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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568 vote 0 2010.04.01 (00:03:20)


 

구조론 없는 세상

 

구조론은 말 그대로 ‘구조’에 대한 이론이다. ‘구조’는 현대 지식사회에서 널리 쓰이는 개념이다. 좀 아는 사람들이 아는 척 할 때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어쩌고 아니던가?

 

구조 개념은 심지어 과학적, 합리적, 근대적이라는 단어와 동의어로 쓰이는 지경이다. 그런 점에서 특히 고도화된 현대 지식기반사회를 표상하는 개념이라 하겠다. ‘구조’=‘지식’처럼 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이지 ‘구조’ 개념은 지식인의 만병통치약이다. ‘구조적 비리’, ‘구조적 결함’ 운운하며 지식인이 구조를 거론하기만 하면 청중들은 벌써 ‘정답 나왔군’ 하는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떡끄덕 한다.

 

구조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거의 모든 문제의 정답은 ‘구조’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는 항상 ‘구조적인 문제’이며, 그 문제를 해결하는 정답 또한 항상 ‘구조적인 대안’ 형태이다.  

 

그런데 정작 ‘구조’를 아는 사람이 없다. 늘 구조를 입에 달고 사는데 정작 구조 그 자체는 모른다. 숫자는 아는데 셈은 모르는 격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셀 수는 있는데 정작 덧셈, 뺄셈은 못한다.

 

얼마전에 방영된 MBC 다큐프로그램 ‘아마존의 눈물’에 나온 마티스족 이야기가 참고할 만 하다. 마티스족이 숲속의 조상신 ‘머리윈’으로 분장하고 아이들의 종아리를 매질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어린이를 매질한 다음에는 어른들도 돌아가며 스무대쯤 매를 맞는다. 문제는 마티스족이 셈을 못한다는 데 있다. 공평하게 스무대씩 매를 맞으려면 적어도 숫자를 스무개 까지는 셀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인이라면 한 자루의 매로 스무대씩 때렸을 것이다. 마티스족의 방법은 반대다. 한 다발의 매를 가져와서 때릴 때 마다 하나씩 버린다. 스무개짜리 다발이라면 하나씩 버리며 20회를 때리는 것이다.

 

이건 에너지 낭비다. 매가 스무대나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구조론을 몰라도 대충 살 수는 있다. 구조론 없는 세상은 셈이 없는 마티스족 사회와 같다. 비효율적이지만 그런데로 살아갈 수는 있다.

 

조선시대 회화는 대부분 산수화다. 왜 산수화만 줄창 그렸을까? 원근법 때문이다. 원근법을 모르면 그림이 어색해진다. 어색하지 않게 하려면? 작게 그리면 된다. 산수화는 점점 지도가 되어 간다.

 

산도 작게, 물도 작게, 사람은 더욱 작게 그린다. 한 폭의 그림에 근경과 중경, 원경이 공존하지 못한다. 전부 원경으로 놓고 그리는 것이다. 이렇게 편법을 쓰면 대략 눙치고 넘어갈 수 있다.

 

문제는 서양의 원근법이 전해지기까지 동양에서 그 모순을 알아챈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그 모순을 충분히 고민해서 산수화를 지도로 만들고 마는 편법을 쓰면서도 말이다.

 

이상하다는 것은 알았다. 알았기 때문에 전부 원경으로 놓고 그리는 편법을 궁리해낸 것이다. 아니면 전부 근경으로 놓고 그리거나. 알았기 때문에 고원법, 심원법, 평원법 따위 편법을 만들어냈다.

 

알면서도 몰랐다. 구조론과 비슷하다. 현대인들은 구조를 잘 안다. 늘 구조를 말한다. 그런데 정작 구조를 모른다. 숫자는 하나부터 열까지 센다. 수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셈을 못한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 공무원의 구조인 비리, 기계장치의 구조적 결함 운운하며 항상 구조탓을 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구조적’에서 ‘적(的)’ 한 글자를 떼지 못한다. ‘구조적’이 아닌 ‘구조’라야 한다.

 

원근법은 눈으로 보면 보인다. 보면 보이는데 왜 보이는데로 그리지 않았지? 김홍도는 사신 일행으로 중국에 다녀오며 원근법을 명암법을 배워왔다. 사면측량화법이라는 이름으로 원근법을 소개했다.

 

그런데 틀렸다. 보면 보이는데도 옳게 보지 못했고, 듣고 배웠는데도 옳게 배우지 못했다. 내가 미술수업 5분만에 터득한 원근법을 조선의 화공들은 수백년 동안 배우면서도 옳게 터득하지 못했다.

 

이는 이론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일종의 테크닉 개념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동양수학은 수학을 추상적인 원론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고 실사구시적인 테크닉 정도로 보았다.

