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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880 vote 0 2009.05.13 (21:39:06)

현대성이란 무엇인가?

‘12일 동영상강의 해설입니다’

이 모든 논의들은 물론 여러분을 ‘깨달음’의 세계로 안내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깨달음을 텍스트로 옮긴 것이 구조론이다. 문제는 텍스트가 가지는 본질적 한계다. 언어로는 전달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그림이 요청되고, 미학이 요청되고, 함께 어우러지는 쌍방향 소통이 요청된다. 텍스트로 기록된 이론부분을 소화하기 어려운 분들을 ‘이미지’의 지름길로 안내하려는 것이다. 이미지를 통해 바로 깨닫기다.

깨달음은 혼자 아는 것이 아니고 사회에서 실천되는 것이며, 그 실천은 인류의 집단지능, 선비그룹의 집단지성, 문명이라는 이름의 지적 네트워크 건설이다. 이 공동작업에 참여하는 것이 ‘현대성’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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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선생의 논어 첫 머리를 인용하자.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이 안에 다 갖추어져 있다. 이야기는 학(學)에서 시작하여 기쁨(悅), 곧 미학으로 발전하고, 군자(君子) 곧 깨달음으로 끝난다. ‘배움≫미학≫깨달음’이다. 이로서 현대성이라는 1 사이클 세팅이 완성된다.

인간이 삶이라는 자기존재의 구축과정에서, 문명이라는 집단지성 시스템에 참여하려면 목수가 연장을, 병사가 총을, 학생이 책을 들고 가야하듯이 ‘현대성’이라는 개념을 지참하고 와야 하는 것이다.

논어는 ‘학이시습지’ 곧 ‘학문’으로 시작한다. 학문은 자연과 인간의 만남이다. 사람과 사람은 무엇으로 만나는가? 인사로 만나거나 혹은 악수로 만난다. 그렇다면 자연과 인간은 무엇으로 만나는가?

자연의 ‘완전성’과 인간의 ‘이성’으로 만난다. 자연이 완전성이라는 손을 내밀면 인간은 이성이라는 손으로 그 자연의 내민 손을 잡는다. 그렇게 둘은 만난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면 아기를 낳는다.

자연과 인간이 만나면 무엇을 낳는가? 학문을 낳는다. 그러므로 이성이야말로 병사의 총이요. 목수의 연장이요. 학생의 책이다. 이성은 곧 합리성이다. 합리의 리(理)는 결이다. 결은 길, 길은 도(道)다.

두 가지 길이 있다. 연역의 길과 귀납의 길이다. 연역길은 자연에서 인간으로 오는 길이요 귀납길은 인간에서 자연으로 가는 길이다. 연역길로 오는 것은 ‘에너지’다. 귀납길로 가는 것은 ‘정보’다.

자연은 에너지의 길을 따른다. 왜냐하면 그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 길을 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조달할 수 있는 회로가 합리성이다. 전구에 불을 켜려면 건전지와 길이 이어져야 한다.

에너지는 그 길을 가는 중에서 소모되므로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는 형태의 경로설계여야 한다. 그런데 정보는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정보는 증폭된다. 정보는 공명된다.

정보는 복제된다. 울림과 떨림에 의해 전파된다. 그 과정에 기쁨이 있다. 학이시습지면 왜 기쁠까? 정보가 증폭되기 때문이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어 곧 천하에 가득차게 되므로 ‘불역열호’다.

그리하여 ‘유붕 자원방래’한다. 그리하여 군자가 된다.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다. 손잡고 함께 문명의 건설에 참여함이다. 자연의 완전성과 인간의 이성은 그렇게 만나 마침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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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은 1 속에 2를 집어넣음이고 논리는 1에서 2를 끌어냄이다. 1이니 2니 하는 것은 에너지다. 에너지의 길을 따라가야 그 안에서 끌어낼 수 있고 또 그 안에 집어넣을 수도 있다.

구조론은 논리학이다. 논리는 자연에 심어져 수학을 낳는다. 수학은 과학을 낳고 과학은 문명을 낳는다. 이를 개인화하면 삶이고 이를 공동체화하면 문명이다. 손에 손잡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쇄적으로 끌려나온다.

존재는 그냥 존재가 아니다. 가만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자연계의 다섯가지 힘과 치열하게 대결하고 있다. 인간은 세포로 성립된다. 존재 역시 존재 그 자체를 성립시키는 속성에 의해서 성립된다.

