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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787 vote 0 2020.09.18 (09:11:18)

      

    오인혜의 죽음과 대심문관의 입장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도스토옙스키는 무신론자 이반의 입을 빌어 말했다. 한 사람이 무려 1,000조km를 걷고 난 후에 단 2초간 진리를 체험하게 된다면? 나라면 기꺼이 1,000조km, 아니 그 수제곱킬로 만큼의 거리라도 감내할 수 있겠노라고. 진리를 느낄 수만 있다면 


    289억 년을 걸어야 천조 킬로미터가 된다. 어쨌든 신은 빅뱅 이후 137억 년을 넘게 꾸준히 걸어왔다. 지금까지 걸어온 시간 만큼 걷고도 14억 년을 더 걸어야 2초를 획득한다. 이 정도면 인내심이 있다는 5억 년 알바도 도망칠 판이다. 그런데 왜 하필 2초냐고? 2초는 전율이다.


    사형대에 선 도스토옙스키가 남이 하지 못한 체험을 하는 극적 순간이다. 필자는 어릴 때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했다. 그의 밑바닥 체험은 각별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도스토옙스키의 수감생활을 동정했지만 그는 오히려 화를 냈다. 누구도 할 수 없는 특별한 체험이었노라고.


    라이벌 톨스토이도 하지 못했고 애증의 대상인 투르게네프도 경험하지 못한 강렬한 인상 말이다. 촌놈 도스토옙스키는 부잣집 도련님 톨스토이와 서양물 먹었다고 잘난 척하는 투르게네프를 가상적으로 삼았던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에게 수용소 생활은 인간탐구의 기회였다. 


    그런 찬스 잘 없다. 인간탐구는 신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인간 한 명은 그냥 인간이지만 인간 군상이 모두 모이면 거기에 신의 모습이 있다. 노무현만 가질 수 있었던 특별한 시간도 마찬가지다. 문재인은 그런 밑바닥 체험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노무현을 체험하면 된다. 


    방랑시절 필자는 도스토옙스키에게 위안받았다. 그에게는 특별한 자산이다. 명상을 해서 깨닫는 것이 아니라 깨닫고 난 다음 명상을 한다. 그는 무신론자 사회주의자였다가 극적 체험을 하고 종교에 귀의해서 우파로 변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신과의 키스다. 


    사실은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오락이었다. 얄미운 지식인을 골라 사형대에 세웠다가 풀어주곤 하며 엿먹인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우파로 변절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체험을 증언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뿐이다. 인간에 대한 탐구 없이 혁명은 성공할 수 없다. 나는 묻고 싶다. 


    영원한 진리와의 키스라면 1000조 킬로미터는 아니고 10년 정도는 걸어갈 수 있느냐고? 걷기가 힘들면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된다. 자신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구조론은 진리다. 진리는 자유다. 자유를 얻은 자는 자유를 얻으려는 자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자유를 얻으려 하므로 자유롭지 못한게 인간이다. 신을 갈구하므로 신에게서 멀어지는건 아이러니다. 자유를 얻은 자는 자유를 얻으려고 애를 쓰지 않는 자유를 누린다. 대심문관의 입을 빌어서 말하는 도스토옙스키의 견해다. 기독교는 신비나 권위나 기적이 아니고 자유다.

 

    예수는 인류에게 자유를 주었는데 추종자들은 그 자유를 팔아 신비와 권위와 기적을 사는 역설. 종교를 신앙하는 목적이 집사니 권사니 장로니 하며 누리는 권력에 있고, 영적 체험의 신비에 있고, 행복의 나라로 가는 기적에 있다면? 자유를 팔아 보상을 획득하려 한 것이다.


    인간은 보상을 원하는 동물이 아니다. 혁명은 기적이고 기적은 기도를 열심히 한 자에게 주어지는 신의 보상이다. 가짜다. 왜? 신이 준 자유를 팔아먹었기 때문에. 당신이 종교를 통해 행복을 누린다면 신의 것을 팔아먹은 것이다. 당신이 영적인 체험을 누렸다면 마찬가지다.


    종교활동으로 권세를 얻었다면 마찬가지다. 가롯 유다의 키스다. 행복은 보상이다. 혁명의 기적이 인간에게 보상으로 주어진다면 곤란하다. 오인혜는 그 무대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단 2초간의 전율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1000조 킬로미터를 걸어갔다. 인간은 그런 동물이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다. 전율을 주었다. 키스를 주었다. 그렇게 인간은 준비된 무대에 선다. 그는 혁명을 원했지만 사형대에서 2초간의 전율을 맛본 후 삶이 바뀌었다. 그는 천조 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1) 인간은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다.

    2) 권능과 신비와 기적은 자유를 얻은 증거다.

    3) 인간은 자유를 팔아 권능과 신비와 기적을 사려고 한다.

    4) 자유를 추구하므로 권능과 신비와 기적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하다.

    5) 인간은 무대에 서기 위하여 행동하는게 아니라 무대에 섰기 때문에 행동한다.


    권능은 권력, 신비는 심리적 만족, 기적은 혁명이다. 인간에게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들이다. 신이 인간을 길들이는 목적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려는 것인데 인간은 자유를 팔아서 보상을 얻으려고 한다. 고생 끝에 자유가 주어지는게 아니고 자유를 맛본 자가 계속 가는 것이다.


    귀납적 사유 - 인간은 원죄에 의해 노예로 태어나지만 신을 섬기면 천국 혹은 자유라는 보상이 따른다. 권능=사회적 권력, 신비=심리적인 만족감, 기적=보다 나은 사회가 그 보상이다. 실제로는 자유를 팔아서 권능과 신비와 기적을 사려고 한다.


    연역적 사유 - 인간은 자유를 원한다. 어떤 계기로 2초간의 자유를 실천하게 되면 멈추지 못하고 그 길을 계속 가게 된다. 자유는 최후의 도달점이 아니라 최초의 출발점이다.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다. 자유를 위하여가 아니라 자유에 의하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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