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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457 vote 0 2008.12.30 (23:33:55)

 돈오점수와 돈오돈수

깨달음은 돈오돈수다. 깨달음의 본의는 소통과 그 소통의 양식에 있기 때문이다. 지식 따위는 안 쳐주는 것이다. 소통의 양식이 진짜다. 원효가 해골바가지 물을 마시고 얻은 것은 초발심이다. 소요자재를 깨달았을 때가 진짜다.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사실 정도는 초등생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므로 이제부터 어떻게 살것인가다. 파계하고 요석공주와 살림을 차릴 것인가 아니면 계를 잘 지켜 큰 절의 주지를 맡을 것인가이다.

원효의 돈오는 해골바가지 물을 마셨을 때 얻어진 것이 아니라 민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다. 금강경의 이치를 알았을 때가 아니라 대중과의 소통하는 방법을 얻었을 때다.

돈오점수 혹은 점오점수는 스님들이 과학지식이 부족하여 사회에 적응을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고민이다. 산사에서 깨달은 스님이 사회생활에 적응을 못한다. 성철스님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탈이 나고 만다.

과학의 발달이 충분하지 않은 것도 원인이다. 미래에 과학이 더 발달한다면 점수의 문제는 사라질 수 있다. 과학과 깨달음의 불일치는 과학에도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과학이 깨달음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

과학이 없었던 고대에는 점수의 문제가 없었다. 석가의 제자 오백비구는 모두 깨달았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당나라 때도 그랬다. 깨달은 이가 도처에서 속출했다. 불교의 지식이 세속의 지식보다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점수의 문제는 깨달음과 세속적 삶의 불일치 문제로 이는 일정부분 사회의 문제일 수 있다. 스님이 대중과 소통하는 소통방식의 문제다. 절반은 스님이 답을 내야 하고 절반은 사회가 답을 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에서 충분히 공부하여 일정한 수준의 과학적 지식을 얻은 후에 깨달음을 구하든가 아니면 사회가 과학을 발달시켜 양자간의 불일치 문제를 해소할 수준에 도달하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지금은 깨달은 사람이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날 스님들은 돈오한 다음에도 점수하고 있다. 사회가 스님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로 나아가지 못하고 대기상태다. 깨달은 스님의 기여가 필요없다는데 어쩔 것인가?

점수는 깨달음 그 자체의 본질과 관련이 없다. 점수는 소통의 양식을 만드는 문제이며 그것은 대개 훌륭한 큰스님이 출현하여 혼자서 다 만드는 거다. 점수의 문제가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제대로 된 큰스님이 없다는 의미다.

저 깨달은 사람과 이 깨달은 사람이 마찰한다.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룰을 정해야 한다. 이는 개인이 수행으로 답을 낼 문제가 아니라 승단이 깨달음의 권위로 해결할 문제이다.

그 권위를 위해 한 명의 제대로 깨달은 사람이 필요하다. 그가 룰을 정하고 다수가 룰을 따르면 문제가 해소되고 점수는 필요없다. 지금 조계종에는 성철같고 원효같고 경허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그들은 룰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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