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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727 vote 0 2013.01.30 (01:31:51)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수준을 높여야 한다.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어서 하는 말이다. 필자가 합리주의 대척점에 부조리를 놓았다고 해서 ‘아 합리주의는 나쁜 거구나’ 하고 받아들이거나 ‘숨은 전제를 간파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해서 아 전제가 없어야 하는구나 하는 식이면 곤란하다. 그건 너무 초딩스러운 장면이 아닌가?  


         언어는 전제와 진술의 갖춤이 있다. 전제는 당연히 있다. 필자가 지적하는 것은 잘못된 전제, 숨은 전제, 알아채지 못하는 전제, 암묵적으로 합의된 전제다. 합리주의가 나쁜 것은 아니다. 플라톤이 나쁜 것도 아니고, 칸트가 나쁜 것도 아니고, 마르크스가 나쁜 것도 아니다. 근데 수준이 낮다. 중학생이라면 칸트나 마르크스를 읽는게 맞다. 


         수준 좀 올리자는 거다. 금릉 13채는 전형적인 스필버그 영화다. 미국에서 만들었다면 아카데미상을 휩쓸었을 것이다. 근데 ‘아카데미는 똥이다’ 하고 외치는게 구조론연구소다. 아카데미도 나름대로 장점은 있다. 단지 중학생용이라는 거다. 적어도 어른이 되어가지고 ‘아카데미에서 상받았대 우와!’ 하고 감탄사를 날린다면 창피한 거다.  


         영화에는 주제도 있어야 하고 감동도 있어야 하고 교훈도 있어야 한다. 근데 주제, 감동, 교훈은 아줌마들 보는 주말연속극에나 필요한 거다. 구조론연구소에서 그런 이야기 하면 안 된다. 창피하지 않은가? 구조론연구소라면 당연히 위트와 패러독스와 반전을 논해야 한다. 풍자와 패러디와 병맛을 논해야 한다. 현대성이 있어줘야 한다. 


         애들은 국진이빵을 논하고 어른은 와인맛을 논한다. 애는 애니까 그렇고 어른은 어른이니까 그렇다. 소보루빵이 어떤 맛인지 그게 필자의 관심사는 될 수 없다. 필자도 가끔 마트에서 소보루빵을 사먹을 때가 있지만 그건 비밀이어야 한다. 족보가 있다. 합리주의, 계몽주의 족보가 있고 그 반대편의 족보도 있다. 그리고 투쟁해 왔다.


        ◎ 합리주의, 계몽주의 - 인간을 조직하여 권력을 창출한다.
        ◎ 미학, 깨달음, 돈오 - 인간을 상승시켜 집단지능을 형성한다.
 


         이 둘은 크샤트리아와 브라만처럼 계급이 다르다. 가는 길이 다르다. 방향이 다르다. 물론 합리주의도 필요하고 계몽주의도 필요하다. 그런데 정치인과 학자는 신분이 다르다. 합리주의, 계몽주의는 주어진 문제를 해결한다. 미학, 깨달음, 돈오는 거꾸로 문제를 생산한다. 문제해결을 바라는 사람과 문제생산을 바라는 사람은 신분이 다르다.


         연예인들은 겸손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과 연예인은 튀어야 제맛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가 다르다. 문제해결지향과 문제생산지향은 애초에 다른 방향을 보고있는 것이다. 이들을 나란히 세워놓고 비교하려고 하면 곤란하다. 전혀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 이들은 영원히 서로 만나지 않는다. 2차원과 3차원은 만나지 않는다.


         3차원 안에는 2차원이 들어가지만 2차원 안에는 3차원이 들어가지 않는다. 어쨌든 만화는 점점 병맛화 되고, 그림은 점점 인상화 되고, 예능은 점점 리얼리티화 된다. 갈수록 수준이 높아진다. 대본이 있는 쪽과 대본이 없는 쪽이 비교하면 대본이 있는 쪽이 더 재미가 있다. 그런데 결국 대본이 없는 쪽만 살아남는다.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대본이 있는 드라마는 전편을 봐야 이해가 된다. 대본이 없는 리얼리티쇼는 중간에서 봐도 되기 때문이다. 만화도 장편극화는 점차 퇴출된다. 2차원과 3차원이 경쟁하면 결국 3차원이 이기게 되어 있다. 흑백TV가 컬러TV를 이기지 못하듯이. 라디오가 TV를 이기지 못하듯이. 이는 깨달음의 상호작용이 인간을 상승시키기 때문이다. 


