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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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662 vote 0 2017.08.20 (22:36:01)

1) 문재인 지지율 고공비행

안철수야 한건해라. 나도 좀 살자.

85퍼센트 지지율은 현기증 나는데. 안철수는 뭐 사고 안 치나?


2) 시어머니 집에 왜 살어?

양성평등은 이런 것부터 실천해야

어머니, 며느리, 도련님 이런 봉건시대 호칭이 아직도 존재한다. 그냥 김아무개씨 이아무개씨로 불러라. 야만은 부끄러운 것이다. 그게 결코 자랑이 아니라.


3) 경향의 개소리

  대안우파 전면에 선 미 2030 해방감 느껴. 미래 절망 박탈감에 가속화. 신나치 비판에도 쾌감. <- 이게 경향신문 기사제목이다.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구만. 그냥 '한경오도 나름 불만이 많다. 기레기 고충을 인정해달라.' 이렇게 써라. 알트라이트 빌려 자기 할 말 한다. 면전에서는 말 한마디 못하고 뒤로 돌려까는 비겁한 새끼들.

    미래 절망 박탈감은 개소리다. 그냥 가져다붙인 거. 뭔 말을 못하겠는가? 박근혜가 이뻐 죽겠다는 사람도 잔뜩 있는 판에. 권력이 눈앞에 있는데 뭔들 안이쁘겠는가? 중요한 건 에너지 통제가능성이다. 장사가 되니까 물건을 파는 거 아니겠는가? 식겁하고 정신챙기려면 더 당해봐야 한다. 일본의 적군파도 한때는 꽤 기세를 올렸다.    자기들이 스스로 조직화되어 에너지를 통제할 수 있다고 본 거다. 그러나 폭주하고 말았으니 자기통제 실패다.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샌더스 찍은 놈들이 트럼프 찍었다. 이석기 패거리나 홍준표 패거리나 도긴개긴. 통제가능성을 보고 간다. 준표 형아라면 워낙에 깡패니까 완력을 써서라도 우리 내부를 통제할끼라. 함 믿어보자고.    이석기 형님이면 주사빨로 품성이 높아서 우리 패거리를 통제할 수 있지. 함 밀어보자고. 이러다가 망한 거다. 왜? 자기통제를 못해서. 근데 특이한 건 베트콩이다. 적군파는 자기통제 못하고 폭주하다 망했다. 베트콩은 미군이 구정공세를 토벌하며 지휘부를 제거하는 바람에 도리어 흥했으니 어쩌면 하노이가 차도살인지계 쓴 거.    구정공세 때 원래는 북군이 호응하여 남침하게 되어 있었다. 김일성이 625로 박헌영 제거하는 공식 작동이다. 베트콩이 전국에서 일제히 궐기했지만, 북베트남은 생깠다. 호응하지 않은 거. 베트콩 지도부가 제거되자 북베트남이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 문제는 미군들이 원체 띨빵해서 이런 복잡한 손자병법을 모른다는 거다.    미군은 역으로 베트콩 지도부를 키워 하노이정권에 맞서도록 이이제이를 구사해야 하는데 아이큐가 딸려서리. 바르샤바 봉기를 떠올려도 좋다. 소련군이 국경선에 근접하자 폴란드 레지스탕스가 선수친다. 북베트남 제끼고 베트콩만의 힘으로 사이공을 접수하자는 거다. 소련군이 닿기 전에 폴란드에서 자력으로 일어나야 한다.

    스탈린은 역시 북베트남 수법을 썼다. 소련은 몽골에게 수백 년간 털렸기에 손자병법 근처에는 가봐서 좀 아는 게 있었다. 나치 돌격대는 히틀러가 장검의 밤으로 소탕했다.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에른스트 룀을 비롯한 돌격대 지도부를 일망타진했다. 귀족출신인 극우 군부세력에 어필하려고. 에너지 통제가능성의 공식을 따라간다.

    구 프러시아 귀족들은 무개념 하층민이 무질서하게 모인 나치가 적군파처럼 폭주하다가 내분으로 자멸할줄 알았는데 장검의 밤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어라?! 저 또라이 새끼들이 나름 내부질서를 만들 줄도 아네? 허접쓰레기가 아니었네. 이런 식이다. 경향신문은 글자 깨나 배웠다는 놈들이 나치 꼴통같은 개소리 하면 안 된다.

    역사수업 때 한두 번 배웠나 말이다. 배웠으면 티를 내야 한다. 오광과 진승부터 시작해서 스파르타쿠스까지 동일한 흥망공식이 있다. 반드시 내부분열 한다. 스파르타쿠스 부하들이 스파르타쿠스 말을 절대 안 듣는다.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 겨우 자유를 찾았는데 다시 스파르타쿠스의 압제를 받아들이라고라? 말 되는 소리냐?