 

그러니 진보하지 못한다. 기술은 많은데 흩어져 있고 중심에 모이지 않는다. 구조론도 이와 같다. 우리는 구조 속에 있다. 누구나 구조를 말한다. 그러나 원론 형태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구조론은 게임이론이다.

 

구조론이 어렵게 여겨지는 분은 게임이론을 참고할 수 있다. 물론 구조론과 게임이론은 다르다. 구조론은 연역이고 게임이론은 귀납이다. 연역은 존재의 시간축을 따라가고 귀납은 공간축을 따라간다.

 

시간이냐 공간이냐다. 시간은 순서가 있다. 과거가 먼저고 미래는 나중이다. 아침이 먼저고 저녁은 나중이다. 원인이 먼저고 결과는 나중이다. 작용이 먼저고 반작용은 나중이다. 여기서 예외는 없다.

 

항상 앞이 먼저고 뒤가 나중이다. 시작이 먼저고 끝이 나중이다. 일방향성이 있다. 일방향성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따른다. 근대과학의 토대를 이루는 두 가지 법칙은 열역학 1법칙과 2법칙이다.

 

2법칙이 시간의 일방향성이니 1법칙은 공간의 상호성이다. 공간은 순서가 없다. 공간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의 남산은 천년 전에도 저 자리에 서 있었고 만년 전에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남산은 앞뒤가 없다. 어디가 남산의 이마고 어디가 뒤통수인지 알 수 없다. 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것은 시간이다. 시간은 언제나 순서가 있다. 자동차는 움직여 가는 쪽이 앞이다.

 

사람은 얼굴 쪽이 앞이다. 사람이 앞으로 걷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 뒤로 걷는다면 뒷통수가 앞통수다. 여기서 시간은 순서가 있고 공간은 순서가 없다는 사실이 포착된다. 질량보존의 법칙이다.

 

물리학자들이 쓸데없이 어렵게 설명해놨지만 열역학 1, 2법칙은 간단히 존재의 공간성과 시간성이다. 여기서 정(靜)과 동(動)의 논리가 제시된다. 공간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시간은 항상 움직인다.

 

문제는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 공간에 주목했을 뿐 움직이는 시간을 탐구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움직이면 뭔가 헛갈린다. 그래서 지금껏 우리는 편한대로 움직이지 않는 공간위주 사고를 해왔던 것이다.

 

구조론은 ‘존재’ 개념에 대한 동적인 의미에서의 재해석이다. 결론은 존재다. 만유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데카르트의 제 1원인 말이다. 원래는 신(神)이었다. 모든 것은 신의 창조로부터 시작되었다.

 

칸트가 ‘이성’이라는 개념을 고안해서 인간에게도 신의 어떤 속성이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기어이 인간이 신의 영역에 발을 들이밀게 되었다. 인간이 신이라 면 천지창조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존재로부터 시작된다. 재래의 존재 개념은 정적인 개념이다. 구조론은 동적인 의미로 존재 개념을 재해석한다. 정적인 개념에서 존재는 물질이다. 물질은 딱딱한 원자 알갱이로 되어있다. 과연 그런가?

 

사랑은 물질로 되어 있는가? 생명은 물질로 되어 있는가? 사랑의 원소가 있고 생명의 원소가 있는가? 존재를 물질로 보고, 딱딱한 알갱이로 보는 사고는 귀납적 사고이며, 공간 위주의 사고다.

 

시간축을 보아야 한다. 시간은 흐른다. 변화가 일어난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 했다. 세상이 물로 되어 있다면 믿지 않겠지만, 니체의 해석에 따르면 존재는 실제로 물의 어떤 속성을 가졌다.

 

역사는 물처럼 흐르고, 생명은 물로 자라고, 사회는 물흐르듯 소통한다. 확실히 존재는 물의 성질이 있다. 노자는 ‘유능제강’이라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부드러운 물이 단단한 바위를 뚫는다.

 

그렇다. 존재는 강한 원자가 아니라 부드러운 인자(因子)로 되어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포지션이다. 만물의 딱딱한 원자 알갱이들의 집합이 아니라 부드러운 관계의 포지션으로 구축되어 있다.

 

세상을 포지션으로 이해하는 것이 구조론이다. 탈레스의 물 개념, 노자의 유(柔) 개념, 데카르트의 제 1원인으로서의 존재 개념, 칸트의 이성 개념, 샤르트르의 실존개념이 다 포지션 개념과 닿아있다.

 

구조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내재적 질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말하는 제반요소들에 공통되는 특성이 포지션이다. 포지션을 탐구하는 것이 게임이론이다. 구조론은 확대 적용된 게임이론이다.

 

게임이론은 군사학, 경제학, 생물학, 물리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을 통섭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조론과 유사하다. 구조론 역시 물리학이든 경제학이든 특정학문에 소속시킬 수 없으면서도 두루 관계한다.

