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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726 vote 0 2003.04.01 (17:35:07)

문성근과 명계남이 노사모를 탈퇴했군요. 수익사업 운운은 핑계로 봅니다. 정권 출범 후 당초 예상보다 측근들의 활동폭이 커지고 있습니다. 민주당 당료파의 역할이 축소된 데 따른 결과입니다. 친위세력의 할동영역이 넓어짐에 따라 노무현이 문성근, 명계남과 대화할 필요가 생겨난 것입니다.

문짝과 명짱이 노사모를 탈퇴한 진짜 이유는?
대통령이 노사모 관계자를 청와대에서 만날 수는 없지요. 불필요한 오해를 유발할 수 있으니까요. 당초 문성근과 명계남은 정치와 단절하려 했으나, 현실적 필요에 의해 정치 쪽으로 한걸음 다가간 것이며, 이에 족쇄가 될 수 있는 노사모와의 연결고리를 끊은 것으로 봅니다.

파병이나 특검과는 관계없이 예정된 수순이겠죠. 노사모는 노무현과 거리를 멀리할수록 역할이 커지고 살아남습니다. 그래서.. 『노무현을 사랑했던 사람들?』T.T;;


정치인은 언제든지 오판할 수 있습니다. 오판 조심해야 합니다. 보통은 오판해놓고 그 다음 수와 그 다음다음 수 까지 보고 결정하였다면서 자신을 기만하곤 하지요. 자나깨나 오판조심!


저는 파병에 반대하지만 찬성/반대를 떠나,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냉철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파병찬성의 논리부터 살펴봅시다.

왜 국군의 파병에 찬성해야 하는가?
부시가 전쟁을 도발한 것은 EU를 견제하는 등, 국제질서의 재편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곧 패권이지요. 전후에 마련 될 새로운 질서가 어떤 식으로 재편되든 간에, 우리는 이 상황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의 운명을 타인이 결정하게 방치해서 안되는 것입니다. 구한말 조선이 중립을 선언한 상황에서, 청나라군대와 러시아군대, 일본군대가 한반도 안에서 각축을 벌이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서 안됩니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기계적 중립은 자주권의 포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독일, 프랑스처럼 전쟁반대를 주도하든가 아니면 전쟁에 참여하든가입니다. 역사의 순간에는 역사의 현장을 지켜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돌아가는 상황에 어떤 형태로든 발을 들이밀고 개입해 있어야 최소한 돌아가는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나아가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으며, 그 다음의 행보를 결정할 때 유리한 위치에 섭니다.

국익이라는 개념을 경제적인 실리로만 판단해서 안됩니다. 국가의 역할을 증대하므로서 국제무대의 중심에 한발 더 다가서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와 같은 변방국가로서는 매우 중요한 포지셔닝입니다.

독일 프랑스등이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반대할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국제무대의 중심국가입니다. 우리와는 처지가 다르지요. 한국과 같은 변방국가가 중립에 선다는 것은, 나중 반대할 자격조차 잃어버리는 결과가 되기 십상입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점은 UN에 가입한지 얼마되지도 않은 신생독립 대한민국이 과연 어엿한 국제사회의 일원인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가 피지나, 부탄이나, 시킴을 우습게 여기듯이, 말로는 UN이라고 하지만 국제사회는 극소수 몇몇 강대국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으며, 변방국가는 그 존재가 무시되기 십상입니다. 반대하든 중립하든 최소한 그 존재가 증명되고 난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명분론, 혹은 도덕론은 기존의 국제질서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전제하에 유의미한 것입니다. 역사이래 전쟁의 승자들이 가지는 공통점은 기존의 룰을 파괴했다는 사실입니다. 곧 파괴되고 사라질 룰에 연연하여 명분을 논하다면 이는 송양지인에 불과합니다.

왜 국군을 파병하면 안되는가?
역사를 만들어가는 두가지 큰 힘은 첫째가 전쟁기술이고 둘째가 커뮤니케이션 기술입니다. 전쟁기술은 부단히 국경을 허물고,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그 허물어진 국경 안에서 질서를 재편해 냅니다. 민주주의는 고대의 웅변술, 수사학, 야외극장, 광장과 경기장에서 시작된 커뮤니케이션기술 및 근래의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전화, 인터넷 등 미디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전쟁기술이 바뀌면 국제질서가 재편됩니다. 우리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하며 역사가 바뀌는 현장에 한발짝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해야 합니다. 파병하든 반대하든 일단 발을 들이밀어 개입하는 것이 현장에 한발짝이라도 가까이 다가서는 일이 되겠지요.

