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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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401 vote 0 2018.09.25 (09:31:54)

         

    타자성의 이해


    구조론 마당, 구조론의 기원 편에 들어가는 글입니다.


   

    아기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분리불안이다. 어머니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말이다. 더 끔찍한 것은 어머니가 남이라는 인식이다. 아기 때 어머니는 나의 신체 일부와 같았다. 일심동체였다. 그러다가 문득 어머니가 타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소스라쳐 놀라게 된다. 세상이 둘로 쪼개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첫돌이나 되었을 무렵이다. 이가 나서 젖을 뗄 시기가 되었는데 아둔한 아이였는지 여러 번 어머니의 가슴을 깨물어서 혼이 났다. 그때 엄마의 꾸지람이 내게는 치명적이었다. 칭찬만 듣다가 처음으로 꾸지람을 들은 것이다. 어지럽다. 나는 바보인가 하는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젖을 떼려고 극단적인 요법을 쓴다. 


    고추장요법과 식초요법을 시도했지만 이미 밥을 먹고 있을 때였으므로 통할 리가 없다. 마지막으로 김치요법을 썼는데 신김치의 검게 변색된 부분을 젖무덤에 여러 개 붙이고는 '에비다' 하고 겁을 준 것이다. 큰 두려움을 느꼈다. 혀로 느끼는 맛으로는 반응하지 않다가 시각적인 이미지에는 강하게 반응한 것이다. 


    이후 어머니 가슴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김치 이파리가 무서웠겠지만 이후로도 가슴 근처로 가지 않은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가 타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채 버린 것이다. 거절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막무가내로 고집 피우고 뗑깡 부리면 다 되는 거였는데 말이다. 이 사건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단지 타자성과 관련하여 기억나는 최초의 사건일 뿐이다. 이후 무수히 나냐 남이냐의 경계선에서 번민하게 되었으며 그때마다 나는 충격받았다. 소심한 성격 탓인지도 모른다. 부잣집에 가 보고 세상이 내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낙담하는 식이다. 시골 부자집 안방은 방이 너무 깨끗하고 가구도 너무 현란했다. 


    번쩍거리는 자개장에 커다란 거울이 떠억하니 버티고 있었다. 겨울 내내 한 번도 씻지 않은 나의 시커먼 발바닥을 용납할 수 없는 공간이다. 나는 배척받고 밀려났다. 나와 남 사이에도 금이 있고 가족과 외부인 사이에도 금이 있다. 나와 세상 사이에도 금이 있다. 그 금은 내게 잔인했다. 아이 때 세상은 내편이었다. 


    엄마는 나의 신체 일부와 같았다. 산도 들도 하늘도 공기도 강아지도 닭들도 송아지도 언제나 내편이었다. 모두가 내게 친절하고 호의적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차갑게 거절당한다. 아이는 그만 상처입는다. 원래 눈에 띄는 것은 다 내차지였다. 들판의 수박과 참외도 당연히 내것이었다. 내가 봤으니까 내것이지. 


    그런데 아니란다. 수박서리다. 이건 범죄란다. 순경이 잡으러 온단다. 치명적이다. 내가 거부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 내가 거절되어야 하는 거지? 거절당하느니 먼저 거절해줄 테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렸고 열 살 무렵부터는 반공도서를 읽고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을 가졌다. 


    반공도서의 상투적인 패턴은 공산주의가 이상은 좋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건데 나는 앞부분의 이상은 좋다에 꽂혔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면 내가 그 현실을 고쳐줄게. 이상의 공산주의는 좋은데 현실의 공산당이 나쁘다면 내가 공산당을 개혁하겠어. 중학생 때는 공산주의에도 흥미를 잃고 허무주의자가 되었다.


    나냐 남이냐! 그사이에 벽이 있다. 나는 상처입었고 좌절했다. 세상과 나는 다른 편에 속했다. 나는 가족의 편도 아니고 대한민국의 편도 아니고 인류의 편도 아니다. 그 누구의 편에도 속할 수 없었다. 이왕 편을 가를 바에 좀 세게 가보자. 현실의 박정희 독재를 반대하는 수준을 넘어 우주를 통째로 반대하기로 하자. 


    신을 혼내주기로 하자. 욕망에 지배되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가 보기로 하자. 브레이크 없는 사유의 폭주는 즐거운 것이었다. 사실이지 이 문제야말로 나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는데 아무도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비슷한 것도 없었다. 서점가에 나온 철학책은 죄다 읽어봤는데 다들 한가한 이야기나 하고 있었더랬다.


    예컨대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참으로 시시하다. 세상이 다 적인데 얼어죽을! 소유해도 적을 소유하고 존재해도 적이 존재하는 판에 유치하긴. 애초에 지구 인간 중에 말이 통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었다. 스승으로 삼을 만한 말이 통하는 친구는 동양에도 없고 서양에도 없고 어디에도 없고 가능성도 없었다. 


    좋아하는 아이가 생기면 문득 나의 더러운 손발과 한 번도 하지 않은 양치질과 누더기인 옷을 떠올리고는 절망하게 된다. 이런 식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사귄다는 이야기는 많아도 좋은 사람을 만나면 독약을 마신 기분이 된다고 쓰디쓴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좋다는 비참하다와 동의어였다. 