    부하들은 멋대로 폭주했다. 전혀 통제되지 않았다. 당연히 망했다. 만적이 흥국사에 노예 수백 명을 모았는데 순정이 면천에 더하여 황금 80냥을 받고 배신했다. 임꺽정도 서림의 배신을 막지 못했다. 내부통제의 실패다. 잼있는 건 고려시대 무신의 난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신라 골품제의 전통이 여전히 살아있던 신분제 사회다.

    무신들은 수벽대회나 격구경기에서 실력으로 임금의 눈에 들어 벼락출세한 하층민 출신이다. 정중부는 단지 얼굴이 잘 생기고 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출세했다. 문벌귀족은 문신이고 무신들은 평민이나 서얼 아니면 노예출신이다. 문벌귀족은 결혼관계로 엮여 자기통제가 되는데 무신들은 보나마나 내분 일으켜 자멸할 놈들이다.

    그런데 왜 무신정권이 무려 100년이나 갔지? 백 년이면 이건 나름 성공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우선 무신이 문신을 싸그리 죽였다. 조정이 텅 비어버린 것. 다음 무신들이 내분을 일으켜 서로 죽였다. 문신이고 무신이고 간에 아주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 덕분에 최충헌의 독재정치로 무신정권이 100년을 갔다는 거 아닌가?

    태종이 외척을 싹죽여 세종의 치세를 열어젖힌 것과 같다. 이명박은 김대중, 노무현 두 분을 제거하여 정권재창출했다. 그 역효과는 한참 후에 작동한다. 조선시대 무수히 많은 사화도 패턴이 정확히 같다. 우리는 그냥 사화라고 하지만 고려시대 무신정권 재탕이다. 김종서 등은 최충헌과 입장이 같다. 뻔한 공식을 다들 알고 있다.

    선비들이 쫄아서 긴장한다. 무개념 조광조와 김종직이 정중부를 모욕했다가 무신의 난을 촉발한 김부식 아들짓을 한 것이다. 우리는 선비들이 남긴 기록만 믿고 유자광을 간신으로 알지만, 그거 순진한 생각이다. 김부식 아들이 정중부 수염을 태워먹은 건이나 김종직이 유자광의 현판을 떼어버린 것이나 같다. 분명한 하극상이다.

    민중은 선비를 지지하지 않았다. 임금도 자기 지지율을 올리려면 선비의 발호를 억눌러야 했다. 선비라고 쓰고 문벌귀족이라고 읽는다. 문제는 선비를 죽이면 지도부가 제거되어 오히려 세력이 커진다는 거다. 김대중, 노무현을 제거하자 지도부에 공백이 발생했다. 이에 구조론의 축이 이동하여 결대로 구조론이 작동을 시작한다.

    패턴은 뻔하다. 1. 오광과 진승이 반란을 일으킨다. 3. 반란군은 자기들끼리 내분을 일으켜 붕괴한다. 3. 적당한 때 관군이 반란군을 토벌한다. 4. 지도부가 몰살되자 의사결정구조가 세팅되어 오히려 더 세력이 커진다. 5. 낡은 시스템이 붕괴하고 새로운 제도가 안착한다. 사림을 제거한 사화가 오히려 사림세력을 키워놓은 셈이다.    이것이 역설이다. 모든 일이 각본에 의해 진행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심전심으로 누구나 안다. 결과적으로 제대로 된 의사결정구조를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 카이사르를 살해하기는 했지만, 합당한 의사결정구조를 브루투스와 그 일당들은 만들지 못했다. 처음 민중은 지켜본다. 싹수가 글렀다 싶으면 반대쪽에다 힘을 준다.    민중은 이명박근혜 삽질을 뻔히 알고 찍었다. 과연 지들끼리 내부질서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하는지 흥미를 가지고 지켜본 것이다. 뉴라이트는 말리고 최순실이 해먹었다. 싹수가 글렀다 싶으니 일제히 돌아선다. 덕분에 문재인 지지율 85퍼센트 찍는다. 홍준표와 박근혜 잔당을 제거하지 않고 방치하면 오히려 애매해져서 자멸한다.    공화당, 알트라이트, 트럼프, 티파티라는 이질적인 세력의 무질서한 연대다. 공통분모가 없다. 이런거 원래 오래 못 간다. 이들이 내부 교통정리를 해낼 역량이 있는지 유권자들은 지켜본다. 특권화된 공화당과 티파티 지도부를 싸그리 말살하고 알트라이트가 접수하여 재질서화에 성공하는지 예의 주시하는 것이다. 물론 난망이다.    마찬가지로 노빠, 한경오, 정의당, 호남의 이질적인 세력이 연대하고 있다. 교통정리 해낼 내부역량을 갖추고 있는지를 촛불이 검증했다. 무신의 난은 거란족의 침입 등의 외풍을 타서 흥했고, 사림세력은 역시 사화를 일으킨 명과의 외교관계로 흥했고, 베트콩도 마찬가지로 외부 환경변화로 흥했다. 답은 언제라도 외부에 있다.     노빠세력은 한국의 IT산업이 흥해야 흥한다. 알트라이트는 외부환경변화로 망하게 되어 있다. 외전을 일으켜야 흥하는데 내전을 일으킨 것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차도살인지계를 써야 한다.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와 같은 외부의 손을 빌려 공화당 지도부와 티파티를 싹쓸이 처단해야 알트라이트가 잡는 건데 현실성은 없다.  이회창 차떼기 응징과 최병열, 홍사덕, 조순형, 이기택, 이인제 등 탄핵무리를 소당한 것이 오히려 새누리 집단 내부에 커다른 권력공백을 일으켜 이명박근혜의 집권을 도운 점은 아이러니다. 그런데 보통 이렇게 간다. 우리쪽도 이참에 중간계급인 한경오를 소탕해야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4) 일본 노인의 폭력난동

