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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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9012 vote 0 2014.03.04 (22:06:29)

    거대담론의 복원


    구조론은 일체의 신념에 근거한 도덕적, 윤리적 당위와 작위를 배제하고 건조한 시선으로 시스템 내부의 에너지 메커니즘을 관찰한다. 더 나아가 시스템 바깥으로부터의 에너지 활동을 포함한 전체적인 사건의 완결성에서 최종적인 판단의 근거를 찾는다.


    시스템은 내적으로 모순되고 불완전하나, 외적으로 살아서 호흡하고 부단히 성장함으로써 완전성을 지향한다. 거기에 우리가 찾아야 할 역동성이 있다. 모든 존재는 자체의 완성된 모습을 가지며, 그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존재는 상호작용으로 나아가고, 생물은 진화로 나아가고, 자본은 성숙으로 나아가고, 인간은 사회화로 나아가고, 문명은 진보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마침내 스스로를 완성시키려 하는 데서 에너지를 조달한다.


    이 시대의 진보는 ‘인간다운 삶’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근원의 완전성을 바라보는 열린 시야를 가져야 한다. 인간은 부제일 뿐 주제가 아니다. 내부의 불행을 극복하려는 소극성에서 벗어나, 외적 활동을 통해 인간 존재의 한계에 도전하는 적극성을 가져야 한다. 이에 호연지기가 필요하고 헌걸찬 기개가 필요하다. 씩씩하게 나아가야 한다.


    이 시대의 정신은 거대담론의 복원이어야 한다. 인류의 과제는 마르크스 시대에 제기된 하드웨어적인 통합의 모색이 아니라, 스마트 시대에 맞는 소프트웨어적인 통합의 모색이어야 한다.


    인류 안에서 새로운 문명권을 건설해야 한다. 고양된 정신의 해방구를 건설해야 한다. 일베충 없는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 보편적 지성의 안전지대를 일구어야 한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진정한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시범은 보일 수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금 철학 아닌 것이 철학인 척 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렇게나 망가졌다. 그래서 우울하다. 강신주 부류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문제는 강신주가 아니라 우리의 철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에 철학은 다시 일어서야 하고 일으켜 세워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탈근대니 하면서 철학을 때려죽이려는 세력과 우리는 단호하게 싸워야 한다.


    20세기를 흔들어 놓은 두 사람은 마르크스와 마오다. 그들의 오류는 오류대로 인정하고, 그들의 패기와 씩씩함은 가지고 가야 한다. 우리는 파편화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 천박한 시대에 싹수있게 적응하지 말아야 한다. 더 큰 무대로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 21세기는 다르다. 이 시대에는 약자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진정한 것에 대한 희구여야 한다.


    20세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자동차와 선박과 비행기가 등장했다. 그들은 지구의 구석구석을 핥아버렸다. 마침내 저질러버린 것이다. 그리고 곧장 그들이 잘 하는 일에 착수했다. 그것은 사람죽이기였다. 양차 세계대전은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서 1억 명 이상을 죽였다.


    하드웨어에서의 큰 발명이 큰 사건을 일으켰고 큰 사건이 큰 사상을 낳았다. 그리고 이후 50년간 지구는 그런대로 조용한 편이었다. 냉전은 해체되고 열정은 식어갔다. TV와 워크맨과 비디오게임이 등장했지만 단 매에 1억 명을 쳐죽이는 전쟁은 더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의 스케일도 작아져서 점차 지리멸렬해졌다.


    세상을 바꾸려는 기획은 사라지고 세상에 적응하려는 작은 몸짓들이 나타났다. 탈근대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작은 이름들이다. 그들은 냉소와 풍자로 무장하고 잘도 이죽거렸다. 그 또한 시대의 반영이다. 그런 시대이니까 그런 부류가 등장한 것이다. 깊은 슬픔이 그 가운데 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컴퓨터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등장이다. 바야흐로 소통의 시대가 열리었다. 그러나 그때 그시절에 자동차와 비행기가 등장하자 제일 먼저 사람죽이기에 착수했듯이 그들은 나쁜 짓을 시작했다.


    일베충이 등장하고 강신주가 희롱한다. 야동과 외설이 앞서간다. 언제나 그렇듯이 말이다. 시멘트로 골목길을 포장해 놓으면 냥군과 견공이 먼저 발자국을 남기듯이 말이다.


    지금이야말로 대승의 정신이 필요하고, 거대담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때 그시절 자동차와 선박과 비행기가 하드웨어 측면에서 지구의 구석구석을 단 번에 핥아버렸듯이, 그리하여 하드웨어 측면에서 지구를 하나로 묶어서 탈탈 털어버렸듯이, 스마트 시대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지구를 탈탈 털어서 하나로 묶어버린다. 그런 시대에 걸맞는 문명의 디자인이 나와주어야 한다.


