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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724 vote 1 2018.01.18 (16:34:45)

     

    대표성에 대한 이해

   

    쉽게 이해되도록 써놨지만 죽어보자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걱정되어 어제 글에 몇 자 첨언하고자 한다. 공사구분의 문제다. 여성을 비하해도 괜찮은데 여성을 비하해도 여성이 가만있으면 문제가 된다. 이렇게 써놓으면 헷갈릴 법하다. 앞은 두 사람만의 사적인 관계고 뒤는 제 3자가 끼어들어 있는 공적인 관계다.


    어떤 백인 소녀가 노예 흑인 소녀와 친했다. 밥도 같이 먹고 공부도 같이하고 잠도 같이 잘 정도였다. 우정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맹세했다. 성인이 되면 해방시켜 주겠다고 철썩같이 약속했다. 어느 날 사단이 벌어졌다. 집에서 파티가 열려 백인 소녀 10여 명이 놀러온 것이다. 흑인 하녀가 서빙하다가 실수로 물을 엎질렀다.


    운명의 한순간이다. 스무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백인 소녀를 주시한다. 흑인 소녀를 친구로 대우할 것인가 아니면 노예로 취급할 것인가? 백인 소녀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하녀의 귀싸대기를 날렸음은 물론이다. 스무 개의 눈동자가 압박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배신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아끼는 사람일수록 더 오버해서 귀싸대기 쳐야 상황이 수습된다. 문재인이라 해도 탁현민이 사고를 쳤다면 적당한 선에서 해결이 안 된다. 직계냐 방계냐에 따라 다르다. 회사라 해도 공채로 들어온 사람과 스카웃 해온 사람은 다르다. 탁현민을 짜르려면 엄벌해야 한다. 측근비리는 두 배로 징벌해야 한다. 배반죄가 가중된다.


    반대로 탁현민을 보호하려면 끝까지 보호해야 한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문재인이 여론의 눈치를 보면 어떻게 될까? 전쟁이 붙는다. 여성단체는 해보자는 식으로 나온다. 여성단체에서 확실한 의사표시를 했으면 문재인이 확실하게 정리했을 텐데 우물쭈물하니 문재인도 뭉갰다. 이런 여론이 나와버리면 너도나도 피곤해진다.


    지도자는 이런 경우에 어물쩡 넘어가려 하지 말고 확실한 신호를 줘야 한다. 고구마줄기처럼 따라오는 파급효과가 무섭다. 문재인이 이번에 이명박을 세게 꾸짖은 것도 같다. 다수를 헷갈리게 하면 안 된다. 확실한 신호를 준다. 그래서? 백인 소녀는 흑인 하녀를 노예시장에 팔아버렸다. 뒷말이 나올까봐 깨끗하게 처리한 거다.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파티에 참석한 소녀들이 뒤로 수군거린다. '우리 보는 앞에서는 체면 때문에 귀싸대기 날렸지만 커튼 뒤로 가서 눈물 닦아줬겠지. 아주 인권투사 나셨네. 전부터 이상했어.' 왕따가 시작된다. 그렇게 그 많은 약속과 맹세와 우정은 이슬처럼 사라졌다. 18년간의 추억이 한순간에 부정되었다.


    놀랄 일은 아니다. 한국인들도 잘 키우던 강아지를 태연하게 잡아먹곤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게 인간이다. 나쁜 결정을 한 백인 소녀를 비난할 수 있을까? 원래 그렇게 한다. 노무현 빼고. 노무현은 그 운명의 한순간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흑인 하녀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었다. 그런데 말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다음이다.


    이번에는 흑인들이 수군거린다. '그 백인 소녀는 우리의 희망이야! 우리 흑인의 지도자라구. 그분이 우리 구세주야. 메시아 환생이라고. 할렐루야!' 걷잡을 수 없다. 아예 건드리지를 말든가 건드렸으면 완벽하게 책임져야 한다. 물에 빠진 사람 보따리만 챙겨주는 걸로 끝낼 수 없다. 취직도 시켜주고 결혼도 시켜줘야 한다.


    인생을 통째로 책임져야 한다. 계속 책임지다 보면 이미 청와대에 와 있다. 그게 사건의 방향성이다. 한 번 길이 나고 에너지가 꼬이면 그 길로 계속 가는 거다. 궤도에서 이탈할 수 없다. 멈출 수 없다. 문재인도 그렇게 한 번 올라탄 궤도에 잡혀서 꼼짝 못 하고 청와대 와 있다. 부탄왕국까지 도망갔는데도 얄짤없이 끌려왔다.


