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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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82 vote 0 2019.03.11 (15:38:30)

      
    진정한 만족감은 어디서 오는가?


    인간은 행복이 아니라 에너지를 원한다. 행복이 사건의 결과로 주어지는 보상이라면 에너지는 사건의 원인으로 작동하는 조건이다.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삶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상부구조의 '돌봄을 받는 것'이다. 행복이나 쾌락 따위가 아니다. 야망, 욕망, 의지, 희망, 신념 따위는 그저 지어낸 말에 불과하다. 


    인간의 심오한 진실을 나타내는 적절한 언어는 없다. 그런데 있다. 서로를 동료로 여기게 하는 게임의 주최측이 있다.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일용할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파이프라인 같은 것이 있다. 연결되어 있다. 연인으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게 하고 무리로 하여금 일제히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그런 것이 있다. 


    아기들은 부모의 돌봄을 받는다. 그러므로 아기들은 행복하다. 소년은 집단의 돌봄을 받는다. 아니다. 돌봄을 받지 못한다. 그 시기는 소년이 가족으로부터 독립하는 시점이다. 그리고 갈등이 시작된다. 학교는 소년을 방치하고 돌보지 않는다. 도리어 경쟁시킨다. 교육당국은 소년이 돌봄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교육의 본령이 지식의 주입이 아니라 연대감 형성이라는 사실을 교육당국은 모르고 있다. 학부모도 모르고 있다. 돌보기는커녕 반대로 청소년들을 경쟁시켜 그들의 마음을 파괴하고 있다. 부족민은 스스로 돌본다. 보통은 청소년이 되어 부족의 전사집단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화랑도나 일본의 와카슈 같은 그룹이 있다.


    어느 나라든 화랑도나 와카슈와 같은 청소년 집단이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청소년은 집단에 소속되는 방법으로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충족시킨다. 무리 지어 함께 웃고 뛰놀고 서로 부대끼게 되는 데서 유익한 호르몬이 나오는 것이며 그들의 마음은 건강하게 된다. 성인이 되면 반대로 남을 돌봐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여전히 돌봄을 받고 싶다. 그래서 국가를 말하고 민족을 주장하고 애국타령을 늘어놓는다. 또는 종교에 의지하게 된다. 안아키처럼 반사회적인 소집단에 가담하거나 지구평면설과 같은 사이비를 추종한다. 수동적으로 음모론에 속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속아주는 것이다. 그들은 역시 돌봄을 받고 싶은 것이다. 


    국가나 민족이나 인류는 결속력이 약해 가담해봤자 특별히 돌봄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대중은 불안하며 그럴수록 강한 결속을 원하게 된다. 괴력난신을 추구하고 사이비를 추구하고 극단적인 채식주의를 추구하고 주술사를 따르면 강한 결속감을 느낄 수 있다. 괴상하고 반사회적일수록 유대감이 강한 것이다.


    고양이는 작은 박스에 들어가 있기를 원하고 인간은 적대세력에 포위되어 있기를 원한다. 북한과 쿠바가 그렇다. 세계의 왕따가 되어 그럴수록 만족한다. IS도 그렇고 탈레반도 그렇다. 그들은 집단과 밀착하고 싶은 것이다. 미세먼지를 혐오하고 유기농을 추구한다. 일본의 혐한, 혐중처럼 얄궂은 포비아를 생산한다.


    인간에게 강박증은 고양이의 박스처럼 편안하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은 정형행동이라는 무형의 박스에 자신을 가둔다. 반일, 반미, 반공, 반동성애처럼 누군가를 반대하고 차별하고 혐오하는 모든 행동의 배후에 돌봄을 받고 싶은 심리가 있다. 누군가를 반대하는 방법으로 적대세력의 차가운 시선 속에 자신을 가둔다.


    박스 안의 고양이처럼 만족해한다.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서로 동료가 되고 동지가 되고 이념적으로 결속하여 크게 무리를 이루고 한 방향으로 일제히 나아가는 것이다. 거기에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존엄을 느끼고 자존감을 느끼고 긍지를 느끼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다. 


