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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2450 vote 0 2005.08.18 (14:14:46)

문희상은 물러나라!

노회찬 의원이 큰 일을 했다. 떡검사 명단을 공개한 것이다. 노회찬이 하는 것을 우리당 의원들은 왜 못할까?

민노당은 이념이 분명한 정당이다. 우리당은 실용정당을 표방하고 있다. 실용하자는 판에 누가 목숨걸고 정보를 빼줄 것인가?

당의 생명은 조직이다. 우리당은 민노당 보다 조직이 약하다. MBC 기자들 중 상당수가 민노당 당원이다. 모르긴 해도 방송 3사에 우리당 당원이라곤 없다시피 할 것이다. 이 마당에 누가 우리당 당원이 되겠는가?

이념이란 공동체에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동기를 제공함으로써 공동체에 이념적 동질성을 부여할 수 있다. 그 동질성에 의하여 당원들이 소속감을 가지고 하나가 된다. 비로소 정당이 정체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성경이 없는 기독교를 상상할 수 있을까? 경전이 없는 불교를 상상할 수 있을까? 사서삼경이 없는 유교를 상상할 수 있을까? 이념이 없으면 동기가 없고, 동기가 없으면 참여하지 않는다.

이념이 없어서는 참여한다 해도 종이당원에 불과하다. 자부심과 소속감을 느낄 수 없다. 이름은 참여정부지만 자부심과 소속감을 주지 못한다면 참여하고자 해도 연결할 다리가 없다.

이념을 내세우지 않겠다는건 자살하겠다는 것이다. 자살이 목적인 당을 위하여 누가 충성하겠는가? 당원은 당에 충성해야 한다. 당은 당원들에게 충성을 요구할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실용하자는건 충성하지 말라는 말이다.

실용정당을 표방하는 한 우리당의 미래는 없다. 왼쪽의 민노당과 오른쪽의 한나라당 사이에서 협살에 걸리는 일만 남았다. 지금 우리당의 유일한 희망은 간간이 보여주는 민노당의 뻘짓이다. 민노당이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상식’을 회복한다면 빌어먹을 정형근의 예언이 들어맞고 말 것이다.

이념으로 출발해야 하지만 이념에 머물러서 안된다. 이념으로 뼈대를 삼되 실천에 있어서는 현장을 잘 아는 전문가들에게 재량권을 주고 유연성을 발휘하게 해야 한다. 실용이 의미가 있다면 아마도 그 지점일 것이다.

민노당의 문제는 현장을 아는 전문가들에게 재량권을 주지 않고, 전장에 나가 있는 장수들에게 작전권을 넘기지 않고, 당이 선조임금 처럼 뒤에서 잔소리 하며 간섭하는 것이다.

필자가 민노당에 대한 기대를 접고 우리당에 희망을 걸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의원들 세비까지 빼가는 민노당과 달리 우리당은 의원들에게 재량권을 주어서 백화제방으로 각자의 목소리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당 의원들의 입에는 실용이라는 이름의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의원들이 바른 말 좀 하려고 하면 당을 분열시킨다며 야단을 친다.

앞으로 민노당이 적절히 변신한다면 어떻게 될까? 민노당이 현장을 아는 장수들에게 재량권을 주고 전술적 유연성을 발휘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당의 입지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필자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언론시장을 보라. 한겨레는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수구신문도 독해서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는다. 그 중간에 어중간한 신문이 제일 먼저 죽고 있다.

어중간한 신문은 ‘정보의 질’을 판별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언론 고유의 기능을 스스로 팽개친 것이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이념의 완충지대에 있는 광범위한 중도성향 유권자들은 균형감각을 발휘하여 캐스팅 보트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감추고 있다.

그들은 왼쪽이나 오른쪽에 있는 정당과 심리적인 제휴를 하는 방법으로 주도권을 행사하려 든다. 그들과의 암묵적인 제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선명한 판단기준을 제공해야 한다.

막연한 실용주의는 그러한 판단기준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우리당은 뭐가 뭔지 헛갈리는 정당이 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는 중도성향 유권자들과 이심전심으로 제휴할 수 없다.

예컨대 민노당과는 흥정을 기대할 수 있다. 노조를 장악하고 있는 민노당이 노조의 지나친 파업을 막아준다면 대신 파병문제는 양보하겠다는 식으로 조건을 걸어 일괄타결로 타협할 수 있다.(실제로 거래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의미에서의 이심전심을 말한다.)

우리당은? 정체가 모호해서 그러한 심정적인 제휴나 협상이나 거래가 불가능하다. 이심전심이 안 되는 거다. 중도파 유권자들이 해야할 캐스팅 보트의 역할을 자기네들이 빼앗아 버리므로 중도성향 유권자들에게 맨 먼저 버림 받는다.

알아야 한다. 나침반은 오직 지북과 지남을 가리킬 뿐 그 중간의 광범위한 지대를 서비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중도성향 유권자들은 왼쪽이나 오른쪽에 선 정당들을 길들이는 재미로 정치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사실을. 오히려 그 중간을 비워두는 방법으로 그들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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