    갑자기  집단내 서열착오 일으킨 거


    고립감 좋아하네. 고립감은 옛날 노인들이 더했다. 노인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폭력을 행사할 힘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을 최근에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다. 의료복지, 평균수명 연장, 노인인구 증가, 경제력 향상 등으로 과거의 소외되고 힘 없는 불쌍한 노인에서 힘 있는 무시못할 노인으로 사회적인 입장이 바뀐 것 뿐이다. 힘으로 제압해서 본인에게 힘이 없다는 사실을 납득시켜줘야 한다. 사회가 무시해도 별 수 없다는 사실을 납득하면 조용해진다. 내부에서 답을 찾으면 대부분 헛소리다. 혹돔은 서열 1위가 죽으면 서열 2위가 호르몬이 변해서 갑자기 형태가 변하고 혹이 부풀어 오르고 등등 여러가지 신체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노인들은 기죽어 살던 서열 꼴지 혹돔이었는데 갑자기 헷갈려서 혹시 내가 집단내 서열 1위가 아닌가 하는 심리적 서열착오를 일으킨 거. 넌 서열이 꼴등 맞거등 하고 확인시켜주면 된다. 인구이동으로 제압가능.


5) 문학은 일대일

약간 말이 통하는 사람이 등장

신과의 일대일을 떠올리게 하는 마루야마 겐지의 세계와의 일대일

구조론의 일대일은 대표자라는 개념, 인류를 대표하지 않으면 문학이 아니고 예술이 아니라. 예술은 승자독식. 2등은 없어. 대표자는 언제나 한 명 뿐. 인류의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게 예술.

마루야마 겐지의 화두는 자립, 대표성이 중요할 뿐 자립이 중요한건 아냐. 도원결의가 더 멋있어. 자립이 아니라 대표성. 사회의 고통을 느끼는게 중요. 반사회적인 행동은 중딩행동. 어쨌든 하루키는 초딩.

 대부분 일본문학은 '사私소설'이다. 마누라가 어쨌다는 둥, 와인이 어쨌다는 둥, 나는 이렇게 괴롭다는 둥근본적 고민이 없다. 그런 소설은 벽장 속에 넣어두고 저 혼자 읽어라. 다들 나르시시스트투성이였다. 일본 문학의 3대 나르시시스트가 있다. 다자이 오사무, 미시마 유키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다. 다들 망상을 가지고 쓰더군. 하루키 초창기 소설을 좀 읽어봤다. 이제는 읽지 않는다. 나르시시즘의 전형이지. 평범에 미달하는 남자가 미녀에게 둘러싸여 늘 사랑을 받더군.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꿈이다. 작가의 콤플렉스지. 읽는 독자도 마찬가지고."

마루야마 겐지가 말하는 사私소설은 구조론에서 말하는 자기소개.초딩어법을 벗어나지 못한 거. 그러나 마루야마 겐지도 중딩에서 탈출하지 못해. 초딩은 인정받으려 하고 아부하지. 중딩은 반항해. 니체나 노자를 언급하지. 진짜는 공자. 어른은 대표하고 복제하지. 문학은 질문하고 철학은 답하니까 문학가는 원래 철학가에 못 미쳐. 마루야마 겐지를 비난할 수 없어. 다 그러니깐. 그러나 헤밍웨이는 뭔가 있지.

"멜빌의 '모비딕'. 스케일이 다른 작품이다. 단순히 문학이 아니라 인간과 우주에 대한 철학이 들어있다.

