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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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03 vote 0 2018.12.12 (14:06:28)

      
    깨달음으로 가는 길


    깨달음은 라디오가 방송국의 존재를 깨닫는 것이다. 인간이든 사물이든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널리 연결되어 통짜덩어리로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고아로 자란 소년이 자신을 낳아준 친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격이다. 자신을 태어나게 한 자궁의 존재를 깨닫는 것이다.


    부분은 전체를 깨닫고, 진술은 전제를 깨닫고, 결과는 원인을 깨닫고, 종결은 시작을 깨닫고, 꼬리는 머리를 깨닫고, 마음은 무의식을 깨닫고, 팩트는 관점을 깨닫고, 의미는 맥락을 깨닫고, 사물은 사건을 깨닫고, 내용은 형식을 깨닫고, 물질은 에너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사건에 가담하기다.


    자신이 사건 속의 존재임을 깨닫고 그 사건에 합류해야 한다. 인간은 본능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가담하지만 실패한다. 자신의 의도와 다른 결과가 얻어진다. 많은 경우 개인의 이익을 위한 행동들이 실제로는 개인을 희생시키고 집단의 이익에 기여한다. 개인은 명성을 탐하지만 실패한다.


    명성이 개인에게 이득이라는 관념은 집단의 무의식이 조종한 결과다. 이름을 떨치다 죽느니 안전하게 사는게 이득이 된다. 인간은 권력을 탐하고 미인을 탐하고 돈을 탐하나 실패한다. 그것은 무의식이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탐욕하다가 위험에 빠져 죽는다.


    무의식에 조종된 개인의 탐욕이 사회적 상호작용을 증가시켜 집단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의 방법은 확률적인 것이며 합리적이지도 않고 과학적이지도 않다. 더욱 문명적이지 않다. 명성과 권력을 탐하는 인간의 본능은 1만 년 전 부족민의 삶에 맞게 세팅된 것이다.


    문명을 진보시킬 확률을 약간 올릴 뿐 발달된 현대문명에 댄다면 많이 위험하다. 탐욕적인 인간의 본능이 부족민을 근대인으로 바꿀 수는 있겠으나 21세기에도 맞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깨달아 무의식의 조종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신이 무대에 등장하기도 전에 사건은 이미 일어나 있다.


    그 사건을 발견해야 한다. 무의식의 조종에 의해 개인을 희생시키면서 역설적으로 인류에 기여할 것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 의사결정으로 진보에 기여해야 한다. 현대사회는 고도로 발달한 만큼 리스크가 커졌기 때문이다. 문명은 우연히 일어났으므로 우연히 망할 수 있는 것이다.


    개는 본능적으로 집을 지킨다. 무의식적으로 인간을 위해 봉사한다. 개에게 의도가 있었던건 아닌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그러므로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도 마찬가지 일어나 있는 사건을 깨닫고 능동적으로 사건에 가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은 널리 연결되어 하나의 통짜덩어리로 있다. 그러므로 하나가 바뀌면 전체가 다 바뀌게 된다. 전기를 100볼트에서 220볼트로 바꾸면 모든 가전제품을 다 바꾸어야 한다.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야 한다. 개는 집을 지키도록 되어 있고 인간은 원래 집단을 위해 희생하도록 되어 있다.


    모르고 따라가므로 졸개의 역할이 주어진다. 설계도를 알고 가는 자가 리더가 될 수 있다. 그 사건이 무슨 사건인지, 무리가 일제히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는 알고가야 한다. 본능에 따라 명성을 탐하고 관종짓을 하고 미인을 찾으면 상호작용 증대에 따라 집단은 옳은 방향으로 굴러간다.


    그런데 위태롭다. 그 과정에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해치기 때문이다. 명성을 탐하는 연예인은 우쭐해서 주변에 크게 인심 쓴다. 돈을 탕진한다. 그러다 망한다. 과거에는 작가들이 원고료가 나오기 무섭게 술값으로 탕진해 버렸다. 그래야 동료들 사이에서 좋은 선배로 대접받기 때문이다.


    집단이 당신을 부려먹는 방법이다. 좋은 동료, 좋은 친구, 좋은 사람, 좋은 아내나 남편으로 인정받으려는 욕망이 인간을 바보로 만든다. 재벌은 자기 가족만 챙긴다. 가족들에게 인심을 써서 가족들 위에 군림하려다가 욕을 먹고 감옥에 갇힌다. 당신은 그 심리적 감옥에서 탈출할 수 없다.


