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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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93 vote 1 2020.08.07 (13:45:02)

      

    사회게임론


    세상은 사건이다. 사건은 일어나고 결정하고 종결된다. 주기를 이루므로 단위가 있다. 사건의 관점으로 보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세상은 공간에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시간을 타고 흘러가는 존재라는 점이 각별하다. 인간을 몰아붙여 액션을 요구하며 행위에는 결과가 따른다.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사회계약론이나 천부인권설 같은 것이 있지만 솔직히 인간은 계약한 적도 없고 하느님이 도장을 찍어준 일도 없다. 사회계약이니 천부인권이니 하는 관념들은 레토릭이 딸리는 자들의 어설픈 수사에 불과하다. 그런 표현을 쓴 의도를 짐작할 수는 있다.


    존재는 사건이며 인간이 사건에 뛰어들면 게임이 시작된다. 게임은 다수가 룰을 공유한 상태에서 상대의 행동에 적절히 맞대응을 하되 그에 따른 결과를 예측하고 상황에 맞게 의사결정하여 보상을 획득하는 것이다. 다수가 룰을 공유하면서 그에 따른 효율성을 가져가는 것이 게임이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말이 있지만 희망사항일 뿐 인간은 그다지 자유롭지 않고 평등하지 않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을 뿐이다. 누구든 운명적으로 게임의 출발선에 서게 된다. 자유의사로 서는 것은 아니다. 태어나보니 피부색과 성별과 국적과 가족이 결정되어 있다. 받아들일 수 밖에.


    신체적인 조건도 저마다 다르고 지능도 다르다. 게임을 거부하면 가출, 노숙, 범죄, 은행털이, 산적, 해적, 마적 따위를 선택할 수 있다. 그들은 맞아죽거나 혹은 교도소에서 생활하게 된다. 호주에서 애보리진의 수감율이 백인의 15배인 것을 보면 게임의 탈락자도 적은 숫자는 아니다.


    게임의 참여는 당연한 의무가 아니라 사회가 발달하면서 이루어놓은 고도의 성취다. 사회계약이든 천부인권이든 자유와 평등과 박애든 그것은 문명의 성취이지 무조건적으로 주어진 미션은 아니다. 당연히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며 서로 사랑한다는 관념은 허상에 불과하다.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가출하면 불행해질 확률이 높다. 노숙하면 골병든다. 범죄를 저지르면 역시 좋지 않다. 게임을 받아들이면 결과는 알 수 없다. 게임을 거부하면 그게 부족민 사회다. 부족민은 많아야 100명이다. 노약자와 어린이를 제하면 50명이다. 성별을 구분하면 25명이다.


    그들은 서로 만만한 사촌간이다. 그 25명 중에 특정한 상황에서 주도적으로 의사결정에 가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아야 다섯 정도다. 보통은 나이로 밀리고, 힘으로 밀리고, 지혜로 밀리거나 혹은 뿔뿔이 흩어져 다른 장소에 나가 있으므로 그 상황의 집단의 의사결정에서는 제외된다.


    특정 상황에서 5명 정도가 경합하면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입장을 지킬 수 있다. 흥정할 수도 있고 순번을 정할 수도 있고 나중을 약속할 수도 있다. 긴밀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그 한계를 넘으면서 인류의 문명은 촉발된 것이다. 그리고 개인이 대응할 수 없는 딴세계로 가버렸다.


    법 나오고 제도 나오고 조직 나오면서 피곤해졌다. 개인은 시스템이라는 수레바퀴에 이리저리 치인다. 사회계약이든 천부인권이든 자유와 평등과 박애든 100명 정도의 소집단에서 주도적으로 나서는 5명의 경합에서 먹힐 뿐이다. 집단의 숫자가 70억을 찍어버리면 모든게 희미하다.


    여전한 것은 게임 뿐이다. 사회는 토대의 공유에 의해 성립된다. 공유에는 효율이 다른다. 공유에 따른 효율을 편취하려고 하면 상대의 맞대응에 의해 게임이 촉발된다. 게임을 거부하면 맞아죽거나 혹은 산적이나 해적, 마적을 하다 교도소에 수감된다. 어느 경우든 그다지 좋지 않다.


