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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90 vote 0 2020.07.18 (16:51:35)

      

    일원론의 사유


    정답은 일원론이다. 일원론은 작정하고 연습해야 한다. 뭐든 둘이 보인다면 잘못 보고 있는 것이다. 하나가 보일 때까지 사유를 밀어붙여야 한다. 사건은 언제라도 에너지의 작용측에 의해 일어난다. 작용과 수용이 있다. 내리치는 칼과 잘려지는 생선이 있다. 칼이 사건의 작용측이다.


    작용측을 찾고 배후에서 작용하는 에너지를 알아내야 한다. 에너지를 끌어내는 모순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에너지는 입자가 아닌 계로 존재한다. 계를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입자는 공간에 있지만 계는 시공간에 있다는 점이 다르다. 진보와 보수가 보이면 볼 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생산력의 변화가 보여야 한다. 하나의 생산력 변화가 주변을 연결하면 진보이고 주변과 단절되면 보수다. 돈을 벌면 친구가 연락을 해 오는 것은 진보다. 돈을 벌어 강남으로 이사가 버리면 보수다. 단절된다. 전체적으로는 진보다. 진보는 연결을 낳고 연결은 트래픽을 증가시킨다.


    트래픽이 증가하면 신도시로 옮겨간다. 전체로는 증가했다. 수요와 공급을 봤다면 아직 볼 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시장의 확대를 봐야 한다. 시장이 확대되는 동안만 시장법칙이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야 한다. 균형만 찾는 사람은 아직 답을 보지 못했다.


    필요한 만큼 생산한다고 믿는 사람은 미처 맥락을 보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상에 매몰된다. 눈으로 보려고 하므로 마술사의 손놀림에 홀리는 것이다. 우리가 찾으려는 것은 진리다. 진리는 이미 찾아져 있으니 찾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진리를 찾는 도구가 진리다. 


    망원경으로 별을 찾는다. 망원경이 진리다. 배율이 높은 망원경을 만들면 된다. 어떤 둘의 연결이 진리다.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 단서를 찾으려고 하므로 답을 찾을 수 없다. 원소든 원자든 그게 단서다. 소립자든, 이데아든, 기든, 리든, 도든, 사단이든 단서다. 단서는 극단에 있다.


    끄트머리다. 앞에 가는 첨단과 뒤에 오는 말단이 있다. 말단에 이르면 사건이 종결되고 개는 보상을 받는다. 우리는 개가 보상에 의해 훈련된다고 믿는다. 착각이다. 보상은 지어낸 관념이다. 그런거 없다. 인간은 행복과 쾌락과 성공과 출세와 명성이라는 보상을 받기 원한다. 천만에.


    보상은 사건의 종결신호에 불과하다. 개가 보상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사건이 종결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 때문이다. 사람이 공을 던지면 개가 물어온다. 왜 공을 물어오지? 개는 자신이 사냥감을 잡았다는 사실을 자랑하려는 것이다. 그게 똥개훈련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스스로 사건의 종결을 깨달은 개가 있다면 천재개다. 그때부터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해낸다. 헬렌 켈러가 손바닥에 써준 설리반 선생님의 글씨를 깨닫는다. 그걸 이해하는 순간 끝났다. 개가 원하는 것은 보상이 아니다. 개는 무리와 떨어져서 홀로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개는 상호작용을 통해 무리와 결속되어 있으려는 것이다. 그러려면 집단 안에서 역할을 찾아야 한다. 사람이 역할을 주지 않으므로 스스로 역할을 찾아낸 것이 짖는 개 되고 무는 개가 되는 것이다. 인간 역시 여러 가지 보상을 통해 사회와 긴밀하게 결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이 진짜 원하는 것은 행복이나 쾌락이 아니라 사회와의 연결이다. 우리는 사건의 마디를 통해 집단과의 상호작용구조를 파악한다. 그러므로 무의식적으로 단을 찾으려고 한다. 집단과 핑퐁을 하려는 것이다. 마디를 보려고 한다. 단을 찾아야 폭탄을 떠넘기고 내 책임을 면한다. 


    사실이지 인간을 배후에서 움직이는 것은 행복이나 쾌락의 유혹이 아니라 사회와 단절되었을 때의 상호작용의 부재에서 오는 결핍감이다. 밥을 먹었을 때의 포만감이 아니라 밥을 굶었을 때의 배고픔이다. 인간을 움직이는 진짜는 허무다. 인간을 진정으로 구원하는 것은 의미다. 


    사건이 단절될 때 허무하고 연결되면 의미를 느낀다. 의미는 반가움과 기쁨과 설렘으로 나타난다. 업된 상태다. 연결이 중요하다. 연결을 모르므로 보상을 찾는다. 의미를 모르므로 불안해서 성공에 집착하고 성과에 매몰된다. 망원경은 인간과 별자리를 연결한다. 연결이 곧 진리다. 


    언어가 사람을 연결한다. 개는 보상을 통해 주인과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러나 임무를 줘야 진정으로 연결된다. 개가 임무를 이해할 수 있다면 해결된 것이다. 언어가 진리다. 수학이 자연과 인간을 연결한다. 수학이 진리다. 세상은 구조로 연결된다. 의사결정구조다. 


    구조론이 진리다. 도는 원래 길이고 길은 둘의 연결이다. 연결하면 해결된다. 구태여 지식을 머리 속에 넣고 다니지 않아도 지식이 필요할 때 해답을 아는 사람과 전화로 연결되면 해결된 것이다. 급할 때 누군가를 부를 수 있으면 된다. 에너지는 계 내부의 모순에서 나오는 것이다. 


