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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8571 vote 1 2014.07.10 (17:48:30)


    ‘자기소개 하지마라’고 하면 이곳에 처음 온 방문자는 오해할 수 있다. 자유게시판은 자기소개하는 공간이다. 당연히 자기소개를 해야 한다. 고수가 있고 하수가 있다. 고수의 방법을 쓰라는 말이다.


    자동차에 대해 논하기로 하자. 하수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롤스로이스 타봤는데 말이야. 난 롤스로이스가 좋더라구. 참 편안해!’ 1인칭 주관적 관점에서 개인의 감상을 어떤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


    이게 일상적인 대화로는 무방하지만, 첨예한 논쟁에서는 수준을 들키는 말이 될 수 있다. 물어보지 않은 자기소개다. 딱 이명박어법이다. 롤스로이스 타봤는지 누가 물어봤냐구? 왜 자기자랑을 하지?


    일상적인 대화라면 표현이 풍부할수록 좋으므로 자기소개를 하든 말든 상관없다. 그러나 치열한 논쟁의 장에서는 자신의 주관적 경험을 어떤 주장의 근거로 삼으면 안 된다. 고수에게 수준 들킨다.


    예컨대 회사의 회의시간이라고 하자. 보스가 주로 이런 식의 이명박 깔대기 어법을 구사한다. 나꼼수의 정봉주도 어떻게 보면 ‘보스심리’를 들킨 거다. 그렇게 까불다가 임자 만나면 한 방에 간다.


    회의실에서 쫄따구가 눈치없이 저런 식으로 말하다가 승진 말아먹는다. ‘내가 해봤는데 말야.’ ‘내가 먹어봤는데 말야.’ ‘내가 신문배달 해봤거등.’ 내가, 내가, 내가..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는 거다.


    하수 위에 상수 있다. 상수는 3인칭 객관어법으로 말한다. ‘객관적으로 비교해 보니까 독일차는 서스펜션이 딱딱하고 일본차는 시트가 푹신하더라고.’ 이건 고객을 상대하는 실무자의 방법이다.


    자기 자식과 대화할 때는 객관어법이 좋지 않다. 특히 비교하는건 최악이다. 자식을 훈육하려면 엄마친구아들과 비교하지 말고, 자식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해야 한다. 공간에서 시간으로 갈아타기다.


    ◎ 1인칭 주관적 감상 – 하수의 자기소개. 보스의 장광설.
    ◎ 3인칭 객관적 비교 – 상수의 비교평가. 실무자의 고객상대.
    ◎ 1인칭 주체적 관점 – 고수의 격려. 아랫사람 기살리기.


    ‘어제는 이렇게 했는데 오늘은 이렇게 발전했구나.’ 이렇게 가는게 정답이다. 상수 위에 고수 있다. ‘BMW는 자동차의 동력성능을 최대한 끌어내도록 서스펜션을 세팅한다.’ 이는 고수의 어법이다.


    ◎ 하수 – 자신의 감상을 근거로 댄다.
    ◎ 상수 – 다른 것과 비교하여 평가한다.
    ◎ 고수 – 시간의 미래를 열어간다.


    독일차는 광고도 이렇게 한다. 한국이라면 연예인을 내세워 호들갑을 떨고, 일본이라면 눈물을 쥐어짜는 감상주의로 가는데 독일은 쿨하게 자동차 그 자체에만 집중한다. 자동차가 주인이다.


    ‘이 차는 연비가 좋다.’ 이런 식으로 차를 자랑하면 어떨까? ‘연비가 좋다고?’ ‘그럼 마티즈 타고 다녀.’ 이런 핀잔이 돌아온다. 연비나 따지는 사람이 왜 1억짜리 비싼 외제차를 찾는 거지?


    비교하면 안 된다. 수준 들킨다. 고수는 고객의 관점을 무시한다. 백안시다. 고객에게 서비스 한다는 개념이 없다. 친절봉사? 천만에. 그런 쪽팔리는 짓 안 한다. 최상의 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


    웃겼어! 어디까지나 차가 주인공이다. 고객이 차에 맞춰서 타야 한다! 그 자동차가 연비의 극한에 도전하는 명품인게 중요한 거다. 고객만족? 필요없다. 고객무시다. 자동차가 만족해야 한다.


    자동차에 영혼이 있고 그 자동차의 영혼을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자동차는 자동차 자신의 극한에 도전하고 싶어 한다. 무엇인가? 자동차가 발전하면 운전자도 함께 발전한다. 동적균형이다.


