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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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24 vote 0 2019.03.08 (12:06:52)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당신은 나로 하여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소.’ 영화의 한 장면이다. 알아주는 각본가만 쓸 수 있는 좋은 표현이라 하겠다. 그냥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는 식의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구조론에서 하지 말라는 자기소개다. 사랑은 내가 하는 것이고 그것은 나의 개인 사정에 불과하다. 말 걸 수 없다. 


    사랑하든지 말든지. 누가 물어봤냐고? 언제나 그렇듯이 진실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것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권력이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권력은 내게 있다. 권력자가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식이다. 자아도취와 같다. 상대가 호응해줄 리가 없잖아. 권력이 상대방에게 있어야 한다.


    나로 하여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한 사람은 상대방이다. 둘이 공유하는 토대를 근거로 말을 걸어야 한다.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그것은 에너지 장의 형태로 존재한다. 긴밀함으로 나타난다. 보통은 궁합이라는 말로 얼버무린다. 운명이라고 우겨보기도 한다. 자석의 N극과 S극 사실은 상대방에게 끌리는게 아니다.


    척력이 먼저다. 반대쪽을 밀어내므로 끌리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끌리는 것이 아니고 여자는 남자에게 끌리는 것이 아니다. 여자는 주변을 에워싼 불행을 밀어내려고 하고 남자는 허무의 수렁에 빠져 허무를 밀어내려고 한다. 싫어하는 것을 밀어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밀착된다. 밀착의 번거로움을 감내할지 결정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방해자다. 더 큰 불행을 밀어낼 목적으로 약간의 방해를 달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원죄처럼 원초적 불행이 있다. 누구에게나 있는 불행은 아니다. 더 큰 세계를 봐버린 사람에게만 있는 불행이다. 이웃집 장롱 속의 금붙이를 봐버린 도둑놈의 심사와도 같다. 안봤다면 몰라도 봤다면 일단 털어야 한다.


    더 큰 세계를 봐버린 사람이 있다. 이미 눈을 버린 사람, 마음에 불이 나버린 사람에게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이 있다. 그래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 것이다. 에너지의 수렁에 풍덩 빠져버린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에너지의 장에 갇혀버린 것이다. 왜 남자는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을까? 여주인공이 다가와서 물었다. 


    당신은 왜 내게 다가오는가요? 왜 여자에게 끌리지? 호르몬의 작용 때문이라고 말하면 여자가 화를 낼 것이 뻔하다. 당신이 친절한 미소로 나를 유혹하지 않았나요? 하고 물었다가는 싸대기 맞는다. 책임 떠넘기기 곤란하다. 그냥 이뻐서 사랑한다고 말하면 너무 통속적이다.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다음 단계의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머리로 생각하는 구체적인 계획은 아니다. 몸으로 느끼는 것이 있다. 머리가 맑아지게 하고 가슴이 뛰게 하는 것이 있다. 의욕을 샘솟게 하는 그것은 토대의 공유다. 질의 포지션에 서면 입자 힘 운동 량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다. 그때 엔돌핀이 나와주면 머리가 팍팍 돌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말려줘야 하는 존재다. 


    옆에서 부추겨 줘야 하는 존재다. 상호작용이다. 그 에너지 장에 갇혀버리면 사건은 시작되고 마는 것이다. 동물은 서로 냄새를 공유할 때 사건의 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인간은 사건을 공유할 때 에너지 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사건 속에서 마주쳐버린 것이다. 에너지 장을 탈출하지 못한다. 사건의 발견이 먼저다.


    관성의 법칙이 작동하는 사건의 궤도 안에서 긴밀한 상호작용이라는 자기장에 갇혀버린다. 서로 말려주고 때로 부추겨줘야 하는 사건의 장 안에 갇혀버린다. 그리고 에너지의 주인이 된다. 그것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며 말로 설명하려고 하면 이렇게 문장이 길어진다. 그 이전에 잘못 말하였다가 싸대기를 맞는 수가 있다.


    에너지를 조달하려면 긴밀한 상호작용의 장에 가두어야 한다. 세일즈맨이 되려면 서울역 앞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물건을 홍보할 것이 아니라 자기 가족들에게 먼저 팔아야 한다. 아버지에게 팔고 형제에게 팔아야 한다. 다음은 새로운 고객을 소개받는 것이다. 그런 절차 없이 모르는 사람에게 팔겠다면 에너지의 결을 거스른다.


    지나가는 행인의 손을 잡고 혹시 도에 관심있습니까? 하면 그게 공격행동으로 비친다. 무례를 넘어 범죄다. 치한의 소행이다. 서울대 가려면 주변에 미리 말해놔야 한다. 자신의 포부를 밝혀야 한다. 주변에서 부추기고 말리게 만들어야 한다. 공부를 할 때는 부추기고 당구에 빠졌을 때는 말려야 한다. 장을 세팅하는 절차가 먼저다.


    자신을 에너지의 흐름에 빠뜨려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해놓고도 못 가면 개망신이다. 다단계가 이 수법을 쓴다며 가족과 친구들에게 팔게 해서 사람을 망치기도 한다. 그러나 될 사람은 그렇게 된다. 노무현이 여보 나 좀 도와줘라고 자서전을 쓴 이유가 있다. 사실은 노빠들을 향해 나를 응원해줘 하고 쓴 것이다. 한 배를 타는게 먼저다.


    영화에서는 그저 여자가 예뻐서 또 남자가 말을 잘해서 점수를 딴 것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 그 전에 여자와 남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불어대는 시류의 바람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었다. 자기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뭣 좀 해보려고 하면 불행이라는 불청객이, 허무라는 불한당이 기초를 걷어차고 기둥을 무너뜨린다. 


    그러므로 힘을 합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도 서로의 방해자가 되기 쉽지만 귀차니즘을 감수하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21세기가 그대들을 이 자리에 초대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가능하다. 설사 주최측의 준비가 미흡했더라도 말이다. 그것은 초대받은 그대가 가져와서 채워넣어야 할 몫이다. 이제 건네진 잔을 받을 수 있다.


    사건은 무려 저질러져 있고 파트너는 예약되어 있고 주최측의 의도를 안다면 초대된 그대는 미소를 지을 수 있다. 그 무대 위에서 엎어지고 자빠져도 좋으리. 내 안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털어놓아도 좋으리. 홀랑 태워먹은들 어떠리. 세상은 그런 것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각본이 있다. 배역이 있다. 임무가 있다. 먼저 와 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8]kilian

2019.03.09 (03:38:36)

"세상은 그런 것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각본이 있다. 배역이 있다. 임무가 있다. 먼저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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