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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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75 vote 1 2018.10.11 (16:43:51)

      
    구조론을 치는 것은 구조론뿐이다


    유튜브 강의 재개를 앞둔 준비자료입니다.


    구조론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학문체계다. 알려진 다른 학문과 비교하려 한다면 넌센스다. 수학이 없는 나라를 생각할 수 있다. MBC에서 방영된 아마존의 눈물에서 부족민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든 주민이 매를 맞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셈을 할 수 없다. 한 다발의 매를 가져오더니 한 대를 때리고 매를 버리는 행동을 반복한다.


    매가 서른 개면 부족민이 공평하게 서른 대씩 매를 맞는다. 부족민은 셈을 할 줄 모르지만 대개 이와 비슷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누이트들은 쌓기법을 쓴다. 신랑 후보는 신부집 대문 앞에 선물을 가져와서 높이 쌓는다. 다른 사람이 선물을 더 높게 쌓으면 진다. 숫자는 하나와 둘이 전부라 셈을 못한다. 3부터는 많다로 통일한다.


    수학이 생기면서 이런 기술들은 모두 잊혀졌다. 좋은게 생기면 낡은 것은 물러나야 한다. 과학이 등장하면 주술은 사라져야 하며 의학이 등장하면 민간요법은 사라져야 한다. 옛날에는 주술이 과학이었고 민간요법이 의학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동양에는 산술이 있었지만 기하가 없었다.


    현대 수학은 기하를 빼고 논할 수 없다. 그런데 과연 기하가 수학일까? 기하를 처음 접한 조선 수학자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 수학자들은 수학과 물리학을 분리할 수 없으며 물리와 수학의 분리는 영국인들의 치명적 실수라고 주장한다. 러시아 수학자 페렐만이 물리학의 방법으로 푸앙카레의 추측을 풀었다고 한다.


    이는 러시아인만 할 수 있는 방법이며 다른 나라 수학자는 접근법이 달라 처음에는 이해할 수도 없었다는 말이 있다. 학문의 경계는 원래 모호한 것이다. 위상수학처럼 얄궂은 것이 새로 데뷔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를 건너보려고 했는데 괜한 짓을 해서 인류는 졸지에 골칫거리 하나를 떠안아 버린 거다.


    누가 기하를 수학과 통합했고 물리를 수학과 분리했고 위상수학을 포함시켰다. 누가 결정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장단점이 있을 테니 잘한 짓인지는 알 수 없다. 구조론의 출발점은 수학이다. 로봇이 달걀을 집으려면 몇 개의 손가락이 필요한가? 세 개면 충분하다. 그런데 그 달걀이 우주공간에 떠 있고 움직인다면? 만만치 않다.


    테이블에 놓인 달걀을 손가락으로 집기는 쉽다. 지구의 중력과 테이블의 도움을 받았지만 논외로 하자. 그러기 없다. 거시세계에서는 뉴턴역학으로 대충 때려맞히다가 미시세계로 들어가면 상대성이론에다 양자역학으로 어려워지는 것과 같다. 엄밀해져야 한다. 구조론의 공간은 사건의 공간이며 그 공간은 특별한 동적 공간이다.


    위상공간이 있듯이 사건공간이 있다. 우리는 정지해 있는 공간을 추적하지만 우주 안에 정지된 것은 없다. 우리는 지구 위에서 상대적인 위치를 찾지만 엄격하지 않다. 지구는 태양을 돌고 태양은 은하를 돌고 은하도 움직이는데 공간도 끝없이 새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사건 안에서의 위치다. 그 공간은 절대적이다.


    사물은 기준이 될 수 없다. 돌고 있는 지구 안에서 달리고 있는 버스 안을 날아다니는 파리의 위치를 추적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사건 안에서 기준점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사건을 수학해야 한다. 사물은 공간에 있고 사건은 시간에 있다는 점이 다르다. 사물의 수학은 있어도 사건의 수학은 없으므로 새로 만들어줘야 한다.


