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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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485 vote 0 2019.01.26 (18:20:15)

      
    생각을 잘하려면

    

    생선을 도마 위에 올려야 요리할 수 있다. 생각하는 방법도 같다. 구조론에서 하지 말라는 자기소개형 말투,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는 시선, 이분법적 사고와 대칭적 사고는 생선을 도마 위에 올리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는 것이다. 일단 대상을 장악해야 통제할 수도 있다. 


    생선한테 내가 어쩌면 좋은지 물어보지 말라. 하지 말라는 여러 행동은 상대의 반응을 끌어내고 그다음에 자기 행동을 결정하려는 것이다. 생선한테 요리법을 묻고 있다. 도마가 없기 때문이다. 상대를 제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어보고 바둑을 두면 흉내바둑이다. 


    흉내바둑으로 비슷하게 따라갈 수는 있어도 이길 수는 없다. 귀납적 사고로 중간까지 따라갈 수는 있어도 진짜가 될 수는 없다. 상대방을 바둑판 안에 가두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승부는 361로 안에서 난다. 요리는 도마 위에서 결정된다. 그런 자세가 있어야 한다. 


    귀신이 어떻다는 둥 내세가 어떻다는 둥 천국이 어떻다는 둥 개소리하는 것은 바둑판 밖에서 서성대는 것과 같다. 공허하다. 바둑판을 장악하지 못하고 도마 위에 생선을 올려놓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쩔쩔매고 있기 다반사다. 소설을 쓰려면 이야기를 장악해야 한다. 


    귀신이든 내세든 천국이든 나의 통제권 바깥에 있다. 환경을 이겨야 한다. 남을 가르치는 것이 최고의 공부법이라는 말이 있다. 가르치다 보면 모르는 것을 알게 된다. 역시 포지셔닝 문제다. 가르치는 자가 갑이다. 갑이 되어 갑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연역이다. 


    지식은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복제하는 것이다. 가르치는 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복제한다. 무엇인가? 가르치는 자는 형식을 보고 배우는 자는 내용을 본다. 방향이 다르다. 거기서 결정된다. 도마판을 장악한 사람은 방향이 다르다.


    형식은 복제되고 내용은 채워진다. 머리 속에도 형식이 있다. 머리 속에 형식을 만들고 내용을 채우는 것이 학습이다. 형식이 없는데 내용을 채우려 하니 주입된 지식이 뇌 안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자동으로 삭제된다. 요리사에게 도마는 형식이고 생선은 내용이다.


    생선을 요리한다고 생선만 쳐다보고 있으므로 요리가 되지 않는다. 도마를 봐야 한다. 일단 형식이 복제되면 내용은 저절로 채워진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지식을 흡수한다. 형식이 없기 때문에 지식이 뇌에 저장되지 않는다. 폴더를 지정해야 파일이 저장된다. 


    어느 폴더에 넣어서 어느 뉴런과 연결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조각난 파일은 뇌가 한꺼번에 삭제해 버린다. 노예 12년이라는 영화가 있다. 옆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다들 모른 체한다. 쳐다보지도 않는다. 신경쓰지도 않는다. 관심도 없다. 뇌가 흥분하지 않는 거다. 


    인간이 삶과 죽음에 흥분하는 것은 호르몬이 나오기 때문이고 그 이유는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을 장악할 무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노예는 집단을 장악하려는 무의식이 없으므로 호르몬이 나오지 않고 따라서 옆에서 사람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놀라지도 않는 거다.


    이양선은 진작부터 서해바다에 출몰했다. 조선의 관리들은 서구의 우수함을 알고 있었다. 보통은 이양선에 동승한 중국인과 필담을 나눈다. 그런데 거국적으로 모른 체했다. 정조 이후 일본과 통신사를 끊으며 청나라에 외교권을 빼앗기고 대결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남태평양 섬들의 부족민은 태평양 바다를 지나가는 범선을 보지 못했다. 작은 카누는 잘 보는데 커다란 범선은 보지 못한 것이다. 섬 가까이 붙어서 지나가도 보지 못한다. 부족민에게 범선을 봤느냐고 물어봤더니 봤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인간 뇌도 마찬가지다. 


