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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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9527 vote 0 2018.02.09 (15:03:15)

     

    신의 의미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신은 화성의 모래알 숫자를 낱낱이 세어놓고 있는 신이다. 부질없는 짓이다. 신은 화성의 모래알을 세는 대신 문제가 있으면 대칭원리를 사용하여 맞대응을 한다. 신은 전지전능하다. 막강하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화성의 모래알 숫자까지 파악하고 있을 정도의 꼼꼼함? 바보 같은 짓이다. 미련하게 그걸 왜 세고 있냐고?


    촌놈이 도시에 오면 감탄한다. 정교한 도로망이나 복잡한 건물이나 꼼꼼한 계획표나 이런 것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모짜르트의 음악이나 고흐의 그림에 대해서는 시큰둥하다. 촌놈이 감탄할만한 것이 시계 속의 복잡한 톱니바퀴다.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찰리 채플린의 몸이 끼어버린 그 톱니바퀴들 말이다. 복잡한 컴퓨터 프로그램도 감탄할 만하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세로쓰기로 흘러내리는 괴상한 일본어 글자들 말이다. 신은 그런 끔찍한 수단들을 운영하고 있을까? 어리석다. 그게 별 볼 일 없는 인간의 수준이다. 멍청한건 인간이지 신이 아니다. 신은 꽤 똑똑하다. 복잡한 수식보다 모짜르트의 음악이나 고흐 그림에 감탄해야 고수다. 우리는 신을 오해한다. 그러므로 당신의 기도는 먹히지 않는다.


    구조는 엮임이다. 우주는 엮여 있다. 엮여있다는 것은 현재상태의 변경에 더 많은 비용이 든다는 의미다. 우리가 신을 말할 때는 전지전능이라는 표현을 쓰기 좋아하지만 우리가 아는 전지전능은 사실 고비용구조다. 신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머저리 짓을 할 이유가 없다. 사람들이 그런 고비용구조를 알면 비웃는다. 신은 단타를 치지 않는다.


    주식투자에 비유하면 말이다. 단타는 비용이 든다. 신은 장투를 한다. 신은 워렌 버핏의 투자방법을 알고 있다. 인간은 시간을 쪼개서 살지만 신은 시간을 합쳐서 산다. 시계태엽이 풀리듯이 차근차근 풀어가는 것은 신의 방법이 아니다. 베토벤의 운명처럼 콰콰콰쾅 하고 때리는게 신의 방법이다. 고흐의 그림처럼 강렬한 인상을 쓰는게 신의 방법이다.


    신은 전략을 쓰지 전술에 기대지 않는다. 신은 게임의 법칙을 쓴다. 그것은 맞대응이다. 말하자면 프레임을 거는 것이다. 적은 비용으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이다.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인데 뭣하러 비용을 줄이려고 기를 쓰느냐 하겠지만 그것은 비용을 물질로 보는 관점이다. 신은 물질적 존재가 아니다. 전지전능은 의사결정에서의 효율에서 얻어진다.


    신은 효율을 쓴다. 신의 전지전능은 컴퓨터나 기계장치 같은 것이 아니라 게임에서 언제나 이기는 것이며 그것은 의사결정의 효율성에 기초한다. 양자역학적인 모호함에 그 효율이 있다. 복잡한 기계장치처럼 혹은 정밀한 컴퓨터 부품처럼 알차게 들어있는 것은 통제하기에 좋지 않다. 그것은 인간과 같은 하수들이나 쓰는 물건이다. 그런거 줘도 안 쓴다.


    신은 확률을 좋아하고 우연성을 따른다. 신은 계획하지만 많은 경우 계획하지 않는게 계획이다. 정교하게 스케줄을 짜는 것은 의사결정비용을 늘린다는 점에서 비합리적이다. 큰 방향을 결정하고 세부적인 부분은 밸런스에 맡기는게 합리적이다. 신은 동적이고 격정적이다. 신은 에너지를 운용하기 때문이다. 신은 드라마를 쓴다. 져주고 이기는 것이다.


    이기면 이길 때마다 정보가 유출된다. 상대방이 이쪽의 전술을 알아채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은 결승전 한 경기만 집중한다. 많은 경우 져주다가 막판역전으로 반집승을 거두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래야 이쪽이 실력과 정보가 상대방에게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신은 알파고의 연산을 하지 않는다. 그게 에너지의 낭비다. 신의 의미는 완전성에 있다.