 

그런데 게임이론이 관계하는 이들 군사학, 경제학, 생물학, 물리학, 심리학의 공통점은? 점점 커진다는 점이다. 게임이라고 하면 도박판을 떠올릴 수 있다. 도박판의 판돈은 점점 커지게 되어 있다.

 

게임이론은 70년 전에 나와서 처음 군사학에 적용이 되었다. 전쟁은 처음 앞집 강아지와 뒷집고양이의 작은 싸움으로 시작하지만 점점 커져서 애들싸움이 어른싸움으로 되고 결국 세계대전이 된다.

 

요즘은 게임이론이 생물학 물리학 등으로 지평을 확대하고 있다. 생물도 점점 커진다. 물질도 작은 소립자가 뭉쳐서 점점 커졌다. 우주공간의 먼지들이 뭉쳐서 별이 되고 은하계가 되었다.

 

심리학도 처음 1인시위가 만인의 촛불시위로 되고 월드컵 길거리 응원이 되었다. 공통적으로 점점 커진다. 탈레스의 물도 처음 작은 빗방울이 점점 커져서 개울물이 되고 바닷물이 되어 천하를 덮는다.

 

점점 커지는 것이 점점 커지는 이유를 해명하는 것이 구조론이다. 게임이론에서 무려 8개나 되는 노벨 경제학상이 나왔다. 경제학 역시 점점 커진다. 자본도 점점 커져서 세계가 단일시장으로 통합된다.

 

정주영의 몰래 팔아먹은 소 한 마리가 대재벌 현대그룹으로 커졌다. 도박판의 판돈이 커지는 법칙과, 전쟁이 커져서 세계대전이 되는 법칙, 산불이 커지는 법칙, 이건희가 부자가 되는 법칙은 같다.

 

구조론은 어떤 것이 점점 커지는 원리를 해명한다. 게임이론과 다르다. 게임이론은 무질서해 보이는 구조 속에서 질서를 탐구한다. 반면 구조론은 점점 커지는 질서 안에서 무질서를 포섭한다.

 

게임에는 족보가 있다. 포커는 로티플이 가장 높고, 섯다는 38광땡이 가장 높다. 그야말로 장땡이다. 구조론은 다섯가지 포지션으로 모두 설명한다. 질, 입자, 힘, 운동, 량 중에서 질이 가장 높은 족보다.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를 통제한다는 것이 구조론의 핵심개념이다. 질이 상부구조 고 양이 하부구조다. 게임에서 질을 잡으면 언제나 승리한다. 그야말로 로티플을 잡은 것이며 38광땡을 잡은 것이다.

 

게임이론은 상부구조 개념이 없다. 이론적으로 부실하다. 족보도 정하지 않고 포커를 치는 식이다. 시장원리는 개인의 사사로운 이윤동기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연 그럴까? 천만에!

 

이윤동기는 하부구조에서 작동할 뿐이다. 상부구조에서는 전혀 다른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과연 병사 개인의 생존동기가 점점 커져서 전쟁을 일으켰을까? 도박꾼의 대박동기가 점점 커져서 판돈을 올렸을까?

 

개미는 생존동기로 개미대전을 일으키는 것일까? 천만에! 병정개미는 생존욕구가 없다. 개미는 죽음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마구잡이로 싸우다가 전멸한다. 개미는 자신을 소모품으로 소모한다.

 

조선시대의 양반은 세력을 원했다. 그들은 돈이 없어도 세력이 있기 때문에 주막에 가서 외상 달아놓고 마음껏 술과 밥을 먹었다. 이윤은 없어도 명성이 있으면 잘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이윤보다 명성을 찾고, 이윤보다 자손의 번식을 탐하고, 이윤보다 세력을 원한다. 여기서 세력동기는 개인의 동기가 아니다. 개인이 길거리 응원에 참가하는 1천만세력을 장악하려는 것이 아니다.

 

길거리 응원의 심리는 세력의 형성 자체에 목적이 있지 자신이 세력을 장악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본은 나무와 같아서 점점 자란다. 자본의 나무가 세력이다. 개인의 욕망이나 이윤동기는 하부구조다.

 

학교에서 배움을 구하는 것은 이윤동기일까? 천만에. 지식인사회 안으로 진입하려는 것이다. 지식인사회 자체가 세력이다. 강남으로 이주하려는 것은 돈을 벌기 이전에 부자커뮤니티에 소속되려는 것이다.

 

어딘가 소속이 되어 세력을 이루려는 동기야말로 시장원리의 근본이다. 시장은 이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일관되게 진행한다. 돈버는 비결은 이윤남기기가 아니라 세력형성이다.

 

강남에 부동산값이 오르는 것은 이윤동기 때문이 아니라 부자커뮤니티를 형성하려는 세력동기 때문이다. 이윤을 남겨서는 부자가 되지 못하고 큰 세력을 형성하면 단번에 부자가 될 수 있다.