그것은 공간에서의 자기보존과 시간에서의 자기전개다. 그것은 소속과 영역과 파트너와 포지션과 임무다. 소속에서 영역을 끌어내고 영역에서 파트너, 파트너에서 포지션, 임무를 차례로 끌어낸다.

현대성은 그러한 연속적인 끌어내기다. modern을 구성하는 것은 모드와 모럴이다. modern의 어원은 거푸집(mold)이다. mold에서 model이 나온다. mold와 model이 맞는 것이 mode다.

모럴(moral)은 몸(mo-)에 올리는(raise) 것이다. 그것은 매너, 에티켓, 습관이다. 몸에 올린 것이 패션과 디자인이다. 현대성이란 알맞는 모드와 모럴과 매너와 에티켓과 패션과 디자인을 인간과 사회의 몸에 올리는 것이다.

몸에 잘 올라간 것이 자연스럽다. 현대성은 떳떳함,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그것은 마땅(must)하다. must는 모델이 몰드와 맞아서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는 뜻이다. must는 실천적이다.

넥타이과 양복과 어울리고 한복은 고무신과 어울린다. 그러므로 그렇게 디자인을 ‘해야한다’. 그래서 must다. 무엇이 잘 어울리는 것이고 마땅한 것인가? 그것은 포지션이며 밸런스이며 캐릭터이다.

작품에는 ‘A면 B다’의 논리가 있어야 한다. 어떤 작품을 낸다는 것은 그냥 ‘난 이게 좋아!’ 하며 자아도취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향하여 무언가를 주장한다는 것이다. 자기논리를 개진해야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소속과 영역과 파트너와 포지션과 임무다. 수비수가 패스하면 공격수는 드리블해야 한다. 그것이 마땅(must)한 것이다. 수비수가 한 골을 막아주면 공격수는 득점을 올려야 한다.

그것이 must다. 공격수와 수비수가 손발을 맞추는 것이 mode다. 그것이 익숙하면 moral이다. 팀이라는 mold에서 포지션이라는 must를 따라 공격수와 수비수 간에 mode를 맞추는 moral이 있다.

그것이 modern이다. 모드는 서로 다른 둘의 일치, 모럴은 그렇게 하라는 마음의 명령이다. 습관, 버릇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 도덕적 당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예술은 단지 개인의 내면을 드러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공존의 논리를 개발하여 가는 것이다. 소속과 영역과 파트너와 포지션과 임무로 하여 공존의 밀도를 높여가며 그 존재 자체를 반석처럼 구축한다.

존재감있게 구축하기다. 살아있는 존재의 역동적 완성이다. 축구선수는 발 앞에 공이 떨어지면 곧 발로 찬다. 그것은 축구선수의 ‘마음의 명령’, 곧 moral이다. 야구선수는 공이 날아오면 방망이로 친다.

그것은 야구선수의 마음의 명령이다. 문명인은 인류의 집단지능 건설에 참여한다. 선비그룹의 집단지성 네트워크 건설에 참여하라는 마음의 명령을 따른다. 그러한 마음의 옷을 입는다. 그것이 moder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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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들어갈 때는 열쇠를 내밀어 잠긴 문을 연다. 사람을 만날 때는 손을 내밀어 악수하는 방법으로 마음의 문을 연다. 연인을 만날 때는 꽃다발을 내밀어, 혹은 멋진 미소를 내밀어 잠긴 마음의 문을 연다.

예술가는 무엇을 내밀어 마음의 문을 여는가? 작품에는 ‘A면 B다’의 논리가 있어야 한다. 현대성이다. 동양정신에서 그 출발은 ‘죽림칠현’의 고사로부터 시작되어 그리고 꽃피운 남조문화로, 소동파의 서원아집도로 발전한다.

혜강이 광릉산을 탄주하지 않으면 사마소는 곡을 감상할 수 없다. 요리사가 요리하지 않으면 제왕도 먹을 수 없다. 화가가 그리지 않으면 관객은 볼 수 없다. 연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사랑을 나눌 수 없다.

그 지점에서 모두는 평등하다. 이것을 전개시켜 나가는 것이 현대성이다. 논리는 밸런스, 포지션, 캐릭터로 펼쳐진다. 시도 소설도 음악도 그림도 그 안에 밸런스와 포지션과 캐릭터로 나아가는 단서를 둔다.