    그래서? 그 운명의 한순간에 강한 에너지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에너지는 자체논리로 사건을 진행시킨다. 25시. 인간의 시간이 다하고 신의 시간. 백인 소녀와 흑인 소녀가 단둘이 있을 때는 상관없다. 그러나 제 3자가 끼어들면 일이 복잡해진다. 파티장에 모인 10명의 백인 소녀가 그 현장을 목격해버린게 문제다. 


    사유리가 자기 남편에게 점수따려고 안방에서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다. 방송에서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된다. 세상 모든 것은 엮여 있으며 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행동에 연쇄고리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백인 노예주 중에는 좋은 사람도 많았다. 그중 다수는 노예해방을 찬성했다. 그러나 한 명이 반대해도 안 된다.


    의사결정 못한다. 반대자 한 명이 주도권 잡고 리더가 되어 좌지우지한다. 만약 백인 소녀가 하녀를 자신의 친구라며 옹호했다면 어떻게 될까? 그 10명 중의 한 명이 나선다. 어디든 왕따는 있고 왕따를 피하는 방법은 자신이 주동하여 누군가를 왕따시키는 거다. 찬스다. 선동하고 나서면 다수는 언제라도 나쁜 결정을 한다.


    나쁜 결정은 합의가 되나 좋은 결정은 합의가 안 된다. 나쁜 결정은 쉽다. 그것은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것이다. 좋은 결정은 추가로 투입될 에너지가 필요하다. 룰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권력서열을 다시 정해야 한다. 흑인노예를 해방하기로 하면 뭔가 의사결정해야할 일이 많다. 하나의 결정이 다른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반드시 내분이 일어난다. 문재인의 적폐청산도 그렇다. 할 일이 태산이다. 제압하고 통제하고 수사하고 기소하고 재판하고 피곤한 거다. 그러므로 좋은 결정은 그냥 하면 안 되고 반드시 미리 비전을 제시하고 밑그림을 가지고 외부 에너지를 끌어들인 다음에 작업 들어가야 한다. 한번 시작했다면 중도에 그만두지 못한다.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지난 2002년 우리는 그런 준비가 안 되었다. 물에 빠진 대한민국을 건져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아니다. 책임져야 한다. 보따리 찾아줘야 한다. 보따리는 경제다. 노무현은 경제정책에 올인했다. 좌파들은 이해를 못 했다. 오바마도 마찬가지다. 물에 빠진 미국을 건져냈는데 미국인들은 화가 났다.


    왜? 흑인 도움 없이 백인 자력으로 헤엄쳐 나올 수 있었는데 괜히 흑인 도움을 받아 체면 구겼으니 물어내라는 거다. 흑인과 히스패닉 빼고 오직 백인만의 능력으로 미국을 살려서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이 잘났다는 사실을.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고 보따리도 찾아줬지만 자존심은 왜 회복시켜 주지 않지? 트럼프 찍었다.


    그것은 에너지의 자체 관성이다. 한 번 형성된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이곳저곳을 쿡쿡 찔러댄다. 온통 들쑤셔 놓는다. 그 에너지를 존중해야 한다. 민주주의든 진보주의든 그냥 인간이 원하는 대로 하는게 아니고 그 에너지의 결따라 순서대로 진행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오바마처럼 잘하고 뒤통수 맞는다. 배신당한다. 


    여성주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여성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정도로 할 일 다 했다고 믿으면 큰 오산이다. 자존심도 회복시켜줘야 한다. 기를 살려줘야 한다. 심지어 경험도 시켜줘야 한다. 여성지도자를 키워도 축적된 경험치가 없다. 추미애나 박영선이 정치를 좀 했지만 여성정치인 전체로 보면 경험이 일천한 것이다. 


    여성정치인에게 일을 맡기면 반드시 실수를 저지른다. 눈에 쌍심지 켜고 째려보다가 그때 '내 그럴 줄 알았어.' 하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권력을 빼앗는게 보통이다. 일제강점기라고 치자. 조선인에게 맡겨놓으면 반드시 탈이 난다. '내 그럴 줄 알았어. 조선놈들은 원래 안된다니깐.' 일본인의 논리다. 흑인지도자의 실수도 많다.


    경험치를 축적시키려면 그래도 꾸준히 기회를 줘야 하며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며 그러므로 진정한 평등은 원래 쉽지 않은 것이며 인내심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수 외에 없다. 민주화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경험치가 더 쌓여야 한다. 노무현 때 된통 당해봤으니까 경험치가 쌓여서 지금은 좀 낫지만 그래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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