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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양을 쫓는 모험
read 6539 vote 0 2009.12.15 (16: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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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정말로 원숭이가 진화하여 사람이 된 것일까? 아니면 외계인이 지구에 사람을 만들어 남겼을까? 인간의 진화는 말할 수 없지만, 역사의 진보는 어떠한 패턴으로 설명이 가능할 법도 싶다. 이것은 지난 봄 구조론 연구소 오프모임에서 내가 발표한 내용 중 일부에 약간의 생각을 추가한 것이다.



1. 두 개의 길

인류의 역사에서 먼저 등장한 것은 체계(system)였다.  예를 들자면, 원시시대의 사람들은 동굴이나 움집에서 사는 방식으로 집단을 만들어 살았다. 일단 인간의 개체가 불완전했기 때문에 털이 없고, 왜소하고, 느린 인간이 살아가려면 군집을 이루어야지만 여러 동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보자면 인류가 가족단위로 집을 짓고 산 것도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거기에 부족이 형성되고 서로 다른 부족과의 전쟁이 일어나면서 인간은 더 견고한 체계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밤에 보초를 서게 한다거나, 전투중에 어떤 대형을 갖추어 적에 대항하는 단계로 발전했고, 또 그러자면 명령체계가 단순해야했고, 모든 결정권은 우두머리가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죽거나, 노예가 되었으니까 적어도 살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장애인이나 부상자가 생기면 버리거나 내쫓아버리고, 깊은 밤 좁은 움집 안에서 문란하게 성을 공유하였으며, 명령에 반항하는 자는 집단의 이름으로 주저없이 죽여버렸을 것이다. 그것이 최초의 야만이고 역사 이전의 인류였다. 남녀가 서로 사랑한다는 개념은, 또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집단에서 남녀 한쌍이 사랑을 하게 되면 여러가지로 골치아픈 일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더 주고 싶고, 가까이 하고 싶고, 보호해주고싶고 그런데 그러자면 질투와 경쟁이 심해진다. 차라리 다른 동물이라면 발정기가 있어서 일정기간동안만 사랑을 얻기 위해 필요이상의 경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발정기가 없다. 그리고 사랑은 집단을 분열시킨다.

 

예술이란.jpg

[인간의 두 개의 길]

이것은 절대불변의 법칙이다.  먼저 생존을 위해 체계가 생겨나고, 체계에 집중하다보면 살아갈 수는 있지만, 인간이 사는 이유를 잃어버린다. 의식있는 사람이 자유를 외치고, 사람들은 각자의 삶은 만들어가고, 그러다 더 큰 적이 나타나면 체계를 만들어 뭉쳐 대항하고, 안전해지면 자유를 외치며 흩어진다. 모이면 흩어지고, 흩어지면 모인다. 인류의 진보는 이것의 반복이었다.

비가역이다. 언제나 이런식이다. 포드에서 대량생산한 자동차를 싼 값에 보급하고, 똑같은 차에 실증난 사람들이 GM의 다양한 자동차를 구입한다. 모두 똑같은 모토로라 핸드폰을 사용하다가 더 비싼돈 주고 애니콜, 아이폰, 노키야, 스카이, 싸이언 사용한다. 새로운 시장이 생겨날 때 흩어진 사람들이 한쪽으로 모이고, 모이면 다시 흩어진다. 새로운 시장, 새로운 기술, 새로운 사상에 진보하고, 다양성, 응용성, 호환성에 또다시 진보한다. 체계는 예술에 앞선다.

 

2. 하나의 길

앞서 인간의 두개의 길이라고 하긴 했지만, 무엇이 앞에있고, 무엇이 뒤에있냐의 차이일 뿐, 사실은 두 개가 아닌 하나의 길이다. 보수로 시작해서 진보로 끝나고, 노예로 시작해서 주인으로 끝나고, 집단에서 시작해서 개인으로 끝난다.