그 방법으로 공존의 논리를 찾아간다. 수호지의 여러 호걸들처럼, 서원아집도의 여러 인물들처럼, 추사와 다산과 초의의 사귐처럼. 흑선풍 이규가 사고를 치면 급시우 송강이 문제를 해결한다.

화화상 노지심이 사고를 치면 표자두 임충이 해결하고, 임충이 어려움에 빠지면 한지홀률 주귀가 돕는다. 그런 식으로 단서에 단서를 남기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손에 손잡고 전개하여 완성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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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작업에서 그것은 원근의 배치≫형태의 양감≫구도의 밸런스≫동세의 표현≫데생의 정확성들로 설명될 수 있다. 물론 이 이름들은 이 분야에 문외한인 필자가 임의로 찾아낸 것으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단서에 단서를 물고, 손에 손잡고 온느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중에서 창의하여 바꾼다면 무엇을 먼저 바꾸고 무엇을 나중 바꾸겠는가?

그 연쇄적인 꼬리물기의 앞선 것이 다음 것을 찍어내는 것이 mold, 바르게 찍는 것이 mode, 모드를 내 마음에 올리면 moral, 연쇄적으로 찍어야 한다는 당위가 must, 그렇게 찍혀나오는 것이 modern이다.

캔버스 안에서 그것은 돌이나 천, 나무를 이용한 소재 혹은 캔버스의 질감≫안료의 배합≫명암의 대비≫윤곽선의 두께≫색채의 조화들로 설명될 수 있다. 이들 중에서 바꾸라면 먼저 바꿀 것과 나중 바꿀 것이 있다.

예술은 창의다. 창의는 다르게 하기다. 무엇을 다르게 한다는 말인가? 바로 이것을 다르게 해야한다. 그냥 다르게 해서는 난잡할 뿐이다. 이 연쇄고리 안에서 모드와 모럴이 맞도록 다르게 해야 한다.

주제에서는 신과 이상≫인간과 인상≫자연과 사실≫마음, 추상≫관계와 공존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들 중에서도 역시 무엇을 먼저 선택하고 무엇을 나중 선택할지가 중요하다. 그것이 제대로 되어야 현대성이다.

신과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고전주의다. 그것은 시골사람이 처음 보고 ‘우와!’하고 감탄사를 내지르는 것이다. 인간과 인상을 추구하는 것이 인상주의다. 그것은 ‘짠!’하고 내 안에서 밖으로 활짝 펼쳐내는 것이다.

그 다음에 오는 것이 밀레와 쿠르베가 강조한 자연과 사실이다. 그것은 ‘음!’ 하고 신음을 속으로 삼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오는 것이 몬드리안 칸딘스키가 이룩한 마음과 추상의 세계다.

그것은 과학적으로 탐구하여 미학의 어떤 골수를 끌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어?’하고 놀라는 것이다. 최종적인 것은 관계와 공존이다. 그것은 ‘아하!’ ‘그렇구나’ 하고 깨닫는 것이다.  

● 고전주의-신과 이상 : ‘우와’ 하고 밖에서 구경하며 감탄하게 하기.
● 인상주의-인간과 인상 : ‘짠’ 하고 안에서 펼쳐내기.
● 밀레, 쿠르베-자연과 사실 : ‘음’ 하고 신음을 안으로 삼키기.
● 몬드리안, 칸딘스키-마음과 추상 : ‘어?’ 하고 고개를 갸웃하기.
● 현대성-관계와 공존 : ‘아하!’ 하고 깨닫고 소통하기.

물론 이러한 전개에서 다섯째 항목만이 현대성인 것은 아니다. 현대성이란 이런 식으로 부단히 가지를 쳐나간다는 것이다. 단서를 남겨서 연결되고 소통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진도 나가준다는 것이다.

사건에서는 퍼포먼스≫영화≫조각≫그림.사진≫텍스트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은 그 반대다. 거꾸로 텍스트를 그림으로 옮기려 한다. 그건 그림이 아니라 사기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사건이 먼저 와야 한다. 죽림칠현사건이 서원아집사건을 낳은 것이다. 그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추사와 초의, 다산의 사귐을 낳은 것이며 그대와 나와 우리의 사건을 낳은 것이다.

거기서 예술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되 그냥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혜강의 광릉산과 대화하는 그림이어야 한다. 동시에 소동파와 정다산과 소통하는 것이며 동시에 미래의 그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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