커뮤니케이션기술이 발달해도 마찬가지로 국제질서가 재편됩니다. 어떤 면에서 볼 때 역사는 전쟁기술과 커뮤니케이션 기술 간의 투쟁입니다. 요는 2003년 이 시대를 움직이는 힘이 과연 어느 쪽에서 더 많이 나오고 있는가입니다.  

우편, 통신, 인터넷, 전화, 미디어 등의 발전이 평화와 민주주의를 가져왔습니다. 80년대 초 이산가족찾기에서 갑자기 발견된 사실이 전화의 위력입니다. 한국의 모든 가정에 전화가 보급되었다는 사실이, 87년 이후 민주화대투쟁 때 군부의 쿠데타 기도를 막는데 기여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터넷과 NGO활동 등 커뮤니케이션기술의 발달이 국제질서를 재편하는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개전초기만 해도 미군의 압도적인 군사력이, 핵무기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주요 강대국 중심의 기존 질서와 역학관계를 송두리째 뒤바꿀것처럼 보였지만, 미군이 고전하고 있는 지금 오히려 정반대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석유전쟁을 통하여 미국의 전쟁기술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꿀 만큼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커뮤니케이션기술의 발달이 전쟁기술의 발달을 무력화하고 있는 점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노무현의 오판이었습니다. 물론 부시의 오판이 더 원초적인 것이지만요. 미군이 이기든 지든, 국제질서의 재편은 없습니다. 오히려 미국의 위상이 크게 낮아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의 기가 꺾이면, 미국이 이른바 악의 축으로 지목한 국가들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이 지금까지 해온 무수한 거짓말들이 낱낱이 폭로되고 있습니다. 악의 축? 허구의 선거에 이긴 허구의 대통령이 만들어낸, 허구의 사실에 기초한 허구의 논리, 허구의 계획이지요. 그들도 돈안되는 짓을 길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노무현의 파병결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파병은 노무현이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한계를 그 언저리에서 결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노무현정권의 5년에 대한 기본적인 구도가 구체화된 것입니다. 즉 파병은 옳다/그르다는 논리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니라, 집권 5년에 대한 기본구도를 짜놓고 그 구도를 실현시키기에 유리한 쪽으로 포지션을 이동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무현지지자로서 파병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간에 노무현이 결정한 그러한 구도 자체는 존중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위험합니다. 94년 김영삼은 이회창과 결별하면서 지지층이 이탈하여 급속하게 붕괴된 전례가 있습니다.

지지층이 이탈하면 역사바로세우기나 토론회와 같은 인기정책이 거꾸로 역효과를 불러오는 수가 있습니다. 김대중정권도 그렇지만 집권초반 국민과의 대화 등 공세적인 인기정책을 쓰다가 어느 시점에서 대중적 인기는 아예 포기해버리고, 몇몇 실세와 비선조직에 의존하여 밀실정치를 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금모으기 운동부터 시작해서 신지식인 발굴운동이니, 제 2의 건국운동이니, 국민과의 대화이니 하면서 한참 열을 올리다가 대부분 중단한 것은 조중동이 포퓰리즘이라며 씹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물론 효과도 없었기도 하지만) 대통령이 어느 시점에 자신감을 잃고 스스로 자기 역할을 축소한 것입니다.

대통령의 기가 꺾인 거지요. 왜? 인기정책을 쓰면 쓸수록 역효과가 더 커지니 자연히 그렇게 된겁니다. 저는 노무현대통령이 평검사들과의 토론 같은 인기정책을 계속 밀어붙여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하루 16시간 쉴새없이 강행군을 해야하지요.

그러나 지지층과 이반하면 대통령 본인이 의기소침해져서 인기정책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기 일을 슬슬 비서에게 넘겨주고, 싫은 소리 하는 지지자들과의 만남을 기피하면서 제 스스로 고립되는 경우가 있지요.

알고보면 대통령도 한 사람의 나약한 인간입니다. 지지층의 이반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명철한 판단력을 가졌다던 닉슨대통령도 쓴소리를 하는 자기 측근을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판단력을 잃고 무너졌다고 합니다. 흔들릴 때 누가 지켜줍니까?

광해군의 전철을 밟지 말라!
흔히 파병찬성론으로 광해군의 기회주의적 선택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광해군은 결국 실패했다는 사실을 잊어서 안됩니다. 광해군이 초반부터 누르하치와 한판 붙었다면 설사 패전했어도 단결하여 거듭 싸우면 백성은 죽어나겠지만 최소한 국토는 지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광해군은 기회주의적 처신을 하다가 꿩도 매도 다 날린 경우입니다. 결과가 그렇습니다. 강자에게 빌붙어 살아남는다? 그게 그렇게 잘 안됩니다. 그 경우 내부로 부터 붕괴되어 자멸합니다. 정치란 것이 원래 그렇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면 좋고 져도 어떻게든 명분만 있으면 살아남지만, 기회주의적인 처신을 하면 지지층이 이반해서 살아남지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 광해군이 명분보다 실리를 선택했다는 식의 국사기술은 최악입니다. 제 목이 달아나고 왕좌에서 축출되는 것이 실리입니까? 실리가 아니라 자살이죠.

