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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870 vote 1 2020.11.17 (11:26:49)

    공자인가 노자인가

  

    나는 독자들이 듣기를 원하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책을 팔아먹으려고 독자들에게 아부하는 강신주나 혜민 같은 너절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다. 그 진실은 차갑다. 그러나 받아들여야 한다. 왜? 다음 단계가 있기 때문이다.


    진실의 문 안쪽에 펼쳐진 또 다른 세계에 초대받을 수 있다. 그 세계는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세계다. 사람들이 신대륙으로 옮겨가는 이유는 그곳이 여러분을 환영하는 좋은 곳이라서가 아니라 넓은 곳이라서다. 진실은 차갑지만 미지의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다.


    여러분이 원하는 따뜻함은 그곳에서 여러분이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방문자는 주인의 따듯한 환대를 원하지만 착각이다. 여러분을 환대하는 사람은 없다. 여러분이 그곳을 차지하고 주인이 되어 또 다른 손님을 환대해야 한다. 철학의 세계는 참 따뜻한 곳이야. 천만에!


    철학은 다듬어지지 않은 순수한 곳이다. 철학은 무뚝뚝하다. 사실은 내가 답을 말해주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다. 표현하는 레토릭이 딸려서 말하지 못할 뿐이다. 나는 사람들이 알면서도 기술이 부족해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이 구조론이다.


    독자와 화자의 암묵적인 약속을 깨고 관측대상 그 자체에 내재한 질서를 중심으로 말하는게 요령이다. 구조를 모르면 말할 수 없다. 말하지 못하므로 닫혀진 문 안쪽의 세계에 초대받지 못하고 밖에서 겉돌고 서성대며 차갑다고 화를 낸다. 주인의 따뜻한 환대를 기대한다.


    그런거 없다. 진실은 차갑다. 열려 있는 문 안쪽으로 성큼 내디뎌야 한다. 환영사도 없고 빵빠레도 없고 초대장도 없고 안내 데스크도 없다. 첫걸음은 스스로 떼야 한다. 깨달음이라 하면 사람들은 그게 일종의 초능력 비슷한 것이라고 여긴다. 미안하지만 그런거 없다.


    그들은 주술사가 되고 싶은 것이다. 낭만적이다. 소설 나와주잖아. 현실은 냉정하다. 깨달음은 그저 호르몬을 바꿀 뿐이다. 호르몬은 방향을 가리킨다. 방향은 둘이다. 주체와 타자다. 철학의 알파와 오메가는 주체성과 타자성이며 그게 전부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주체는 나고 타자는 남이다. 나냐 남이냐. 내편이냐 적이냐다. 철학은 1초 만에 뗄 수 있다. 피아구분에 성공하면 된다. 내편은 돕고 적은 죽인다. 그럴 수 있는가? 철학은 냉정하다. 철학 그 자체로는 얻는게 없다. 그러나 철학을 마스터하면 다음 게임에 초대된다. 애들은 가라. 


    내편과 적군을 구분할 줄 아는 어른들만 이 게임에 참가할 자격이 있다. 성소수자 공격하고, 남녀대결 부추기고, 다문화 헐뜯고, 북한과는 전쟁선동, 미일에는 굴종사대. 이런 자는 피아구분 안 되는 자이니 게임에 끼워주지마라. 누가 내편인지 알고 내편을 늘려가야 한다.


    철학은 지식의 주입이 아니라 의사결정능력의 발달이다. 의사결정 하려면? 방향판단을 잘해야 한다. 왜? 사건은 서로 연동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친다. 철학의 답은 호르몬이다. 사실이지 건조하다. 호르몬 하나 건지려고 이 지랄 했어? 그렇다. 


    20년간 면벽수행 해서 호르몬 하나 얻었다고? 그렇다. 그런데 철학의 답은 돈오돈수다. 호르몬은 1초 만에 된다. 기독교는 물에 담그기 기술 한 번으로 끝내잖아. 사람을 물에 담그는데 몇 초가 걸리지? 패거리에 들면서 호르몬이 바뀐다. 인간은 누구나 원숭이로 태어난다. 


    집단을 발견하고 사람이 된다. 그것이 자아다. 자아는 곧 의사결정권이다. 안철수처럼 아빠가 시켜서요. 아내가 말려서요. 이러는 자는 자아가 없는 것이다. 자아가 없으므로 의사결정권이 없다. 노예는 의사결정권이 없다. 초딩은 범죄를 저질러도 자아가 없어 처벌이 없다. 


    정신병자를 처벌하지 않는 이치다. 자아를 얻어 의사결정권을 획득하면 주체냐 타자냐의 갈림길 앞에 선다. 곧 집단과의 관계설정이다. 여기서 호르몬이 갈린다. 주체의 호르몬이 나오는가 타자의 호르몬이 나오는가에 따라 행동이 갈린다. 타자는 남이다. 남이면 흔든다. 