하나의 논리를 만들고 그 논리로 또 하나의 우주를 설계하고 복제하는게 구조론의 정답. 그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였느냐가 중요해. 타협하면 안돼 로리타는 타협한거. 스탠리 큐브릭은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처리 즉 타협한 거. 인간성의 어떤 지점을 폭로한게 진짜. 97년작은 여주인공 연기만 살아났고 퀼티와 험버트는 찌질해. 제대로 미친 인간이 못된 소시민. 영화는 대표성이고 그러려면 대표적으로 또라이라야 인정. 인류의 극한을 보여주는 것. 모비딕은 진짜 미친 넘 맞아. 대표적으로 미쳤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철학은 지극히 일본적인 것. 대륙의 호걸들은 열심히 안 살아. 도원결의가 중요한 거. 만남이 중요하고 팀이 중요한 거. 목숨을 걸 대상을 찾는게 중요하고 그러려면 확률을 올려야 하고 확률을 올리려면 좀 놀아야 해. 잡스가 워즈니악을 만나려면 노력해서는 안돼. 범생이는 영웅을 못 만나. 길들지 않는건 좋은데 팀을 만들지 못하는건 콤플렉스의 표현일 뿐. 이 자도 변종 나르시시스트.


6) 여자가 남자보다 더 진화했다.

사회성의 증대가 진화의 방향이라면 여자와 어린이가 변화를 주도했다.

    진화의 방향을 사회성의 증대로 보면 크로마뇽인의 등장 이래 20만 년 동안 주로 여성의 변화가 사회성의 발달을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은 아기를 키워야 한다. 문제는 육아기간이 길다는 점이다. 여기서 서열문제가 생긴다. 대부분 유인원은 암수 할 것 없이 서열이 엄격하다.

    늙은 오랑우탄 수컷은 얼굴에 거대한 지방 주머니가 있다. 두목의 표지다. 고릴라는 실버백이라 불리는 수컷 우두머리가 자식의 생산을 독점한다. 다른 수컷들은 재수가 없으면 평생 동정으로 보내야 한다. 서열이 높은 암컷은 수컷을 많이 낳고 서열이 낮은 암컷은 암컷을 낳는다.

     사람 남자는 수염이 특징이다. 대머리도 일부 수컷 어른의 특징이 될 수 있다. 이런 성적 표지는 집단의 결속을 유지하는 장치다. 사자 수컷은 갈기가 있어야 한다. 사자는 암컷이 사냥하고 수컷은 집단을 유지한다. 늙은 침팬지 수컷이 지위를 유지하려면 암컷의 지지가 필요하다.

    기운센 젊은 수컷 도전자에게 밀려나 무리에서 추방될 수 있다. 침팬지 집단은 서열구조 때문에 무한정 커질 수 없다. 서열 피라미드의 정점에는 한 개체만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두목이 둘로 되면 갈등하다가 결국 그룹이 찢어진다. 구조적으로 대집단이 출현할 수 없는 거다.

    인간은 여성 위주의 독특한 서열구조를 만들었다.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말은 여자가 더 잘한다. 아기를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사냥만 하면 되므로 말을 잘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인간은 아들을 많이 낳거나 혹은 오빠와 동생이 여럿인 여자가 집단의 우두머리가 된다.

    인간은 유인원과 달리 동료를 규합해서 서열을 높일 수 있다. 여성의 매력은 서열을 높이는 장치다. 여성의 서열경쟁은 집단을 크게 만든다. 여기에 할머니의 역할이 있다. 인간은 왜 다른 동물과 달리 여성이 폐경 이후에도 오래도록 생존하는 것일까? 얼마 전에 신문기사로 나왔다.

    아기를 돌보는 역할 때문으로 되어 있지만, 집단 내의 서열구조를 안정시키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 할머니가 누구를 지지하는지에 따라 두목이 결정되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폐경이 없으므로 예외다. 서열을 안정시키는 역할이 없으므로 할아버지는 할머니처럼 오래 살지를 못한다.

    종교의 출현은 여성 사제가 집단의 리더가 되었다는 의미다. 죽고 없는 조상이 집단의 우두머리가 된 셈이다. 남자의 수염이나 사자의 갈기나 오랑우탄의 볼주머니를 신과 같은 추상적 존재가 대리하게 된다. 남자가 지배하면 추상적인 부족의 표지가 필요없다. 힘대결로 결판낸다.

    남자가 우두머리 자리에서 끌어내려지자 대립과 충돌을 일으키는 서열경쟁이 무너져서 집단의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 서열은 민감한 문제라서 수시로 충돌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원시 부족민 사회에 집단의 두목은 당연히 여성이어야만 한다. 남성은 일단 동원력에서 뒤지는 거다.