    그런데 무엇이 완전한가? 컴퓨터나 기계장치는 사실이지 불완전하다. 외부 에너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신은 그 자체가 에너지다. 에너지는 효율성이 생명이다. 에너지를 에너지답게 하는 것 효율성이다. 그러므로 신이 에너지를 낭비하게 하는 복잡한 장치를 쓸 이유가 없다. 화성의 모래알 숫자가 몇인지 셀 필요가 없다. 신의 전략은 이기는 게임이다.


    이기면 상황이 통제되는데 숫자 따위를 세어서 뭣하겠느냐고? 기승전결의 기에 서면 이기는데 량을 셈해서 뭣하냐고? 사건을 일으키고 맞불을 지르면 되는데 왜 힘을 쓰고 운동을 하느냐고? 량은 세는 것이고 운동은 빠른 것이고 힘은 강한 것인데 신은 그런 방법을 쓰지 않는다. 이기면 된다. 먼저 오면 이긴다. 먼저 온 게임의 주최측은 항상 승리한다. 


    게임을 걸고 맞대응을 해서 50대 50으로 교착시켜놓고 작은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으로도 밸런스를 움직이면 계 전체가 통제되는데 그런 복잡한 장치가 왜 필요하겠느냐 말이다. 하느님이 띠를 정하는데 소는 뚜벅뚜벅 걸어가고 쥐는 몰래 소의 등에 올라타고 갔다고 한다. 마지막에 내달려서 쥐가 테이프 끊고 일등을 먹었다. 쥐띠가 소띠보다 앞섰다. 


  신은 쥐의 방법을 쓴다. 소 등에 타고 가므로 에너지를 낭비할 일이 없다. 마지막 1초에 이기면 그만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 신이 이기는 마지막 1초를 제외하고는 인간의 무대다. 신이 미련한 소처럼 뚜벅뚜벅 걸어가는 인간의 등에 올라타고 인간을 이용하기 때문에 인간은 신의 계획을 알아챌 수 있다. 말은 기수의 마음을 읽어낸다.


    말이 요구하는 대로 기수가 가는 일은 없다. 기수가 가려는 목적지를 알면 말은 편하다. 인간의 기도는 말이 기수에게 이런저런 요구조건을 내거는 것과 같다. 어리석다. 기수의 조건을 말이 읽어내야 한다. 어쨌든 말과 기수의 호흡은 있다. 신에 대한 인간의 기도는 의미가 있다. 말이 당근을 얻는 것은 기적과 같다. 기수의 마음을 읽어내야 가능하다.


    이신론의 신은 천지창조를 마친 후에 떠났다. 신이 떠났으므로 기적도 없고 기도도 없다. 그 신은 죽은 신이다. 진짜 신은 현재진행형 사건이다. 사건은 불이다. 불이 꺼지지 않듯이 신은 인간을 떠나지 않는다. 작은 불씨만 살아있으면 그뿐 매번 불이 활활 타올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신은 개입을 최소화한다. 에너지를 아껴야만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신은 에너지 그 자체니까. 기적은 있고 기도는 쓸모가 있다. 단, 내 로또의 당첨을 주문하는 식의 압박은 의미가 없다. 신의 입장에서 그것은 비효율적이다. 인간이 신의 계획에 가담하는게 맞다. 그렇다면 신의 계획을 알아채야 한다. 신의 계획은 에너지 효율성이다. 물질적 에너지가 아니라 의사결정비용이다. 신은 꽤 영리하다.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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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7]아제

2018.02.09 (18:24:22)

허걱..

비밀의 문을 슬쩍 열어본 느낌..

절창이오. 

[레벨:7]Quantum

2018.02.10 (16:55:36)

평창 개회식에 다녀오느라 좀 늦었네요. (세계사의 중심에 한국이 서는, 신의 계획에 한국이 동참하는 장면에, 저도 한 마리 말로서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글도 역시 감동적이네요. 부작용으로는 구조론을 접한 뒤에는 일반인들과 대화가 좀 지루해지네요 ㅎㅎ


말이 요구하는 대로 기수가 가는 일은 없다. 기수가 가려는 목적지를 알면 말은 편하다. 인간의 기도는 말이 기수에게 이런저런 요구조건을 내거는 것과 같다. 어리석다. 기수의 조건을 말이 읽어내야 한다. 어쨌든 말과 기수의 호흡은 있다. 신에 대한 인간의 기도는 의미가 있다. 말이 당근을 얻는 것은 기적과 같다. 기수의 마음을 읽어내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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