    하나를 바꾸면 다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명성도 끊고 평판도 끊고 위세도 끊고 칭찬도 끊고 고독도 끊고 미인도 끊고 권력도 끊고 대신 모두 연결되어 있음의 중심과 정면대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가? 사건의 중심이 있다. 커다란 사건이다. 기어이 일은 벌어졌다.


    인간은 그 일과 함께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고 믿는 여러 가지들은 모두 집단의 상호작용 증대에 맞추어져 있다. 명성이든 평판이든 돈이든 미인이든 마찬가지다. 집단과 긴밀하게 상호작용할 때 인간은 안정감을 느끼도록 세팅되어 있다.


    그러한 본능을 따라 변희재짓 하고 윤서인짓 하는 것이다. 자신이 할 바를 다하되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만족하는 선비는 참으로 적다. 설계도 없이 본능에 끌려가므로 인간은 망한다. 리스크를 증대시켜 망한다. 세상은 인간을 확률로 조진다. 확률을 믿고 로또를 사다가 망한다.


    의사결정중심으로 쳐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대승의 큰 배에 올라타고 함께 가는 것이다. 인간은 단지 바른 길에 가담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를 바꾸면 모두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다. 이미 많이 비틀어져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귀신을 믿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귀신이 있기 위해서는 먼저 해결되어야 할 전제들이 적어도 일백 개는 있다. 좀비영화를 만든다고 치자. 좀비는 왜 먹지 않는데도 힘이 넘치지? 엔트로피의 법칙에 어긋난다. 설정오류다. 좀비영화만 해도 수십 가지 설정오류가 있다. 과학적으로 접근하면 하나하나 다 파헤쳐질 수 있다.


    귀신이라면 눙치고 넘어간 전제가 무수히 있다. 인간의 접근이 귀납적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방향을 연역으로 바꾼다. 하나를 바꾼 것이다. 이제 다 바꾸어야 한다. 의사결정 중심으로부터 하나씩 퍼즐을 맞추어 온다. 귀신이라면 일백 가지 설정오류를 낱낱이 다 해결하고 와야 한다.


    그 오류들을 해결하지 않고 당신은 귀신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 이렇게 규칙을 바꾸었다고 치자. 당신은 이제 굉장히 많은 단어를 쓸 수 없게 되었다. 국어사전에 나오는 단어의 50퍼센트를 지워버려야 한다. 이 상황을 당신은 견뎌낼 수 있겠는가? 어린이는 가능하나 어른은 어렵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8]kilian

2018.12.12 (15:27:03)

"인간이든 사물이든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널리 연결되어 통짜덩어리로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레벨:5]국궁진력

2018.12.13 (01:26:58)

"집단이 당신을 부려먹는 방법이다. 좋은 동료, 좋은 친구, 좋은 사람, 좋은 아내나 남편으로 인정받으려는 욕망이 인간을 바보로 만든다. "


제가 여기서 습득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몇 가지 습관이랄까 행동을 바꿨는데, 요 위 예시들을 벗어나지 못했군요. '이거구나!'하고 하나를 깨달았다 생각하면, 어느샌가 다른 쪽에서 깨지고, 계속 이런 순환의 고리에서 갇혀 있는 저를 보게 됩니다. 살아 생전에는 머리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도 깨달을 수 있도록 (노력/공부/고민/행동)해 보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8.12.13 (07:55:39)

사회에서 좋은 사람이 되려는 행동이 나쁜건 아닙니다.

개인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도 나쁜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제가 강조하는 것은 에너지를 어디서 조달하는가입니다.

에너지는 신과의 일대일에서 그리고 대표성에서 나와야 합니다.


누군가와 좋은 친구로 지내려면 부인과 사이가 틀어집니다.

그만큼 가족과 함께 지낼 시간을 빼앗기게 되는 거지요.


미국이라면 무조건 가족이 우선이다고 말할 것이고

한국은 아직도 고향친구 찾고 술친구를 찾고 그러지요.


깨달음의 근본은 인간을 움직이는 에너지의 출처가 어딘가에서

주변과의 상대적인 비교나 개인의 동물적 본능에서 나오면 안 된다는 겁니다.


절대적이고 객관적이고 일관되고 한줄에 꿰어지는 것이어야 하며

상승효과와 상생효과를 낳는 것이어야 하며 그것은 족보입니다.


어미로부터 자식으로 이어지는 계속성에서 에너지가 나와야 하며

그것은 문명의 부단한 진보에 따른 관성의 법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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