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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의 장편 ‘연금술사’에서 한 토막을 인용하면..

“내가 믿고 있는 이 땅의 속담이 있지. ‘한 번 일어난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두 번 일어난 일은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

지난 주 각 포털과 디시인사이드 및 도깨비뉴스 대문을 장식했던 인기 게시물 하나를 떠올린다.(원작자를 알아내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작가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올드보이의 최민식, 대장금의 이영애, K-1의 최홍만, 장동건과 보아, 그리고 박지성과 황우석의 사진이 차례로 나열되며 마지막에 한나라당의 난투극을 소개하고 ‘이제 니들만 잘하면 된다’는 한 마디로 끝을 맺었던!

그렇다. 우리 영화가 세계무대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한국 드라마가 아세아에서 보편적인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한국의 스포츠도 밀리지 않는다. 황우석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과학도 그렇고 고은과 황석영으로 대표되는 문학도 이젠 노벨상 수상을 기대할 만큼 되었다.

이 모든 현상이 결코 우연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월드컵 4강에 진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우연히 한번 일어난, 그러나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행운으로만 여겼다.

코엘료 식으로 말하면 ‘초심자의 행운’인 셈이다. 처음 우연히 경마장이나 도박장에 들렀다가 소액을 걸었는데 이상하게도 적중을 하는, 그래서 자신에게는 특별한 행운이 있다고 믿고 도박에 빠져들게 되는 그런 거.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입성했을 때, 박세리가 세계를 제패횄을 때도 그랬다. 한류 드라마가 아시아를 휩쓸 때도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노벨상이 나오면 노벨상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말하고 최홍만이 밥샙을 꺾으면 K-1의 수준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다.

이 모든 것의 배후에 민주화라는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었다.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이유는 둘이다. 첫째 독재로 하여 오랫동안 막혀 있었기 때문이고 둘째 우리는 그들과 다른 차별성과 독립성을 보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민주화가 중요한가? 중국의 모택동은 엉뚱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몸집이 왜소한 중국인은 축구나 육상 따위를 해서는 체격조건이 월등한 서구인과 아프리카인을 제칠 수 없다. 그러므로 중국인은 탁구를 해야 일등을 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확실히 탁구 하나는 중국이 제패했지만 그 결과로 중국의 모든 스포츠 종목은 침체에 빠져 버렸다. 모택동의 대착각이었다. 필자의 견해로 말한다면 중국은 모든 스포츠에 강하다. 그들은 단지 자신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인들은 어리석게도 자신들이 약하다고 믿고 정공법을 버리고 틈새시장이나 공략하는 용렬한 선택을 한 것이다. 바보짓이다.

한국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가난한 집에 아이가 다섯이면 장남 한 사람만 고등교육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여성은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버스 차장이 되거나 공장에 취직하여 남동생의 학비를 대야했다. 집안은 가문의 힘을 총동원 하여 장남 혹은 남자아이 하나만을 밀어주었고 차남 혹은 여성은 그 한 사람을 위해서 희생해야 했다.

중국의 모택동이 어리석게도 탁구 하나를 키우기 위해 다른 스포츠를 몰락시켰듯이 한국의 많은 가정들은 집안의 장손 하나를 판검사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기회를 희생시켰던 것이다. 7, 80년대 중국이 탁구 하나로 세계를 제패했지만 더 많은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 기회를 박탈당했듯이, 박정희 시대의 한국은 문화도 스포츠도 오락도 참아야 했다. 오직 경제 하나를 위해.

한국은 거국적으로 재벌을 키웠고 삼성을 밀었다. 그 덕택에 삼성은 세계 일류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삼성이 잘한 점도 있지만 삼성 하나 때문에 법이 지켜지지 않는 등 국가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장남인 재벌을 위해 여성인 중소기업은 희생해야 했고 장손인 삼성을 위해 더 많은 기업들을 희생한 결과 한국경제는 딜렘마에 빠져버린 것이다.

무엇인가? 모택동의 착각을 깨야 한다. 중국인들은 탁구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축구도, 바둑도, 영화도, 문학도, 마라톤도, 음악도 잘 할 수 있다. 한국은  삼성만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재벌만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재벌 하나를 위해, 삼성 하나를 위해 싹부터 잘려진 그 많은 가능성들을 생각하면 애통할 뿐이다.

그렇다. 87년 이후 민주화로 하여 그러한 억압이 중단된 것이다. 이제 한국은 어떤 하나의 가치를 위해 다른 많은 가치들을 희생시키는 나라가 아니다. 장남에게만 혹은 남성에게만, 혹은 삼성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나라가 아니다. 장남 하나만 공부 시켜서 장남이 판검사라도 되면 가족 모두가 혜택을 본다는 그러한 봉건적 발상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로 영화가, 드라마가, 음악이, 축구가, 과학이, 문학이, 정치가 각기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민주화의 의미는 한 마디로 ‘우리도 잘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기회를 달라’는 시대의 요구였던 것이다.

한국은 강하다. 경제로만 강한 것이 아니고 정치도 강하고 문화도 스포츠도 강하다. 우리 자신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아채야 한다. 그리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경제는 이 정도면 할 만큼 한 것이다. 이제는 정치로도 눈을 돌려야 한다. 이제는 문화로도 눈을 돌려야 한다. 경제를 위해 정치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모택동식 발상, 경제를 위해 문화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박정희식 발상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 그럴 때가 되었다.

이제 우리만 잘 하면 된다

필자의 공연한 글 때문에 노혜경이 불리해졌다는 항의를 여러곳에서 받고 마음 고생을 하던 중에 노혜경 대표가 과반수를 얻어 당선되었다는 소식이 반갑다.

노사모는 기적이다. 우리는 기적을 이룬 것이다. 그것은 우연히 주어진 한번의 행운이 아니다. 두 번 일어난 행운은 세 번 일어난다. 서프라이즈나 노사모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집단이다. 그들은 무언가를 이루어 보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왕성한 호기심과 모험심 그리고 열정이라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들만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젠 니들만 잘하면 된다’는 그 작품의 마지막 멘트를 나는 잊을 수 없다. 말을 바꾸어서 하자. 그들을 탓할 때가 아니다. ‘이젠 우리만 잘하면 된다.’ 이젠 우리가  해내야 한다. 올드보이가 해내고, 대장금이 해내고, 격투기의 최홍만이 해내고, 바둑의 이창호가 해낸 것을 이젠 서프라이즈와 노사모가 해낼 때다.

노무현의 당선은 기적이었다. 그것이 두 번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믿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냉소한다. 반면에 두 번 일어났으므로 세 번도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참여한다.

서프라이즈와 함께 또 노사모와 함께 우리 세 번째 기적을 성공시켰으면 싶다. 고생길이 훤히 열린 노혜경 대표일꾼의 앞날에 꽃비를 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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