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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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480 vote 1 2019.04.29 (14:02:45)

    노무현 혁명과 뭔가 아는 이낙연


    "노 전 대통령의 정치는 뿌리를 가진 정치다. 한국 정치가 이전까지는 포 더 피플(사람을 위한), 그것도 입으로만 하는 것이었지만, 2002년 대한민국 정치가 드디어 바이 더 피플(사람에 의한) 정치가 온 것이라며 엄청난 문화적 변화가 왔다고 말했다." [이낙연 - 언론기사]


    구조론은 '위하여'가 아니라 '의하여'다. 위하여는 내부의 의도, 생각, 계획이지만 의하여는 외부의 물리적, 환경적 조건이다. 사건은 밖에서 안으로 가는 일방향성이 있다. 언제나 의하여가 먼저다. '의하여'는 절대적이고 '위하여'는 상대적이다. 생각이나 의도는 꾸며댈 수도 있다.


    '위하여'는 목적을 위하여 말로 꾸며진다. '의하여'는 에너지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흘러넘친다. 물론 '위하여'가 진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판과 같이 처음 벌어지는 일은 대부분 가짜다. 정치판에서 하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며 검증되지 않았다. 패스트트랙은 처음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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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정되는 선거법도 처음이고 공수처도 처음 있는 일이다. 국민에게 득이 될지는 해봐야 아는 거다. 어떤 중국 젊은이가 루빅스큐브 540개로 여자의 초상화를 만들어 고백했다가 차였다고 한다. 젊은이는 말할 것이다. 여성을 ‘위하여’ 뜨거운 마음을 담아서 만든 작품이다. 진실일까? 


    그냥 괴짜가 이상한 것을 만들어놓고 써먹을 데를 연구하다가 여자를 떠올린 것일 수 있다. 이런 프로포즈는 생전 처음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을 수 없다. 그냥 언론을 타보려고 여자를 이용한 것일 수도 있다. 마땅히 여자의 사전귀띔에 의하여라야 한다. 의하여가 진짜다.


    한국의 반노좌파는 아직도 낡은 '위하여'식 계몽주의에 붙잡혀 있다. '국민을 위하여'는 거짓으로 포장된 권력자의 탐욕에 불과하다. 일은 내가 시켜먹고 월급은 네가 받아가라고 하는게 위하여다. 주도권을 잡는 게 그들의 진짜 목적이다. 국민을 졸로 보는 관점을 버리지 못했다.


    위하여와 의하여의 차이를 모르면 진보를 말할 자격이 없다. 김대중은 평화다. 남북대결과 지역대결을 남북공존과 지역공존으로 바꿨다. 노무현은 탈권위주의다. 그런데 이게 뜨거운 감자다. 내부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유럽이라면 학생혁명에 해당된다. 68년에 일어난 일이다.


    한국은 30년 늦게 그것도 학생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무현에 의해서 탈권위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엘리트의 위하여를 민중의 의하여로 바꾸는 운동이다. 중국은 문화혁명이 탈권위주의 흐름인데 실패했다. 도로 권위주의로 퇴행했다. 일본이면 전공투와 적군파의 활동이 있었다.


    역시 망했다. 공통점은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를 물리적으로 타격하여 봉건 시스템을 뜯어고치려고 한 것이다. 지금은 미투운동이 있지만 본질은 같다. 권력 대 권력의 갈등이다.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 남자와 여자, 엘리트와 비엘리트간의 전방위적인 힘대결이 일어나고 있다.


    이낙연이 말한 노무현 정치의 뿌리는 유럽의 학생혁명, 일본의 전공투, 미국의 히피문화, 중국의 문화혁명과 연결되는 거대한 역사의 변증법을 말한 것이다. 이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앞으로도 이어진다. 백 년은 이어갈 전쟁이다. 말로 하는 민주주의는 가짜다. 피가 진짜다.


    생산력의 변화 때문이다. 근래 나타나는 20대 남자들의 좌절도 여학생이 공부를 더 잘하기 때문에 일어난 생산력 격차 때문이다. 남학생들은 농구하고 야구하고 게임하느라 숙제를 안 하므로 성적이 떨어진다. 숙제가 성적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남고로 전학가야 희망이 생긴다. 

 

    근래 역사가들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초대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를 제외한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네로 등이 저평가되었다고 한다. 원로원 출신의 후대인물 수에토니우스가 떠도는 소문을 모아 황제들의 삶De vita Caesarum이라는 책을 써서 황제들을 비방한게 먹힌 것이다.


    티베리우스나 칼리굴라가 성적으로 문란한 삶을 살았다는 식이다. 일부 그런 점이 있겠지만 저잣거리의 과장된 이야기가 많다. 공화정으로 복귀하기를 바라는 원로원은 조직적으로 유언비어를 살포했다. 본인의 잘못도 있지만 칼리굴라와 네로가 죽은 데는 유언비어도 한몫했다.


    조중동 짓은 그때도 있었다. 노무현을 죽인 자나 황제를 죽인 자나 같다. 역사의 본질적인 대결형태다. 왜 황제가 황제일까? 원로원은 그라쿠스 시절부터 호민관이 개혁안을 내면 암살했다. 카이사르 암살도 전통을 따른 거다. 호민관은 신체에 대한 신성불가침 특권을 만들었다.


    암살당하지 않으려고 근위대를 둔 것인데 근위대는 말을 안 듣는 원로원의원을 두들겨 패고 다녔다. 이런 짓을 처음 한 사람이 카이사르다. 그래서 살해된 것이다. 이후 근위대장의 권력이 커져서 개판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시민들은 빵을 원했고 빵은 이집트 속주에서 나온다. 