    대항한다. 안티한다. 괴롭힌다. 신고식 한다. 통과의례 한다. 말을 안 듣는다. 무조건 반대로 움직인다. 서구가 망한 것은 기본모드를 타자로 설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자 맞다. 세상은 타인이다. 가족도 남이다. 인정해야 한다. 부모라도 자식 방에 불쑥 들어가면 안 된다. 


    한국에는 '나는 이 결혼 반댈세.' 하는 괴상한 말이 있지만 남의 결혼에 의견을 내면 안 된다. 미쳤냐? 세상은 기본적으로 남이다. 내가 주체를 확장시켜 주변을 하나씩 접수해 가는 것이다. 게임을 착수하기에 앞서 세상의 기본모드는 남이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야 한다.


    막연히 세상을 내편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어리광부리면 국민이 찍어줄거야. 내가 울어버리면 국민이 나를 대통령 만들어 줄거야. 내가 삐쳐버리면 다들 걱정할거야. 이런 안철수식 유아행동에서 벗어나야 한다. 냉정하다. 무임승차 곤란하다. 먼저 희생한 다음 나서기다.


    자가발전 곤란하다. 노무현은 이인제를 저격한 것이다. 그런게 있어야 한다. 어물쩡 안방차지 곤란하다. 훌륭한 사람을 대통령 뽑아주는게 아니다. 국민이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선출한다. 통제구조의 건설이 먼저다. 노무현이 이인제를 저격했을 때 통제수단이 획득되었다.


    말이 제 입으로 재갈을 물고 와서 국민에게 고삐를 전달해야 한다. 통제수단이 획득되었을 때 남이 아니다. 어렵잖아. 쉽게 가는 방법은 없을까? 의리다. 타자를 주체로 만드는 것은 의리다. 공자는 세 가지를 가르쳤다. 첫째는 군자다. 의사결정하는 사람이 되어라는 말이다. 


    둘째는 인의다. 의사결정은 집단이 한다. 집단의 의사결정중심으로 쳐들어가라는 말이다. 셋째는 괴력난신이다. 남의 결정권을 가로채지 말라는 말이다. 인간이 괴력난신 행동을 하고 안티행동을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일구어놓은 권력을 중간에서 빼먹으려는 것이다. 


    바이든이 이겼는데 챔피언 트로피를 빼앗고 싶다? 음모론을 구사하면 된다. 펜실베니아에서 부정선거를 했다더라. 빼앗으려는 거다. 강도속셈이다. 국힘당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는 이런 날치기 심보를 들켰기 때문이다. 새로운 권력을 조직하지 않고 가로채려 한다. 


    공자는 의사결정하라고 가르쳤다. 군자다. 의사결정하려면 의사결정중심으로 쳐들어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인의다. 남의 의사결정을 가로채지 말라고 가르쳤다. 괴력난신이다. 스스로 의사결정권력을 조직하려면 주체의 형성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주체가 있는가? 문빠다. 


    문빠가 민주당의 주체다. 문빠는 문재인 지지자가 아니라 민주당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대한민국을 통제하고 더 나아가 세계를 움직이려고 작정하고 게임에 가담한 사람이다. 게임의 의미를 파악하고 자신에게 역할을 준 사람이다. 그들이 주체를 결성한다. 롤플레잉이다.


    주체는 내편이므로 훔칠 수 없다. 자기 가족의 소유물을 강탈할 수 없는 이치다. 타자는 적이므로 훔쳐도 된다. 부족민은 마을에 접근해 오는 외부인은 일단 죽이고 가진 것을 빼앗는다. 백인이 인디언 마을을 방문한다. 인디언이 백인에게 친구냐 아니면 적이냐고 묻는다. 


    적이라고 대답하면 죽인다. 친구라고 대답하면 공유한다. 인디언이 땅에 떨어진 백인의 모자를 집어간다. 왜 내 모자를 훔치냐? 방금 친구라고 말하지 않았어? 친구끼리 내것 네것이 어딨어? 난감하다. 철학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어떻게 친구가 되지? 의리로 된다.


    어떻게 의리를 이루지? 도원결의를 해야 한다. 공동의 적을 발굴해야 한다. 한배를 타야 한다. 큰 사건에 올라타야 한다. 천하인이 되어야 한다. 게임에 착수해야 한다. 깨달음은 호르몬이다. 자연에서 내편이냐 적이냐는 호르몬이 정한다. 인간은 역할로 호르몬을 결정한다.


    철학은 주체와 타자를 가르는 구분선을 제공한다. 일단은 차갑다. 넌 타인이야. 꺼져! 자기소개하지 마. 누가 물어봤다냐? 그건 네 사정이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지. 너 누구냐? 네가 뭔데? 나무통 속의 디오게네스가 알렉산더에게 말했다. 내 앞에서 네 몸뚱이를 치워줘. 


    이것이 철학의 출발점이다. 차갑게 거절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면 쓸데없는 눈치보기와 궁중암투와 힘겨루기와 신고식과 통과의례와 딴지걸기를 피할 수 있다. 거기에 우리의 가야 할 신대륙이 있다. 문빠가 뭉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문빠는 그 선을 넘었다. 