    하나의 사건은 다섯 개의 매개변수를 가진다. 사건은 원인에서 결과까지, 시작에서 종결까지, 앞에서 뒤까지, 질문에서 답변까지, 부름에서 응답까지, 머리에서 꼬리까지, 질에서 량까지 전개하며 5회에 걸쳐 자체의 대칭을 조직하고 그 대칭을 작동시켜 의사결정하고 에너지의 입력에서 출력까지 진행하며 스스로를 완결시킨다.


    그것이 구조론이다. 사건의 구조론이 사물의 수학과 다른 점은 완결성이다. 마디가 있다.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 사이에 시작과 의사결정과 끝이 있다. 사물의 수학은 무한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일쑤다. 걸핏하면 발산되어 버린다. O 곱하기 무한대를 계산하다가 헷갈려 버린다. 사물의 수학이 답을 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사물이 아닌 사건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풀리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물리학과 수학을 별도로 놓을 수도 있지만 결부시킬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구조론과 수학을 결부시킬 수도 있고 별도로 놓을 수도 있다. 양자역학의 발달은 물리학이 점점 수학에 흡수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게 한다. 초끈이론이 그렇다.


    수학적 구조는 완벽한데 여기에 에너지를 어떻게 태워야 하는지는 모른다. 근원에 이르면 모든 학문은 하나로 통합되며 또 그래야만 한다. 오랫동안 동양 지식인은 선비가 도덕만 닦으면 되지 수학은 알아서 뭣하냐 하고 살았다. 근대과학은 동양의 선비가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수학을 모르면 괴력난신에 휘둘리게 된다.


    조선 후기의 소송사건은 대부분 조상 무덤자리에 관한 것이다. 공자는 괴력난신을 멀리하라고 가르쳤지만 선비들은 모두 괴력난신에 빠져 있었다. 공자는 산 사람의 일도 모르는데 어찌 죽은 사람의 일을 알겠느냐고 꾸짖었지만 선비들은 죽은 사람의 일을 가지고 산 사람의 시간과 노력을 허비했다. 수학을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 수학을 배운다고 해도 본전치기에 불과하고 새로운 수학을 일으켜야 서구를 이길 수 있다. 구조론은 1만 년 인류사의 축적된 지식체계 전체에 맞먹을만한 가치가 있다. 게다가 새롭다. 구조론은 업그레이드될 뿐 비판할 수 없다. 그 점에서 성역이다. 수학은 수학자만 비판할 수 있고 구조론은 구조론으로만 비판할 수 있다.


    다윈과 마르크스와 프로이드가 뭔가를 보여주었다. 그들의 언설에 많은 오류가 있으나 그들의 시도가 전례가 없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들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단지 그들이 닦아놓은 터전 위에서 부분적인 교정을 하거나 새로운 지식을 업데이트할 뿐이다. 구조론을 모르는 사람의 비판은 들을 가치가 없다.


    구조론에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먹어주는지를 논할 이유는 없다. 아르키메데스의 수학도 당시에는 공리공론에 불과했다. 그는 땅바닥에서 수학문제를 풀다가 죽었다. 그를 죽인 병사는 그따위 허황된 지식놀음이 네 목숨하나라도 보장한다더냐 하고 비웃었지만 상관없다. 진정한 학자는 다른 세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2천 년이 지나고서야 아르키메데스는 정당한 대접을 받았다. 그동안은 수학자들만 그를 대접했다. 구조론도 같다. 처음에는 구조론을 쉽게 보급할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대화를 해보고 의외로 구조치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스퍼거인 사이트에서 묘한 표현을 보았다. 우리 아스퍼거인들은 원래 구조와 체계에 능하잖아.


    이 말은 일반인들이 대개 구조와 체계에 능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다. 지난 5천 년간 동양인들은 두 눈으로 뻔히 보고도 소실점을 보지 못하였다. 보면 보이는데 못 본 것이다. 5천 년간 수십억 사람 중에 소실점을 본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 구조가 쉽게 보이겠는가 말이다. 드물게 구조가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깨닫는다.