94년 김영삼이 총리 이회창을 자른건 한마디로 정치적 자살이었습니다. 90퍼센트 넘는 지지율을 자랑하던 김영삼도 한방에 갔다는 사실을 잊어서 안됩니다. 노무현의 파병결정은 광해군의 경우와 같이 제 무덤을 판 것일지도 모릅니다.

파병해서 전쟁을 빨리 끝내야 이라크 민중을 한명이라도 살린다?
역사의 경험칙을 이야기하면, 전쟁을 무리하게 빨리 끝내면 반드시 2라운드가 벌어져서 더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본질은 질서입니다. 그 질서를 만드는 것은 힘이며, 그 힘을 견제할 수 있는 반대의 힘이 떠올라주지 않으면 희생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됩니다.

만약 미국이 조기에 전쟁을 끝내면, 시리아에서, 이란에서, 북한에서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전쟁은 전쟁에네르기가 완전히 소진되어야 끝납니다. 죽고 또 죽여서 더는 죽을 인간이 남아나지 않고서야 전쟁이 끝나는게 역사에서 늘 있는 일입니다.

근본에서 구조적인 모순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힘을 제압할 또다른 힘이 떠오르든가 아니면 국제사회의 연대가 공고해져서, 주체하지 못하는 미국의 힘을 막아내든가입니다. 전쟁이 애들 장난은 아니니까요.


김근태의 야심과 정동영의 실수
정치가는 누가 키워주기 전에 스스로의 힘으로 커야 합니다. 정동영이 파병에 찬성한 것은 17대 대통령에 도전할 야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정치는 때로 도박입니다. 이번 경우는 이기면 좋고 져도 손해가 없는 도박입니다.

김근태는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므로서 야심을 분명히 했습니다. 정동영은 그저 평범한 직업정치인으로 남을 모양입니다. 누구의 후계자가 되려고 해서는 고어처럼 실패합니다. 고어가 패배한 이유는 자기 색깔을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이고, 자기 색깔을 드러내지 못한 이유는 클린턴의 그늘에 가려졌기 때문입니다. 클린턴을 비판하므로서 자기 색깔을 낼 수 있는 기회를 그는 여러번 놓쳤던 것입니다.

대통령이 되려는 자와, 대통령 후보가 되려는 자는 가는 길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일단 김근태는 대통령이 될 확률을 5프로 높였고, 정동영은 대통령후보가 될 확률을 5프로 높였습니다. 선거는 5년이나 남았습니다. 5년이 짧은 세월은 아니죠. 지금은 노사모와 같은 핵을 만들어야 합니다.

노무현은 십수년전 과격하게도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서 지금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 안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10년 후, 15년후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근태의 대통령 당선 확률은 확실히 높아졌습니다.  

30대가 40대 보다 더 친 김대중입니다. 왜 그럴까요? 겪어본 40대들은 김대중의 단점을 잘 알지만 30대들은 장점만 알고 단점은 잘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는 김근태의 단점은 10년 후 잊혀집니다. 그러나 인권투사의 신비주의적인 이미지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빛이 잡니다. 작년에 보여준 김근태의 아햏햏한 행보를 잘 모르는 지금 20대들은 10년 후 김근태를 위대한 인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보수표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긁어올 수 있습니다. 노무현이 정몽준과 타협하는 방법으로 보수표를 긁어왔듯이 언제든지 필요하면 얻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진보표는 일생에 한 두 번 밖에 기회가 없습니다.

핵을 만들려면 반드시 진보표라야 합니다. 지지여부를 떠나 김근태는 대통령으로 가는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때 노무현이 김근태를 한방 때려주면 김근태의 당선확률은 더욱 높아집니다.

덧글.. 찬성/반대를 떠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해본다는 관점에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인다면 지지층이 이탈하면 대통령이 스스로 의기소침해져서 김영삼이 아들 현철에게 의존하고, DJ가 박지원에게 위임하듯, 밀실정치로 후퇴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차피 뽀개질 건 다 뽀개졌는데.. 그래도 노무현은 꿋꿋하게 버텨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낭패를 집권초반에 당한것이 도리어 전화위복이 될지도 모르지요. 중후반이면 그냥 가는건데 초반이면 수습을 잘해서 얼마든지 복구할 수 있지요. 노무현이 김영삼처럼 약하지는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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