    기독교는 세례로 그 선을 넘고, 불교는 수계로 그 벽을 넘고, 문빠는 임무로 그 문을 넘어 집단지성의 게임에 가담한다. 타자 앞에서의 불편한 눈치보기, 신고식, 통과의례, 힘겨루기, 간보기를 생략하고 임무를 받아 하나가 된다. 그들의 패스는 자유롭고 어시스트는 현란하다. 


    출발점에서 서로는 남이다. 인정해야 한다. 21세기라는 게임에서 우리는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다. 하나가 되는 절차가 있다. 부족민의 방법은 잔인하다. 문신을 새기거나, 할례를 하거나, 전족을 하거나, 변발을 하는 것은 동료라는 표지다. 꼭 그렇게 표지를 달아야 하나? 


    고딩들이 다 같이 패딩을 입는 것도 부족민의 표지다. 고딩족이다. 공자는 의리를 가르쳤다. 절차를 생략하고 하나가 된다. 그 방법은 천하의 큰 게임에 가담하는 것이다. 도원결의다. 황건적 토벌의 임무를 받아야 한다. 문빠에 들자면 역시 기득권 토벌임무를 받아야 한다.


    세례는 한 번 물에 빠져서 기독교도로 승인된다. 소림사에 들어가자면 영화에 나오듯이 불화로 끌어안고 팔뚝에 낙인을 찍는데 어렵잖아. 그냥 물에 한 번 빠지면 합격시켜 준다니 기독교가 좋구나 좋아. 우리는 어떤 절차로 동료가 되는가? 공자의 인의다. 동료가 힘이다.


    그 힘을 얻으려면 군자가 되어야 한다. 의사결정권자의 호르몬이 나와야 군자다. 졸개 호르몬이 나오면 곤란하다. 기생충 서민과 진중권의 안티호르몬 나오면 곤란하다. 괴력난신은 타인의 의사결정권을 가로채려는 것이다. 뭐든 반대하기만 하면 50 대 50까지 올라간다.


    정확히는 49다. 안티로 51을 넘을 수 없다. 대칭까지는 가는데 권력은 비대칭이다. 난 반댈세. 이 한마디로 반띵한다면 좋잖아. 그저네. 그런데 아뿔싸! 호르몬이 바뀐다. 두목 호르몬에서 졸개 호르몬으로 체질이 바뀐다. 공자냐 노자냐. 예수냐 가롯 유다냐. 호르몬 차이다.


    야바위들이 노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공짜 먹으려는 심보 때문이다. 도교사상은 한마디로 '부정적 사고의 힘'이다. 긍정적 사고로 51을 먹을 수 있지만 절차가 험난하다. 자동차를 긍정하려면 운전면허를 따야 한다. 부정적 사고로 49를 먹는건 쉽다. 운전면허는 필요 없다.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는 면허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반대하고 부정하고 거부하고 훼방 놓고 진중권하고 서민한다. 그 기술로 손쉽게 49를 먹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수법이 닫힌계에서만 먹힌다는 데 있다. 사람들이 서부로 몰려간다. 서부는 열렸다.


    진중권, 서민 나선다. 난 반댈세. 그 말을 들어줄 청중은 거기에 없다. 죄다 서부로 몰려가 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데 무슨 반대를 하겠는가? 열린계에서는 괴력난신 행동이 실패한다. 신대륙에서는 실패한다. 신기술에서는 실패한다. 우리가 부단히 혁신을 하는 이유다.


    닫힌 곳에서는 99를 기울여 문제를 해결하는 자보다 1을 들여서 발목 잡는 자가 승리한다. 비용이 덜 먹힌다. 고립된 일본에서는 보수정당이 먹도록 되어 있다. 중국이 말을 안 듣는 것도 쉽게 먹으려는 심보 때문이다. 밟을 절차 다 밟아서 민주적으로 어느 세월에 하겠냐?


    독재로 하면 1초 만에 마윈을 거덜 낼 수 있는데. 문제는 독재의 방법으로 마윈을 1초 만에 죽일 수는 있지만 마윈을 1초 만에 키울 수는 없다는 점이다. 노자가 부정적 사고의 힘이라면 공자는 긍정적 사고의 힘이다. 그런데 어렵다. 배우고 때로 익히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유붕이 자원방래할 때까지 오랜 세월을 견뎌야 한다. 자연인들도 산속에서 최소 5년은 기다려야 방송국에서 작가를 보내온다. 스토리를 잘못 짜면 윤택이 와서 일도 안 하고 간다. 그런데 쉽다. 천하가 함께 하기 때문이다. 한번 구조를 세팅해 놓으면 사건은 계속 굴러간다.


    철학은 냉정하지만 다음 단계가 있다. 그 세계에 초대받는 자가 승리자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세렝게티

2020.11.17 (11:55:07)

철학은 냉정하지만 다음 단계가 있다. 그 세계에 초대받는 자가 승리자다.

->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진보이다. 닫힌계를 열고 천하와 마주한다. 굽이치는 계곡의 물이 대양의 파도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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