    인간은 육아기간이 길어서 자녀들이 독립하지 않고 엄마에게 포섭되어 엄마를 따른다. 엄마를 두목 위치로 밀어 올린다. 여기에 언어가 기능한다. 남자는 자식이 없기 때문에 자녀를 포섭할 수 없다. 고릴라는 다르다. 일단 모두 실버백의 자식이다. 서열 낮은 수컷은 짝짓기를 못 한다.

    정리하자. 20만 년 전에 인간은 많아야 100개체 미만이 작은 무리를 이루었고 실버백처럼 남자가 리더였다. 내부서열은 엄격했으며 서열은 완력으로 결정했고 여자도 서열경쟁이 치열했으며 사냥능력은 남녀 간에 별 차이가 없었다. 자녀의 생산은 두목 남자 한 명이 거의 독점했다.

    타 집단과의 교류는 적었다고 봐야 한다. 서열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5만 년 전에 인간은 500개체 정도로 무리가 커졌고 여자가 리더였으며 원시종교가 존재했고 신과 같은 추상적 존재가 집단을 결속시켰다. 족장이 된 여자는 약초를 다룰 줄 알고 주술을 부리는 능력이 있었다.

    다산을 하고 매력을 과시하여 동료의 숭배와 지지를 받는다. 여기에는 할머니의 평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말을 잘하고 매력적이고 지혜로운 여자가 두목이 된다. 여성의 매력은 남자에게 어필하는 것이 아니라 아기를 따르게 하고 동료 여성이 숭배하게 하여 집단을 결속시킨다.

    아기의 귀여움 공격과 같은 원리다. 여성의 발달된 사회성에 의해 타집단과의 교류는 늘어났다고 봐야 한다. 모계사회는 외부세력과의 접촉이 서열문제를 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의 지지와 많은 숫자의 자녀와 여성 사제의 주술에 의해 서열은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다.

    1만 년 전부터 인간은 거대종교가 출현하여 무리가 1천 개체 이상으로 커졌고 거듭된 전쟁으로 남성 사제가 권력을 가져가게 되었다. 물론 정글이나 고립된 지역은 지리적 한계로 대집단이 출현할 수 없다. 식량이 풍족한 몇몇 지역에 대집단이 출현했고 이들이 세계사를 지배했다.

    종교의 등장은 여자가 씨족집단 밖의 다른 남자를 선택한다는 의미다. 오늘날에도 교회를 찾는 여성신도는 친아버지 놔두고 다른 사람을 아버지로 섬긴다. 이런 점이 5만 년 전과 1만 년 전에 인류를 전 세계로 흩어지게 만들었다. 인류는 15만 년간 아프리카 북동부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가 두 번에 걸쳐 디아스포라를 일으킨 것은 이유가 있다. 아메리카로 이동한 스페인 사람은 죄다 남자였다. 원시 부족민 시대에 남자만 이동해서는 의미가 없다. 여자가 가야 문명이 전파된다. 왜 여자가 갔을까? 서열을 높이기 위해서다. 낯선 남자를 자기편으로 만든 것이다.

    반대로 남자가 여자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결혼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다윈의 성선택설은 남자가 예쁜 여자를 선택했다는 견해다. 부족민에게 그런 거 없다. 여자는 남자를 선택해도 남자는 여자를 선택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남자는 집이 없기 때문이다. 원래 집은 여자가 짓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선택한 것은 사유재산의 발생 이후다. 다윈의 성선택설은 틀렸다. 물론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남자가 여자를 선택한 역사는 길어야 1만 년 안팎이다. 현대사회라도 남자가 장가들어 처가에 적응하는 예보다 여자가 시집와서 시가에 잘 적응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여성은 낯선 지역에도 잘 간다. 외국이라도 국제결혼해서 간다. 남자는 낯선 곳에 적응하지 못한다. 자기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집이 없기 때문이다. 혼자 갔다가 얼어죽는다. 여자는 아기를 키워 자기 세력을 만들 수 있다. 집을 지어 식량을 보관하고 추위를 견딘다.

    1만 년 전 부족민 사회에서 말 잘하고 매력 있고 사회화 훈련을 받았고 할머니 그룹의 평판제도를 운영하는 여성이 집단의 서열구조를 안정시키는 점에서 더 사회화 능력이 높다. 긴 육아가 사회화 과정이다. 자식을 교육시켜 자기편을 만든다. 남자는 서열경쟁 하다가 사회화를 깬다.

