도발하여 반응을 끌어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은 사실이지 좋은 언어를 갖지 못한 것이다. 히틀러가 나쁜 말을 하는 이유는 좋은 말을 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나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은 실력이 없는 거다. 악한 인간은 선한 사람을 떠본다. 왜?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을 자극하고 상대의 반응에서 힌트를 얻어 자기 행동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구조론은 힌트를 주는 대신 강퇴시킨다. 라즈니쉬는 그들의 코뮌이 지속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은 침묵하고 부하에게 일을 넘겼고 부하는 폭주했다. 라즈니쉬의 덫에 걸린 것이다. 한계에 이르러 쉴라가 도망치자 라즈니쉬는 뜬금없이 경찰을 끌어들여 쉴라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경찰은 이게 웬 횡재냐 하는 표정으로 라즈니쉬를 체포했다.


    사실은 라즈니쉬가 자폭한 것이다. 애초부터 그는 인류를 상대로 장난칠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쉴라는 종교를 표방했지만 라즈니쉬는 갑자기 말을 뒤집고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구조론연구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고 상대의 반응을 떠보려고 하는 사람은 강퇴된다. 의견을 구하려면 자기 의견부터 밝히는 게 맞다. 비전이 있는 자가 진짜다.


    공자는 비전이 있었지만 노자는 비전이 없었다. 흥 그래봤자 잘 안 될 텐데 하며 딴지를 걸고 핀잔을 주는 게 노자의 방법이다. 그의 말이 맞다. 원래 잘 안 된다. 세상에 시행착오 없이 단번에 되는 일은 없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전진해야 한다. 자체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쏘아진 로켓처럼 2단연료를 점화하고 계속 가는 거다. 그럴 때 기회는 확률로 온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5.03 (01:09:45)

"계속 가는 거다. 그럴 때 기회는 확률로 온다."

http://gujoron.com/xe/1085821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설의 어원 김동렬 2024-12-25 6960
4431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1 김동렬 2019-05-21 4632
4430 천국은 없다 4 김동렬 2019-05-20 4692
4429 돈은 찍어내고 봐야 한다 5 김동렬 2019-05-19 4581
4428 제프 쿤스 그리고 4 김동렬 2019-05-18 4899
4427 천재도 유행을 탄다 2 김동렬 2019-05-17 4827
4426 만남이 천재를 결정한다 6 김동렬 2019-05-15 8775
4425 아인슈타인의 직관과 보어의 입장 image 5 김동렬 2019-05-14 4814
4424 최단경로가 이긴다 1 김동렬 2019-05-13 4611
4423 구조론은 순서다 1 김동렬 2019-05-12 4421
4422 위하여는 배척된다 17 김동렬 2019-05-11 4548
4421 수학적 직관이 답이다 3 김동렬 2019-05-10 4633
4420 있음과 없음[수정] 10 김동렬 2019-05-09 4880
4419 장이 정답이다 5 김동렬 2019-05-07 4684
4418 질문은 성의있게 해야 한다 4 김동렬 2019-05-07 4363
4417 실체냐 관계냐? 1 김동렬 2019-05-07 3878
4416 있음과 없음 7 김동렬 2019-05-06 4271
4415 구조론 다음은 없다 1 김동렬 2019-05-06 3947
4414 허무는 없다 1 김동렬 2019-05-03 4825
» 악의는 없다. 1 김동렬 2019-05-02 4446
4412 답은 에너지다 3 김동렬 2019-05-01 5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