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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62 vote 0 2021.03.29 (10:44:29)

    구조주의 열린진보로 갈아타자.


    했던 이야기지만 성에 차지 않으니 해설을 보태자. 마르크스의 한 가지 실수 때문에 세계의 많은 지식인이 바보 되었다. 민주당이 고전하는 이유다. 마르크스의 삽질로 탄생한 잘못된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정한 지식인이라면 용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자본교, 생태교 광신도 대결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학적 진보주의가 아니면 안 된다. 우리 안의 환빠와 무한동력과 음모론을 분쇄해야 한다. 생태주의라는 유령이 총본산이다. 문제는 이분법적 사고의 경직된 프레임이다. 저쪽이 자본동력을 밀면 우리는 무한동력?


    저쪽이 미일사대면 우리는 환빠로 받아치고? 저쪽이 과학으로 나오면 우리는 비과학으로 받아치고? 이건 아니잖아. 과학계에서 활동하는 이과 애들이 일베에 많으니까 우리는 문화계에서 활동하는 문과 중심으로 뭉쳐보자? 이런 식의 받아치기라면 곤란하다.


    이과생 대 문과생, 과학계 대 문화계, 자본교 대 생태교, 사대교 대 환빠교 하는 받아치기 프레임 놀이가 일시적으로 기세를 올리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스텝이 꼬여서 방향전환이 안 된다. 궁지로 몰린다. 자기 발에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닫힌 진보의 한계다. 과학을 숭상하고 시행착오에 따른 오류시정을 두려워 않는 열린 진보로 갈아타야 한다. 생태주의는 내용이 없다. 그냥 자본이라는 단어를 받아치는 단어다. 자본이냐 생태냐 양자택일하라고 겁주는 수법이다. 단어만 하나 지어내면 이기냐?


    보폭을 좁히고, 행동반경을 좁히고, 궁지로 몰아가니 닫힌 진보다. 프레임에 의지하는 이유는 기세를 얻으려는 것이다.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야 기세가 붙어준다. 머리는 하나뿐인데 뒤에 꼬리가 계속 붙으니 경직된다. 오류가 발견되어도 시정되지 않는다. 


    기세를 잃더라도 뗄 꼬리를 떼고 가야 한다. 환빠 떼고, 무한동력 떼고, 음모론 떼자. 이게 다 마르크스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첫 단추를 잘못 꿰는 바람에 지식인들의 스텝이 꼬였다. 마르크스는 닫힌계를 생각했다. 영국과 같은 섬이다. 무역은 없다고 간주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자체모순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다. 당시에 실제로 그랬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 거대한 모순 때문에 자본주의는 파멸하도록 되어 있다.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헨리 포드와 프리츠 하버다. 


     비로소 근대를 졸업하고 노동자를 착취하는 대신 기계를 착취하는 현대가 출범한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아직도 근대주의적 사고에 매몰된 지체자가 마르크스를 섬긴다. 포드시스템 등장하고 질소비료가 공급된 시점에 마르크스는 죽었다. 


    죽은 할배 불알은 그만 만져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깃발은 의미가 있다. 깃발은 인정하되 혁명이론은 버려라. 세상을 바꾸는 것은 생산력의 혁신이다. 단재 신채호와 비슷하다. 좋은 깃발을 꽂았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개소리가 다양하다. 민족주의 좋다.


    방향은 옳지만 실증에 기반을 두는 역사학자는 아니고 재야 사학자다. 콘텐츠를 버리고 관점을 봐야 한다. 그는 인종주의 영웅사관에서 사회주의 민중사관으로 갈아탔다. 왜 단재의 사관이 바뀌었을까? 러시아 혁명 때문이다. 그냥 유행에 맞게 행동했던 것이다. 


    춘원 이광수는 유행이 바뀐 사실을 모르고 계속 인종주의 영웅사관으로 남아있다가 털렸다. 유행은 또 바뀐다. 단재도 실증주의를 외쳤는데 단재를 숭상하며 실증주의를 거부한다면 웃긴 거다. 마르크스도 그 시대의 유행에 맞게 행동했다. 그 시대에 필요했다.


    그래서 먹혔다. 그런데 헨리 포드와 프리츠 하버가 끝장냈다. 새로운 유행으로 갈아타야 한다. 깃발도 필요하지만 거기에 현혹되지 말고 비판적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자본의 모순이 사라진건 아니다. 그러나 모순이야말로 진보의 동력원이라는 것이 구조론이다. 


    진보는 모순과 혁신이 대결한 결과다. 진화는 환경과 변이 간에 대결의 산물이다. 모순이 변화를 추동한다. 게가 탈피하는 것과 같다. 껍질 때문에 더 이상 몸집을 키울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내부성장과 외부껍질의 충돌이라는 모순이 구조적인 한계를 만든다.


    혁신이 한계를 극복하면 또 다른 모순이 생겨나고 또 다른 패치를 남발하는 길항작용 패턴의 무한반복이 문명의 역사다. 문명의 본질은 조절장치다. 조절장치는 한계가 있다. 정기적으로 조절장치를 갈아야 한다. 봉건시대는 가문이 사회적 조절단위로 기능했다.


    산업시대로 가면서 가족이 등장하고 정보시대로 가면서 개인이 등장한다. 계속 조절장치를 바꾼다. 낡은 조절장치를 폐기하고 새로운 조절장치로 시스템을 갈아줘야 한다. 그러한 전환점이 문명의 위기다. 필연적으로 전쟁이 일어난다. 누구 사람 때문이 아니다. 