    남자는 돈으로 버틸 뿐 대개 적을 만든다. 남자가 큰 무리를 이루고 사회화에 참여한 것은 전쟁과 사유재산 덕분이고 이는 농업의 출현 이후이며 길어야 7천 년 정도다. 부족민들은 아기가 왜 생기는지 모른다. 부족민에게 여성의 임신기간 10개월은 길다. 인과관계를 추적할 수 없다.

    모자관계는 있어도 부자관계는 없다. 남자는 자기편을 만들 기회가 원초적으로 없다. 일단 자기 아들이라는 보장이 없다. 중세 귀족무덤을 발굴해 유전자를 조사했더니 넷에 하나꼴로 남의 자식이었다고 한다. 부모자식관계로 알려진 무덤이었는데 말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다.

    서열경쟁을 일으켜 부자간에도 충돌한다. 세계사에 자식이 아비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는 것은 일단 기본이다. 무수하다. 일단 고구려사를 검토해보더라도 초기에 왕위계승은 거의 대부분 수상하다. 과연 유리명왕은 동명왕 주몽의 자식일까? 천만에. 그거 믿으면 순진한 사람이다.

    부여계에서 밀어낸 것이다. 침팬지 무리에서 집단 내부의 서열변화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일으킨다. 여러 마리가 희생되어 죽어 나가는 수가 있다. 인간이라 해서 다르겠는가? 의사소통 능력이 뛰어난 여성이 유리하다. 남자는 일단 내부 서열경쟁에 들어가기가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집단의 거점이 집이고, 그 집은 여자의 공간이며, 집에는 여자의 자식들과 할머니들이 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의 편은 그 공간에 한 명도 없다. 아버지나 자식은 경쟁자다. 결정적으로 여자를 선택할 수 없다. 선택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집에 데려올 수 없다. 일단 집이 없다.

    갓난아기를 대상으로 실험했는데 아기들이 잘생긴 남자와 여자 얼굴을 주목했다고 한다. 아기가 주목한 남자 사진은 장동건이었다고. 여성의 미모는 아기를 주목하게 하고 동료 여자의 지지를 끌어내어 집단을 결속시키는 장치다. 물론 남자 오빠와 남동생의 지지도 끌어낼 수 있다.

 

7)구조론의 출발

양파껍질을 계속 까면 방향과 순서 곧 질서가 나온다.


    양파껍질을 계속 까면 최후에 무엇이 나올까? 아무것도 없다. 틀렸다. 껍질들의 방향과 순서가 있다. 양파껍질을 계속 까면 최후에 질서가 나온다.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무언가를 보려고 하므로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친다. 방향과 순서를 보고도 보지 못한다. 감추어진 내면의 질서를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구조론과 구조론 아닌 것의 차이다. 요구되는 것은 거대한 발상의 전환이다. 뭐든 까보면 안에서 뭐가 나온다고 믿는 사람과는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없다. 백인은 영혼이 희고 흑인은 영혼이 검다는 식이다. 땅콩을 까면 알맹이가 나오고 사람을 까면 영혼이 나온다는 믿음 말이다. 틀렸다. 사람을 까봐도 나오는 건 전혀 없다.

    악당의 영혼에는 악의 원소가 스며 있고 착한 사람의 영혼에는 선의 원소가 스며 있다는 식이다. 틀렸다. 선악을 결정하는 원소는 없다. 원자론적 사유는 틀렸다. 아무것도 없더라는 허무주의로 도피해도 좋지 않다. 분명 무언가 있다. 구체적인 알맹이는 없지만, 대신 추상적인 질서가 있다. 다만 인간이 추상에 약한 게 단점이다.

    선악을 결정하는 원소는 없어도 선악을 결정하는 질서는 있다. 알맹이는 없어도 껍질은 있다. 인간은 사회라는 껍질을 쓰고 있다. 거기에 선악을 결정하는 질서가 분명히 있다. 좋은 껍질을 쓰면 좋은 사람이 되고 나쁜 껍질을 쓰면 나쁜 사람이 된다. 외부의 껍질에 의해 결정되므로 상대적이다. 그러나 그 질서는 절대적이다.

    구조론은 상대주의이면서 절대주의다. 결과는 상대적이나 원인은 절대적이다. 결과보다 원인이 중요하다. 원인측은 에너지를 태우고 있고 우리는 그 에너지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 측면보다 절대적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므로 구조론은 절대주의다. 인간의 관측은 상대적이고 에너지의 질서는 절대적이다.

    우리는 상대로 관측하고 절대로 통제한다. 문제는 마인드다. 세상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와 자세와 입장이다. 포지션이다. 세상과 나 사이에 금긋는 방식이다. 에너지가 없는 외부 관측자의 포지션에 서면 안 된다. 에너지를 가진 내부 통제자의 포지션에 서야 한다. 그럴 때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니 곧 깨달음이다.