    게임 참가자는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고 맞대응할 수 있다. 능동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기대할 수 있으며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된다. 장기전이든 단기전이든 전면전이든 국지전이든 선택할 수 있다. 정기전 전면전을 선택하면 진보가 되고 단기전 국지전은 보수가 된다.


    게임의 참여, 룰의 공유에 따른 효율성, 상대의 예측과 나의 맞대응 그리고 의사결정과 보상에 의해 사회는 작동하는 것이다. 레토릭이 안 될 때 사회계약이니 천부인권이니 자유 평등 박애니 하며 대충 둘러댄다. 인간은 게임에 참여하며 기대이익에 따라 합리적으로 의사결정한다. 


    그러한 합리성들이 쌓여서 결과적으로 사회는 진보 일방향으로 작동한다. 합리성의 근거는 룰의 공유다. 룰은 공유하지만 결정은 사유다. 룰에서 몫을 빼먹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결정에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잘못된 결정이면 손해를 입는다. 손해가 뻔하면 게임에 불참하게 된다. 


    노숙자가 되거나 교도소에 수감된다. 다수가 노숙하거나 교도소에 수감되었다면 그 사회는 실패다. 공유하는 룰이 잘못 세팅된 것이다. 애보리진이 백인의 15배나 수감되어 있다면 호주는 어느 면에서 실패한 사회다. 미국의 흑인이나 중국의 위구르족도 대거 게임에서 배제되고 있다.


    실패한 사회는 석유대박과 같은 행운이 따르지 않으면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 지는게 보통이다. 혹은 그만큼 리스크가 잠복해 있다. 게임에 참가하여 합리적인 선택으로 이득을 얻는 원리는 국가간에도 적용된다. 중국처럼 반칙을 일삼으면 왕따된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아야만 한다. 

    

    사회는 구성원들 간에 상호작용을 높여 최고의 효율을 끌어내는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그 경우 이기는 사회가 된다. 이기는 사회는 국가간 경쟁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국제사회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룰을 정할 수 있다. 미국처럼 그냥 운이 대빵 좋아서 이기는 사회가 될 수도 있다.


    혁신을 하거나 인구로 밀거나 자원빨로 먹거나 전쟁하거나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룰을 만들려고 쟁투한 결과가 인류의 역사다. 세상은 만인 대 만인의 투쟁도 아니고 사회계약도 아니고 천부인권도 아니고 자유 평등 박애도 아니고 윤리도덕도 아니고 정의도 아니다.


    다자간 게임에서 합리적인 결정들이 살아남은 것 뿐이다. 혹은 운이 좋아서 살아남기도 한다. 나쁜 짓으로 살아남은 자들도 있다. 세상에 사이코패스가 많지 않은 것을 보면 나쁜 짓으로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건 아니다. 우리는 상대의 대응을 예측하여 합리적인 게임을 설계할 수 있다.


    공유하는 룰을 만들고 자유롭게 게임에 참여하기다. 분야마다 룰은 조금씩 다르다. 정치는 쪽수로 이기고 경제는 효율로 이기고 문화는 상호작용 증대로 이긴다. 이기는 쪽으로 기동하다 보면 보다 좋은 룰이 만들어지며 인류는 그 룰을 공유하는 방법으로 이득을 얻어 여기까지 왔다.


    인류는 게임의 결과로 주어지는 보상을 바라며 행동하지만 보상은 본질이 아니다. 그것은 유전자의 명령에 따른 호르몬의 작용에 불과하다. 주도적으로 창의하여 새로운 게임을 설계하고 나란히 출발선에 서야 한다. 나만 혼자 출발선에 서면 돌아오는 결과가 없다. 그 경우 게임 실패다. 


    최대한 다수를 출발선에 세울 수 있는 게임을 제안해야 한다. 류호정이 어떤 옷을 입었다면 대중은 그게 내게 주어지는 어떤 보상인가를 묻는게 보통이다. 류호정이 내게 무슨 보상을 했지? 그 복장과 머리모양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었지? 멍청한 질문이다. 왜 보상을 찾고 있지?