    그럴 때 환경과의 긴밀한 관계가 만들어진다. 바이올린의 현처럼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집단과 부단한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거대한 에너지 흐름에 올라탄 느낌이 된다. 인간은 행복이 아니라 그러한 만족을 원하는 존재다. 여기서 행복은 주로 타인과 비교된 것이며 구체적인 대상이 있고 반응이 있고 직접적인 것이다. 


    만족은 높은 집단에 소속된 사람이 느끼는 긍지다. 행복이 상대측에서 돌아오는 반응을 느끼는 것이라면 만족과 긍지는 주최측의 가속도를 느끼고 관성을 느끼고 기세를 느끼는 것이 다르다. 행복은 사건의 종결에 따른 보상이고 만족은 사건의 원인과 그 진행에서 느끼는 관성력이다. 일이 뜻대로 착착 돌아가는 느낌이다.


    해피함은 햇볕이 따스하거나 파트너의 체온이 느껴지거나 커피의 향기가 달콤하거나 그런 것이다. 소확행이라는 말도 있다. 커피 한 잔에서 느끼는 것이 있다. 직접적인 접촉과 반응이 있다. 상호작용하는 대상이 있다. 존엄은 상황이 발생하여 불만에 빠졌을 때 그동안 내가 대접받고 살았구나 하고 알아채는 것이다. 


    부모의 돌봄을 받는 어린이의 느낌이 만족이다. 행복은 욕구가 충족되는 것이고 만족은 부모의 돌봄이 충족되는 것이다. 돌봄은 상부구조의 일이다. 자기 위에 무언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국가이거나 인류이거나 종교의 신이다. 거기서 밀려나지 않고 배척되지 않고 소외되지 않고 무리 지어 함께 큰길을 가는 것이다. 


    행복은 경쟁자를 이기고 불안을 극복하고 욕망을 충족하는 것이다. 진정한 만족은 동료와 동지와 이념과 역할과 포지션이다. 다만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가족은 쉽게 알 수 있다. 어미가 새끼를 낳는 장면을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참가하는 게임의 주최측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아챌 수 없는 거다. 


    우리는 게임에 초대받은 존재다. 그래서 긍지를 느끼고 존엄을 느끼고 자부심을 느끼고 그렇게 자존감을 총족시킨다. 에너지의 기세에 올라타는 느낌을 얻는다. 치고 나가는 관성력을 느낀다. 환희가 있고 희열이 있다. 바닥에서부터 채워지는 충일감이 있다. 그러므로 우주의 태초에 대한 근본적인 이미지를 가져야 한다. 


    우주가 시간적으로 과거로 무한하고 공간으로 사방으로 무한하다면 깊은 허무와 좌절에 빠지게 된다. 복제의 원본이 되는 하나의 이미지가 없으면 불안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방향판단이 서지 않는다.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모른다. 누가 우리편이고 적인지 모른다. 가야 할 길을 모르고 주어진 임무를 모른다.


    내가 어떤 사건 속에 뛰어들어 있는지를 모른다. 그럴 때 동료의 얼굴을 쳐다본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 동료와 다투게 된다. 동료를 질투하고 미워하고 경쟁하며 동료가 하는 행동의 반대로 움직여 본다. 누군가를 집적거려서 정보를 얻어내려고 한다. 그러다가 차별하고 미워하고 혐오하며 스스로 망가지는 것이다. 


    스스로 에너지를 조달하지 못하므로 동료의 에너지를 빼앗으려고 기를 쓰다가 자멸하게 되는 것이다. 우주라는 무대에서 인생이라는 사건의 주최측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가 게임에 초대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게임 안에서 누가 나의 파트너인지 알고, 동료와 호흡이 잘 맞으면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무리 지어 함께 나아가며 당당할 수 있다. 그 충족감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율하듯 전달되는 것이며 오래가는 것이다. 사건의 기승전결로 계속 이어져가는 것이다. 누가 내편이고 적인지 알아야 한다. 에너지 낙차가 성립하는 방향을 알아야 한다. 똥오줌을 가리고 방향판단을 해야 한다. 주어진 임무를 알아야 한다.


    내가 가담하고 있는 사건의 타이틀과 내게 할당된 포지션을 깨달아야 한다. 북극성을 찾아야 한다. 언제라도 주최측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돌봄을 받고 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0]kilian

2019.03.12 (02:31:41)

"언제라도 주최측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돌봄을 받고 있다."

http://gujoron.com/xe/1070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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