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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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70 vote 0 2019.06.05 (07:44:09)


    3대가 되라


    일이 되어가는 데는 차례가 있고 질서가 있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에 따라 순서대로 질의 방향제시가 1대, 입자의 이론정립이 2대, 힘 단계에서 이론을 어떤 대상에 적용하여 구체적인 성과를 도출하면 3대다. 계통이 있고 계보가 있다. 족보가 있다. 처음부터 단번에 성과를 낼 수는 없고 먼저 자궁을 건설해야 한다. 


    자궁을 만들어 놓으면 누군가 와서 성과를 낸다. 그 제자뻘 되는 사람에 의해 유명해진다. 3대가 되라는 말은 이미 나와 있는 이론이나 아이디어를 어떤 대상에 적용하여 구체적인 성과를 도출하는 사람이 크게 성공한다는 말이다. 역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당대에 인정을 못 받다가 제자들에 의해 뜨기도 한다.


    소크라테스는 당대에 뜨지 못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서도 잘 찾아봐야 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다. 못생긴 사람이 수다를 떨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뜨니까 플라톤이 조명을 받고 플라톤이 자기 책에다 스승 이름을 잔뜩 써놔서 그런 사람도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별로 이룬 것이 없다.


    공자도 맹자 덕에 뜬 것이고 주자 대에 와서 제대로 시스템이 작동했다. 반면 노자는 계승할 사람이 없었다. 제자를 키우지 못하니 장자에서 맥이 끊긴다. 바흐가 근대음악의 조상이고, 하이든이 교향곡을 만들었고, 베토벤은 3대에 해당한다. 갈릴레이는 사실 업적이랄 것이 없다. 뉴턴 덕분에 뒤에 조명을 받은 것이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만든 것도 아니고 다만 그의 관성 개념을 뉴턴이 써먹은 것이다. 뒤에 아인슈타인이 뉴턴을 업그레이드한다. 그제서야 대중이 알게 된다. 그전에는 학계에서나 통할 뿐이다. 대중이 체감하려면 물리적인 매개가 있어야 한다. 원자폭탄이 터지는 것을 보고 비로소 대중이 가치를 알아준 거다.


    원래 학문은 방향제시>이론정립>구체적인 대상에 적용으로 3대를 가야 성과가 대중의 손에 들어온다. 원자폭탄은 3대에 가서 터진다. 그전에는 소수의 아는 사람들이나 알아주는 것이다. 마네와 모네를 비롯한 초기 인상주의 화가그룹이 1대라면 세잔이 2대로 이론을 정립했고 피카소가 되어야 대중이 이해한다.


    그전에는 '쟤네들 왜 저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대중이 알아듣는 수준까지 진도를 나가기가 어렵다. 일반인이 보기에 인상주의 화가들은 애들 낙서 비슷한 것을 그림이라고 우기고 있고 옛날 그림이 더 좋았다. 왜냐하면 대중은 그림을 벽에 거는 장식물 정도로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보고 좋으면 좋다고 여긴다.


    작품의 가치는 영향력에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천문학적 가치는 보기에 좋아서 붙은 것이 아니다. 보고 좋으면 좋다는 식의 관객의 기분에 달린 것이 아니다. 그림은 패션이나 디자인이나 인테리어나 산업 전반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그런 산업화의 경향을 예술이 따라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반인이 알 턱이 없다. 


    그러나 피카소 그림을 한 번 보면 알게 된다. 고흐 그림을 봐서는 모른다. 그냥 그림이 좋네. 마음에 드네. 이러고 있다. 유치한 거다. 그림이 좋아서 뭣하게? 왜 그림이 좋아야 하지? 이발소 그림이 더 마음에 드는데 말이다. 그림은 보기에 좋아야 하는 게 아니고 21세기와 통해야 한다. 21세기의 소실점을 찍어야 한다.


    좋은 이론을 만들어봤자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당장은 돈이 안 된다는 말이다. 1대는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므로 어수선하게 등장한다. 소크라테스는 많은 소피스트 궤변가 중에 하나로 치부되었다. 어떻게 보면 1대는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소크라테스를 위시한 소피스트의 그룹이다. 그룹이 자궁이 된다.


    인상주의도 여러 사람이 살롱에서 모여 떠들다가 만들어진 것이다. 갈릴레이도 그냥 여러 학자 중의 한 명이었고 공자는 그냥 직업이 선생이었다. 자궁이 만들어지는 단계에는 다양한 모색이 있는 것이며 그중에서 가닥을 잡고 흐름을 일으키는 것이며 확실한 이론이 나와서 반대파와 논쟁이 벌어져야 정립된다. 


    플라톤이나 맹자는 이론을 세운 논쟁가들이다. 초기의 사회주의자들이 막연히 유토피아를 주장한다면 마르크스는 자기 이론을 가지고 주장하는 게 다르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현실에 써먹은 사람은 레닌과 스탈린이다. 처음에는 뭔가 새로운 경향이 나타난다. 이론가가 바로 이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이다 하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작 그 이론에 맞는 작품이 없다. 하일지가 경마장 가는 길을 써봤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런 식이다. 3대가 되라는 말은 3대가 되기 전에는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중화되지 않는다. 4대로 가면 복제와 아류가 쏟아지고 5대로 가면 다른 것으로 변질이 되어 망한다. 큰 성공은 3대에 가서 이루어진다. 


    초기 어수선한 10센트짜리 소설 서부극에서 2대 존 포드의 정통 서부극이 나오고 3대 스파게티 웨스턴이 나오면 대박을 친다. 이론이 올바르다면 구체적인 성과가 없어도 밀어붙여서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이론을 어떤 대상에 적용하는 것이다. 1대는 '왜 손으로 그러냐, 도구를 쓰지?' 하고 방향을 제시한다.


    원래 침팬지는 손의 구조가 사람과 달라 도구를 못 쓴다. 2대는 망치를 발명하고 3대는 그 망치로 조각을 한다. 거기까지 가기가 원래 어려운 것이다. 하루아침에 다될 거 같지만 잘 안 된다. 화약이 발명되어도 처음에는 폭죽으로 귀신을 퇴치하는 데 쓰였다. 지금도 중국 춘제나 한국 설날에는 딱총화약을 터뜨리고 있다. 


    그걸로 화승총을 만드는 게 2대라면 근대식 돌격소총을 만든 것이 3대다. 천 년이 걸린다. 하루아침에 안 되지만 실망하지 말고 밀어붙여야 한다. 1대는 지구가 둥글다 아니다 하고 떠드는 단계다. 2대는 이론적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단계다. 3대는 콜롬부스나 마젤란처럼 배를 타고 직접 가 보는 단계다.


    3대까지 가기 전에는 대중이 긴가민가하고 납득하지 않는다. 구조론으로는 질, 입자, 힘인데 3대인 힘까지 가야 교섭하여 힘을 얻고, 4대인 운동까지 가야 변화가 일어난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사람들과 연결할 구체적인 도구나 수단을 얻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구체적인 도구는 3대 힘의 단계에서 획득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솔숲길

2019.06.05 (17:17:43)

1대 김대중

2대 노무현

3대 문재인


공자대노자 책에 더 재밌는 관련내용이 있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9]kilian

2019.06.06 (03:03:24)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사람들과 연결할 구체적인 도구나 수단을 얻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구체적인 도구는 3대 힘의 단계에서 획득된다."

http://gujoron.com/xe/1094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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