    역사이래 인류는 단 세 번 진보했을 뿐이다. 원래는 원시의 모습으로 벌거벗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 농업이 등장했다. 하드웨어 측면에서 지구와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이 밀접해진 것이다. 그것이 사건의 시작이다.


    그에 맞는 소프트웨어로 종교가 등장했다. 농업이라는 하드웨어와 종교라는 소프트웨어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건은 계속된다. 지구와 인간의 상호작용은 계속된다.


    세 번째 진보는 과학의 등장이다. 과학이 다시 한번 지구를 탈탈 털어버린 것이다. 농업 이후 새로운 하드웨어의 등장이다. 하드웨어의 변화에 맞는 소프트웨어가 나와야 한다. 스마트 시대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다. 지구를 통째로 탈탈 털어버린 하나의 사건이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전개된다. 의미있는 진보는 단 세 번 일어났을 뿐이다.


    전쟁은 세 번 일어났다. 농업전쟁, 종교전쟁, 과학전쟁이다. 한 번은 농토를 묶기 위해서, 한 번은 공동체를 묶기 위해서, 한번은 지구를 묶기 위해서다. 인류의 최종결론은 스마트 시대가 답하고 있다.


    인류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이상주의를 조직해야 한다. 철학이 앞서가야 한다. 노동자 농민을 노래하던 시절은 지났다. 지금은 우리 사회의 농업비중이 2퍼센트에서 1퍼센트로 달려가고 있다.


    가치는 하드웨어 측면의 노동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측면의 혁신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70억 인류의 머리를 하나의 뇌로 조직하는 것이다. 잡스가 아이폰을 들고나왔을 때 눈치채고 그런 그림을 머리에 그렸어야 했다.


    큰 차이는 없다. 농업시대에 종교가 인류를 한 번 묶었듯이, 과학시대에 종교를 대체하여 철학이 다시 한번 인류를 묶어내야 한다.


    인류는 새로운 방향으로 진군해야 한다. 만리장성에 오른 마오처럼 천하를 굽어보며 기개 넘치는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마침내 인류는 하나가 된 것이다. 소통의 시대다.


    강신주 부류의 소박한 인생상담은 소통이 아니다. 자본에 맞서라는 식의 태도는 니체의 표현을 빌면 노예의 도덕이다. ‘네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한다’는 식의 응수는 자기 안에 에너지가 없는 자의 것이다.


    시진핑이 시장거리에서 만두 쳐먹는 바기질은 소통이 아니다. 말로 하는 소통은 소통이 아니다. 대승의 소통이라야 진짜다.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삶의 동기를 부여할 에너지를 조달하는 소통이라야 진짜다.


    대승이 소승과 다른 점은 팀 안에서 한 사람이 깨달으면 모두가 깨달은 셈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철은 그 산에서 내려올 이유가 없다. 거기서 이미 소통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인류가 팀플레이를 하는 것이 소통이다. 팀의 포지션을 갖추는 것이 소통이다. 화룡점정을 이룰 눈동자 하나가 부족하다면 성철이 그 자리에 가서 가만이 앉아있는 것이 소통이다. 그럴 때 용은 날개를 편다.


    얻는 것은 존엄이다. 대승적 존엄이야말로 인간이 에너지를 얻는 근원이다. 인류 단위의 팀플레이에서 그것은 얻어진다.


    대승이 소통이며 소승은 소통이 아니다. 대승이 철학이며 소승은 철학이 아니다. 전쟁은 평화가 아니며, 종교는 과학이 아니고, 강신주의 심리상담은 철학이 아니다.


    꿈은 공유될 때 의미가 있다. 공유되는 꿈은 이상주의다. 공유되지 않는 꿈은 그 어떤 것이든 욕심에 불과하다. 사랑을 꿈꾸든 행복을 꿈꾸든 명성을 꿈꾸든 돼지의 행복과 다르지 않다.


    개인차원에서 나의 삶을 변조하는 일은 필요없고, 인류 단위의 기획을 제출해야 한다. 선제대응해야 한다. 다시 한번 우리는 지구를 탈탈 털어야 한다.


    사람이 죽어가는 것은 굶주림 때문이 아니라 존엄의 훼손 때문이다. 복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앞길이 닫혔기 때문이다. 함께 가는 큰 길 안에서 에너지 흐름을 만들지 않으면 인간은 죽는다.


    달려야 하는데 멈추면 인간은 죽는다. 선발대가 앞서가지 않으니 후발대가 끼어서 죽는다. 철학이 앞서가지 않으니 인간이 죽는다. 과학을 통제하지 못하는 농업시대의 종교와, 인간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과학의 난동 사이에서 죽는다. 환경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을 때 인간은 죽는다.


