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431 vote 0 2020.02.13 (18:21:20)

    의리가 진짜다


    자유, 평등, 권리, 인권, 박애, 정의, 정치적 올바름과 같은 말이 있지만 대개 근거가 없다. 자유, 평등, 박애는 프랑스의 삼색기와 맞지만 혁명기의 여러 구호 중의 하나로 나중에 정립된 것이다. 자유는 노예제 때문에 생겨난 말이고, 평등은 다양한 신분차별 때문에 생겨난 말이고, 인권은 전체주의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귀납적 접근이라는 말이다. 무언가를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노예제를 반대하면서 자유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그런데 애초에 노예제가 없다면?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노예제가 폐지되었기 때문에 자유주의가 발달하지 못했다. 개인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봉건사회라면 개인이 아닌 가문의 대결로 되어 평등개념이 희미해진다.


    국가탓을 하지 않고 조상탓을 하게 된다. 봉건시대에 국가의 존재는 전쟁을 제외하면 개인과 그다지 상관없기 때문이다. 유럽은 뻔질나게 전쟁을 했기 때문에 국가탓을 할 줄 알았다. 로마는 전쟁이 직업이었기 때문에 국가탓을 할 만도 했다. 많은 언어가 있으나 대개 귀납적 접근이다. 평등의 문제는 게임에 임해 제기된다.


    입시라든가 취직이라든가 출발선에 나란히 서야 할 때 제기되는 문제다. 어떤 사람은 백미터 앞에서 출발하고 어떤 사람은 뒤에서 출발하면? 아니 아예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면? 시험을 없애면 되잖아? 입시제도를 없애면 되잖아. 대학 자율에 맡기면 되잖아. 국가의 공식적인 차별이 아니라 민간에서 암암리에 차별한다면?


    일본은 귀족학교가 발달해 있지만 불만이 없다. 국가에서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뭐든 물타기 방법이 있다. 자유를 빼앗고 자유당 찍도록 만들 수 있다. 차별하면서도 원래 불평등하게 태어났으므로 차별이 아니라고 믿게 만들 수 있다. 정의가 아닌데도 정의라고 믿게 만들 수 있다. 자유, 평등, 정의는 얼마든지 조작된다.


    미국 백인들이 자기네가 역차별당한다고 믿는게 그런 것이다. 말로 떠드는 구호는 공허하다. 보편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체의 입장을 말해야 한다. 노예에게 자유를 주는 것은 주인이고 어린이에게 자유를 주는 것은 부모다. 국가가 국민에게 자유를 베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스스로 이루는 가치는 무엇인가?


    요구하는 것은 좋지 않다. 무엇을 요구하면 반드시 반대급부를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복지를 원하면 세금을 뜯기듯이. 안전을 원하면 의료보험료를 내고 국방비를 지출하게 된다. 좋은 것은 그다지 좋지 않다. 예수의 사랑이나 석가의 자비가 의미가 있지만 약하다. 추남이 미녀에게 사랑하겠다고 들이대다가는 뺨 맞는다.


    서양에 자유, 평등, 권리가 있다면 동양에 충, 효, 열이 있다. 자유, 평등, 권리가 도시민의 구호라면 충, 효, 열은 시골사람의 가치다.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언어다. 보편의 언어는 의리다. 자유, 평등, 권리, 박애, 정의, 정치적 올바름은 모두 의리의 발전된 형태다. 의리가 보편적 가치라면 그것을 적용한 특수적 가치다.


    두 사람이 모이면 의리가 성립한다. 그러므로 의리는 사회주의적이다. 의리는 진보주의다. 인간은 각자 사는 것인데 어떤 게임에 들어가면 평등의 문제가 제기된다. 게임을 하지 않으면 평등의 요구도 없다. 그러나 의리는 어떤 경우에도 적용된다. 두 사람이 있으면 주도권 문제가 제기되고 거기에 권력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먼저 먹고 두 번째 사람이 나중 먹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때 먼저 먹은 사람이 먹튀하면? 그게 의리가 없는 것이다. 의리는 공존의 룰이다. 그것은 정의가 되기도 하고, 평등이 되기도 하고, 자유가 되기도 하고, 사랑이 되기도 한다. 충이 되기도 하고, 효가 되기도 하고, 열이 되기도 한다. 룰은 정하기 나름이다.


    룰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의리다. 자유와 평등은 국가가 베푸는 것이기 쉽다. 정의는 심판이 알아서 하는 것이다. 심판이 윤석열에 양승태라면 곤란하다. 내게 속하는 것은 없는가? 사랑은 내게 속하는 것이다. 의리는 내게 속하는 것이다. 내가 의리의 주체가 된다. 사랑과 자비는 강자가 베푸는 것이기 쉽다. 의리는 평등하다.


