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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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681 vote 0 2018.07.03 (12:02:22)


   
    철학이란 무엇인가?


    http://v.media.daum.net/v/20180703103615378?rcmd=rn


    저런 쓰레기가 무려 국립대 철학교수라고 하니 강신주 같은 똥들도 ‘나도 철학’ 이러고 개판친다. 한국 안에 진짜 철학자는 없다고 봐야 진실에 근접한다고 할 것이다. 과거 철학자들의 유통기한 지난 언설을 논하는 훈고학은 그것이 철학사는 될지언정 철학은 아니다. 철학자가 지금에 와서 공자를 논하고 플라톤을 논한다면 수학자가 구구셈을 하는 격이라 넌센스다.


    주먹구구는 수학이 아니다. 옛 시인들의 시를 암송하는 것은 문학이 아니다. 자기 시를 발표해야 시인이다. 남의 영화를 보는 사람은 관객이지 영화감독이 아니다. 옛날 영화 백편 봤다고 감독 되는게 아니다. 한 편이라도 자기 영화를 찍어야 감독 반열에 오른다. 물론 영화감독이 되려면 남의 영화도 봐야 하겠지만 그것은 참고에 불과한 거다. 본질에서 많이 벗어났다.


    철학은 한 마디로 의사결정능력이다. 이러한 본질을 정면에서 지적한 사람이공자다. 변죽을 올린 사람은 많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니체와 디오게네스와 노자와 장자와 석가들이 각기 한 마디씩 관점을 보탰다. 영미철학이나 독일 관념론 철학은 철학이라고 하기에 낯간지러운 자기소개가 많다. 흥! 니들이 그렇게 나온다면 난 이렇게 응수할 거야. 


    이런 것이 철학이겠는가? 윤리 도덕 정의 선악 이런건 사회학이 될지언정 철학이 아니다. 자유 사랑 성공 출세 행복들은 사회학도 못 되는 그 이하의 처세술이다. 철학은 기본적으로 그런 것을 바리캉으로 확 밀어버리고 시작한다. 독일 관념론 철학은 기독교에서 써먹는 '사람을 통제하는 기술'을 어떻게 말이 되도록 다듬어 볼까 하고 궁리한 것이니 원초적으로 가짜다. 


    기독교의 원죄, 구원, 내세, 천국, 부활 이런 말도 안 되는 개소리들을 윤리 도덕 정의 선악으로 단어만 바꿔치기 한 것이 독일철학이라는 것이다. 철학은 정상에서 또다른 정상을 만나는 것이며 기슭에는 철학이 없다. 중간그룹의 처세술은 어떤 경우에도 철학이 아니다. 애초에 신분에서 해당사항이 없다. 에너지원을 외부에 두는 소인배의 자기방어는 철학이 아니다. 


    때로 철학적이지만 철학은 아니다. 그 적的을 끝내 떼지 못한다. 철학은 인류의 대표자 자격으로 발언하는 것이며 언제라도 70억 분의 1이어야 한다. 단 한 명만 철학할 권리가 있다. 운전기사 한 명만 핸들을 잡을 권한이 있다. 운전기사는 자동차를 다루고 철학은 인간의 내면과 사회의 에너지를 다룬다. 그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중간그룹은 에너지가 없으므로 논외다.


    인간은 원래 말을 안 듣는 동물이다. 말을 안 들어야 한다. 말을 잘 들으면 유괴범이 가자는 대로 따라간다. 곤란하다. 독립적인 의사결정의 능력 말이다. 그러므로 철학의 제 1의는 남의 말 절대 듣지마라고 되고, 제 2의는 내 말을 들어라가 된다. 인간은 15살에 독립해야 한다. 철학은 15살 무렵에 만들어져 평생 가는 거다. 그때 세상과의 각을 세우는 지점이 결정된다. 


    원래 그렇게 되어 있다. 노예 포지션에서 주인 포지션으로 거듭나는 시점이 있다. 소년에서 성인으로 거듭나는 지점이 있다. 내부에 자체 에너지원을 갖춘 자가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자체 에너지원을 가지려면 만날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것은 첫째 결혼이고 둘째 친구와의 우정이고 세번째 천하를 도모하는 도원결의다. 현대인은 학교를 통해 이를 획득한다. 


    아버지를 쳐죽이고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여 광야에 홀로 서는 것이다. 쳐죽인다는건 표현이다. 자신의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어떤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자신이 내던져진 존재임을 자각하고 심리적으로 가족과 국가와 스승에게서 독립해야 한다. 자체 에너지원을 갖추어야 한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질의 세팅이 필요한 것이며 그 구성원들은 평등한 동료여야 한다.


    수평적인 그룹 안에서 자기 입지가 있어야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디유.’ 누가 물어봤냐? 이런건 철학이 아니다. 자기 개인의 주관적인 감상을 발표하면 안 된다. 방향이 틀렸다. 정상에서 또다른 정상을 만나는게 철학이다. 인류의 대표자 관점에서 사유하기다. 정상에서 한 뼘만 모자라도 철학이 될 수 없다. 핸들 근처까지 가도 조수 역할이지 운전기사는 아니다. 