    자동차의 동력성능을 최대한 끌어낸다는 것은 그 차를 타는 소비자도 수준이 그만큼 올라간다는 뜻이다. 독일차의 광고를 가만이 들어보면 그게 고객을 우회적으로 칭찬하고 있다고 한다.


    고객의 수준에 차를 맞추는게 아니라, 차의 수준을 끌어올림으로써 고객의 수준도 함께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조하게 광고를 한다. 역시 독일넘 답게 광고도 무뚝뚝하게 하는군!


    그런데 가만이 들어보면 그게 고객칭찬이다. 그러니까 고수다. 이 차는 푹신해서 좋다는 말은 고객을 할배취급하는 거다. 당신은 돈 많은 할배이니 불편한 할배 몸에다 차를 맞춰드린다고?


    고객모욕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 수준이다. 구조론 사이트에 와서 이거 하나만 배워도 본전 건져가는 거다. 고수는 1인칭 주체적 관점으로 말한다. 이 방법은 상대방에게 자부심을 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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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디의 스키점프대 광고는 고객의 신분상승을 함의하고 있다. 차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비자를 칭찬하고 있다. 자동차의 상승과 고객의 상승이 동적균형을 이루고 있다.


    자녀를 키워도 이런 식으로 말해야 한다. ‘엄마가 니 나이 때는 말야.’ 이건 자기소개 하는 하수의 방법이다. ‘옆집 순자는 말야!’ 이건 실무자가 제 3자와 비교하여 말하는 3인칭 객관어법이다.


    당신은 리더여야 한다. 당신은 교만한 보스가 아니어야 하며, 무심한 실무자도 아니어야 한다. 1인칭 주체적 관점은 ‘어떻게 결정해도 좋지만, 니가 원하는 최선의 결정을 해라.’고 말하는 거다.


    핵심은 시간을 다루는 기술이다. 개인의 감상이나 객관적 비교는 시간을 정지시킨 것이다. 동적균형은 에너지를 투입하여 시간 상에서 성장시켜 가는 방법으로 주체와 타자의 밸런스를 끌어낸다.


    오직 이 방법으로만 가면 획일적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표현이 다양해지고 풍부해진다. 시간적 성장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이며 환경이 개입하는 즉시 경우의 수는 백 배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수준있어 보이는 ‘유식한 척 말하기’ 방법이 있다. 글쓰기라도 그렇다. 흔히 ‘자기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자기 이야기가 자신의 주관적인 감상을 토로하는 식이면 곤란하다.


    말은 원래 세상에 가득차 있다. 작가는 세상의 말을 발굴해서 그것을 나의 말로 삼아야 한다. 그 말은 천하의 말이어야 한다. 진리의 말, 역사의 말, 진보의 말, 자연의 말, 신의 언어라야 한다.


    그냥 ‘내 생각은 이런데 말야.’ 이건 안 쳐준다. 네 생각 말고 진리의 생각은 어떤 건데? 세상의 언어를 발굴하는 절차를 밟지 않은, 그냥 나의 느낌에 근거한 말은 사실이지 나의 말이 아니다.


    내가 슬프거나 기쁘거나 간에 그것은 나를 스쳐간 바람의 흔적이다. 내가 어떻게 느꼈다는건 내것이 아니다. 내가 그 지점에서 세상과 크게 공명했다면 내것이다. 나는 세상의 대변인이어야 한다.


    직업을 선택해도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직업은 곤란하다. 내가 잘하는 직업이 정답이다. 내가 좋아하는건 나의 주관적 감상이고, 내가 잘 하는 것은 내게 권리가 있는 나의 확보된 자산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내가 그 대상에게 끌려간 것이다. ‘나는 이 사람이 좋다. 이 사람과 결혼할래.’ 이건 아니다. ‘나는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이건 내가 잘한다.’ 이건 정답이다.


    내가 좋아하는 곡을 연주한다면 아직은 그 곡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잘 연주하는 곡을 연주해야 그 연주 자체의 결이 살아난다. 내가 주인공이 되지 말고 연주가 주인공이어야 한다.


    수구꼴통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난 북의 남침이 걱정된다.' '난 전교조가 선동할까 걱정된다.' '난 노조파업으로 경제가 무너질까 우려한다.' 이건 자기가 등신 머저리 겁쟁이라는 자기소개다.


    조갑제가 늘 북한이 우려되고, 두려운 이유는 겁쟁이라서 그렇다. 누가 물어봤냐고? 왜 자기 정신병을 칼럼에다 고백하지? 조갑제 글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나 좀 입원시켜줘. 나 정신병자라구.'