    석가는 구조를 본 사람 중의 하나다. 석가의 연기는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는 말인데 서로 엮여 있다는 거다. 서로 엮여있음이 구조다. 하나의 위치에 중복과 혼잡을 피하고 최대 몇 개를 엮을 수 있느냐? 이것이 구조론의 출발점이다. 점에는 하나를 엮을 수 있지만 선이며 더 많이 엮을 수 있으며 각이면 더 많아진다.


    입체면 각보다 많이 엮을 수 있고 에너지는 입체보다 더 엮을 수 있다. 단, 에너지는 방향성이 있으므로 순서대로 엮어야 하며 순서가 어긋나면 결맞음이 아니라 결어긋남이니 엮지 못한다. 구조론은 이런 것을 보는 것이다. 수학이 비단 물리에만 쓰이는게 아니다. 정치도 의석이 많으면 이기는 법이니 셈을 잘해야 집권할 수 있다.


    경제도 셈을 잘해야 장사할 수 있다. 생물학도 DNA로 가고부터는 수학전공자가 유리해졌다. 천문학은 말할 나위도 없다. IT기업도 그렇고 지금은 거의 수학이 먹는 세상이다. 수학이 모든 과학의 자궁이 되듯이 구조론도 모든 학문분야에 제기된다. 처음 탄생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최초 에너지 유도과정이 중요하다.


    처음 사건이 일어날 때는 반드시 구조론적 결정과정을 거친다. 한 점에 몇 개의 라인을 엮을 수 있느냐는 문제를 해결해야 정당은 집권할 수 있고 기업은 창업할 수 있고 예술가는 창작할 수 있고 시인도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 내가 넷을 엮었는데 상대가 다섯을 엮으면 내가 패배하기 때문이다. 진보가 항상 빠지는 함정이다.


    보수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최대한 엮는데 비해 진보는 정책만 좋으면 되지 인물이 무슨 상관이야 이런다. 진보가 넷을 엮으면 보수는 가만이 지켜보고 있다가 그 정책을 베낀 다음 진보에 없는 하나를 추가한다. 보수가 이긴다. 박근혜가 복지정책을 베끼고 통일대박론을 터뜨리는 것은 진보를 베껴먹은 것이다.


    저쪽은 다섯을 하는데 이쪽은 넷을 하니 이길 수 없다. 있는 카드를 다 쓰지 않으면 안 된다. 타선이 괜찮으니 투수만 보강하면 된다거나 투수진이 쓸만하니 타자만 영입하면 된다는 식의 소극적 자세로 이기지 못한다.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하나가 들어오면 하나가 빠진다. 이대호가 들어오면 뒤로 무언가 새나간다.


    만물은 서로 엮여 있으니 대칭성이 우주의 근본이다. 모든 의사결정은 대칭성을 따른다. 홀로 있는 것은 없으며 반드시 이것과 저것이 조를 짜고 팀을 이루고 시스템을 조직하여 외부에서 에너지를 들여오고 내부에서 그 에너지를 처리한다. 5천 년 동양사에 다만 석가 한 사람이 구조를 얼핏 보았을 뿐 깊이 들여다본 사람은 없다.


    오천 년에 한명 꼴로 구조가 그냥 보이는 사람이 등장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에게 구조론을 보여줄 이유는 없다. 구조치는 어차피 보여줘도 보지 못한다. 그들은 엮임을 보지 않는다. 마디 사이를 볼 뿐 마디를 보지 않는다. 원래 구조를 보지 못하는 사람을 쳐내면 끝까지 남아있는 사람 중에 구조를 보는 사람이 있다.


    구조론은 간단하다. 그런데 어렵다. 셈을 처음 발견했을 때도 사정은 같다. 부족민이 서른개나 되는 매다발을 들고다니며 헷갈려 하다가 셈으로 간단히 해결하니 쉽잖아. 문제는 셈이 쉬울수록 점점 더 어려운 셈에 도전한다는 점이다. 구조론은 필자가 초딩 때 얻은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것이다. 초등학생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쉽다.