    바보냐? 그가 제안한 게임이 얼마나 많은 선수들을 출발선에 나란히 세울 수 있을까를 판단해야 한다. 다수가 게임에 가담하면 권력이 발생한다. 다들 출발선에서의 줄세우기 권력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결승선에서의 트로피가 아니라. 정의당이 집권에 관심없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흥 그 게임 재미없어. 나는 불참일세.' 이러다가 다른 선수들이 모두 류호정 게임에 가담해서 출발선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뜨악한 표정으로 '이게 뭐야? 낭패네.' 이렇게 되기 십상이다. 영리해져야 한다. 과연 이 게임이 먹히는 게임일까? 나의 제안이 다수를 출발선에 세울 수는 있을까? 


    사람들이 솔깃해 할까? 이 게임 얼마나 지속될까? 판단이 섰다면 달려들어야 한다. 어리석게 윤석열 찬양게임에 줄섰다가 피 본 사람도 많다. 며칠 안 가는 게임이었다. '그걸로 내게 어떤 보상이 주어지지?' 이러면 초딩이다. 인간은 결과의 보상이 아니라 원인에서의 권력을 탐한다.


    왜 당신은 멋진 게임을 제안하여 다수를 평등한 출발선에 줄세우는 권력을 누리려고 하지 않는가? 작가는 작품을 내고 독자는 작품 앞에 평등하게 줄을 선다. 다수를 평등하게 만들면 권력이 발생한다. 포드시스템처럼 누구나 평등하게 포드 모델 T를 사게 만들면 권력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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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0 (17:5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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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자유주의 제언


    신은 하나다. 현장에서는 셋으로 나뉜다. 창조의 신 브라흐마와 유지의 신 비슈누와 파괴의 신 시바가 있다. 각각 일의 시작과 진행과 종결을 담당한다. 추가 설명이 필요하지만 대략 이렇다. 구조론은 일원론이다. 인류의 이념은 하나다. 70억 인류가 연결하여 하나의 뇌를 이룬다면? 


    그게 이념이다. 가정이든 동호회든 회사든 국가든 인류든 집단의 의사결정에는 반드시 이념이 필요하다. 의사결정에 앞서 집단을 끌어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집단인가? 콩가루 집안인데도? 의붓자식인데도? 나라가 망했는데도? 어떻든 의사결정을 하려면 이념을 부정할 수 없다.


    이념을 부정하는 견해도 이념의 파편이다. 이념부정은 집단부정이고 집단이 없으면 집단적 결정을 못한다. 집단적 결정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각자도생이 그러하다. 그런데 집단적 결정을 한다면 반드시 이념이 도출된다. 외계인이 침략하면 인류가 힘을 하나로 모아 맞서야 한다.


    이미 이념이 만들어졌다. 지구 온난화와 같은 환경재앙은 인류가 힘을 모아 대응해야 한다. 이념이 등장할 수 밖에 없다. 이념의 부정은 집단적 의사결정의 부정이고 이는 집단의 일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집단의 일에 참여하지 않겠다면 발언권도 없다. 그러므로 닥쳐!


    이념이 둘이 될 수는 없다.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반드시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은 집단이 방향을 트는 것이며, 방향을 틀면 움직이게 되고, 움직이면 외부와 일대일로 대응된다. 자동차 핸들은 하나다. 둘이면 집단이 깨진다. 모든 움직이는 것은 일대일의 관계를 맺는다.


    움직이는 두 사람이 만나려면 같은 날 같은 장소를 특정해야 한다. 시공간의 좌표 위에 한 점을 찍어야 한다. 움직이는 세상과 나를 잇는 라인은 하나일 수 밖에 없다. 라인이 둘이면 흡수된다. 이념은 하나인데 사람마다 의견이 다른 것은 집단에서 맡은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건은 일어나고 인간은 가담한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진행한다. 사건의 어느 단계에 들어가는 것이 적당할까? 창조가 좋지만 금방 끝난다. 브라흐마 신의 서열이 높아도 인기가 없다. 시바신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새로 시작하고 싶은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념은 하나이나 단계별로 공화, 자유, 민주, 자본, 사회가 있다. 공화는 가끔 등장하며 브라흐마처럼 금방 시즌이 끝나버린다. 자유는 앞단계에 개입하여 권력을 얻고 사회는 뒷단계에 개입하여 보상을 얻는다. 여기서 갈등한다. 그 중간의 민주와 자본은 대략 세팅된 대로 굴러간다.


