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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203 vote 0 2006.08.31 (11:47:24)

 

어떤 왜넘의 콤플렉스 타령

한국인과 일본인이 리플로 논쟁을 벌이는 장면을 가끔 볼 수 있다. 월드컵 때 특히 많았다. 하지만 의미있는 토론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마음이 좁아져 있다. 그릇이 작다.

뻔할 뻔자 한국인들은 일본의 침략과 사죄를 거론한다. 독도문제 들고 나온다. 이때 일본인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열등감’이라는 단어다. 콤플렉스 이야기 나오면 끝이다. 더 이상 토론이 진행이 안 된다.

토론에서 콤플렉스라는 말은 일종의 금기어가 되어야 한다. 이건 정치토론에서 인신공격을 하는 것과 같고, 평론가가 칼럼에서 인상비평을 던지는 것과 같다. 아주 질이 낮은 행동이다. 교양이 부족한 거다.

전여옥이 노무현 대통령의 학력을 거론하고 콤플렉스를 거론하면 채널 돌려야 한다. 이건 명백히 토론방해다. 인격적 수준이 떨어지는 자의 천박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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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인들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일전에 보도된 국가 자부심 순위가 꼴찌 근처에 있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일본의 독도침탈이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 이건 별개의 문제다.

열등감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것을 나쁜 방법으로 표출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오히려 더 높은 이상과 목표를 가지게 하는 원동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코르시카의 꼬마 나폴레옹이 그러했듯이.

왜 스톡홀름 증후군이 문제인가? 게임의 법칙이 아니라 심리적인 동기에서 원인을 찾으려 하는 것은 파쇼적인 인신공격이기 때문이다.(이 부분은 어제 필자의 글을 참고할 수 있다.)

라쇼몽의 증언자들이 서로 다르게 증언하는 것은 전략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는 게임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다. 룰은 불분명하다. 가해자와 피해자와 사회가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게임의 룰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피해자의 보상심리에 따른 자기구제 행동은 범인이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을 권리를 행사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사회가 피해자의 정신상태를 의심하여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몰아가는 것은 약자인 개인이 아니라 강자인 집단의 행동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파시즘적 광기다.

그것은 피해자를 비정상으로 몰아가는 것이며 “너는 정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너와 대화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된다. 흑인이 인종차별문제를 제기하면 백인은 이 한 마디로 일축할 수 있다.

“저녀석들 콤플렉스 때문이군.”

이 상황에서 더 이상 대화가 가능한가? 마찰은 강자와 약자 사이에 있는 것이다. 약자가 열등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때 강자가 “네가 열등감을 버리고 우리와 함께 어울리면 문제가 해결돼.” 라고 말하는 것은

사용자가 월급을 올려주지 않으면서 “네가 절약하면 월 100만원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건 몰염치한 태도다. 폭력적이다.

황란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황우석이 제일 무서워 하는 것은? 황빠다. 알럽황 운영자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역시 황빠들이다.

황빠들의 행동은 스톡홀름 증후군이 아니라.. 권력적 동기가 작동한 즉.. 이기적이고 전략적인 행동이다. 게임의 법칙에 충실한 것이며 게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다. 이걸 인정해야 대화가 된다.

무엇인가? 한국인이 늘상 식민지 지배와 독도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토론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의도된 행동인 것이다. 말하자면 먼저 잽을 날려서 선공을 가하는 것이다. 이건 먹히는 전략이다.

이때 일본인이 콤플렉스를 거론하거나 언론이 스톡홀름증후군 운운하거나 전여옥이 상고학력을 거론하거나.. 평론가들이 김기덕 감독에게 인신공격을 하거나.. 인상비평을 날리는 것으로 응수하는 것은 명백히 토론방해다.

상대방이 날린 잽을 커버링으로 방어한 것이 아니라.. 판을 엎어버리고 깽판을 놓고 도주한 것이다. 일본인 입에서 콤플렉스 나왔다면 깨갱 한거다.

● 인신공격 하지 마라. 비열하다.
● 인상비평 하지 마라. 수준 떨어진다.
● 콤플렉스 거론하지 마라. 그게 깨갱한 거다.
● 스톡홀름 증후군 거론하지 마라. 파시즘적 망동이다.
● 고졸학력 거론하지 마라. 인격이 의심된다.

김기덕 감독과 관련하여 빠짐없이 나오는 말이 열등감 운운하는 것이다. 이는 상대방을 비정상으로 몰아붙이는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는 2분법을 구사한다는 것이 곧 파쇼의 작태다.  

백인은 정상이고 흑인은 비정상인가? 서울대 나온 감독은 정상이고 초등학교 나온 감독은 비정상인가? 메인 스트림은 정상이고 상고 나오면 비정상인가?

그것이 편견이고 고정관념이고 불신의 장벽이고 차별주의고 왕자병이고 엘리트병이고 타파되어야 할 먹물근성이다. 그걸 먼저 극복하고 난 다음에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김기덕감독은 초등학교를 나왔다. 남들이 대학에서 공부할 때 그는 흙에서 공부하고 자연에서 공부했다. 그는 남들과 다른 학교를 나온 것이다.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 그것이 가치있다.