    시스템은 원래 취약점이 있다. 완벽한 시스템은 우주 안에 없다. 엔트로피의 법칙 때문에 우주는 원래 비대칭이다. 시스템은 뒤뚱거리면서 굴러가는 것이다. 역사이래 좋은 것이 하나 등장할 때마다 나쁜게 두 가지씩 새끼를 쳤다. 그런데 이것이 진보의 힘이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우리는 긴장된 상태, 소집된 상태, 전투태세를 유지해야 한다. 긴장이 풀리고 광장에 모인 군대가 해산되면 죽는다. 아슬아슬한 상태를 유지하며 24시간 눈을 떼지 못하고 감시하는게 정치다. 대결의 긴장에 의해 집단이 결속된다. 


    문명은 닫힌계가 아닌 열린계다. 사우디는 왜 잘 사는가? 석유가 나오기 때문이다. 서구는 왜 잘 사는가? 혁신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석유가 고갈되면 망하고 혁신이 고갈되면 죽는다. 왜? 자본주의 제도의 구조적인 모순 때문에. 그런데 모순은 극복할 수 있다. 


    문제는 모순과 싸우기를 두려워하는 비겁자다. 그들은 어차피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면 문명을 포기하면 되잖아. 하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 지구는 작고, 인구는 많고, 식민지 행성은 발견될 기미가 없다. 어쩌나? 인류가 쾌적하게 살 수 있는 숫자는 2억 명이다. 


    생태주의 광신도는 이쪽으로 흘러간다. 68억 명을 죽이자. 그게 2차대전이다. 비료가 없다면 히틀러가 옳다. 신무기는 등장했고, 인구는 너무 많고, 싹 죽이는 수 외에 방법이 없다. 먼저 쏘는 자가 살아남는다. 인류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치킨게임이 벌어졌다.


    영국 도둑과 프랑스 강도가 먼저 전 세계를 식민화 했다. 선전포고한 것이다. 그렇다면 받아쳐야 한다. 인류를 구한 사람은 예수가 아니라 독가스를 만든 학살자 프리츠 하버라는게 아이러니다. 마르크스가 묻고 맬서스가 물었다. 너희들 이제 큰일났다. 어쩔래? 


    헨리 포드가 답하고 프리츠 하버가 답했다. 묘수로 타개해 보였다. 독일 촌놈 히틀러는 그 소식을 못 들었다. 왜냐하면 촌놈이니까. 문제가 해결된 사실을 모르고 전쟁을 도발한 것이다. 혁신과 비료는 화수분이다. 사우디의 석유처럼 나온다. 파도 파도 나온다.


    70억 인류가 80억 되고 이렇게 피둥피둥 살아있다. 우리가 과학의 성과를 인정해야 한다. 답은 오직 생산력의 혁신에 있다. 특히 문과 출신들 말이다. 생태교, 환빠교, 음모론교, 무한동력교 이제는 졸업해야 한다. 비과학으로 자본주의와 싸워서는 이기지 못한다.


    달동네에 벽화 그려서 주거문제 해결이 안 된다. 잠시 눈길을 끌 수 있지만, 응원단장이 잘하면 축구 한일전 이기나? 골을 넣어야 이긴다. 응원단장은 이겼을 때 분위기 띄우는 역할이고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는 과학이다. 집부터 지어놓고 벽화를 그려야지 참. 


    구색맞추기는 되지만 주연이 없는데 조연만 모여서 뭐 하자는 수작인가? 응원단이 열심히 하면 하늘이 조화를 부려 골이 터진다는 믿음. 기도를 열심히 하면 근혜님이 석방될 거라는 믿음.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이 돕는다는 생태주의 무한동력 사고방식 말이다. 


    문제는 글자 배운 사람이 이런 식의 개소리를 하고 있다는 거다. 답답하다. 어휴! 답은 물리학이다. 생태주의가 양념은 된다. 떡이 없는데 고추장만 가지고 떡볶이가 되나? 바보냐? 인류는 어쩌다가 헨리 포드와 프리츠 하버에 신세를 졌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자본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생산력 혁신이 유일한 탈출구다. 혁신이 화수분이다. 혁신이 이과생들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 문과생이 삐쳤다. 문과 애들 원래 이과 깔본다. 혁신을 얕잡아보고, 과학을 비웃고, 환빠 되고 무한동력 믿고, 음모론 기웃거리는 것이다. 


    그런 비뚤어진 행동을 생태주의라는 먹어주는 단어로 포장한다. 생태주의는 난 이과 애들 싫어. 걔들이랑 안 놀아. 이거다. 유치하기는. 무식은 자랑이 아니다. 우리는 부단한 생산력의 혁신으로 자본주의라는 난폭한 괴물 기관차의 속도를 제어할 뿐이다. 


    달리는 자본주의를 멈출 수 없다. 설국열차는 한 번 엔진을 켜면 멈출 수 없게 되어 있다. 계속 달린다. 통제불능 자본주의에 대한 비유다. 그런데 통제된다. 영화는 낙관주의 암시로 끝났지만 원작은 더 암울하다. 스마트 시대에 문과생들 취직이 안 되어 암울하다.


[레벨:3]dksnow

2021.03.30 (04:59:07)

1997년도에 대학에 가니, 신자유주의가 어쩌고, 자본의 침탈이 어쩌니 하더라...

강단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외치고,

재야에서는, 녹색운동과 생태운동이 나오던 시절.


도대체가 진도가 안나가있는게, 23년후의 모습. 


과학을 버리고, 어떻게 진보를 하겠다는 무능엔 이해가 안가고,

과학 좀 안다고, 일베가 되버리는건 무슨 심술인지. 


23년전에 느껴서, 17년전에 투신해본 내 이공계의 꿈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바보가 되지 않는다는 확신은 여전하다.


이성적 과학주의 - 음모론을 버리고

주체적 사회관  (주체 사상 말고) - 타자주의를 극복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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