    법과 제도에 맡겨야 한다. 특히 자본주의는 운영의 묘에 달려 있다. 기업가와 금융인이 잘해야 하고 정부의 기술자들이 재정과 환율과 금리로 마술을 부려야 한다. 미국이라면 연준의 파월 의장과 트럼프의 안목에 달려 있다. 전문가들이 즐비한데 개인이 끼어들 여지는 잘 없다.


    개인은 권력의 자유주의와 보상의 사회주의 중에서 자기 입장을 정해야 한다. 엘리트는 권력을 선택하고 하층민은 보상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인간은 기본적으로 권력지향적이다. 권력은 눈앞에 있고 보상은 먼 훗날의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당장의 권력에 굶주려 있다. 


    가난할수록 계급배반투표로 간다. 권력과 보상 중에서 권력을 선택한다. 가난한 이유는 먼 훗날에 대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축도 안 하는 사람이 나중에 보상받는다는 약속을 믿어? 현찰을 나눠주면 몰라도. 권력은 가깝고 보상은 멀다. 그 권력은 상당부분 심리적인 권력이다. 


    남자가 여자를 지배한다고 믿거나, 경상도가 다른 지역을 지배한다고 믿거나, 강남이 대한민국을 손아귀에 틀어쥐고 있다고 믿는다면 망상이다. 검찰이 반역하는 이유도 자기네 패거리가 대한민국을 손아귀에 틀어쥐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눈앞의 권력에 집착하는게 인간이다. 


    인간은 망상에 가까운 심리적 권력에 집착한다. 돈이라도 마찬가지다. 이건희가 수십 조원을 가졌지만 병실에 누워있으면 심리적인 가치 뿐이다. 부자들은 돈에 묻어오는 권력을 누릴 뿐 돈을 소비하여 얻는 보상에는 관심없다. 보상은 부자의 부인이나 자식들이 챙겨가는 것이다.


    권력이 동기가 되지만 보상이 없어도 인간은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다. 승자든 패자든 마찬가지다. 승자의 이익이 없으면 메시도 시합을 건성으로 뛴다. 패자의 이익이 없으면 승산이 없는 약자들은 외국으로 도망치거나 범죄자가 된다. 자살하거나 노숙자가 되어 게임에 불참한다.


    승자에게도 패자에게도 납득할만큼 보상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적절한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문제는 부족주의다. 부족주의는 권위주의적인 패거리를 이루고 세력에 묻어가는 전략이다. 반칙을 하려는 것이다. 권력이냐 보상 중에 선택하라구? 아냐. 난 반칙할래. 이게 문제다.


    북유럽은 보상을 추구하다 망하고, 미국은 권력을 추구하다 망하고, 후진국은 반칙을 추구하다 망한다. 권력을 선택하면 자기 운명을 자기가 결정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정선카지노 행이기 다반사다. 의사결정권을 백퍼센트 개인에게 넘기면 대부분 도박을 하고 뒷감당을 못한다.


    보상을 선택하면 기대에 미치지 하는 적은 액수가 배당된다. 다수가 적은 액수를 보상받고 모두가 불만에 찬다. 결정적으로 엘리트가 다른 나라로 빠져나간다. 결국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진다. 선권력 후보상이냐, 선보상 후권력이냐, 게임 참여냐, 게임이탈이냐. 결정해야 한다.


    반칙할 것이냐, 정당하게 승부할 것이냐도 결졍해야 한다. 전략과 전술 중에서도 선택해야 한다. 장기전과 단기전, 전면전과 제한전이 있다. 전략은 진보이고 전술은 보수다. 장기전은 진보이고 단기전은 보수다. 전면전은 진보이고, 제한전은 보수다. 지리적인 구도가 변수가 된다.


    중국처럼 땅이 넓다면 대략 장기전을 선택한다. 국가는 장기전을 하는데 개인은 초단타를 친다. 미국이 압박해도 중국이 버티는 것은 장기전이다. 50년간 토론하고 백년을 밀어붙이는게 중국인이다. 반대로 중국 부자들이 인스그램에서 돈자랑을 하는 것은 초단타에 해당하겠다.


    단기적으로 반응을 끌어내는 데는 쪽수가 넉넉한 중국만큼 좋은 곳이 없다. 감동적인 사진을 투척하면 10억명이 본다. 뻥을 치려면 화끈하게 쳐야 한다. 반면 진지한 주장이라면 어떤 주장을 내놓아도 메아리가 없다. 공자 이후로 공자노선을 걷는 사람은 중국 역사에 한 명도 없다.


