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43 vote 0 2019.04.02 (16:55:20)

      a.png
    대상을 제거할수록 선택지가 늘어나지만 이 패턴을 반복하면 결국은 선택지가 완전히 사라진다. 한동안 좋아지다가 결국은 나빠진다. 어쩔 수 없다. 일단 하나씩 제거하면서 그러나 완전히 나빠지기 전에 해법을 찾아야 한다. 세상은 무언가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통제되지만 모두 제거하면 더 이상 제거할 수 없게 된다. 


    무언가를 획득하는 방법으로 통제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만 자연계에 그런 것은 없다. 그렇게 연출된 것이며 사실은 은폐된 상부구조가 있고 거기서 마이너스가 일어난다. 세상은 언젠가 자원이 바닥나서 지속가능하지 않은 마이너스로만 통제되므로 밸런스와 타이밍의 선택이 중요하다. 운전을 잘해야 한다.   



    마이너스는 위태롭다


    구조론은 마이너스다. 그런데 위태롭다. 마이너스란 무언가를 제거하는 것이다. 막연히 내려놓아라거나 비워라고 말하는 사이비와 다르다. 막연히 공空을 팔고, 허虛를 섬기고, 무無를 타령하는 거리의 약장수들과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 마이너스가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마이너스를 대신할 다른 방법이 없을 뿐이다.


    마이너스란 정확히 계에 가두어진 에너지의 마이너스 통제다. 풍선에서 바람을 빼듯이 조금씩 힘을 빼면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합당한 통제기술이 있어야 한다. 계가 있어야 하고 에너지가 가두어져 있어야 한다. 그런 사전절차 없이 마이너스를 하려고 해도 안 된다. 그런데 처음엔 된다. 체면도 내려놓고 염치도 내려놓자.


    도덕도 내려놓고 예의도 내려놓고 그러다 보면 친구가 생긴다. 그러다가 재산도 내려놓고 직장도 내려놓고 공부도 내려놓고 가정도 비워놓고 어느덧 노숙자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는 내려놓을 수 없다. 가진 게 없기 때문이다. 비울 수 없다. 지갑이 비었기 때문이다. 타이밍 조절에 신경 써야 하는 것이다. 


    시스템에 의지하고 계통을 이어가며 힘조절을 하다가 결정적일 때 마이너스 기술을 구사해야 한다. 아홉 개의 구슬이 있다. 마이너스란 구슬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구슬들 사이에서 연결되는 라인을 보는 것이다. 링크의 수를 세는 것이다. 아홉 개의 구슬 중에서 하나를 제거하면 라인은 스무 개에서 스물넷으로 되레 증가한다.


    그런데 계속 구슬을 제거하면 결국 라인은 0이 된다. 겉으로 보면 구조론의 마이너스는 점점 증가하다가 감소하게 된다. 어린이는 부모의 감시하에 있으므로 친구가 적다. 부모를 떠나 독립하면서 많은 친구와 동료와 파트너를 얻는다. 그러나 결국은 친구도 잃고 파트너도 없이 혼자 쓸쓸하게 남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이너스는 좋은 게 아니다. 우주의 작동원리가 원래 그런 것이다. 초반에 좋아지다가 막판에 나빠진다. 민주화도 초반에 좋아지다가 막판에 나빠진다. 인터넷도 초반에 좋아지다가 막판에 나빠진다. 신차를 구입해도 탈수록 길이 들어서 좋아지다가 결국 고장이 난다. 신혼부부 시절에는 좋아죽다가 결국 다투고 헤어진다. 


    결국은 나빠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한다.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그러면서 점점 사건의 규모를 키워가는 것이다. 개인에 머무르면 결국 늙고 병들어 죽는다. 개인의 게임에서 집단의 게임으로 갈아타야 한다. 인류단위, 문명단위, 세계단위의 더 큰 단위의 사건으로 갈아타야 한다. 


    인류는 죽지 않기 때문이다. 문명은 죽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죽는다. 인류도 죽고 문명도 죽고 세계도 죽는다. 어쨌든 길어야 80년 남짓한 내 인생 안에서 그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마이너스 원리는 세상의 근본 이치다. 플러스 통제는 처음 10개를 가지고 출발했다가 숫자가 모자라면 하나를 더 추가하는 식이다. 


    문제는 초반에는 그 방법이 먹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안 된다는 점이다. 초반에는 엄마가 밀어준다. 선배가 밀어준다. 선생님이 도와준다. 모자라는 것은 채워준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엄마도 선생님도 도와주지 않는다. 대학입시 시험장에는 혼자 들어가야 한다. 결혼을 할 때도 많은 일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 


    면접시험도 혼자 보는 것이다. 마이너스를 써야 한다. 처음 100을 준비하고 있다가 상황을 만날 때마다 카드를 하나씩 꺾어야 한다. 10개가 필요하다면 12개를 준비해야 한다. 두 개는 버려야 한다. 너무 많이 카드를 꺾어버리면 역시 망한다. 공부만 잘하면 돼. 서울대만 붙으면 돼 하는 식의 태도는 많은 가능성을 꺾는다.


    공부도 하고 연애도 하고 친구도 사귀고 모험도 하고 봉사도 해야 한다. 이것저것 해서 카드를 만들어놔야 한다. 그리고 그중에 다수를 포기해야 한다. 마지막에 하나가 남는다. 그래서 최후에 얻는 것은 내가 납득하는 것이다. 어떤 플러스적 자산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걸리적거리는 의혹이 사라지는 것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kilian

2019.04.03 (07:04:26)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한다.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그러면서 점점 사건의 규모를 키워가는 것이다. "

http://gujoron.com/xe/1076980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4408 부름과 응답 2 김동렬 2019-04-26 1314
4407 지식이란 무엇인가? 1 김동렬 2019-04-25 1404
4406 미학으로 갈아타라 3 김동렬 2019-04-23 1650
4405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다 1 김동렬 2019-04-22 1230
4404 물 속에는 물이 없다 1 김동렬 2019-04-21 1174
4403 의미는 천하에 있다 1 김동렬 2019-04-19 1218
4402 언어로 시작하라 1 김동렬 2019-04-17 1344
4401 삶의 의미는? 1 김동렬 2019-04-16 1392
4400 노트르담과 구조론 1 김동렬 2019-04-16 1120
4399 의미 속에 내가 있다 2 김동렬 2019-04-14 1194
4398 나는 내가 아닌 것이 아니다 2 김동렬 2019-04-12 1374
4397 척력은 대칭이다 1 김동렬 2019-04-12 845
4396 마음의 에너지는 무엇인가? 1 김동렬 2019-04-11 1033
4395 소금이 왜 짜냐? 3 김동렬 2019-04-11 1205
4394 인간은 에너지의 동물이다 3 김동렬 2019-04-10 1121
4393 중력의 이해 3 김동렬 2019-04-09 1180
4392 블랙홀과 구조론 1 김동렬 2019-04-08 1197
4391 레깅스가 민망하다? 1 김동렬 2019-04-07 1512
4390 지금은 철학할 때다 2 김동렬 2019-04-04 1906
» 마이너스는 위태롭다 image 1 김동렬 2019-04-02 1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