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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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011 vote 0 2019.03.22 (13:20:55)


    이 순간을 이겨라


    ‘카르페 디엠’이라고 한다. 이 순간을 즐겨라. 지금 현재에 충실하라. 이런 거 먹힌다. 의사결정 스트레스를 회피하는 기술이다. ‘소확행’이라는 말도 있다. 결혼, 내집마련, 취업, 자동차 구입과 같은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말고 작더라도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을 붙잡으라는 말이다. 커피 한 잔이라도 잘 고르면 잠시 행복할 수 있다.


    대량소비시대의 단면이다.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인생의 패배자들에게나 필요한 자기 위안이다. 역시 대중에게 아부하는 말이다. 남이 나를 위로하지 않으므로 때로는 자위하게도 되지만 그렇다고 자위하면 지는 거다. 구조론은 다르게 말한다. 대중에게는 소확행이 필요하겠지만 아는 사람이라면 진지한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이 상황을 이겨라고 말하겠다. 이겨서 사건을 다음 단계로 연결시켜 가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과 싸워 이기라는 말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극기복례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이긴다는 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주도권을 잡고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다. 에너지 흐름에 휩쓸리지 말고 판을 깨고 판을 바꾸고 불을 질러야 한다.


    소확행이라면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거나 혀끝을 담가 맛을 음미하며 행복해하는 것이다. 나쁘지 않다. 소확행이 아니면 대확행도 있을 것이다. 한 달 월급을 모아 명품 핸드백을 사버리는 것이다. 혹은 세 달 치 월급을 저축하여 스위스 여행을 때려버리는 것이다. 자신에게 큼지막한 상을 줘버리는 거다.


    옛날 유행일 것이다. 90년대 일본의 젊은이라면 그랬다. 저축은 하지 않는다. 골드미스지만 결혼은 포기한다. 1년에 두어 차례 유럽여행에 가진 돈을 다 써버린다. 들은 바에 의하면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예전처럼 해외여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국내에서 맛집순례 정도로 만족하는 모양이다. 소확행이든 대확행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이기는가 지는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마디 했다고 거기에 놀아나면 지는 거다. 필자는 맛집에 줄 서서 먹어본 적이 없다. 줄 서면 지는 거다. 절대 절하지 않는다. 절하면 내가 지는 거다. 경마장에 간다면 돈을 따거나 아니면 돈을 잃게 된다. 그런데 말이다. 누가 주최측이지? 거기서 돈을 따든 돈을 잃든 지는 거다. 


    이기면 '나는 행운의 사나이인가봐' 하고 다시 돈을 건다. 지면 '내가 왜 이런 미친 짓을 했지' 하고 자책한다. 어느 쪽이든 주최측의 농간에 놀아나는 것이다. 그 상황을 이겨야 한다. 베팅을 하지 않고 인간들을 관찰한다. 벼라별 인간이 거기에 모여 있다. 아 이거 글감이 되네. 아이디어가 나와주네. 잘 관찰했다가 나중 써먹어야지.


    이러면 내가 이기는 것이다. 사건에는 에너지가 걸려 있다. 관성의 법칙이 작동한다. 그 기세에 휘말리지 않고 사건을 이탈하여 별도로 나의 사건을 일으켜야 한다. 상황에 맞서고 상황을 이겨야 한다.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먹어버리는 것이다. 맛에 대한 기준을 내가 정한다. 맛의 논리를 내가 만들어낸다. 쓰지만 몸에 좋을 수 있다.


    이건 맛있는 거야. 내가 정한다. 이건 신선하기 때문에 맛있는 거야. 이건 제철음식이기 때문에 맛있는 거야. 이 요리는 모험적이므로 가산점을 주겠어. 이색적인 체험이 되네. 강렬한 인상을 남겼어. 어쨌든 성의를 보였어. 논리를 만들어내면 된다. 남들이 정해놓은 규칙에 놀아나면 지는 거다. 맛은 있는데 성의가 없는 집이 많다.


    주인장은 줄지어 선 고객들을 바라보며 호구들이구만 하고 비웃는다. 그런 꼴을 당하면 지는 거다. 거지를 해도 성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거지는 통속적이다. 구태의연하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구걸하는 거지를 별로 본 적이 없다. 나는 성의없는 거지에게 적선하지 않는다. 얄팍한 기술을 쓴 제품은 구매하지 않는다. 