    이집트 속주는 황제의 직할령이다. 황제만 시민을 먹여살릴 수 있다. 황제는 지지율이 받쳐줘야 하므로 많은 돈을 들여 경기장을 짓고 검투경기를 했다. 돈이 바닥나면 원로원 의원을 반역죄로 몰아 토지를 빼앗았다. 토지는 본래 군인들에게 돌아갈 몫을 귀족이 가로챈 것이다.


    시민들은 황제의 원로원 탄압을 열렬히 환영했다. 무엇이 진실인가? 로마 공화정은 말이 좋아서 공화정이지 봉건시대의 귀족정에 불과하다. 원로원이 시민의 입장을 대변한 적은 없다. 공화정은 신라의 화백제도나 몽골의 쿠릴타이처럼 참고할 만하나 그게 민주주의는 아니다. 


    본질은 역사에 끝없이 반복되는 엘리트와 비엘리트의 대결이다. 진실은 힘의 균형에 있다. 원로원과 황제가 어떻게든 힘의 균형을 가질 때 로마는 번영했고 한쪽으로 기울면 망했다. 원로원이 공화정을 한다고 해서 로마가 잘 될 일은 전혀 없다. 역사의 답은 오직 생산력에 있다. 


    로마가 강해진 것은 한 가지 이유다. 그리스는 팔랑크스 밀집대형으로 싸웠는데 로마군은 짧은 검을 들고 상대적으로 흩어져서 싸웠다. 전쟁사로 보면 잘 흩어지면서도 대오가 무너지지 않는 군대가 항상 이긴다. 팔랑크스는 한때 무적을 자랑했지만 로마군은 손쉽게 깨뜨렸다. 


    돌밭으로 그리스군을 유인하면 된다. 팔랑크스는 동료와 어깨를 맞대므로 약간의 틈만 벌어져도 깨진다. 상대적으로 유연하면서도 붕괴되지 않고 대오를 유지하는 군대가 이긴다. 그런데 이는 모순된다. 흩어지면 패닉에 빠져서 붕괴되는게 보통이다. 왜? 장교가 없기 때문이다.


    징기스칸 군대는 흩어져도 금방 약속된 장소에 다시 모였다. 한니발 군대는 전투 중에 유연하게 진형을 바꿀 수 있었다. 알렉산더 군대는 순간적으로 적군 진형의 약점을 찾아 돌파하곤 했다. 반복되는 패턴은 상대적으로 보다 유연한 군대가 이기고 경직된 군대가 진다는 점이다.


    로마군은 카이사르 이후 사병처럼 되었는데 사병집단의 전투력이 군단병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다. 흩어져도 대오가 유지되려면 지휘관에 대한 충성심이 있어야 한다. 중간간부들의 역량이 받쳐줘야 한다. 부대를 장악하는 문제가 중요해진 것이다. 경험있는 장교단이 필요하다.


     카이사르가 군대를 잘 장악했다. 라이벌 폼페이우스는 충성스러운 장교가 없어 군대를 장악하지 못한 거다. 결정적으로 빵이다. 병사들에게 임금을 체불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원로원은 언제나 빵을 떼먹었다. 군인들에게 돌아갈 토지를 가로채는게 그들의 수법이다.


    카이사르 이후 원로원 시대는 완전히 갔다. 빵은 이집트 속주에서 오고 그사이에는 하나의 바다인 지중해가 있고 하나의 황제에 의해 통제되어야 그 빵이 병사들의 손에 전달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청나라 때 세금의 50퍼센트는 중간에 사라졌던 사실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역사의 본질은 생산력의 변화다. 전투력도 생산력의 한 가지 형태다. 생산력이 변하면 거기에 맞추어 국가 시스템을 다 바꾸어야 한다. 작금의 미투운동도 그렇고 20 남자의 불만도 그렇다. 현장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언론에 보도되지 않으니 일반인들이 모르는 것이다.


    태극기 부대가 뜨기 전에 노인자살이 사회문제가 되었는데 국민은 그런 문제의 존재사실을 몰랐다. 갑자기 왜 노인들이 자살하지? 연금제도가 자리잡지 못한 거다. 문제는 힘의 균형이다. 힘이 균형을 이룰 때 국민의 발언권이 생긴다. 여기에 민주주의 제도의 숨구멍이 있다. 


    노무현은 강자와 약자, 여성과 남성, 지역과 지역, 엘리트와 비엘리트간에 전방위적인 힘의 균형을 추구했다. 그 결과는 탈권위주의다. 노무현은 갔지만 노무현의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2천 년 전부터 엘리트 좌파는 노무현의 등에 칼을 꽂았다. 역사는 그렇게 반복되는 법이다.


    역사의 본질은 생산력의 변화를 반영하는 시스템의 변화다. 생산하는 자가 힘을 가져야 한다. 생산자인 국민에 의하여가 진짜다. 탈권위주의가 의하여다. 노무현의 싸움은 앞으로 백 년은 간다. 중국과 일본은 60년대에 탈권위주의를 해보려다가 말았으므로 우리가 주도하게 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8]kilian

2019.04.30 (04:24:13)

"역사의 본질은 생산력의 변화를 반영하는 시스템의 변화다. 생산하는 자가 힘을 가져야 한다. 생산자인 국민에 의하여가 진짜다. 탈권위주의가 의하여다."

http://gujoron.com/xe/1084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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