    무언가 눈으로 보려고 하면 안 된다. 분별하고 비교하고 평가하려고 하면 안 된다. 통제하려고 해야 한다. 남녀를 분별해도 좋지 않고 남녀를 비교해도 좋지 않고 남녀를 평가해도 좋지 않다. 한일을 분별해도 좋지 않고 한일을 비교해도 좋지 않고 한일을 평가해도 좋지 않다. 기본적으로 세상과 나 사이에 금을 잘못 그었다.

    관측하면 선과 악의 이원론이 얻어진다. 통제하면 에너지 질서의 일원론이 도출된다. 자연에는 오직 에너지의 방향과 순서가 있을 뿐이다. 보려는 색깔도 없고 전해지는 맛도 없고 맡으려는 냄새도 없고 들으려는 소리도 없고 느끼려는 촉감도 없다. 계에 태워진 에너지의 질서가 있을 뿐 나머지들은 모두 인간의 관념이다.

    답은 에너지다. 관측자의 개입도 에너지를 이룬다. 에너지가 둘이므로 틀렸다. 이중기준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사건의 질서를 추적하려면 하나의 에너지를 운용해야 한다. 인간이 관측한 역순으로 에너지가 진행하므로 관점을 이동시켜야 한다. 에너지의 방향과 순서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벤처기업의 성장성을 논한다면 그 업체가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있느냐를 보려고 할 뿐 그 업체가 내부에 어떤 의사결정구조를 조직해놓고 있는지를 살펴보지는 않는다. 애플이든 MS든 아이템은 대개 외부에서 주워온 것이다. 아이템은 외부에서 관측되지만 내부 의사결정구조는 일을 시켜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본질은 의사결정구조의 차이다. 내적인 조직의 통제가능성이며 외적인 환경변화에의 대응능력이다. 에너지의 운용능력이다. 아마존은 그게 다르다. 페북도 수준이 다르다. 다르게 통제하고 다르게 대응하며 다르게 운용한다. 그들은 특별히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출발한 게 아니라 평범한 아이템으로 다르게 의사결정했다.

    초기 아마존의 경쟁자는 백만 개나 있었다. 페북보다 싸이월드가 먼저 있었다. 망한 기업들은 의사결정구조가 망해서 망한 거다. 몽구차의 멸망은 오너의 생색내기 경영 때문이다. 기본에 충실해 고장 안 나는 차를 만들면 기술자가 권력을 갖지만, 비싼 전자장비를 옵션으로 붙여 고가품을 히트시키면 CEO에게 칭찬이 간다.

    육군이 잘해서 이기면 사병이 칭찬을 듣고 공군이 신무기로 잘해서 이기면 히틀러가 칭찬을 듣는다. 덩케르크 사태의 이유를 알 수 있다. 대부분 기본에 충실하기보다는 신무기로 어째보려고 했다. 회사를 띄우기보다 자기를 띄우려고 한다. 그러다가 돌발적인 리스크에 대응하지 못해서 망한다. 망하는 건 정한 공식이 있다.

    롯데고 현대고 마천루 짓다 망한다. 흥하는 건 공식 더하기 확률이다. 좋은 소식은 늦게 온다. 경쟁자가 모두 죽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관측본능을 극복하고 깨달아 추상적 사고를 익혀야 한다. 통제가능성 관점을 가져야 진짜가 보인다. 통제하고 대응하고 운용하라. 안을 통제하고 밖에 대응하고 에너지를 운용하라.

    태초에 무엇이 있었는가? 에너지 방향성이 있었다. 1은 성질을 갖출 수 없다. 우리는 어떤 1의 존재로부터 사유를 시작한다. 틀렸다. 완전성의 복제로부터 사유를 시작해야 한다. 태초에 하느님이 있었다. 우주가 있었다. 아담이 있었다. 빛이 있었다. 말씀이 있었다. 원자가 있었다. 태초에 어떤 것이 있었으며 그것은 1이다.

    틀렸다. 태초에 1은 있을 수 없다. 어떤 것이 있으려면 그것을 있게 하는 그 무엇의 존재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의 문제다.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은 관측자인 인간이 건드렸을 때 반응한다는 거다. 어떤 것이 있는데 일체의 반응을 하지 않는다면? 유령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없는 것이다. 반응해야 존재한다.

    반응한다면 그 반응의 출발점이 있어야 한다. 타자의 배트에 투수의 공이 맞았다면 공의 진행방향이 꺾인다. 그 의사결정의 시작점이 있어야 한다. 외국인 선교사가 배를 타고 개항을 요구하며 조선을 방문한다. 어디까지 왔을 때 조선이 반응하는가? 왕의 반응을 포착해야 조선을 발견한 것이다. 제주도 앞바다를 지나갔다?

