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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0639 vote 0 2013.03.14 (18:56:46)

    타자성의 문제


    철학자들이 어려운 단어로 말하고 있지만 인생의 문제는 한 마디로 피아구분의 문제이다. 피아를 가르는 것은 의사결정이다. 결정하는 쪽이 나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의사결정영역이다.


    의사결정의 권(權)은 상호작용의 갑을관계를 반영한다. 관계를 설계하는 쪽이 갑이다. 갑은 행복하고 을은 불행하다. 어떻든 갑이 되어야 한다. 갑이 되려면 에너지와 속도가 필요하다.


    에너지는 물리적으로 주어진다. 돈이 많거나 힘이 세거나다. 속도는 의사결정속도다. 판단이 빨라도 갑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이 제 발로 을의 포지션으로 걸어들어가는데 있다.


    전체로는 을이지만 부분은 갑이기 때문이다. 쇠꼬리가 되느니 닭대가리가 되겠다는 식이다. 의사결정 스트레스 때문이다. 대개 에너지를 포기하고 속도를 선택한다. 일은 실패로 된다.


    을은 갑의 눈치를 봐야 한다. 결정하기 어렵다. 갑은 그냥 결정하면 된다. 인간은 결정하기 쉬운 쪽으로 결정한다. 무조건 갑이 되는 쪽으로 결정한다. 결과는 도리어 을이 되어 있다.


    상대방의 대마를 잡았다가 바둑에 지는 격이다.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 지는 격이다. 미끼를 삼키고 어부에게 낚인다. 속도에 이기고 에너지에 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매 순간 들이닥치는 판단에 쫓겨 에너지를 포기하는 실패를 막는다. 그 방법은 미리 결정하기 쉬운 게임의 구조를 설계해 두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결정하기 쉽다는 것이다.


    ◎ 하수 – 갑이 될 의도로 에너지를 버리고 속도를 선택한다.
    ◎ 고수 – 속도는 미리 세팅해놓고 에너지를 지켜 갑이 된다.


    믿음은 의사결정의 스트레스를 줄인다. 나의 의사결정영역을 미리 세팅해 두는 방법으로 가능하다. 바둑의 정석을 알고 두는 것과 같다. 믿음은 에너지와 속도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믿음의 부재는 타자성으로 나타난다. 타자성은 세상 앞에서 자신을 약자로 포지셔닝 하려는 심리다. 가상적을 만들어 스스로 을이 되려고 한다. 그 경우 의사결정이 쉽기 때문이다.


    자녀의 방문을 받은 늙은 부자의 심리와 같다. 부자는 자녀들에게 호의를 베풀지만 조건을 건다. 상대방을 통제하는 지렛대를 심으려는 것이다. 지렛대는 자학과 가학으로 나타난다.


    ‘나는 너희를 위해 돈을 내놓겠다. 그런데 왜 내가 너희를 위해 돈을 내놓아야하는지 너희가 나를 한 번 납득시켜봐. 효도해 봐. 어깨 주물러 봐. 내 앞에서 재롱떨어 봐. 다 해줄게.’


    부자는 끝까지 돈을 내놓지 않는다. 그리고 죽는다. 그는 단지 돈을 내놓는 자의 포지션에 서고 싶었던 것이다. ‘네가 날 설득해봐.’ 하는 세상 앞에서의 삐딱한 태도. 일종의 어리광이다.


    지나친 채식주의도 일종의 자학이다. 담임의 주의를 끌려는 꼬마의 행동이다. 빨갱이사냥, 마녀사냥과 같이 가상적을 만들어 공격하는 것이다. 사냥할 힘이 없으면 자기사냥에 들어간다.


    세계를 향한 미국의 폭력도 그렇다. 스스로 약자로 포지셔닝하고 강자인 외계인 혹은 악의 축과 싸운다. 인정받고 싶은 심리다. ‘넌 강하잖아. 근데 왜 그래?’ 하는 말을 듣고싶은 거다.


    중요한 것은 이런 행동이 자신의 고생한 과거에 대한 보상심리 혹은 복수심의 표현이라는 거다. 불안 혹은 허무 때문이다. 곧 부조리다. 부조리를 극복하게 하는 합리성은 인과율이다.


    인생을 합리화 하여 의미를 획득할 의도로 자기 인생의 원인과 결과를 짝지으려 한다. 고생과 보상을 짝짓는다. 미국 역시 패권이라는 보상을 원한다. 성공과 과시를 짝짓는다.


    인과의 짝이 지워져서 합리성을 획득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나 본질에서의 허무와 부조리를 극복할 수는 없다. 가짜이기 때문이다. 만들어낸 가상적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물원의 우리에 갇힌 동물들처럼 단순한 행동을 반복한다. 이는 어린이의 틱장애와 같다. 왜인가?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건은 기승전결로 이어지지 않는다.


    ‘난 노력해서 부자가 되었어. 박수쳐 줘.’ ‘넌 부자야! 박수. 짝짝짝.’ ‘내가 요구해서 억지로 친 박수잖아. 진심어린 박수를 받고 싶어.‘ ’진심이야.‘ ’진짜야? 믿을 수 없어’ 구조는 반복된다.


    에너지가 있으면 사건은 기승전결로 이어지며 다음 단계의 계획을 낳는다. 새로운 업무에 들어가므로 과거를 보상하려 들지 않는다. 시지푸스의 형벌을 피하는 것은 다음 단계의 계획이다.