    공자의 후예들은 지금은 장사꾼이 되었다. 전 국민이 단타를 치는 셈이다. 상업이 단기전이면 학문은 장기전이다. 공리공론 위주의 관념철학을 버리고 풍수나 따지며 도교사상 특유의 극단적인 실용주의로 가다가 망한 나라가 중국이다. 이념은 공화, 자유, 민주, 자본, 사회가 있다.


    하나의 일이 기획단계, 독립단계, 성장단계, 팽창단계, 수확단계에 따라 필요한 결정이다. 역할의 차이다. 필자의 사회적 자유주의는 책임은 시스템에 묻고 권력은 개인에게 주자는 거다. 뭐든 잘못되면 사람탓을 하지 말고 매뉴얼을 고쳐야 한다. 제도를 바꿔야 한다. 사회주의다.


    공화는 가끔 한 번씩 등장한다.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인기가 없어진 이유다. 노예제도를 폐지한 이후 토지공개념을 빼고 공화할 일이 별로 없다. 국민이 한 자리에 다 모여서 룰을 다시 정할 일이 거의 없다. 미국은 인종갈등이 심해서 공화할 일이 남아있다. 푸닥거리 해줘야 한다.


    한국은 남북통일이 공화주의를 들고 나올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제도에 의해 안착이 되어 가는 편이고 자본주의는 발달하는 중이며 제도가 뒷받침되면 어떻게든 굴러간다. 주요한 갈등은 개인이 선택하는 자유주의 사회주의다. 


    자유주의는 엘리트 위주이며 개인주의다. 후진국은 묻어가기 전략을 쓴다. 반칙을 한다. 왜 가부장이 존재하는가? 가장 한 명이 출세하면 다른 사람들은 묻어가려는 꼼수 때문에 가장의 입지가 강화되고 차별이 일어난다. 가장이 혼자 벌어서 일곱식구 먹이고 노부모 봉양해야 한다.


    후진국일수록 한 명이 벌어 다수를 먹인다. 장남은 명문대 보내고 차남 이하는 중학교까지만 가르친다. 왜? 돈이 없어서다. 장남 하나에 몰빵하고 낙수효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선진국이 될수록 개인주의로 기울게 된다. 후배가 선배에 의지할 수도 선배가 후배를 챙겨줄 수도 없다. 


    챙겨주면 반드시 갑질하게 된다. 그러다가 미투를 당한다. 백퍼센트다. 게임의 단위가 개인이 아니라 패거리가 되면 필연적으로 갑질, 차별, 비리, 부패로 간다. 그룹원들 중에서 나쁜 한명에 맞추다 보면 그렇게 된다. 후진국은 당연히 그렇게 된다. 개인에게는 경쟁할 자원이 없다.


    지식도 없고 힘도 없고 빽도 없으니 교회라도 가서 빌붙어야 한다. 필자는 이런 패거리 현상을 부족주의라고 부른다. 개인에게 권력을 주고 집단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부족주의가 발호하면 모든 것이 애매해서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 개인에게 권력을 줄수 없다.


    권력을 주면 타인에게 위임해 버린다. 투표권을 줘도 남이 시킨대로 찍는다. 의사결정의 난맥상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선진국은 그래봤자 얻는게 없지만 후진국은 그렇게 하면 이익이 있다. 차별주의는 묻어가기 전략이다. 왜 교회는 소수자를 차별하는가? 묻어가면 차별하게 된다.


    앞단계 권력인가, 뒷단계 보상인가? –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다.
    강자의 공정경쟁인가, 약자의 묻어가기 꼼수인가? – 개인주의와 권위주의다.
    장기적인 전략인가, 단기적인 전술인가? –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다.


    이 외에도 공화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있지만 이들은 대개 세팅된 대로 굴러간다. 개인이 게임에 가담할 때 판단해야 하는 것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중에서 미국식으로 권력을 추구할 것인가 북유럽식으로 보상을 추구할 것인가다. 엘리트는 권력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하층민은 보상을 선택하는게 유리하다. 그러나 권력은 눈앞에 있고 보상은 저 멀리 있다. 결정적으로 강자는 공정경쟁이 유리하고 약자는 권위주의가 유리하다. 약자는 매를 맞더라도 선배를 섬기는게 낫다. 이렇게 되면 복잡해진다. 약자가 물질적 보상보다 심리적 권력을 택한다.