    인간의 삶을 보살피는 철학은 철학이 아니다. 찜질방 수다는 철학이 아니다. 미아리 철학관은 철학이 아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니 탈근대니 하는 도피는 과학앞에서 왜소해진 20세기의 패배를 의미할 뿐이다. 그것은 철학이 아니다.


    인간이 과학을 통제할 때 존엄해진다. 과학이 지구 단위로 존재하므로 철학은 인류 단위로 설립할 뿐이다. 과학의 배후인 자연과 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산주의는 그 대화해야 할 자연법칙과 맞지 않다.


    자연법칙은 본래 인간에게 친절하지 않다. 자연은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효율적이며, 그 효율은 에너지의 역동성에서 얻어지며, 그 역동성은 내부에 본질적인 모순과 변덕을 품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은 선형이 아닌 파동의 형태로 전진한다. 그 모순되고 변덕스런, 야생마와도 같은 에너지의 파동에 올라타고 통제하여야 하며 그러지 못할 때 인간은 죽는다.


    식량이 부족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복지가 부족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개인이 인류 안에서 역할을 얻지 못해서 죽는다. 터놓고 대화할 이웃이 없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가봤자 별 수 없는 막다른 길 앞에서 인간은 좌절하여 죽는다.


    자연법칙은 법칙대로 인정하고 인간은 그 자연을 통제하여야 한다. 자본은 자본대로 인정하면서 인간은 그 자본을 통제하여야 한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위를 실현해야 한다.


    상호작용에 있어서는 환경에 대한 인간의 우위,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집단에 대한 개인의 우위, 문명에 있어서는 과학에 대한 인간의 우위를 통해서만 인류는 구원될 수 있으며, 인류가 통째로 구원되지 않으면 개인은 구원되지 않는다.


    그러려면 먼저 자연과 환경과 과학에 맞설 거대한 인간을 일구어야 한다. 태풍이 커지면 인간이 당해낼 수 없다. 지진이 쓰나미를 몰고 오면 인간은 맞설 수 없다.


    자본이 재앙을 몰고 오면, 인간은 그 자본의 쓰나미가 커지기 전에 선제대응하여 스스로 커져야 한다. 작은 나무가 크게 자라기 전에 인간 역시 같은 비례로 커져야 한다.


    자연에 맞서, 환경에 맞서, 과학에 맞서 싸울게 아니라 선제대응하여 내 안에 에너지를 품고 인간이 스스로 커져야 한다. 인간이 위대해질 때 모든 쓰러진 사람은 일어난다.


    인간이 위대해지지 않고는 그 어떤 행복도 성취도 허무다. 인간은 고난이 아니라 허무에 치여 죽는다.


    자본이 동네자본에서 국가자본으로 글로벌자본으로 그 몸집을 키울 때 인간의 대응 역시 시장을 넘어, 국경을 넘어, 인류 단위로 커져야 한다. 이 시대에 큰 스승, 큰 깨달음, 큰 가르침, 큰 목청이 필요하다.


    페이스북이 12억 가입자를 돌파하여 스스로 빅 브라더가 된 시점이다. 거기에 걸맞게 철학도 스케일을 키우고 몸집을 키워야 한다. 페이스북의 12억을 넘어, 종교의 편협함을 넘어 전 인류를 결집할 큰 방향제시가 있어야 한다.


    거대담론이 복원되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문제제기에 그쳤고 마오는 몽상했을 뿐이지만 우리는 해낼 수 있어야 한다. 소통하여 70억 인류를 하나의 뇌로 조직할 때 그것은 가능하다.


    ◎ 원시의 출발
    ◎ 농업의 등장.. 하드웨어
    ◎ 종교의 등장.. 소프트웨어
    ◎ 과학의 등장.. 하드웨어에서 지구 단위 단일체제 등장
    ◎ 문화의 등장.. 소프트웨어에서 인류 단위 단일정신 완성


[레벨:10]다원이

2014.03.04 (23:33:01)

잘 읽었습니다~
[레벨:15]오세

2014.03.04 (23:49:56)

새로운 축의 시대네요!

[레벨:3]호롱

2014.03.05 (00:24:33)

저는 망상으로 그걸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현재 포기의 단계를 밟고 있습니다.


"전 인류를 결집할 큰 방향제시"

이 이정표는 마음을 조금 동하게 하네요.


뭐 그렇네요 ㅎㅎ


                        간지 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탈춤

2014.03.05 (07:47:52)

네 그렇습니다.

100% 동의 합니다.

 

 

[레벨:5]msc

2014.03.05 (16:04:09)

옛날엔,,이념전쟁,,,,지금은 과학전쟁,,,경제전쟁,,,,,다음엔,,,,?   구조론적생각의  발상을 돌려보게 합니다,

[레벨:11]큰바위

2014.03.11 (23:39:52)

과정의 철학도 조금씩 관심을 가져볼 만 한 것 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6]id: id: 우야산인

2014.03.14 (12:08:13)

인류단위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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