    내가 미녀를 사랑하려고 해도 거절당한다. 의리는 그렇지 않다. 미녀와 우연히 구덩이에 빠지면? 둘 중의 한 사람이 나머지 한 사람의 등을 밟고 탈출해야 한다. 혼자 도망간다면? 그게 의리 없는 짓이다. 의리는 신의가 되기도 하고, 충의가 되기도 하고, 사랑이 되기도 하고, 정의가 되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모습을 바꾼다.


    현대사회에 정치적 올바름이 강조되는 이유는 세상이 변해서 그런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반대로 상황이 바뀌면 그 가치가 부정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강자는 약자들끼리 싸우는 구조를 만들어 평등의 문제를 은폐할 수 있다. 여직원이 페미니즘을 주장하면 여직원을 뽑지 않으면 된다. 얼마든지 뒤통수칠 수 있다.


    구글에는 흑인 직원이 4퍼센트다. 교활한 수를 쓰고 있다.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 의리가 진짜다. 둘이 모이면 권력이 탄생한다. 그것이 의리다. 양아치가 모여도 의리가 생기고, 시민이 촛불로 모여도 권력이 생긴다. 처음 그 권력을 만들 때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의리는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내므로 누구도 피하지 못한다.


    자유는 기숙사 사감이 베풀어주고, 정의는 법원이 판단하고, 사랑은 부모가 베풀어주고, 평등은 의회가 베풀어준다. 주는 자가 있는 것이다. 그 주는 자에 의해 왜곡된다. 의리는 두 사람이 손을 잡는 순간에 성립한다. 인, 지, 의, 신, 예는 그 의리의 실천이다. 처음 낯선 사람과 만나 의를 맺는 것이 인이다. 도원결의와 같다. 


    지는 그렇게 얻은 힘을 손에 쥐는 것이다. 세 사람이 도원결의를 하면 힘이 생긴다. 구체적인 약속을 해서 그 힘을 차지하는 것이 지다. 의는 그렇게 얻은 힘을 쓰는 것이다. 신은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먹튀하기 없기다. 예는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게 되므로 적절히 선을 지키는 것이다. 의도 절제해야 한다.


    의리는 힘이 있다. 그러므로 사업을 할 수 있다. 벤처를 창업할 수 있다. 도전할 수 있다. 사랑할 수 있다. 에너지를 얻는다. 공자문명이 예수문명을 이긴다면 그것은 의리 때문이다. 예수의 사랑도 의리의 한 가지 형태다. 기업을 만들고 노동자들에게 분배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의리다. 누가 약속을 지키는가에 달렸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수원나그네

2020.02.13 (18:39:44)

감사합니다~

여기서의 의리와 '인지의신예'에서의 '의'는 동질적인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20.02.13 (19:02:54)

여기서 의리는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근본적인 의미입니다.
의리를 남들에게서 찾으면 인, 자신에게서 찾으면 지, 의리를 실천하면 의

실천을 지속하려면 신, 끝내면 예입니다.

즉 인지의신예는 의리의 실천에 적용되는 순서입니다.

부모와 지식의 의리는 친권인데 이건 태어나면서 정해진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원래부터 있는게 인이고, 머리가 나쁘면 부모도 못 알아보므로

의리를 알아보는게 지고, 의리를 실천하려면 동료와 약속을 해야하는게 의

그 약속을 지키는게 신, 그럴 때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게 되는데 선을 지키는게 예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수원나그네

2020.02.13 (19:04:30)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2]kilian

2020.02.14 (04:13:36)

"보편의 언어는 의리다. 자유, 평등, 권리, 박애, 정의, 정치적 올바름은 모두 의리의 발전된 형태다."

http://gujoron.com/xe/1167909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4732 긍정의 배신 1 김동렬 2020-03-05 1408
4731 종교는 이단이다 5 김동렬 2020-03-04 1526
4730 존재론과 인식론 2 김동렬 2020-03-02 1037
4729 위대한 도약 2 김동렬 2020-03-01 1109
4728 대칭과 비대칭 1 김동렬 2020-03-01 564
4727 자연에 차원은 없다. 1 김동렬 2020-03-01 580
4726 세상은 점이다 2 김동렬 2020-03-01 680
4725 다시 쓰는 방향성 1 김동렬 2020-03-01 557
4724 방향성과 차원 1 김동렬 2020-02-28 761
4723 차원의 이해 1 김동렬 2020-02-25 1048
4722 방향전환 1 김동렬 2020-02-24 764
4721 방향성의 판단 5 김동렬 2020-02-23 886
4720 방향성의 이해 1 김동렬 2020-02-22 897
4719 대칭성의 이해 2 김동렬 2020-02-20 1001
4718 통제가능성으로 사유하기 4 김동렬 2020-02-19 1159
4717 정보는 구조에 숨어 있다 3 김동렬 2020-02-18 1044
4716 성공의 길은? 8 김동렬 2020-02-17 1744
4715 구조 1 김동렬 2020-02-16 1082
4714 의리는 공존의 룰이다 3 김동렬 2020-02-14 1214
» 의리가 진짜다 4 김동렬 2020-02-13 1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