         공자는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사람이고 노자는 인간을 상승시키려 했던 사람이다. 문제가 해결되면 사건은 끝난다. 평화가 찾아오면 군인은 실업자가 된다. 계몽주의나 합리주의는 그 시대에 필요한 가치일 뿐 영원불변의 보편가치가 아니다. 인간이 무지할 때 계몽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집단의 힘을 끌어낼 때는 합리주의가 필요하다. 


         실용주의를 비판할 때는 합리주의가 필요하다. 혼자 떠들었던 노자보다 시스템을 만든 공자가 더 뛰어난 인물이다. 그런데 공자는 크샤트리아고 노자는 브라만이다. 맥락에 따라서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이걸 뒤섞어서 논점을 흐리면 곤란하다. 마키아벨리나 한비자는 인간을 수단으로 다룬 나쁜 사람들이다. 그런데 도리어 민주주의와 가깝다. 


         도덕이나 윤리를 앞세우며 자선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선진국이라면 불우이웃답기나 자선사업을 하면 안 된다. 그 사람들이 부도덕한 사람일까? 아니다. 이건 맥락이 다른거다. 좋은 사람이 우유부단한 태도로 여러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는 일은 흔하다. 좋은 사람이니까 결과가 좋아야 한다는 믿음은 웃기는 생각이다. 


         부조리라는 개념이 막연한 회의주의, 현실도피, 지식인의 겉멋으로 간다면 곤란하다. 정답은 있다. 합리가 있다. 단지 그곳에 없을 뿐이다. 저쪽에 합리가 없으면 이쪽에 합리가 있다. 문제와 답이 대칭구조를 이룬다. 어떻게 대칭을 끌어내는가? 상호작용을 통해서 끌어낸다. 스필버그 영화는 상호작용이 없으므로 안 쳐주는 거다. 


         윤리나 도덕도 필요하니까 있는 거다. 그것을 부정하는게 아니다. 아뿔싸! 그걸 강조하는 사람이 정신병자라는게 함정이다. 그건 마치 축구할줄 모르는 감독이 정신력을 강조하는것과 같다. 기술없는 감독이 정신력 타령을 일삼는 것이다. 윤리도덕을 부정하는게 아니라 그게 때로는 정신병자를 가려내는 수단으로 기능한다는게 본질이다.


        ◎ 감독 - 정신력으로 승리하겠습니다.
        ◎ 협회 - 저 새끼 미쳤구만. 당장 짤러.
 


         이문열이나 김지하나 조갑제들도 팩트를 낱낱이 따져보면 맞는 말을 할 때가 있다. 근데 미쳤다. 정신병원에 가봐야 한다. 김정은 개새끼 맞다. 근데 ‘김정은 개새끼’ 하고 떠들고 다니는 자들은 미친 새끼가 맞다. 베를루스코니가 며칠전에 ‘무솔리니가 한 일 중에 잘한것도 있다’고 말해서 이탈리아가 발칵 뒤집어졌다고 한다. 그 말은 맞다.


         히틀러도 찾아보면 잘한 것은 있다. 아우토반 만든건 잘했다. 그런데 베를루스코니는 미친 새끼가 맞다. 일제강점기 조선에 들어온 왜들 중에는 착한 왜도 있었다. 그런데 착한 일본인도 있었다고 말하는 새끼는 미친 새끼가 맞다. 일본이 근대화를 도운건 맞지만 침략하지 않았다면 지금 한국은 GDP가 4만불이다. 전체 맥락이 중요하다.     


         박정희가 한 일 중에 잘한 것도 있다. 그러나 박정희가 쿠데타를 안 했다면 지금 한국은 최소 3만불은 넘어갔다. 이런건 전체 맥락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잘한 것도 있는데 잘한 것도 있다고 말하면 미친 새끼다. 잘한거 없다. 히틀러나 박정희는 태어난게 유죄다. 사리분별을 못하고 헛소리 한다면 초딩이다. 말이 안 통하는 장면이다. 


         말이 통해야 한다. 맥락을 알아야 한다. 실용주의를 비판할 때는 합리주의가 강조되지만 깨달음을 논할 때는 합리주의가 비판된다. 실용주의는 바이샤 계급이고 합리주의는 크샤트리아 계급이고 깨달음은 바르만 계급이다. 애초에 차원이 다르다. 미신을 믿는 사람이나 행운에 기대는 사람 앞에는 이성을 강조해야 한다. 그게 합리주의다. 