    속 보이는 경우가 있다. 속을 들키면 지는 거다. 백종원이 이 요리는 맛있다 하고 선언하면 사람들이 홀린다. 남이 규정한 맛의 정의에 굴복하면 지는 거다. 진정한 맛은 이런 거야 하고 나의 규칙을 정해야 한다. 야외에서 직접 채취한 재료를 써서 즉석에서 바로 요리해 먹는 게 최고의 요리다.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는 것이 최고다. 


    남의 손을 거친 요리는 아무리 고급재료를 썼다 해도 가치의 절반은 꺾어진 것이다. 완성도는 일의 전체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며 내가 전체과정에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잘해봤자 반타작이다. 고급 와인이라면 아껴두었다 소중한 친구와 만났을 때 따는 게 현명하다. 아껴두는 맛이 있는 거다. 상황에 맞게 소비한다면 완성도가 높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곤란하다. 제 위치에 있어야 제맛이 난다. 남이 정한 룰에 편승한다면 이미 제 위치를 이탈해 있다. 다이아몬드는 무대 위의 프리마돈나 목에 걸려있을 때 빛나는 법이다. 왜냐하면 조명기사가 조명을 아주 세게 쏴주거든. 그런 규칙이 있다. 정합성이 있다. 납득되어야 한다. 경쟁자를 이기려 할 필요도 없다.


    자기 자신을 이길 필요도 없다. 도덕군자인 체할 필요는 없다. 남들 앞에서 우쭐대려고 하면 아부행위다. 지고 들어가는 게임이다. 자신이 설계한 무대가 아니면 안 된다. 이겨야 이긴다. 룰을 바꾸고 규칙을 바꾸고 판을 흔들어 버려야 한다. 실패해서 남들에게욕 먹는 것은 지는 것이며 잘해서 남들에게 칭찬받는 것도 지는 것이다.


    왜? 남이 평가하므로 지는 것이다. 영화 식객을 보고 충격받은게 일본인이 맛의 평가자라는 거다. 일본인이 무려 맛을 안다고? 말이 되는 수작인가? 자신이 평가자가 되어야 이긴다. 남에게 평가받으면 진다. 평가는 곧 길들이기다. 잘했다면 남에게 잘한 것이니 자랑이 아니라 창피한 거다. 남에게 아부하여 칭찬듣는 것은 모욕이다. 


    아기가 귀엽지만 아기취급 당하는 거다. 귀염받으려고 하면 지는 거다. 전체과정을 책임지고 자신이 결과에 납득하는 게 중요하다. 이기든 지든 납득이 되면 다음 게임에 대한 전략이 선다. 바둑을 두되 이곳을 두어 졌다면 다음판은 저곳에 두어 이길 수 있다. 납득이 된다. 그러나 남들이 하라는 대로 하면 이기든 지든 기보가 없다. 


    얻는게 없다. 남을 위해 대리로 출전한 것이다. 자신이 게임의 주인이어야 한다. 매 순간 이겨야 한다. 훈련병 때의 일이다. 소문난 화생방 훈련이다. 나는 87년 그해 여름의 최루탄에 단련되어 있었다. 방독면을 최대한 천천히 벗는다. 벗는 동작을 하면서 실제로는 벗지 않는 것이다. 방독면을 벗은 다음 1분 정도 숨을 멈춘다.


    군가를 부르라고 시키지만 원래 노래를 못한다. 그 상황을 이기는 재미가 있다. 그냥 나오면 섭섭하니 이 가스는 어떤 맛인가 하고 맛배기로 조금 마셔준다. 멀쩡하게 나올 수 있다. 화생방 훈련으로 알게된 것은 사람들이 대략 엄살이 심하다는 거다. 인생 최대의 고통이 화생방 훈련이라더니 별거 아니네. 와사비 한 덩어리다.


    의도대로 끌려가지 않는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납득하는 게 중요하다. 소확행도 아니며 대확행도 아니고 카르페 디엠도 아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상황을 내 뜻대로 통제하는 것이며 혹은 상대방의 뜻대로 끌려가지 않는 것이다. 판을 깨고, 판을 흔들고, 나의 판을 만들어 간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이어져 간다.


