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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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9090 vote 0 2009.03.20 (13:29:12)

한국야구가 강한 이유

강대국과 약소국의 싸움에서 약소국이 강대국을 이기는 경우는 흔하다. 병력이 많아도 하나의 전장 - 수 만명의 병사가 접전할 수 있는 계곡이나 분지 - 에서 인간의 지휘체계로 소화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다.

단일 전투는 3만명 정도 운용 가능하며 그 이상이면 지휘하기 어렵다. 나머지 병력은 뒤에 남겨서 변화에 대응하거나 우회시켜서 배후를 치든가 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예 3만명만 있으면 상승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여론이나 주변에서 너무 간섭한다는 느낌이 있다. 야구팬 뿐만 아니라 구단의 고도로 발달한 시스템이 관료적인 개입을 일삼는다. 리더의 카리스마 대신 전문성을 갖춘 기술요원들이 간섭한다.

주변의 관여에 대응하려다보면 책임을 회피하는 관료적인 자세가 된다. 하라감독의 지휘는 공무원의 경직된 자세를 연상시킨다. 전력분석팀을 중심으로 역할이 지나치게 세분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들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불필요한 간섭을 하는 것이다. 결국 선수들은 시스템에 의존하게 된다. 개인의 자율성이 희생된다.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도망가는 피칭을 하게 된다.

후한 광무제 유수가 3000명의 적은 군대로 왕망의 40만 대군을 격파한 곤양싸움을 떠올리게 한다. 왕망이 보낸 수백명의 병법가들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한 명의 리더가 결단해야 하는 상황에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일본의 26명이나 된다는 전력분석팀은 곤양싸움에 동원된 수 백명의 병법가와 같다. 전혀 쓸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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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전력은 일본이 세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방법은? 적의 종심을 돌파하여 둘로 나눈 다음 각각의 국면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나폴레옹의 방법이다. 우선 일본팀을 투수와 타자로 나눌 수 있다.

투수전으로 몰아가되 투수력에서 우위를 보이면 타격에서 열세여도 이길 수 있다. 일본은 안타를 많이 쳤지만 점수를 내지 못했다. 우리쪽의 강점으로 게임의 흐름을 끌고 와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한이닝씩, 한단위씩 계속 쪼개가다 보면 적은 숫자로 많은 숫자를 이길 수 있다. 전체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부가 결정되는 특정 국면에서 힘의 우위를 유지하면 이길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국면을 쪼개다 보면 결국 한 사람의 병사에 모든 힘이 집중된다는 데 있다. 승부처가 되는 어느 한 순간에 그 선수가 홀로 외롭게 시합의 키를 쥐게 된다는데 있다. 그러므로 개인이 강해야 한다.

쇠사슬이 아무리 튼튼해도 약한 고리 하나가 전체를 결정한다. 끊어질 때는 그 약한 고리에 전체의 힘이 쏠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쇠사슬의 고리 숫자가 너무 많아서 안 된다. 일본은 고리가 너무 많다.

병사가 많아도 방진을 이룬 대열에서 앞의 3열이 적과 싸울 뿐 뒤에 있는 병사들은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멍청하게 서 있다. 한니발은 이 점을 이용하여 적은 숫자로 많은 적을 이겼다.

부대를 둘로 나누되 이쪽의 소로 저쪽의 대를 막아 교착시키고, 이쪽의 대로 저쪽의 소를 제압해야 한다. 유능한 지휘관은 아무리 아군의 숫자가 적어도 부대를 둘로 쪼개서 일대를 적의 배후로 돌린다.

한신은 적은 숫자의 병사로 배수진을 치고 불리한 싸움을 하면서도 일군을 적의 배후로 돌려 비어있는 적의 성을 점령하게 했다. 아무리 숫자가 적어도 편제는 반드시 갖추고 날개는 반드시 벌려야 한다.

한니발 역시 마찬가지다. 병사가 적어도 항상 포위전술을 구사했으며 그 약한 부분은 기동력으로 커버했다. 적은 숫자의 군대가 지는 이유는 하나다. 올인하기 때문이다. 용맹성으로 무장하고 함부로 돌진하다가 전멸한다.

지혜있는 장수는 아무리 병사의 숫자가 적어도 1군을 뒤로 남겨 변화에 대응하게 하고, 1대를 우회시켜 적의 배후를 치게 하고, 패배해도 병력을 보존하여 다음 싸움에 대비하게 했다.

어리석은 장수는 무조건 올인이다. 병사가 백만이라 넉넉한데도 한 싸움에 모두 투입하여 전멸을 면치 못한다. 병사가 적으면 적은대로 단 한번이라도 크게 이겨서 적의 기세를 꺾으려 든다.