인간의 길.jpg

구조속에 또 다른 구조가 있다. 단지 폭력과 노예와 지성과 주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폭력 이전의 폭력이 있으며 지성 이전의 지성이 있다. 먼저 전제로 해야하는 것은 최초의 에너지는 외부로부터 유입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긴장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시작되고, 쇠구슬이 굴러가는 것은 누군가 힘을 가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보수가 북한을 부각시키고, 지역을 분할시키고, 계속해서 긴장감을 유발하는 것도 결국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하고, 노예로 부리기 위함이다. 노예는 기능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기능을 하지 못하는 노예는 가치가 없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이명박 대통령이 '실용'을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기능을 강조하는 것과 다름없다. 남자는 돈 잘버는 기능을 최고로 쳐주고, 그러기위해서는 공부잘하는 기능이 필요하고, 그러기위해서는 사교육 기능이 필요하다. 여자는 얼굴과 몸매의 기능을 최고로 쳐주고, 그러기위해서는 다이어트와 얼굴성형, 피부과 시술 기능이 필요하고, 기능을 극대화 하기위해서는 명품 옷과 핸드백과 구두 등의 아이템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 진정한 보수가 없다고 하는 것은 보수파가 가치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능을 고수하려 하기 때문이고, 우리나라에 진정한 진보가 없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가치를 말하지 않고, 지식의 기능에 매여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진보하는 것은 기능의 작용에, 가치의 반작용이고, 기능에서 가치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3. 폭력의 정의


도시의 폭력(룰 안의 폭력) > 계급, 무시, 차별, 고립, 소유...

시골의 폭력(룰 밖의 폭력) > 서리, 강간, 강탈, 인신매매, 살인, 침략, 전쟁...


타인을 완력으로 제압하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다. 도시의 룰에 지배당하는가 그렇지 않은 가의 차이는 있지만, 룰 안의 폭력이 있고, 룰 밖의 폭력이 존재한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김기덕 감독의 <나쁜남자>이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영화는 아름다운 여대생에게 맘을 빼앗겨 근처에서 바라보는 깡패에게 여대생은 벌레보는듯한 시선으로 시작된다. 그 시선. 그 시선이 폭력이었다. "네까짓게 감히 나를 넘봐?" 라는 그 시선, "난 너와는 다른 사람이란 말야!" 라는 그 시선. 도시의 폭력.

이후에 깡패는 여대생을 창녀로 만들고, 감금하고, 폭언과 폭력의 우리 안에 가둬버린다. 도시의 룰이 보호해주지 못하는 세계. 2라운드는 그의 폭력.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여대생에 대한 연민과 깡패를 향한 돌팔매였다. "이그 저런 짐승같은 녀석!", "예쁜 여대생을 창녀로 전락시키다니..."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 말을 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도시의 폭력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것이 폭력임을 잊고 있는 것이다. 돈 앞에 굴복하고, 강자로부터 개무시 당하고, 명품으로 계급을 만드는 것들 그것에 익숙한 나머지 의례히 당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김기덕은 이미 당신의 뺨을 후려쳤다.

이 영화는 룰 안의 폭력과 룰 밖의 폭력 그리고 그들이 화해하는 과정이었다. 폭력을 정의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야만이기 때문이다. 밀양 집단 성폭행사건부터 가끔 고발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노예 할아버지, 다방노예 등등의 사람들. 이미 그 이전에 도시의 룰이 없는 공간에서 야만이 자행되고 있음이라.

룰 안의 폭력과 룰 밖의 폭력. 이 모든 종류의 폭력을 유럽은 18~20C까지 경험했고, 예술에 의하여 이것이 얼마나 유치한 짓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폭력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미녀들의 수다>에서 '루저녀' 발언. 사랑의 가치를 돈으로 저울질하려는, "키 작은 네가 감히 나를 넘봐?"라는 눈초리. 그것이 폭력임을, 인간이 인간에게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한국인은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예술로 반작용이 나올 것인가? 폭력은 계속될 것인가? 예술의 반작용이 나오지 못하고, 우리가 그것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직 야만의 임계점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4. 노예의 길

모든 것은 정확한 용어로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 스스로가 그리 명쾌하지가 못하여 그나마 가장 내 기억에 가까운 단어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집단이 보수화 되는 과정 : 외부의 적 > 수탈의 학습 > 힘의 집중 > 집단통제 > 시스템      
                                                       (입력)                
(저장)              (제어)              (연산)          (출력)

개인이 노예화 되는 과정 : 시스템 > 폭력의 학습 > 판단위임 > 야만 > 노예
      
                                                (입력)              (저장)             (제어)         (연산)    (출력)


