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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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91 vote 1 2019.05.28 (15:19:49)

    
    춘추필법으로 출발하라


    세상에는 황당한 일이 참 많다. 다들 요령이라도 터득했는지 말이 안 되는 상황에서도 눈치껏 처신하고 있는게 신기하다. 백주대낮에 깡패 전두환이 무려 사람행세를 하고 있는가 하면 글 배웠다는 양반이 그 밑에서 굽신대며 종살이하고 있더라. 사자가 쥐를 형님으로 모시며 종종걸음으로 쫓아다닌다면 어이없는 일이 아닌가?


    사자가 쥐 앞에서 교태 부리며 허리를 꼬고 배시시 웃는 모습을 매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역겨운 것이다. 자살충동을 느끼게 한다. 루쉰의 광인일기를 떠올려도 좋다. 루쉰은 그런 꼬락서니를 식인으로 표현했다. 염치를 먹히고, 인격을 먹히고, 자존심을 잡아먹히고 남은 해골이 마치 사람인 양 골목길을 걸어 다니더라.


    치명적인 것은 사방을 둘러봐도 이런 것을 가지고 대화할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거다. 학교 선생님부터 대놓고 쥐를 섬기고 있다. 박정희라는 쥐 말이다. 얼굴부터 쥐상이다. 나는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었던 거다. 게다가 북한에 있다는 김일성이라는 쥐도 만만치가 않다. 이 별은 내가 살아줄 수 있는 별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세월이 흘렀고 나도 상당히 적응했다. 김용옥이 재벌에게 아부하는 것은 알고 보니 생쥐가 곰쥐에게 아부하는 것이었다. 호랑이가 너구리 앞에서 탭댄스를 추는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나의 오해였다. 이 정도만 해도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그렇다. 알고보니 그들은 모두 쥐의 무리였다. 머리가 한참 굵어진 다음에야 알아챘다.


    얼빠진 김동길이나 넋빠진 이문열이나 염병할 서정주는 애초에 사자가 아니었다. 쥐가 쥐를 알아보고 몰려다니며 찍찍거린 것이었다. 원래가 그런 족속들이었다. 그중에 실하다는 백낙청은 많이 쳐서 너구리쯤 되려나. 사자는 원래 없는 거였다. 실망해줄 것도 없다. 묵은 체증이 조금 내려갔다. 그러나 여전히 두루 개차반이다.


    이놈의 지구라는 별에서는 귀신의 존재를 믿는 바보천치가 무려 일국의 대통령도 하고 그런다. 적어도 글자 아는 사람이라면 창피하게 내세나 찾고 천국이나 찾는 종교 수준은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각국의 많은 대통령 중에 비종교인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쯤 되면 인류는 단체로 미친 것이 분명하다. 거의 쓰레기다.


    수준 떨어지는 인류 애들과 대화하고 살아야 한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말이 통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조만간 어디서 짠하고 나타날 낌새도 없다. 무신론자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신은 없다고 선언한다고 해서 간단히 신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종교인들은 교리를 숭상하지만 사실 교리는 아무러나 상관없는 거다.


    신도를 통제하는 기술에 불과하다. 매뉴얼대로 가주는 거다.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에는 반드시 우두머리가 있다. 집단적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다. 인간은 카리스마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한다. 종교는 카리스마를 생산하는 시스템이고 신도들은 교주의 카리스마를 수요로 삼는다. 장이 서고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교회 종소리 요란하고 사찰 목탁소리 시끄럽다. 교단은 카리스마를 팔고 신도는 십일조를 낸다. 카리스마는 자발적으로 위임되는 권력이다. 니체가 말한 권력의지는 사실 카리스마를 추구하는 것이다. 정치권력은 카리스마의 한 가지 형태다. 인간은 매력의 동물이다. 지성의 매력, 외모의 매력, 예술가의 매력, 개그맨의 매력이 있다.


    자본의 위력도 카리스마를 구성하는 한 가지 요소가 된다. 인간의 사회성을 매개하는 것이 카리스마다. 매개변수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자연은 햇볕이 먹여살리고 인간은 카리스마가 먹여살린다. 집단적 의사결정의 에너지 낙차를 성립시킨다. 지구가 있으면 중력이 있듯이 매개의 중심은 있다. 그것이 신이다. 만유인력처럼 있다. 


    무신론이든 종교든 의사결정의 중심이 있어야 하고 사건의 연속성이 있어야 하고 인생의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항해하는 배가 등대를 바라보듯 그것은 있어야 한다. 세상은 사물의 집합이 아니라 사건의 복제다. 복제되어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그 연결의 중심에서 의사결정이 일어나야 한다. 카리스마는 그것을 매개하는 장치다.


    이 사이트의 방문자 중에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직선을 보고 곡선이라고 한다. 벌거숭이 임금님 실사판이 돌아가는 중이다. 어 내가 보기에는 직선인데 하고 바른말 하는 사람 하나를 나는 보지 못했다. 오천 년간 동양인들은 소실점을 눈으로 뻔히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다.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진리에 민감해야 한다. 본질을 아는게 중요하다. 됐고 어디에 줄 서면 됩니까? 하나 찍어주셈. 이러면 안 된다. 영 적응이 안 되는 별이었지만 나도 요즘은 꽤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말이 통하는 사람은 없지만 말 같잖은 소리에 귀를 틀어막을 솜뭉치는 주머니에 챙겨놓고 있다. 귀 막고 눈 가리고 입을 닫고 살면 되는 것이다. 


    봉준호의 옥자를 보고 수준이하 장면들에 역겨워 죽는 줄 알았지만 입을 닫는게 맞다. 또 하루를 견디면 된다. 칸에서 상을 받았다고 하니 칭찬해주는게 맞다. 과거 글래디에이터도 그랬다. 엉터리 고증에 잘못된 장면 100곳을 지적해주려고 하다가 남들은 재미있게 봤다고 해서 참았다. 늦었지만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가는 중이다.


    춘추필법으로 돌아갈 일이다.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 말을 하려거든 대의와 명분에 맞는 준엄한 논설을 해야 한다. 대의는 널리 연결하여 커다란 하나의 근본에 의지하는 것이며 명분은 클래스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대의는 역사의 진보에 있다. 진보의 새로움에서 관성이 나오고 만유는 그 관성력에 기댄다. 명분은 시스템이다.


    주먹구구는 명분이 없다. 어수선한 말은 배척된다. 각자 요령껏 버티며 사는 거지만 그런 실용주의자의 뒷수작을 구조론에서 하면 안 된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진보가 아니고 시스템이 아닌 것은 말하지 말라. 한약이든 양약이든 알아서 하게 놔둬라. 개입할 일 없다. 다만 진리를 논할 때는 개떡같이 말하면 안 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0]kilian

2019.05.29 (03:46:07)

"대의는 널리 연결하여 커다란 하나의 근본에 의지하는 것이며 명분은 클래스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http://gujoron.com/xe/109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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