         그런데 이성이 문제를 해결한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소통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이성은 소통을 못한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들 때는 이성으로 만든게 아니고 특유의 소통능력으로 만든 것이며 이성을 터득한 사람은 스티브 잡스 밑에서 개발자 하고 있다. 이성은 프로그래머밖에 못한다. 패션 디자이너 밑에서 재단사 노릇 밖에 못한다.  


         이성으로 논하면 애플은 지나치게 디자인에 몰입해서 비효율적인 디바이스를 만들었다. 아이폰 뜯어보면 나사가 50개도 넘는다고 한다. 나사못을 10개 미만으로 줄인 갤럭시폰이 더 이성적이다. 근데 그게 이성의 한계다. 상품은 되는데 영감은 못 준다. 명백하게 계급의 차별이 있다. 신분의 차별이 있다. 차원이 다르고 레벨이 다르다.


         21세기는 기술보다 디자인의 시대이고, 이성보다 감성의 시대이고, 권력의 집중보다 소통의 확산이 먹히는 시대이고, 극화보다 병맛의 시대이고, 드라마보다 시트콤의 시대이고, 버라이어티쇼보다 리얼리티쇼의 시대이고, 크샤트리아보다 브라만의 시대이다.   

     

        이러한 맥락을 모르고 막연히 반항을 앞세우고 막연히 부조리를 주장하며 바바리코트의 칼라에 얼굴을 파묻고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흑백사진에 빠져 있는 사람은 그냥 흉내나 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우울한 부조리는 2차대전 직후의 포즈, 21세기의 부조리는 유쾌한 병맛이다. 정답없는 부조리가 아니라 정답있는 부조리여야 한다. 


         정답은 있다. 그곳에는 없다. 정답은 대칭이다. call에 없고, 숨은 전제에 없고, 상부구조에 없고, 권력에 없고, 대신 현대성에 있고 상호작용에 있다. 기술자는 정답이 있다. 프로그래머는 분명한 정답이 있다. 그러나 디자인에는 결단코 정답이 없다. 그런데 정답이 있다. 모르겠는가? 디자인이 정답이다. 디자인은 정답이 없기에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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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용을 중시하는 바이샤에서, 이성을 중시하는 크샤트리아로, 다시 소통(깨달음)을 중시하는 브라만으로 올라서십시오. 실용을 중시하면 아이폰을 파는 매장에서 영업을 하고, 이성을 중시하면 잡스 밑에서 개발자나 하고, 소통을 중시하면 스스로 잡스가 됩니다. 어떻든 당신의 결정에 달렸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탈춤

2013.01.30 (07:06:14)

올레!

  화살을 쏘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2]wisemo

2013.01.30 (15:23:09)

아전인수, 비즈니스의 명답이오.

자영업이나 개인사업이나 중기업이나 대기업이나

길게 보고 존재에 의의를 두고 나가야 할 일이라 생각했소...

정답만 찾다가 존재가 없어지는 것은 정답같고...

[레벨:3]낙오자

2013.01.30 (15:35:40)

박그네 당선을 보면 인간에서 원숭이로의 후퇴라는 걸 1초 만에 아는데

이태리 가구와 필란드 가구를 보면 1초 만에 답이 안나오다는 게 문제.

현대성에 올라타야 신선.

프로필 이미지 [레벨:6]id: 15門15門

2013.01.30 (15:55:12)

정곡이 찔리는 1인^^; 그래도 질문하길 잘했다고 생각이 드는 1인^^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1.30 (15:57:56)

대체로 사람은 그냥 산다고보임.
원래 이렇게 살아왔다는 듯이 사는 것이 사람인거 같음.
그런데 누군가 아니야! 방향을 찾아야 돼! 라고 하면 뭔가에 한대 맞은듯 그래? 하고 반응을 보임.
제대로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원래 그렇게 살아던 것처럼 순환하며 살아가는것이라고 보임.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31 (10:56:15)

[레벨:30]스마일

2013.01.31 (11:38:34)

셋다 동일선상에 있는 것 같습니다. 백미터달리기에서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것 처럼

[레벨:6]빛의아들

2013.01.31 (14:46:19)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요?  내가 앞쪽에 있다면  앞쪽이 커보일것이고 내가 뒷쪽에 있다면  뒤쪽에 있는것이 커보이겠지요.

곧 내 위치에 따라서  앞쪽과 뒷쪽이 결정되는 것 아닐까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냥모

2013.02.01 (02: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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