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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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ahmoo
read 4800 vote 0 2009.03.16 (14:57:21)

뭐든지 과도하게 몰두하다보면 자기 자신을 잃게 되는 일이 잦아집니다. 자신을 잃어버리면 자기도 모르게 무례한 짓을 함부로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뻔뻔함을 점점 두텁게 두르게 되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아이를 기르는 부모가, 혹은 서로 사랑한다고 입이 닳도록 속삭이던 연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개입하고 서로의 영혼이 질식하게 하는 일이 흔히 벌어집니다.

그들은 관계에 너무 몰두하다보니 그 속에 풍덩 빠져버리고 마는 겁니다. 관계란 이어지고 이어져서 더 큰 관계의 장으로 끊임없이 확장됩니다. 관계가 그렇게 서로 이어져 우주 전체와 맞닿지 못한다면 시들어 죽기 시작합니다. 아이와, 혹은 연인과의 관계에 심히 몰두하여 더 너른 관계의 장으로 뻗어나가는 것을 막아서지 않아야겠습니다.

고정되고 영원한 관계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생명 그 자체입니다. 자신이 기르는 애완동물도 생명이고 화초도 생명입니다. 하물며 자동차도 생명이고, 경제도 정치도 모두 생명의 지도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생명은 서로서로 이어져 서로의 성장을 돕습니다. 만약 그렇게 이어지지 않은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생명의 관점에서 죽음은 없습니다. 죽은 것은 다시 다른 생명으로 변화하여, 더 커다란 틀에서 성장의 거름이 됩니다. 생명은 잘 죽어 생명의 더 커다란 수레바퀴를 굴리는 일에 아낌없이 협조하는 것이죠. 인식의 차원이 아닌 생명의 차원에서는 죽음을 포함한 이 모든 일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오직 하나 사람의 인식의 세계에서는 죽음도 존재하고 반反생명도 존재합니다. 생명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이런 개념들은 인식의 편의상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진화해서 주인을 위협하고 공포에 몰아넣습니다. 관계를 가두고 잔인하게 개입하고, 과도하게 서로의 길을 막아서기도 합니다.

사람의 길은 어김없이 그릇되고 굴곡을 만들고 벽을 세웁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완벽한 합리성으로 무장하고 자신이 옳다는 증거를 태산만큼 쌓아놓아도, 아니 그럴수록 더욱 자신이 만든 울타리 너머의 관계와 단절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길을 과도하게 탐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옳음을 찾아 구석구석 뒤지고 다닐 것이 아니라, 더 커다란 인연의 사슬을 볼 수 있는 눈을 떠야겠습니다.

눈을 들어 사람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을 보아야 합니다. 더 커다란 관계의 장, 서로서로 이어져 생명과 보편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굴리는 신의 작업, 역사의 작업, 사랑의 작업을 받아들여야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7]안단테

2009.03.16 (15:35:16)









논.jpg


논 물.jpg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라  /
칼릴 지브란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영혼과 영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두되
한 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 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 속에는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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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09.03.16 (21:12:01)


관계란
독립적으로 완성된 하나의 동그라미가

다른 동그라미와 만나
더 큰 동그라미를 만들어가기를 반복하여 가는 것이오.

혼자 독주할 수 있다면
둘이서 협주할 수도 있고 여럿이서 합주할 수도 있소.

그렇게 계속 나아가며
더 큰 세계와 만나기를 반복하는 것이오.

마침내 자신이 존재하게 된 근본인
신의 정원에 초대될 때 까지.

프로필 이미지 [레벨:17]안단테

2009.03.17 (09:14:16)


'혼자 독주할 수 있다면
둘이서 협주할 수도 있고 여럿이서 합주할 수도 있소. '

스프링,  무수하게 그리는 핑거 페인팅이 생각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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