    형식이 없으면 보아도 보지 못한다. 뇌가 정보를 저장하지 않는다. 머리가 나쁜게 아니고 뇌에 폴더가 없고 형식이 없는 것이다. 영어 단어를 외운다고 해도 그렇다. 이미 알고 있는 것 중에서 그 단어와 대칭되는 것이 없으면 암기되지 않는다. 역사공부라도 그렇다. 


    한 가지 역사적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으면 비슷한 다른 사건도 쉽게 흡수된다.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을 덮어씌우는 것이다. 대칭되는 것에 뇌가 잘 반응한다. 대칭되어야 방향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좌우가 대칭되면 앞뒤로 방향이 생겨난다.


    상하가 대칭되면 전후가 생겨난다. 고저가 대칭되면 장단이 생겨난다. 찾아야 하는 방향성이다. 하나를 대칭시키면 지식 두 개를 물어온다. 기하급수적으로 지식이 늘어나고 생각이 늘어난다. 하나를 아는 사람은 열을 알게 되고 하나를 모르는 사람은 열을 모르게 된다.


    하나는 복제되는 형식이다. 내용은 각각 달라서 복제되지 않는다. 형식을 아는 사람은 저절로 열을 알게 되고 형식을 모르는 사람은 배워도 모른다. 당신은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그것은 환경의 장악이다. 닫힌계의 설정이다. 에너지의 결이다. 서로 공유하는 토대다. 


    거기에 형식이 있다. 소설을 읽더라도 그 소설의 내용에 주목하지 말고 형식을 간파해야 한다. 내용은 변개해도 표절혐의를 받지만 형식을 변개하면 작가로 인정된다. 아인슈타인은 단지 뉴턴의 형식을 변개했을 뿐이다. 모든 위대한 작가들은 형식을 변개한 사람이다. 


    남의 형식을 무단으로 가져와서 각도만 살짝 틀어주면 창의가 되고 발명이 되고 특허가 나온다. 칭찬을 듣고 노벨상을 받는다. 생선을 바꾸지 말고 도마를 바꾸어야 한다. 물론 포장지만 바꾸는 겉보기 형식이 아니라 요리법을 바꾸는 진짜 형식이다. 패스트푸드와 같다.


    샌드위치든 햄버거든 이미 알려져 있는 요리의 형식을 살짝 바꾼 것이다. 아무도 표절이라고 따지지 않는다. 이박사든 싸이든 형식을 바꾼 것이다. 그냥 속도만 빠르게 해도 칭찬을 듣는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흑인 음악을 조금 빠르게 불렀을 뿐인데 단번에 스타가 됐다.


    그의 음악은 대부분 표절이지만 저작권료 한 푼을 흑인 가수들에게 지불하지 않았다. 그래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형식이 내용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스티브 잡스의 스마트폰도 이미 있는 전화기의 형식을 바꾼 것이다. 형식 바꾸기 쉽다. 좌우상하 대칭을 바꾸면 된다. 


    공부하지 말고 생각하라는 말도 있지만 공식을 모르면 문제를 풀 수 없다. 암기만 하지 말고 직접 수학문제를 풀어보라는 말이다. 그런데 공식을 모르면 문제를 풀어볼 수 없다. 내가 배우기보다 남을 가르치는게 공부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알아야 가르치지. 딜레마다.


    귀납적 사고는 백날 해봐야 도움이 안 된다. 연역적 사고를 하려면 알고 있는 것을 복제해야 한다. 아는게 없어 복제를 못한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는 원래 뭔가를 알고 태어난 사람이다. 머리 속에서 맴도는 것에 데이타를 대입해 구체화한다. 


    세상은 사물이 아니라 사건이다. 사건은 형식이 있고 단계가 있다. 몰라도 일단 단계를 진행하다 보면 알게 된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몰라도 가르치다 보면 알게 된다. 거대한 방향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아니지만 아인슈타인 수법을 베끼다가 알게 된다.


    그래도 안 되는 사람은 어쩔 수 없다. 확률이다. 원래 되는 사람이 있고 되는 사람을 따라하다가 되는 사람이 있고 어떻게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몰라도 남을 가르치다 보면 되는 사람이 있지만 다 되는 것은 아니다. 학습이든 창의든 답은 내용이 아닌 형식에 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0]kilian

2019.01.27 (03:45:18)

" 가르치는 자는 형식을 보고 배우는 자는 내용을 본다."

http://gujoron.com/xe/1057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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