운이 좋아서 1회의 전투를 크게 이기더라도 체력이 고갈되어 다음 싸움에서 전멸을 면할 수 없다. 아무리 병사가 적어도 갖출 포지션은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구조적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국가라도 마찬가지다. 진보도 있고 보수도 있어야 한다. 경쟁도 있고 보장도 있어야 한다. 한국인들은 성급하다. 너무 한 곳에 올인하려고 한다. 미국, 일본을 추종하는 수구들은 그쪽에만 올인하고 다른 곳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서구를 추종하는 좌파들은 그들대로 올인이다. 극단적인 행동으로 운좋게 한 번의 전투를 승리할 수 있지만, 전투에는 이기고 전쟁에는 지는 우를 범하게 된다. 항상 뒤를 생각하고 포지션을 두루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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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리그 출신 봉중근과 김선우, 송승준, 서재응, 최희섭 등의 국내 적응과정을 살펴보면 메이저리그가 유망주의 무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 유망주를 너무 일찍 메이저리그로 보낼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박찬호처럼 성공케이스도 있지만.. 아니 어떤 관점에서 보면 박찬호도 빅리그식 과당경쟁의 희생양일 수 있다. 박찬호의 전성기 때 다저스에서 함께 뛰던 박찬호의 동료들 중에 지금까지 선수생활을 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러하다. 박찬호는 그 정도면 오래 살아남은 것이다.

빅리그는 유망주들을 희생시킨다. 선수 자원이 넘쳐나니까 안되겠다 싶으면 폐기처분하고 남미쪽 어디에서 쓸만한 신인을 데려오면 그만. 물론 40세를 넘어서도 활약하는 노장들도 많지만 거기에는 또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고.

무엇인가? 선수자원이 적은 한국야구는 어떻게든 잘 가르쳐서 선수를 살려내야 한다. 외부에서 데려올 방법이 없으니까. 유망주를 애지중지하며 잘 길러내는 장점이 있다. 봉중근과 김선우, 송승준이 한국에서 다시 살아난 것이 그렇다.

물론 단점도 있다. 정성들여 키우는 대신 아주 선수의 진을 뺀다. 그래서 한국의 유망주는 이십대 초반에 일찍 꽃피우고 일찍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선수가 단명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메이저리그의 단점도 있다. 거기서는 서서히 꽃피워서 오래가기도 하지만 아예 꽃피우지도 못하고 꽃망울이 떨어진다. 김선우, 송승준 선수의 증언을 참고하자면 미국에서는 아예 기술을 가르쳐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어깨너머로 배워야 했다. 과거 일본 바둑도 그랬다. 유명한 기다니 도장이니 무슨 도장이니 하지만 스승은 입문할 때 한번, 중간평가 한번, 졸업할 때 한번 세번 밖에 지도대국을 두어주지 않더라는 말이 있다.

알아서 커야 한다. 애초에 유능한 인재를 골라서 조금만 가르치겠다는 거다. 좋지 않다. 스승으로부터 배우지는 못하고, 같은 제자들끼리 과당경쟁을 일삼는 방식은 좋지 않다. 국가도 그렇다.
 
정부는 개입하지 않고 기업들간에 너희들이 알아서 과당경쟁하고 살아남을 놈은 살아남고 죽을 놈 죽어라는 식은 좋지 않다. 그러다가는 정부가 통째로 망하는 일이 생겨난다. 경쟁은 일부일 뿐이다.

구조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에서 전략적으로 보호해야 할 시점이 있고 바람찬 들판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할 시점이 있다. 보호할 것은 보호하고 경쟁시킬 것은 경쟁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거꾸로다.

강자는 보호해서 어리광쟁이로 만들고 약자만 과당경쟁시켜 결국 죽게 만든다. 구조는 사이클이 있다. 그 사이클의 초반, 중반, 종반에 대응하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 구조를 꿰뚫어보고 적절히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한쪽에 올인하려 들지 말고, 용맹성을 과시하기 위하여 무모하게 덤비지 말고, 눈치보며 책임을 미루지도 말고 낚시꾼이 대어를 낚듯이 밀때 밀어주고 당길때 당겨주며 도울때 돕고 경쟁시킬 때 경쟁시켜야 한다.

미, 일.. 기술전수 없는 후보간 과당경쟁으로 유망주가 조기에 희생된다. 대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선수는 수명이 오래간다.

한국팀.. 유망주를 잘 가르쳐 준다. 대신 선수의 진을 뺀다. 경쟁이 없으므로 자기관리에 실패하여 선수가 조로한다.

될성부른 싹을 고르다가 망치는게 미국과 일본이다. 조금 못해도 갈고 닦아 써먹는게 한국이다. 물론 너무 갈고 닦다보니 일찍 망가지기도 한다. 또 그만큼 경쟁이 덜해서 게을러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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