    에너지를 타는 방법은 더 큰 사건과 연동시키는 것이다. 하루의 일은 한 주의 계획과 연동시키고, 한 주의 일은 한 달의 일과, 한 달의 일은 일년 혹은 평생의 계획과 연동시켜야 한다.


    모든 에너지는 상부구조에서 내려온다. 에너지는 역사에서 진리에서 문명에서 진보에서 획득되는 것이며 그 흐름에 올라타아만 한다. 거기에 빨대를 꽂아야 한다. 고립되면 에너지는 없다.


    에너지가 없으면 자기를 둘로 쪼개서 피아를 가르고 상부구조를 만든다. 인간의 선악개념은 에너지가 없어서 자기를 쪼갠 것이다. 혹은 사회를 둘로 쪼개서 우리편과 나쁜편으로 가른다.


    세상은 권에 의해 작동하며 권은 에너지와 속도를 필요로 하며 하수는 속도를 얻다가 에너지를 잃고, 에너지를 잃으면 상부구조를 만들며, 방법은 사회를 쪼개고 나를 쪼개는 것이다.


    믿음은 반대로 나를 합치고 사회를 합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의사결정영역을 미리 세팅해두는 것이다. 상부구조에서 에너지를 조달하는 것이다. 상부구조는 진리, 역사, 문명, 진보, 신이다.


    종교의 믿음은 나를 쪼개는 자기사냥이다. 자기 안에 선과 악을 둔다. 채식과 육식으로 나누는 심리가 그러하다. 적을 설계한다. 마녀를 생산하고 빨갱이를 발굴한다. 내 안의 적이다.


    그것이 타자성이다. 인류 안에 적이 있다. 한국 안에 빨갱이가 있다. 마을 안에 마녀가 있다. 내 안에 악이 있다. 음식 안에 고기가 있다. 이게 다 MSG 때문이다. 항상 조건을 건다.


    ‘네가 이렇게 하면 나는 어떻게 한다’는 식이다. 주의하며 신중하게 감시한다. 정석을 모르고 바둑을 두기 때문이다. 정석을 알면 상대가 어디에 두려고 하는지 감시할 필요가 없다.


    상대가 둔 곳은 뻔하다. 상대가 둘 장소를 미리 알고 있는 것. 그것이 믿음이다. 타자성은 항상 후수가 된다. 상대방이 선제적인 행동을 하기를 요구한다. 미국과 북한이 그러고 있다.


    행동대 행동을 주장하며 서로 ‘네가 먼저 총을 내려놔.’라고 소리지른다. 자기 스스로는 판을 설계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허무하기 때문이다. 가짜이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주체성의 획득이다. 자신이 능동적으로 판을 설계했을 때만 상대방을 통제하여 성공과 보상의 인과를 충족시키려는 가학/자학의 지렛대를 걷어치울 수 있다.


    인류의 대표자 마음을 가져야만 가능하다. 신과의 앙상블이어야 한다. 앙상블은 동시에 연주된다. 네가 선창하면 나도 후창한다는 식은 곤란하다. 피아노와 바이얼린은 화음이어야 한다.


    모든 소설, 모든 예술, 모든 문학, 모든 문화가 타자성의 극복을 다루고 있다. 자기 스스로 게임의 판을 설계할 소스들을 던져주는데 목적이 있다. 먼저 세상이 게임임을 알아야 한다.


    세상이 게임판임을 알게 하는 것이 실존주의다. 부조리를 드러낸다. 약속된 각자의 배역과 포지션을 노출시킨다. 성공과 보상의 짝짓기가 허구임을 드러낸다. 마녀가 가짜임을 폭로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재빨리 새로운 마녀를 찾아내고야 만다. 그래야만 무언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자기사냥이 될지라도 그렇게 한다. 믿음과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타자성은 나와 남으로 쪼개고, 선과 악으로 나누어 상대의 행동을 감시하며 거기서 소스를 얻어 나의 행동을 결정하는 방법인데 빠른 의사결정을 낳지만 에너지가 없으므로 패배한다.


    타자성의 빠른 결정은 빠른 종말을 낳는다.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므로 원인과 결과의 억지 짝짓기를 시도한다. 이는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행동으로 나타나며 가학/자학이 된다.


    주체성은 의사결정영역을 미리 세팅해놓고 상부구조로 올라서서 에너지를 조달하며 에너지에 기반하여 능동적으로 판을 설계한다. 다음 단계의 계획이 있으므로 보상을 찾지 않는다.


    상부구조에 연동시켜 자신의 의사결정을 미리 세팅해놓는 것이 믿음이며 그것은 동조화 하는 것이다.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사랑이다. 믿음은 악보를 그리고 사랑은 그 곡을 연주한다.


    상부구조는 역사, 진리, 문명, 진보, 공동체이며 그 정점은 신(神)이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신과의 관계가 불명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에너지를 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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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는 엄마 품에 있을 때 편안하고, 인간은 에너지가 있을 때 편안합니다. 에너지는 상부구조에서 조달됩니다. 그러나 대개는 자기를 둘로 쪼개서 서로 싸우게 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상부구조를 이루어 에너지를 조달합니다. 자기의 절반을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 집단의 절반을 죽이면 가학이 되고 자기 자신의 절반을 죽이면 자학이 됩니다. 선과 악의 개념은 거기서 유래합니다.

 

 




[레벨:11]큰바위

2013.03.15 (02:03:33)

구조론을 알면 세상을 참 쉽게 살수 있군요.

믿음을 갖기도 쉽고,

관계도 쉬워지고,

인생도 쉬워지고............

 

그렇게 사는 사람을 드물게 만나는데,

웹에서나마 만날 수 있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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