 

세력이 목적이고 부는 덤이다. 세력을 이루는 방법은 학벌을 얻어 지식인사회에 편입되는 것, 양반족보를 사서 양반사회에 편입되는 것, 대학교수와 사돈을 맺는 것, 정치인으로 출세하는 것 따위다.

 

작가가 책을 쓰거나 예술가로 명성을 얻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폭이 무뢰배를 모으는 것도, 흥부가 다산을 꾀한 것도 세력을 형성하려는 의도다. 아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상부구조다.

 

공간은 귀납이고 시간은 연역이다. 공간은 보이고 시간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손은 시간의 손이다. 시간은 과거와 미래를 통일한다. 그것이 상부구조다. 보이지 않는 손은 시간에 숨어 있다.

 

그러므로 시간이 흐르기 전에는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 단기간에는 속임수로 가격을 올려서 재미를 볼 수 있다. 짧은 시간에 폭리로 이익을 낼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 시장원리에 따라 파산한다.

 

시장원리는 시간상에서 진행되는 상부구조의 개입이다. 공간에서는 시간이 보이지 않는다. 하부구조에서는 이윤동기지만 상부구조에서는 세력동기다. 세력동기는 공동체주의적인 동기다.

 

사람들이 교회에 가서 십일조를 바치는 것은 이윤을 얻고자함이 아니라 세력에 편입되고자 함이다. 학생이 대학에 등록금을 바치는 것도 이윤을 얻고자함이 아니라 세력을 얻고자 함이다.

 

세력이 목적이고 이윤은 덤이다. 문제는 밸런스다. 구조는 하나의 축과 두 날개로 세팅된다. 축이 날개를 지배하는 것이 밸런스다. 하부구조에서 축은 이윤동기다. 상부구조에서 축은 세력동기다.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를 지배한다. 세력동기가 이윤동기를 지배한다. 공동체적인 목표가 개인의 이윤동기 위에서 제어한다. 먼저 세력을 얻고 그 다음에 이익이 자연히 따르는 구조가 정답이다.

 

개미들이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이유는 생태계 자체의 균형을 꾀하는 데 원인이 있다. 이윤동기는 개인의 경제활동의 동기일 뿐이며, 자본주의는 근본 자본생태계 자체의 균형을 동기로 삼는다.

 

자본생태계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자본이 점점 커져야 한다. 항해하는 배는 속도를 올려야 안정감을 가지고 파도를 타고 넘는다. 자본은 성장률을 올려야 시장의 밸런스가 회복된다.

 

생태계는 진화를 해야 밸런스를 유지한다. 밸런스는 한 방향으로만 작동하는 것이다. 항해하는 배는 속도를 높이거나 혹은 늦추어서 파도를 타고 넘지만 전체적으로는 속도를 올려야 한다.

 

시장은 가격을 올리거나 내려서 불경기의 파도를 타고 넘지만 전체적으로는 항상 가격을 올려야 한다. 생태계는 진화와 퇴화로 밸런스를 잡지만 전체적으로는 항상 진화해야 한다.

 

문명은 진보하고 보수해서 밸런스를 잡지만 전체로는 진보해야 한다. 부분은 진보와 보수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교차하지만 전체는 진보다. 세력은 점점 커지는 것이며 그 안에는 일정한 질서가 있다.

 

한 방향으로 움직여야만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팀들이 토너먼트를 벌이는데 갈수록 실력이 나아져야지 갈수록 퇴보한다면 망한다. 16강에서 8강, 4강, 결승전으로 올라갈수록 강팀이 살아남아야 한다.

 

제일 못하는 팀이 결승에 가서 우승을 한다면 월드컵 망한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일본과 북한이 결승전을 한다면 월드컵 망한다. 구조론은 처음부터 확실한 연역적 질서를 전제로 한다.

 

다만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따라 질서의 전개 안에서 무질서도의 증가를 포섭한다. 카오스 이론이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탐구하는 것과 다르다. 게임이론 역시 무질서한 선택 중에서 확률적인 질서를 찾으려는 것이다.

 

무질서가 저절로 질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민주주의 질서 안에서 무질서한 개인주의가 자유로움을 구가하는 것이다. 엔트로피 최저상태에서 질서가 얻어지고 최대화 하면서 개인의 자유가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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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30]ahmoo

2010.04.01 (12:31:35)

구조론으로 무장한 우리는 점점 자라 전세계적인 세력권을 펼치게 돼 있소. 왜? 실제로 낳을 수 있으니까! 창의할 수 있으니까!
프로필 이미지 [레벨:15]aprilsnow

2010.04.01 (13:02:52)

오...진경시대가 아쉽지 않소.
한국의 역사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의 역사를 쓸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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