    이긴다는 것은 내가 주도하여 사건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사건의 기 포지션에 서는 것이다. 잘해서 보상받고 행복해지는게 아니라 사건의 원인을 촉발하여 결과까지 전개한 후 그 완성도를 납득하는 게 중요하다.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되는구나 하고 납득하면 된다. 그러려면 사건의 전체과정에 개입해야만 한다.


    남의 요리를 맛만 보는 황교익은 가짜다. 남의 정치를 비판만 하는 논객들도 가짜다. 전투에 뛰어들어 직접 핸들을 잡아야 진짜다. 어깨너머 훈수는 좋지 않다. 대중에게 아부한다면 더욱 좋지 않다. 대중을 의식하며 주목을 끌고 어필하려는 행동은 좋지 않다. 인생의 의미는 오직 이기는 데 있을 뿐이다. 핸들을 잡아야 이긴다.


    이겨야 다음 사건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지면 거기서 끝난다. 허무하다. 이기면 한 게임을 더 뛸 수 있다. 2부리그에서 이겨서 1부리그로 올라가야 한다. 부단히 다음 사건으로 연결해 가는 것이다. 그럴 때 세상을 향해 할 말이 있다. 발언권이 있다. 내가 납득할 때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행복이 아니라 에너지를 얻어야 진짜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아니라 작아도 확실한 에너지라야 한다. 사건의 주도권을 틀어쥐고 다음 단계를 예상하고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며 적절히 판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요즘 이게 뜨잖아. 요즘 이게 대세래. 하며 유행에 끌려간다면 추하다. 자신이 유행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못해도 남의 시선에 끌려다니지는 않아야 한다.


    남들 다 입는 패딩 자기도 입으면 지는 거다. 남들 다 신는 나이키 나도 덩달아 신으면 덩달이다. 내가 최종보스이며 내가 의사결정권자이며 승패는 내가 정하고 의미부여도 내가 한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즐거워한다면 지는 거다. 내가 직접 조제해서 내가 원하는 맛이 나왔는지가 중요하다. 맛에 실패해도 데이타가 나온다.


    내 인생의 큰 실패 중의 하나는 술국을 끓인 일이다. 방랑시절 이야기다. 소설에 흔히 나오는 이른 아침에 주막에 들러 술국을 먹는 장면 말이다. 술로 국을 끓이면 술국이 되는구나 하고 막걸리로 술국을 끓였는데 절대 인간이 먹을 수 없는 맛이었다. 그렇지만 즐겁다. 막걸리로 국을 끓이면 어떤 맛이 되는지 알아냈기 때문이다. 


    사케는 따뜻하게 데워서도 먹지만 한여름에 따끈한 막걸리는 최악이다. 내게 있어서 그 사건은 충분히 납득된다. 남들은 사차원이라고 하겠지만 그런 모험은 즐겁다. 그리고 인상적이다.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건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슬프다고 슬퍼하면 지는 거다. 칭찬한다고 우쭐하면 지는 거다. 


    나를 통제하려는 타인의 의지에 놀아나므로 지는 거다. 신이 인간을 통제할 요량으로 만들어놓은 희로애락 감정에 놀아나면 지는 거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노여움이든 소의 코뚜레처럼, 말의 재갈처럼, 개의 목줄처럼 인간을 통제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신에게도 목줄을 맡기지 말라. 에너지가 업되는 게 진짜다. 


    에너지 흐름에 올라타고 당당하게 나아가는 게 진짜다. 에너지와 섞여서 나와 타자의 경계가 지워지는 게 진짜다. 어느 절정의 순간에 요리사와 요리는 섞여버린다. 예술가와 작품은 섞여버린다. 어디까지가 피아니스트이고 어디서부터 피아노인지는 섞여버린다. 너와 나의 경계가 지워져 버린다. 그럴 때 완전하다. 완전함을 취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오맹달

2019.03.22 (20:45:41)

뜨거워집니다.
무서워집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kilian

2019.03.23 (02:10:00)

나에게도 남에게도 신에게도 목줄을 맡기지 말라. ~ 에너지 흐름에 올라타고 당당하게 나아가는게 진짜다.~ 너와 나의 경계가 지워져 버린다. 그럴 때 완전하다. ~ 이 상황을 이겨라.

http://gujoron.com/xe/1073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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