    연결이 끊어질 때 복원하려는 힘이 에너지다. 12살이 되면 부모와 연결이 느슨해진다. 복원하려는 것이 사춘기의 중이병이다. 복원하면 청년기의 사랑이다. 부모와 끊어지고 친구나 배우자와 연결한다. 무리와의 결속이 에너지의 복원력이다. 진보세력에 의리가 중요한 이유이다. 


    집단과 손발을 맞추는게 도덕이다. 그럴 때 서로는 연결된다. 진보는 집단과 손발을 맞추는 수준을 높여가는 것이다. 의사결정구조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올라서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연결시키는 것이 진보의 목적이다. 개인의 도덕성을 두고 비난하고 헐뜯는다면 그게 비겁한 짓이다.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에서 하늘을 가리키는 플라톤과 땅을 가리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볼 수 있다. 하늘의 법칙에서 땅의 법칙으로 연결되는 것이 연역이다. 하늘과 땅으로 나눠지면 이원론이고 하나의 연결되는 라인에 주목하면 일원론이다. 그렇게 연결의 라인을 봐야 한다.


    음양에서 오행으로 연역되고 사단에서 칠정으로 연역된다며 그 둘을 각자 바라보는 것이 퇴계의 실패다. 족보는 하나의 라인이다. 모든 영감은 연역에서 나온다. 연역에서 패턴이 복제되기 때문이다. 이원론도 나름 연역한다고 믿지만 연역되는 연쇄고리의 출발점에 집착하면 실패다. 


    원소니 원자니 하며 으뜸되는 원을 찾으려고 한다. 한자가 다르지만 원인, 원형, 원본도 같은 개념이다. 비빌 언덕이 되는 우뚝한 언덕과 평평한 평원을 근원으로 삼아 찾으려고 한다. 언덕에 집을 짓고 평원에 논을 간다. 그 경우 시간을 역주행하게 된다. 시간순서를 따라가야 한다.


    이원론자는 설국열차의 머리칸을 찾으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머리칸에서 꼬리칸으로 진행해야 사건의 윤곽이 드러난다. 머리를 찾으려는 이유는 적의 머리를 베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다. 화살의 꼬리깃이 통제하고 비행기의 꼬리날개가 통제하고 배의 고물에 키가 있는 법이다.


    적이 아니라 나를 찾아야 한다. 적의 머리를 베려고 하지 말고 내 손발을 통제해야 한다. 적을 찾는 행동은 타자화의 실패를 저지른다. 나와 분리되어 따로 노는 것이다. 으뜸을 찾고 원을 찾고 단을 찾으려면 무한 노력을 해야 한다. 도덕경쟁 들어가고 순결경쟁 들어가게 된다. 


    전 국민이 범죄자가 된다. 머리에서 꼬리로 가면 사건이 종결된다. 꼬리에서 끝나고 그다음이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사건의 종결이다. 거기서 마디가 보인다. 그걸로 상호작용을 하며 세상과 든든히 연결되는 것이다. 이원론으로 가면 머리를 찾는데 머리는 부동산 투기세력이다.


    정부가 머리고 국민이 몸통인데 반대로 된다. 정부가 역량을 보이면 되는데 부동산업자를 규탄하며 두 방향을 헤매게 된다. 에너지가 정부에서 업자로 곧 머리에서 몸통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반대가 된다. 국민에서 다주택자, 부동산업자, 건설업자로 상향하게 된다. 역주행이 된다. 


    우리는 선물을 받고 상품을 받고 행복을 찾고 성공을 찾고 메달을 받아 사건이 종결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렇게 얻은 선물, 상품은 진짜가 아니다. 그것은 사건의 종결신호에 불과하다. 끝났으니 집에 가라는 신호다. 가을 운동회가 끝나면 꼴찌에게도 노트를 한 권씩 준다. 왜 주는가?


    끝났다는 신호다. 집에 안 가고 서성거리며 재시합을 하자고 시비를 건다. 이거 받고 집에 가라고. 종결신호를 알아챈 개가 천재개가 된다. 사건의 종결이 의미다. 종결을 알아야 상호작용이 된다. 의미를 찾아서 허무를 극복할 때 완성되는 것이다. 축제는 참여하는데 의미가 있다. 


    축제의 여왕에 뽑혀야 하는건 아니다. 초대받는 것이 인간의 목적이다. 파티에서 배 터지게 먹고 와서 본전을 뽑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초대받고 초대하는 것이 삶의 연결이다. 초대할 사람이 있고 초대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인생은 성공이다. 만남의 기쁨이 똥개훈련 보상보다 낫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이별의 허무감과 만남의 기쁨이다. 연결이 진짜다. 일원론의 관점이다. 도덕은 지고한 곳에 있는게 아니라 연결되는 균형점에 있다. 나무의 가지끝은 바람에 흔들리지만 밑둥은 흔들리지 않는다. 밑둥에 연결된다. 나무의 가지에서 도덕을 찾지마라는 말이다. 


    순결주의 도덕가는 거짓말하기 시합과 같아서 나중에 말하는 사람이 이긴다. 무조건 상대방 말에 곱하기 2를 하면 된다. 그들이 대중을 힘들게 만든다. 진보는 부단히 연결해 가는 것이다. 연결의 마디를 알아야 잘 연결할 수 있다. 마디의 획득이 목적이라고 착각하고 연결은 않는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2]kilian

2020.07.19 (05:41:28)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이별의 허무감과 만남의 기쁨이다. 연결이 진짜다."

http://gujoron.com/xe/1220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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