    조선에 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물질이 작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마다 고유한 속성이 있으며 그러한 성질의 차이로 분별이 가능하다고 믿지만, 막연한 말이다. 원자니 속성이니 하는 모호한 단어 뒤로 숨은 것이니 비과학적 접근이다. 원자는 쪼개지지 않으니 역시 반응의 문제이며 속성은 관찰되니 역시 반응문제다.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달렸다. 즉 어떤 것이 속성이 어떻다는 것은 반대로 그것을 관찰한 관찰자의 감각세포가 어떻다는 즉 역설적 자기소개가 된다. 양자역학의 세계로 들어가면 그러한 관찰자의 입장은 무의미해진다. 그런 것에 반응하지 않는다. 우리가 관측도구로 삼는 눈, , , , 몸을 무시한다.

    그렇다면? 관측대상 그 자체의 고유한 내적 질서를 근거로 삼아야 한다. 관측자가 개입하면 틀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짜장면이 좋다거나 혹은 짬뽕이 좋다거나 하는 건 짜장면이나 짬뽕 그 자체와 무관한 관측자의 입맛에 대한 보고다. 인간이 들이대지 않아도 관측대상이 스스로 질서를 내밀어야 한다. 첫째는 출발점이다.

    양파껍질을 까면 껍질들의 방향과 순서가 있다. 1번은? 건드렸을 때 반응을 하는 시작점이다. 문제는 그 시작점이 엉뚱한 곳에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구리와 납의 무게를 개량하지만 무게는 지구중심에 있다. 구리와 납은 관계가 없다. 한국에서 1킬로그램이 미국에서도 1킬로인가? 달에서도? 지구중심과 가까울수록 무겁다.

    반응이 엉뚱한 데서 일어나므로 관측은 무효다. 우리가 사물을 관측하는 방법은 사실은 인간의 자기소개다. 우리는 사물의 비중을 재는데 지구를 이용하지만 양자역학 단계로 깊이 들어가면 중력을 쓰는 방법은 비과학적이 다. 신뢰할 수 없다. 어떤 1은 존재할 수 없다. 1은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응점을 도출해야 한다.

    최소 2라야 센터가 반응점을 이룬다. 당구공을 건드렸다. 당구공이 반응하려면 무게중심이 당구공 전체를 장악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깨진다. 깨지면 당구공의 질량을 관측할 수 없다. 깨지면 반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을 관측하려면 불을 꺼트리지 말아야 한다. 비누거품 꺼지면 관측실패다. 대표자 1점의 도출이다.

    최소 2라야 1점이 도출된다. 반응하면 그 정보를 읽을 3이 있어야 한다. 전달하려면 4가 있어야 한다. 정보 1, 대표 2, 읽기 3, 전달 4, 수용 5가 계 내부에 갖추어져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관측할 수 있다. 에너지를 태우는 다섯 개의 양파껍질이 하나의 질서를 이룬다. 하나의 존재자가 된다. 어떤 소립자든 벗어날 수 없다.

    외부 에너지 작용을 처리하는 닫힌계의 내부질서가 반드시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이 있다고 치고 그것을 건드리면 그대로 밀려간다.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반응하는게 특이하다. 지구에서는 대부분 중력 때문에 반응한다.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소립자는 무사통과다. 1초에 1억 개의 소립자가 내 엄지손톱을 지나가고 있다.

    반응하지 않는다. 무와 가깝다. 내적 질서는 대칭에 의해 도출된다. 반작용한다는 것은 힘의 진행방향을 바꾼다는 즉 맞선다는 말이다. 맞서려면 그 맞서는 최초지점이 결정되어야 한다. 어떤 존재든 그 일점을 도출할 수 있는 구조가 있다. 배트와 접촉한 이후 어떤 상태에 도달했을 때 공이 튀어나가는가? 대표성의 문제다.

    그것이 양파껍질이다. 우리가 쓰는 시간과 공간은 그 껍질의 일종이다. 에너지와 밸런스와 대칭과 호응과 데이터가 껍질을 이루며 우리는 그중에서 공간대칭과 시간호응을 알지만 그것의 정확한 의미는 모른다. 시공에 셋을 더해 다섯이 계를 이루고 있다가 외력의 작용에 반작용하며 그 과정에 내적 질서를 복제해 전달한다.

    우리는 이 질서를 복제하여 만유를 이해할 수 있다. 사물의 관측은 원시적인 방법이고 구조의 복제가 진실하다.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은 저 세계에 있다. 이 세계로 넘어오지 않으면 안 된다. 관측의 귀납세계에서 복제의 연역세계로 점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이 안 통해서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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