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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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193 vote 0 2009.01.02 (11:36:05)

 

소크라테스 이래로 서구철학은 '분석'의 방법을 세상과 우주를 이해하는 도구로 쓰고 있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부분을 합치면 전체가 되고 전체를 쪼개면 부분이 된다. 부분과 전체 사이에는 질서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수학이다. 


부분은 원자이고 전체는 물질이다. 원자를 합치면 우주가 되고 우주를 쪼개면 원자가 된다. 부분과 전체 사이에는 질서가 있다. 그것이 물리학이다.


뭐 이런 식이다. 반면, 동양철학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본질을 느끼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그게 뭐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다니? 본질을 느끼다니 도대체 뭘 어쩐다는 거야? 종잡을 수가 없잖아. 알아듣게 말해보라구.’


분석한다는 건지, 종합한다는 건지, 실험한다는 건지, 재현한다는 건지, 건물을 짓는다는 건지, 곡을 연주한다는 건지 도대체 뭘 어쩐다는 거야?


명상을 한다? 눈을 감는다? 과연 뭔가를 하고 있기는 한 것일까? 그걸 어찌 느껴본다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졸고 있는것 아닌가?


동양의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일종의 ‘감응’이라고 생각한다. 또 ‘직관’이라고 생각한다. 감응은 무엇이고 직관은 또 무엇인가?


늘 하는 말로는 자연의 울림과 떨림에 공명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 뭘 어쩐다는 말인가? 깨닫는다는 것이다. 무엇을? 동그라미를!


동그라미는 쪼개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분석될 수 없다. 분석될 수 없으므로 종합될 수도 없다.


동그라미는 부분이면서 전체를 겸한다. 그러므로 종합될 필요조차 없다. 그 안에 1사이클의 완전성이 다 갖추어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 동양의 방법은 자연의 완전성 그대로를 정복하는 것이다. 내 안의 완전성으로 신의 완전성과 교감하는 것이다.


그것은 완전하므로 분해될 수 없다. 해체될 수 없다. 쪼개질 수 없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내 안의 완전성으로 자연의 완전성과 교감하고 신의 완전성과 감응하기다. 그것은 무엇인가? 동그라미다.


서구의 방법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그것은 전문분야에 한해서 전문가에게나 쓰이는 것이라는 점이다. 널리 아우르는 보편성이 없다.


누구나 사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에 따른 모랄이 성립할 수 없다. 생활양식에 반영되지 않는다. 행동양식으로 승화되지 않는다.


그것은 죽은 지식이다. 그들의 지식은 큰 집을 짓는 것과 같다. 그들은 수학이라는 기초에 논리학이라는 대들보를 올리고 그 위에 물리학이라는 벽을 세운다.


생물학이니 화학이니 공학이니 하면서 온갖 방법으로 건물을 짓는다. 그 건물이 좋다하나 전문가가 아니면 접근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건물에 하자가 있으면 솜씨있는 장인을 불러야 한다. 집주인은 자기집이면서도 제 손으로는 그 집을 수리할 수 없다. 이것이 서구식 방법의 비극이다.


동양의 방법은 다르다. 가치가 깃들어 있고 모랄이 생성되어 있다. 학문과 생활은 일치한다. 학문이 학자들에게 맡겨지지 않는다.


모두가 학문의 주인이 된다. 서구의 방법이 건물과 같다면 동양의 방법은 옷과 같은 것이어서 각자가 각자의 몸에 맞추어 맵시를 내게 된다.


옷은 24시간 함께 하는 것이다. 또 옷은 그 사람의 가치를 반영하고 사회관계에 의하여 그 시대의 모랄을 형성한다.


건축은 양식이 정해져 있다. 인간은 단지 깃들어 살 뿐이다. 그러나 동양적인 가치는 무한한 변용이 가능하다.


처음 컴퓨터가 발명되었을 때 전문가의 연구실에만 두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다. 학문이 보편화 되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내 생각엔, 세계의 컴퓨터 시장 규모는 다섯대 정도일 것이다."

IBM 회장 토머스 왓슨(Thomas Watson) (1943)


"미래형 컴퓨터는 아마도 1.5톤을 넘지 않을 것이다."

Popular Mechanics, 과학의 진보를 예측하며 (1949)


"개인이 집에다 컴퓨터를 둘 이유는 아무데도 없다."

DEC의 회장 켄 올슨(Ken Olsen) (1977)


전문가의 수중에 있던 컴퓨터가 모두에게 개방되듯이 학문이 보편화 되는 시대를 맞아 학문이 개인의 가치를 반영하고 학문이 시대의 모랄을 반영하게 될 때 동양적인 방법이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무엇인가? 원래 학문에는 국경이 없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좋은 것은 가져다 쓰는 것이다. 그러나 동양이 서구의 방법을 받아들이기 쉽되 서구가 동양의 가치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인식론에서 지각, 수용, 분석, 종합, 응용의 단계들이 있다. 서구의 방법이 분석과 종합에 의지하되 분석에 치중한다면 동양의 방법은 종합과 응용에 의지하되 응용에 치중하는 것이다.


동양의 가치가 더 수준이 높은 상위의 가치다. 다만 서구의 방법인 분석이라는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은 동양의 방법은 알맹이가 비게 된다.


그러나 동양이 서구의 가치를 받아들였을 때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다. 서구가 작은 그릇이고 동양이 큰 그릇이다. 동양이 서구의 방법을 차용할 수 있을 뿐이다.


분석 단계에서는 응용할 수 없다. 종합을 거쳐야 한다. 서구는 분석에서 종합으로 나아가는 중이며 응용은 아직 멀었다.


동양은 분석을 거치지 않고 바로 종합에서 응용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알맹이가 없지만 서구의 분석을 받아들이면 완전해진다.


서구의 학문은 전문가의 수중에 있는 불완전한 것이다. 버스와 같다. 버스를 이용하기는 하되 아직 전문가인 운전기사의 손을 빌려야 한다.


동양의 학문은 승용차와 같다. 운전기사의 도움을 받지 않는 채로 누구나 오너 드라이버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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