    허다한 이념논쟁은 이러한 세 가지 게임의 모순 때문이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똑똑한 사람에게 유리하다. 그게 맞다. 똑똑한 사람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추구한다. 그러나 띨한 사람은 패거리 짓는 방법으로 즉 반칙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비틀어버린다. 여성인데 남자편 든다.


    남편이 돈을 잘 버니까. 약자인데 강자편 든다. 삼촌이 부자니까. 이런 식이다. 결국 이 문제를 풀어내는 방법은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고 집단이 비전을 받아들이도록 신뢰를 닦는 것이다. 장기전을 선택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물론 그 경우에도 반발하는 사람은 있는데 노인이다.


    진보와 보수 - 앞에 가담할 것인가, 뒤에 가담할 것인가?

    개인과 권위 - 개인으로 가담할 것인가, 패거리로 가담할 것인가?

    자유와 사회 - 당장 권력을 얻을 것인가, 나중에 보상받을 것인가?


    공화와 봉건 - 집단에 가담할 것인가, 그냥 혼자 놀 것인가?

    민주와 독재 - 다수가 합의할 것인가, 소수가 폭주할 것인가? 

    자본과 원시 - 발전할 것인가, 퇴행할 것인가?


    공화주의냐 봉건주의냐는 백년 단위로 드물게 한 번씩 집단이 의사결정할 이슈가 터지고 민주주의는 한 번 세팅되면 대략 안정적으로 굴러가며 법과 제도를 정비할 나름이고 자본주의 역시 법과 제도를 세련되게 운영하는 전문기술자의 영역이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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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의 기원 [6]

구조론의 기원 구조론은 복잡한 것을 단순화시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구조론은 쉽다. 그런데도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반대쪽을 보고 있으므로 어려운 것이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

언어의 이해 [3]

언어에는 문법이 있다. 언어에는 방향이 있다. 언어에는 대칭이 있다. 언어에는 담론이 있다. 담론은 조건문과 반복문으로 구성된다. 언어에는 명제가 있다. 명제는 전제와 진술로 조직된다. 언어에는 문장이 있다. 문장은 주어와 ...

역사의 오류 [1]

역사를 구조로 봐야 한다. 합리적인 의사결정구조를 만들었는지가 중요하다. 조금씩 잘살게 되기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다지 의미가 없고 초반에는 역효과가 일어난다. 크게 잘살게 되려면 자동차가 있어야 한다. 이동수단 ...

진화의 구조 [3]

진화에는 방향성이 있다 모든 것은 진화한다. 진화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회도 진화하고 우주도 진화하고 물질도 진화한다. 그냥 제 자리에 멈추어 있는 것은 없다. 환경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외력이 작용한다. ...

사건철학 [7]

강자의 철학으로 갈아타라 세상을 물질적 존재가 아닌 에너지적 사건으로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물질은 고유한 속성이 있고 인간은 그 물질들 중에서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이때 인간은 선택하는 자가 ...

인간의 이해 [13]

대중의 권력의지에 해답이 있다. 인간은 에너지가 고양될 때 권력의지를 발동하며 그럴 때 인간은 공부를 한다. 남자는 운동하고 여자는 화장한다. 에너지가 약해질 때 편한 길을 가려고 한다. 가던 길을 계속 가려고 한다. ...

신의 입장 [5]

행복이니 쾌락이니 자유니 사랑이니 성공이니 하지만 다 개떡같은 소리다. 시시하기 짝이 없다. 그걸로 어린아이를 유혹할 수 있을지 모르나 내 가슴을 뛰게 할 수는 없다. 눈이 번쩍 뜨이는 진짜는 하나 뿐이다. 생각의 ...

마음의 구조 [6]

심리학은 물리학이다. 인간은 환경에 반응하는 동물이다. 환경과의 관계설정이 중요하다. 환경의 변화가 호르몬을 유도하고 호르몬이 마음을 결정한다. 환경과의 관계를 바꾸는 방법으로 자신의 행위를 통제할 수 있다. 마음은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