서울대 나온 사람보다 흙에서 공부한 김기덕 감독이 대한민국 사회를 더 폭넓게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인격이 영글어지는 10대 후반에 대학 도서관에나 처박혀 있었던 인간이 뭐를 알겠냐? 그래서 이 사회의 밑바닥 사정을 알 수 있겠나?

김기덕과 노무현 대통령의 공통점은 대학나온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아는 것이 있으니까 그걸 전술적으로 써먹는 거다. 그런데 이를 비정상으로 몰아붙여 버리면? 그건 대화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다.

히틀러가 문제인 것은 유태인은 비정상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여자와 남자는 다르지만 한쪽이 정상이고 한쪽이 비정상인 것은 아니다. 남자가 못 보는 것을 여자가 보고 여자가 못 보는 것을 남자가 본다. 이건 서로 좋은 것이다.

대학 다닌 사람이 못 보는 것을 김기덕은 본다. 김기덕은 자신의 경험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며 이는 충분히 계산된 행동이다. 김기덕 감독이 최근 언론을 타면서 보여준 행동은 그의 신작 ‘시간’에 나오는 그대로다.

시간에서 성현아는 하정우의 사랑을 원한다. 김기덕은 한국 영화팬의 사랑을 원한다. 성현아는 얼굴을 바꾼다. 김기덕은 영화를 바꾼다. 김기덕의 영화가 특유의 비린내를 지우고 순해진 것이다. 성현아가 바꾸자 하정우도 바꾼다. 무엇인가? 김기덕의 영화는 순해졌지만 김기덕다움은 약해졌다.

아는 관객들은 말한다. “뭐야 이거 예전의 김기덕이 아니잖아. 우린 날것 그대로의 김기덕을 보고 싶단 말야..!”

모든 과정은 계산된 것이며 홍보전략의 일환이며 게임의 법칙이 말하는 대로 그의 최대이익을 따라간 것이다. 단지 그의 관심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곳에 있을 뿐이다.

어차피 시간을 볼 사람은 적다. 이 사실을 잘 아는 상태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홍준 법칙을 적용시켜 볼때.. 아는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고도의 전략을 그는 취한 것이다.

무엇인가? 단 1만 명이 시간을 봐도 일천만 명이 괴물을 본 것과 동일한 효과를 그는 얻어내려는 것이다. 그의 전략은 적중했다. 일주일간 그는 화제의 중심에 섰다. 모두가 라이브로 진행되는 김기덕 주연 강한섭 조연의 영화(?)를 보았다. 극장에서가 아니라 언론에서.

그 순간 김기덕 감독은 한국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이며 비유로 말하면 일종의 권력을 얻은 것이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애드립을 넣고 반성문을 썼다. 논쟁을 끌어가며 일주일간을 즐긴 것이다.

그는 원하는 것을 얻어냈기 때문에 시간에 관객이 몇 명이 들든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밑진 장사는 안한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라면 이번에도 그는 손해 안보는 장사를 했다.

어제 글에서 썼지만.. 어떤 경우에도 인질들의 행동은 이기적이고 전략적이다. 어느 면에서는 소아병적이기도 하다. 사회도 같은 피해자라는 점을 간과한 점에서 철이 없는 행동이다. 어쨌든 그들은 공통적으로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다.

김기덕도 마찬가지다. 소아병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다. 김기덕이 앓는 것을 사회도 함께 앓는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평론가라면 세계적인 거장의 위신에 어울리지 않는 철부지 투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평단의 그런 반응 정도는 가볍게 무시할 것이다. 왜? 단련된 인간이니까. 어쨌든 그는 영리하게도.. 가장 적은 비용을 들이고 가장 많은 효과를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논쟁을 촉발하는 방법으로.

하여간 그의 전략이 성공했는가는 그의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만약 그가 100만명의 관객을 얻기를 원했다면 김기덕은 분명 실패했다. 그러나 한 명의 진짜 친구를 얻기를 원했다면 그는 영리하게 성공했다.

김기덕을 좋아하는 사람은 더 좋아하게 되었고.. 싫어하는 사람은 계속 싫어하게 되었다. 반복되는 김기덕의 언론 플레이에 짜증을 낼 수도 있으니까. 하여간 싫어하는 사람은 무시하면 그만이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그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쩌겠는가? 이문열을 쫓아 1천만의 허접관객을 얻기를 원하겠는가 아니면 김기덕을 쫓아 1만명의 진짜 관객을 얻기를 원하겠는가? 어느 쪽이든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는 총량에서 같다면.

필자는 당연히 100명의 진짜 독자를 얻기를 원한다. 호생관 최북이 그림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림을 팔지 않고 찢어버렸듯이. 일생에 남을 진짜 그림 하나를 얻으려면 최북의 기개가 필요하다.

공문십철이라 했으니 공자는 10명의 제자로 충분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더 강적이다. 그는 플라톤 한 명으로 충분했다. 당신에게는 몇 명의 관객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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