    음식에 대해서 말한다면 ‘이 요리엔 이게 잘 어울려’ 이런 식으로 말해야 한다. ‘난 이 음식이 싫더라.’ 이건 안 좋다. 이건 자기소개다. 글을 쓰더라도 이런 식의 잘못된 글쓰기라면 곤란하다.


    나 자신한테 물어보지 말고 요리한테 물어봐야 한다. '따옴표 쓰지 말고 네 이야기를 해 봐!' 흔히 하는 말이다. 이건 자신이 발견한, 자신에게 절대적 권리가 있는 진짜배기를 말하라는 거다.


    외국 철학자가 말한 것을 따옴표로 써먹는건 양심에 찔리는 짓인데, 한국인들은 태연하게 말한다. '그건 그 사람 생각이고, 그래서 네 생각은 뭔데?' 이건 어떤 영화에 나온 한 장면이다.


    주관적 감상에 근거하면 안 된다. 외국의 누가 말했다는 식으로 권위자에 의지해도 안 된다. 객관적 비교판단도 좋지 않다. 존재가 에너지를 태우고 진보해 가는 진리 그 자체의 결을 따라야 한다.


    이 요리는 맛있다? 좋지 않다. 이 요리는 몸에 좋다? 좋지 않다. 이 요리의 풍미를 최대한 끌어내는 소스는 이거다. 이건 괜찮다. 요리 안에서 숨은 질서를 발견해내고 그걸 내걸로 삼아야 한다.


    이런건 의식적으로 훈련해야 한다. 이 어법을 훈련해 놓으면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있어보인다. 딱 봐도 고수잖아. 만화가라도 그렇다. 요리만화를 그린다? 이 한 가지 패턴으로 100권 채운다.


    산에 대해서 말한다. 내 생각은 이래. 틀렸다. 산의 생각은 이래. 산에게 마이크 넘겨야 한다. 그냥 산이 아니라 산 중에 태산이 있고, 용틀임하는 산맥이 있다. 그 안에 숨은 질서가 있다.


    산 자신의 1인칭이 있다. 산의 권리에서 권력으로 치고 나가는 게임의 법칙이 있다. 그 결을 따라가야 한다. 물을 이야기하더라도 그렇고 들을 이야기 하더라도 그렇다. 어디가나 질서가 있다.


    시골에 가면 그 시골의 질서가 있다. 텃세다. 텃세에 당하고 화를 내는 식이면 곤란하다. 그 텃세에 흥미를 가지고 텃세대마왕을 찾아내야 한다. 넘버원이 있고 넘버 투도 있다. 재미가 있다.


    ◎ 하수 – 텃세에 당하고 화를 낸다.

    ◎ 상수 – 지방별 다양한 텃세를 비교해본다.
    ◎ 고수 – 텃세의 법칙으로 세상을 풀어낸다.

   

    결론.. 수준 들키지 않게 조심하자. 고수의 어법을 훈련하자.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슈에

2014.07.10 (20:47:08)

고수의 어법을 몸에 익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레벨:8]상동

2014.07.10 (22:25:30)

의사결정의 영역에서 세상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채야 합니다.

연결된 꼭지점 곧 최상층부에서 결정하고 말단부에서 집행함을 알아채야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누군가 어떤 이야기를 진술할때 그 전제를 보면 꼭지점이 있습니다.
그 꼭지점이 나와 공유(지동설)된다면 그 이야기 속에 나도 주체가 되므로 듣고
싶은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맹박이처럼 바울처럼 그 꼭지점이 진술자에게 사유화된 경우(천동설)를 만나게 되면 
그 이야기속에서 청자는 타자가 되어버리고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집니다. 
이것이 안물어본 자기소개 입니다.

예수도 비슷한 말을 했죠. 요한복음 7장

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말단부)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꼭지점)의 것이니라

 18 스스로 말하는 자(천동설)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지동설)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프로필 이미지 [레벨:11]까뮈

2014.07.11 (00:20:36)

고수는 아니지만 상수로서 두달 정도 주유소에서 일했더니 60 넘은 반장급들이 

슬슬 인정을 해줍니다.


아직도 뒤에서 뒷담화를 치기는 하는데 월드컵 관련 내기 이벤트도 하고 

출퇴근을 스쿠터타고 멋지게 하고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말상대를 해주니

좋아들 합니다.


논네들은 말상대 해주는 것을-물론 논네들 뿐만은 아님-제일 좋아합니다.


[레벨:1]이경희

2014.07.11 (10:00:39)

감사합니다. 선생님.

1초만에 깨달았습니다.

삶의 변화가 느껴집니다.

황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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