    사이드킥은 되는데 히어로는 못 된다. 분위기 흐리는 법륜이나 마광수나 강신주 부류들은 빌런에 불과하다. 곧 죽어도 핸들을 잡아야 철학인 것이며 핸들은 하나 뿐이고 한 명만 정상에 가는 것이다. 비단 철학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문학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모든 창작의 영역에 속하는 것은 모두 그러하다. 사실인지 모르지만 요즘 한국문학이 뜬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첫째 그 한국문학의 분위기가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는 독특한 분위기라는 점을 인정받아서인 것이며 둘째 한국적 분위기가 인류문명의 발달단계와 긴밀하게 접목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서다. 철 지나간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남들이 다 하는 이야기를 뒷북 쳐도 안 된다. 인류전체와 보조를 맞추어야 하며 그러면서도 한 걸음 앞서가야 한다.


    남들이 발견하고 발명해놓은 것을 발견하고 발명하는 것은 발견도 아니고 발명도 아니다. 최초로 도달해야 가치가 있다. 인류 중에서 최초로 창의해야 창의다. 표절을 창의라고 하면 곤란하다. 실력이 뛰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무가 크면 누구든 새로운 가지 하나를 보탤 수 있다. 누구든 큰 나무의 처음 내밀어진 어린 가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방향은 맞아야 한다.


    나무가 가는 방향은 오직 태양이 있는 방향 하나 뿐이다. 역주행은 어떤 경우에도 철학이 될 수 없다. 큰 나무에 가지가 백만 개라도 모두 하나의 뿌리와 하나의 줄기를 관통하는 것이다. 옆으로 분점 내고 별도로 지점 내면 안 된다. 강신주들이 '내 생각은 이래' 하고 엉겨붙지만 인류의 큰 나무와 에너지원이 분리되어 있으므로 무슨 생각을 투척하든 안 쳐주는 것이다. 


    결맞음이 어긋나면 애초에 꽝이다. 투박해도 철학이 될 수 있지만 세련되어도 가짜는 안 쳐준다. 인간 내부에 에너지가 있다. 분노가 있고 열정이 있다. 그 에너지를 끌어내는 기술이 철학이다. 에너지는 반드시 밖에서 끌어내줘야 한다. 병아리가 안에서 나오지 못하니 어미닭이 쪼아줘야 한다. 남자가 밖에서 거들어주지 않았는데 여자가 혼자서 처녀생식 이런거 없다. 


    낳음은 반드시 안팎의 맞아떨어짐으로만 가능하다. 최소 2인 이상이 하나의 토대를 공유하는데서 철학은 시작되는 것이다. 무인도에 2명이 있다. 소득을 두 배로 증가시키는 방법은 한 명을 죽이는 것이다. 그것은 철학이 아니다.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토대를 둘이 공유하는 것은 모순이며 그 모순의 방향을 수렴으로 틀어서 에너지를 취하는 것이 철학이다. 


    자연인이 혼자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철학이 아니다. 에너지의 효율성을 달성해야 한다. 물론 혼자라도 산이 있고 강이 있고 나무가 있고 흙이 있어 혼자가 아니므로 철학할 수 있다. 둘이 하나를 공유하는 상태에서 에너지 효율성을 조직하려면 시간차를 써야 한다. 공간에서 대립하던 것이 시간에서 호응하는 것이 철학이다. 남녀가 한 집에 산다면 백퍼센트 충돌한다. 


    결국 남자가 문을 열어주거나 혹은 여자가 화장실 순번을 양보하거나 둘 중에 하나가 양보해야 철학이 된다. 물론 교대로 양보하는 것이 최선이다. 공간의 모순을 시간의 호응으로 타개하는 방법으로 효율을 조직한다. 세상에 이런 수학 저런 수학이 있는게 아니고 그냥 수학이 있을 뿐이다. 나의 철학 너의 철학 그러면 철학이 아니다. 나의 수학 너의 수학 이런거 없다. 


    그냥 수학이고 그냥 철학이다. 각자 자기류의 철학, 자기류의 관점, 자기류의 사상을 들이미는 것은 하지마라는 자기소개지 철학은 아닌 것이다. 누가 니 생각 물어봤냐고? 인류의 대표자 관점에서 보는 시선은 하나 뿐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계통이다. 인류는 70억 명인데 70억 명이 각자 ‘내 생각은 이래. 내 철학은 이래. 내 관점은 이래.’ 하고 마구 들이대면 피곤하다. 


    오직 계통을 조직하고 족보를 조직하는 방법으로만 70억개의 생각을 하나로 통일할 수 있다. 큰 나무가 줄기와 가지를 분기하여 차례차례 갈래를 나누는 것이 계통이다. 그러므로 나의 이전에서 비롯된 친함을 찾아내고 나의 이후로 전달해갈 족보를 엮어내는 것이 철학이다. 공자가 말한 것은 군자다. 군자는 임금을 대리하여 적국에 가서 군왕과 담판을 짓는 사람이다. 


    인류를 대표하여 신과 담판을 짓고 돌아와서 결과를 보고하는 사람이 철학자다. 인류의 양심에서 비롯되고 국가의 공론으로부터 임무가 주어지고 내게서 말미암에 실행되는 족보가 뚜렷해야 한다. 그것이 연역이다. 나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면 곤란하다. 수학은 연역이니 귀납은 원래 안쳐주는 거다. 천하로부터 내게로 그리고 내 후대로 이어지는 에너지의 계통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 맞는가이다. 방향이 맞으면 큰 나무와 같아서 만인이 공유할 수 있다. 골은 결국 메시 아니면 호날두가 넣겠지만 그 시점에 70억개의 눈동자는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일본팀처럼 시간 끄는 짓은 인류의 대표자 행동이 아닌 것이다. 신은 벨기에를 써서 처분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2]달타(ㅡ)

2018.07.03 (15:46:49)

벨기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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