    쉽지만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더 어려운 문제를 풀면 된다. 그러므로 구조론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구조론의 제자가 될 생각이 없는 사람은 그저 구조론의 관점만 받아들이면 된다. 세상을 구조로 보고 역설로 보고 뒤집어 보고 반대편을 보고 대칭성을 보고 이것이 일어날 때 저것들이 반드시 맞대응한다는 사실을 보면 된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어떤 방법으로 풀면 된다. 해결 끝. 이런 단세포들이 구조치다. 반드시 상대방의 맞대응이 있다. 그 맞대응을 해결할 제 2, 제 3, 제 4, 제 5의 카드까지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정치를 해도 정책만 좋으면 된다니깐. 인물만 좋으면 된다니깐. 세력만 많으면 된다니깐 하며 한 가지로 나대는 자가 구조치다.


    기본 다섯 카드를 깔고 와야 구조적 감각이 있다. 일은 항상 반대로 뒤집어지며 그렇게 뒤집어진 것은 다시 뒤집어진다. 반대와 그 반대의 반대까지 생각이 미쳐야 한다. 세상은 대칭으로 이루어졌으며 항상 의도는 반대로 되며 일의 수순을 알고 배후지를 확보하고 에너지를 투입해 일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답은 있다.


    답은 있지만 그곳에는 없다. 사건 바깥으로 빠져나와 설계부터 다시 착수해야 한다. 그 최초의 시작점에서 대세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그 공간은 배후지가 있는 열린 공간이며 에너지가 흐르는 동적공간이며 에너지의 확산방향을 수렴방향으로 틀었을 때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일반인은 이런 관점만 얻어도 성공이라 하겠다.


    바둑을 처음 발명한 사람에게 몇 단을 수여하겠는가? 구조론은 진정한 세계의 첫 출발이다. 그러므로 비판할 수 없다. 흥정할 수 없다.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구조론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이 게임의 규칙이다. 게임 바깥의 잡설은 무시한다. 구조론 안으로 들어와 구조론을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으로만 비판할 수 있다.


    구조론 때문에 인류는 당황하게 된 것이며 인류의 입장은 난처해졌다. 그들의 무지를 들켜버린 것이다. 인류의 창피한 수준을 들켜버렸다. 누구에게 보이는게 누구에게는 안 보인다는 거다. 그것을 보는 특별한 사람이 있다는 거다. 신문물을 접한 구한말 선비들처럼 처음에는 화를 내지만 다음에는 침묵하다가 결국은 따라온다.


    나는 그 상황을 즐길 생각이다. 조급하게 보급하려고 애쓸 이유가 없다. 어쩌면 지구를 망치고 있는 인류에게 과분한 거다. 모두가 구조론을 아는 것이 과연 인류에게 복되겠는가? 수학자들만 돈을 버는 지금의 IT붐도 많은 사람에게 불편한 것이다.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로봇이 힘을 쓰고 첨단화될수록 많은 사람이 불편해진다.


    팔뚝근육을 자랑하던 남자들은 꼼꼼한 여자의 일처리에 기가 죽는다. 근육을 써먹을 직장은 사라지고 자판을 두들기는 직장은 늘어난다. 미국 중서부의 백인들이 먼저 비명을 질렀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 트럼프로 갈아봤지만 중국과 패권을 다투는 수렁으로 빠졌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 실상 갈아야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다.


    새로운 것은 기득권을 불편하게 하지만 그래도 역사는 전진한다. 시험에 든 것은 인류이며 그들이 먼저 손을 내밀기 전에 내가 이 난폭한 문명을 구해주려고 나설 이유는 없다. 아르키메데스는 쓸쓸하게 죽어갔고 갈릴레이는 혼자 투덜거렸다. 세상은 그런 거다. 인류는 천천히 전진해야 한다. 답을 안다면 서두를 이유는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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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6]kilian

2018.10.12 (02:24:51)

세상은 그런 거다. 인류는 천천히 전진해야 한다. 답을 안다면 서두를 이유는 없는 거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5]수원나그네

2018.10.12 (08:28:54)

모두를 절멸로 이끄는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기만 하다면..
프로필 이미지 [레벨:5]cintamani

2018.10.12 (16:37:59)

나는 그 상황을 즐길 생각이다. 조급하게 보급하려고 애쓸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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