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812 vote 1 2016.11.23 (16:47:09)

 

   
    인간들에게는 실망한지 오래다. 제법 아는척 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들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문제를 그들이 거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공자의 말이 멋지다.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 씩씩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피가 끓어오르는 이야기, 가슴이 뛰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다들 시시한 이야기나 하더라. 70억 중에 한 명쯤 있을 것도 같은데 내가 찾는 진짜는 없더라.


    대화가 통해야 한다. 너와 나 사이의 경계를 정해야 대화에 착수할 수 있다. 친한 형제와의 대화는 실무적이다. 동료직원과의 업무에 관한 대화나 부부 사이의 대화라도 그렇다. 내가 대화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화제거리에 끌려가게 된다.


    ‘오늘 밥 맛있었지?’ ‘그래 맛있었어.’ 서로 맞장구 쳐주기로 합의가 되어 있다. 물론 ‘오늘 날씨 좋지!’ 하고 인사하면 ‘좋기는 뭐가 좋아! 흐리잖아. 저 구름 안보여?’하고 시비거는 삐딱이도 있다. 역시 딴지맨으로 자기 캐릭터를 정한 거다.


    다들 집단 안에서의 역할에 갇혀 있으니 대화는 뻔하게 굴러간다. 시시하다는 말이다. 멀리서 찾아온 손님과의 의기투합하는 대화라야 한다. 약간의 긴장을 배경음악으로 깔아주고 상대의 심중을 넌지시 떠보는 코스도 있어야 한다.


    적당한 정도의 밀당이라면 나쁘지 않다. 의례적인 정중함 이후에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점차 상호작용이 긴밀해져야 한다. 천하를 엎어먹는 역적모의를 해야 한다.


    유비, 관우, 장비의 만남과 같은. 제갈량과의 융중에서의 만남과 같은.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모든 것을 끌어내는 그런 만남, 그런 대화는 참으로 드물다.


   555.jpg


    친구 좋아하는 사람을 나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일상의 반복되는 역할 속에 자신을 가두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언제라도 상호작용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친구와의 뻔한 레파토리가 상호작용을 증대시키는 거죠. 그 결과는 나빠집니다. 점차 무례해지고 무감각져서 날로 변하는 세상의 생장점과 균열을 일으킵니다. 낯선 것이 더욱 낯설어지면 결국 익숙한 쪽으로만 가게 됩니다. 낯선 사람과의 어색하고 불안한 지점을 과단성있게 통과해야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죠.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3705 우연한 만남은 없다 image 2 김동렬 2017-01-04 13929
3704 인류문명의 골디락스존 image 1 김동렬 2017-01-02 12430
3703 구조론으로 본 인류문명 image 김동렬 2016-12-31 12461
3702 잠수함이 박아도 세월호 안 넘어간다. image 3 김동렬 2016-12-30 13587
3701 매력은 권력이다 image 5 김동렬 2016-12-28 13191
3700 응답하라 인간들아! image 3 김동렬 2016-12-28 11676
3699 자로는 초딩이다 image 9 김동렬 2016-12-26 13815
3698 부름에 응답하라 image 김동렬 2016-12-21 12188
3697 왜 이 시대에 공자인가? image 2 김동렬 2016-12-20 11945
3696 당신도 직관할 수 있다 image 김동렬 2016-12-16 12295
3695 구조론 5분 스피치 image 김동렬 2016-12-14 12372
3694 구조론과 인공지능 image 7 김동렬 2016-12-08 12454
3693 깨달음의 눈 image 김동렬 2016-12-05 11981
3692 질문하지마라 image 김동렬 2016-12-01 12197
3691 에너지를 통제하라 image 1 김동렬 2016-11-28 11726
3690 권력의 시장원리 image 김동렬 2016-11-26 11847
3689 권력의 시장가격 image 김동렬 2016-11-25 11606
» 의기투합해야 한다. image 김동렬 2016-11-23 11812
3687 게임의 문제 김동렬 2016-11-22 11411
3686 복잡에서 단순으로. image 김동렬 2016-11-22 11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