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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227 vote 0 2020.02.03 (16:51:02)

    

    남산의 부장들


    잘 만든 영화지만 바이러스에 타격을 받아 손익분기점이 위태롭다. 이런 때 극장에 가는 사람이 용감한 사람이다. 박정희가 지나치게 비열한 악당으로 묘사된 것이 흠이다. 멀쩡한 인간이라도 권력을 잡고 궁지에 몰리면 반드시 추태를 부리게 된다는 점을 드러냈어야 했다. 감독의 전작인 '마약왕'에 묘사되듯이 말이다. 


    마약왕이 참고했을 알 파치노의 스카페이스처럼 말이다. 권력이라는 마약이나 히로뽕이나 같다. 중독성이 있다. 박정희에게 마약을 공급한 사람은 최태민이다. 영화에 최태민은 없다. 박빠들이 극장에 몰려와서 난동을 피울까봐 뺐을 것이다. 박근혜와 최태민과 육영수가 들어가면 상영시간 두 시간으로 부족하기도 하고. 


    어쨌든 좋은 사람이라도 그런 자리에 18년씩 있으면 정신이 파괴된다. 과대망상에 빠진다. 국민을 인류를 위한 마루따로 쓰려고 한다. 권력은 상대의 반응을 끌어내는 것이다. 소인배는 집단의 어그로를 끌고, 독재자는 신의 어그로를 끌어 반응을 끌어내려고 한다. 신의 반응을 끌어내는 방법은 자기 국민을 죽이는 거다. 


    신이 말려줄 때까지 사고를 친다. 그러다가 죽는다. 한 번 그 길로 들어서면 자기 힘으로는 빠나올 수 없다. 알 파치노도 그렇고 송강호도 그렇다. 죽음의 길로 질주하는 것이다. 차지철이 김재규를 모욕하는 장면은 지나쳤다. 한국에서 후배가 선배를 그렇게 하지 못한다. 차지철과 김재규가 충돌한 것은 최태민 때문이었다. 


    김재규는 최태민을 치려고 했고 차지철은 박정희가 최태민에게 의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박정희에게 아부한 것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때가 있다. 사실이지 박정희는 김재규에게 상당히 의지했다. 박정희가 김재규를 몰아붙인 것은 김재규를 믿었기 때문이다. 신임하니까 그래도 된다고 여긴 거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정리한 것은 그런 식으로 약해진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다른 방법이 없었다. 너무 몰렸다. 박정희가 변질된 것을 봤다. 최태민 따위에게 놀아나는 현장을 봤다. 최태민이 육영수 귀신을 불러낸다는데 박근혜만 넘어간 것이 아니었다. 그런 찌질한 모습을 보면 쏴버리게 되는 것이다. 


    박정희는 나사가 빠지고 긴장이 풀렸다. 그럴 때는 현실도피를 한다. 혁명가의 모습은 어디가고 없고 소인배로 변해 있다. 스카페이스의 알 파치노처럼. 연산군의 마지막 모습도 그렇다. 모두가 등을 돌린 상황이다. 비이성적인 짓을 하며 속으로는 누가 자기를 말려주기를 바란다. 독재자가 궁지에 몰리면 신이 되려고 한다. 


    카이사르가 비무장으로 원로원에 나타난 것도 일종의 어리광이다. 사실은 약해졌던 것이다. 카이사르가 원로원을 지나치게 믿는 것이나 박정희가 김재규를 지나치게 믿는 것이나 같다. 정신이 깨진 사람의 모습이다. 그런데 만약 육본으로 가지 않고 남산으로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은 김재규는 남산으로 갈 수 없었다. 


    남산으로 가면 쿠데타를 지휘해야 한다. 김재규가 대통령 되고 부하는 장관이 된다. 정승화를 인질로 잡고 장성들을 한 명씩 불러 체포한 다음 병력을 5천 명쯤 동원하여 방송국과 국회를 점거한다. 그러기에는 이미 정신이 깨져 있다. 그런 것은 혼자 못한다. 패거리가 있어야 한다. 부하들은 김재규에게 계획이 있다고 믿었다.


    김재규가 부하들을 속인 것이다. 박정희는 비열한 악당이 아니라 무너진 인간이다. 나쁜 길로 가면 원래 그렇게 된다. 인격자라도 독재자의 길을 가면 퇴행한다. 인간의 무의식이 그렇게 만든다. 선한 독재자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진정한 영웅은 죽은 영웅밖에 없다. 산 영웅은 모두 퇴행한다.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권력은 동일체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 인간이 치인다. 처음에는 운전자가 차를 통제하지만 나중에는 차가 사람을 통제한다. 권력이 사람을 통제한다. 히로뽕이 사람을 지배한다. 김재규는 말했다. '권력은 말이야. 혼자 먹으면 죽는 거야!' 박정희는 혼자 먹다가 죽었고 전두환은 나눠먹다가 죽었다. 어쨌든 죽는 거다. 


    민주주의가 아니면 어떻게든 죽는다. 검사동일체와 같이 권력이 동일체가 되려고 할 때는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정권교체다. 김재규는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는 왜 그랬을까? 대국적인 동일체를 위해 작은 동일체를 깬 것이다. 윤석열은 왜 그랬을까? 작은 동일체를 지킨 것이다. 본질은 같다. 인간은 보통 그렇게 한다.




[레벨:0]달래아빠

2020.02.03 (18:58:16)

영화는 안 봐도 될 듯합니다.

영화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재미있다는 말은 좀 그렇네요.

알찹니다.

이것도 그렇네요.

그냥 두루뭉술하게 말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정말 가볍게 쓴 듯한데 묵직한 느낌이 있습니다.

거칠고 투박한 듯한데 매끄럽습니다.


'진정한 영웅은 죽은 영웅밖에 없다. 산 영웅은 모두 퇴행한다.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이 짧은 세 문장을 읽은 것만으로도 책 한 권을 읽은 것 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kilian

2020.02.04 (04:38:46)

"권력은 동일체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 인간이 치인다."

http://gujoron.com/xe/1164279

프로필 이미지 [레벨:11]kilian

2020.02.04 (04:41:12)

다음 편으로 "서초동의 영감들"이란 영화가 나올 듯...
프로필 이미지 [레벨:13]르네

2020.02.05 (20:26:01)

김규평은 박통을 자신과 동일시 하는 듯 했음
김규평은 박통을 저격한게 아니라 자신을 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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