    한 살 때 느끼고 몸서리친 것은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기준선이다. 나냐 남이냐는 호응하는가 배척하는가다. 호응하는 것은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다. 부름에는 응답하고 질문에는 대답하고 친절에는 보답하고 구함에는 충족하여 주어진 과제에는 응당하게 복수하는 것이 그리하여 사건을 완결시키는 것이 의미다.


    벌어진 판에는 어떻게든 맞대응을 하는 것이다. 존재는 사건이며 사건은 부름과 응답이며 그리하여 완결되어야 하며 마침내 완전해야 하며 그러므로 호응해야 한다. 철학은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이며 의미는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응답할 수 없다. 차갑게 밀려난다. 떠밀려 배척된다. 타인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본래 타자이며 나 자신조차도 때때로 타인이다. 실패다. 작품은 보기 좋게 깨져버렸다. 어떤 경우에도 수습이 안 된다. 돌이킬 수 없다. 이 땅에 태어난 사실 자체가 실패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별에는 내리는게 아닌데 말이다. 인생은 망쳐버린 시험이며 깨져버린 도자기며 구겨버린 원고지며 찢어버린 도화지다.


    인간은 족보로 응답한다. 3대를 이어가야 완성된다. 계통으로 응답한다. 하나로는 어림없고 둘로도 부족하고 3대까지 진도를 나가주어야 미적지근하게 반응이 오는 것이다. 내가 좋다고 들이대면 차갑게 밀쳐진다. 너도 좋잖아하고 무마하려다가 개쪽팔고 실패한다. 내가 좋은건 일방적 선언이니 이유가 될 수 없다. 


    너도 좋은건 여전히 부족한 것이며 3대를 전개하여 너와 내가 함께 할 미래의 청사진이 펼쳐져야 비로소 그림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전망이 서는 것이다. 통제권의 획득이다. 그러므로 미인을 보면 낙담하게 된다. 돈과 명성과 성공과 출세와 시험과 같은 것이 없는 원시 부족민의 삶이 더 근사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한다. 타자성은 대칭성이다. 대칭에 호응되지 않으면 부름에 응답하지 않으면 질문에 답이 없고 친절에 보답없고 구함에 충족없으면 그것은 허무한 것이며 그러므로 실패인 것이며 당연히 망하는 것이며 그래서 의미가 없는 것이고 불완전한 것이며 증폭되지 않고 공명되지 않아 복제되지 않는다.


    공간에서의 맞대응은 어떤 경우에도 실패다. 애초에 왕자로 태어나지 못했으면 실패다. 떳떳하지 않다. 시간에서의 맞대응은 가능하니 마땅히 3대의 계통을 이어가는 완전성을 얻어 복제하고 증폭되고 공명되고 망라되어야 한다. 하나로는 어림없고 둘로도 부족하고 3대까지 계통을 만들어가야 비로소 응답이 된다. 


    왜? 복제하기 때문이다. 누구의 부름에 호응하는 것은 잘해봤자 초딩 반사놀이의 반사밖에 안 된다. 거꾸로 내가 부르는 위치에 서야 합당한 응답이 되는 것이다. 공간에서는 세상의 부름에 엄마의 부름에 타인의 부름에 나는 응답하지 못하는 가련한 존재인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인생은 실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간에서의 가능성은 맞대응을 포기하고 대신 새로운 나의 신대륙을 개척하는 것이다. 타인의 부름에 내가 응답하는 포지션에 위치해서는 절대 답이 없다. 사방은 꽉 막혀 있다. 내가 불려진 사실 자체로 실패다. 태어난 사실 자체로 이미 실패다. 반대로 내가 부르는 사람이 되었을 때 사건은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복제가 완성되는 것이다. 세상이 나를 불러냈듯이 내가 누군가를 불러내는 것이야말로 세상의 부름에 내가 응답하는 유일한 방식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신의 완전성이요 인간의 의미이니 철학의 알파요 오메가다. 내가 불려졌기 때문에 나 또한 누군가를 호출하여 불러내는 것이며 인생은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존엄으로 부르고, 자유로 부르고, 사랑으로 부르고, 성취로 부르고, 행복으로 부른다. 우리는 불리워주기 바라지만 가짜다. 합격자 명단에 불려지고 당첨자 명단에 불려지고 파트너 선택으로 불려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왕자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실패다. 불려지면 이미 을이다. 어떤 경우에도 비참에 비참을 더할 뿐이다.


    왕자는 부르는 사람이다. 왕자가 가진 것은 대표성이다. 대표성을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와서 터 닦아 놓고 부르는 자의 특권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3대의 계통을 완성할 때 부를 수 있다. 그렇게 터는 닦아진다. 비로소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를 호출할 수 있다. 사건의 원인으로 서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일의 시작으로 서서 결말을 불러낼 수 있다. 몸체의 머리에 서서 꼬리를 불러들일 수 있다. 플랫폼의 기관차가 되어 객차를 끌어들일 수 있다. 사건은 연쇄고리로 이어진다. 하나의 사건으로 또 다른 사건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럴 때 누군가의 가슴을 불 지르는 한 알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지극한 아름다움은 그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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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고볼매

2018.10.02 (11:48:40)

무릎을 탁탁치며 읽느라 몸이 많이 상하네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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