모든 현상은 최초에 외부로부터 발생한다. 열심히 운동한다고 하면, 그 이유가 "운동을 좋아해서" 라는 대답 이전에 "밥을 먹었기 때문에" 라는 대답이 있다. 외부에서 에너지가 들어와야 그것에 의하여 운동도 하고, 일도 하는 것이다. 언제나 "위하여" 이전에 "의하여"가 존재한다. 인류가 최초에 집단을 형성하고, 명령체계를 만들고자 했던 그 이유는 외부의 적으로부터의 반작용이다. '외부의 적'이 인류로서는 에너지 인 셈이다.

그 다음 단계는 그 에너지를 자기화 시키는 것이다. (이부분에 있어서 언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구조론에서는 '저장' 이라고 한다.) 최초에 외부의 적이 있다면 속박을 통하여 학습시킨다. 쉽게 예를 들자면, 외부의 적군이 있기 때문에 군대가 있고, 군대에 가면 신병교육대부터 이것저것 사소한 것까지 제약을 가하고, 그것이 계속해서 학습된다.

제어는 방향을 말한다. 모든 현상에는 에너지와 방향이 있어야지 운동한다. 이쪽에서 구슬을 굴리면 저쪽으로 가는 것처럼, 에너지와 방향이 모든 현상을 만드는데, 에너지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고, 방향은 내부의 것이다. 그래서 획일화라는 것도 집단의 1인자로부터 쫄병까지의 방향이 어떤지에 의하여 진행됨을 말하는 것이다. 권력이 한쪽으로 모이는 것이 획일화고, 이러한 집단은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집단의 자부심을 강조한다.

 

그리고 야만으로 회귀한다. 야만의 이유는 각각의 사람들이 가치판단을 상부에 위임하기 때문이다. 멀쩡하게 잘 살아오던 사람이 전쟁터에 가면 집단적으로 살인자, 강간범이 되어버리는 것은 이미 가치의 판단을 스스로 할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상부에서 A,B,C,D를 하라고 명령하면 그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야만이 무엇인가? 바로 책임을 지지않는 것이다. 왜 책임을 지지 않는가? 판단을 상부에 위임해버렸기 때문이다. 때문에 포퓰리즘도 야만이다.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책임지지 않는 행동을 나는 야만이라 부른다.

그리고 스스로 가치의 판단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개인. 그것이 노예다. 노예의 좋은 점이 있다면 적어도 굶어죽지는 않게 해준다는 것. 한 사람 희생해서 죽으면 나머지 99명은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독재이고 군주제다. 모든 가치판단은 왕에게 집중되어있고, 단순하고 효율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는 이유는 민주주의가 더 경쟁력 있기 때문. (군주제는 왕이 똑똑해야한다. 그렇지 못하면 두바이처럼 무너진다.)



5. 예술이란 무엇인가?

 내부의 야만 > 폭력 > 깨달음 > 표현 > 예술
          (입력)         (저장)      (제어)       (연산)    (출력)


인간의 체계가 외부의 적으로부터 반작용으로 생겨났다면, 예술은 내부의 야만성의 반작용으로 생겨났다. 감옥이나 군대와 같이 자유가 제약이 된 곳일 수록 더 낙서가 많은법. 하여 나는 정의한다. 예술이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모든 것이다. 그것은 하늘에 떠다니는 음표가 아니고, 캔버스 위에 펼쳐진 색상이 아니다.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모든 것이 예술이고, 그래서 때로는 그림이 인간을 속박하기도 하며, 정치가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도 한다. 우리가 음악이나 미술을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그 표현방법이 자유를 표현하는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예술의 결과물이 아닌 개인의 자유를 봐야 한다.

인류의 진보에 있어서 예술과 예술가가 중요한 이유는 예술가가 힘의 방향, 역사의 방향을 전환하기 때문이다. 꼭 예술가라고 하지 않고, 선각자라고 말 할 수도 있다. 현재의 유럽의 집단지성은 예술가로부터 시작되었다. 너와 내가 같음으로 기능함을 말하는게 아니라, 너와 내가 다름으로 가치있음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술은 더이상 용인될 수 없는 폭력, 그 극한에의하여 반작용하여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고흐가 나왔고, 마네가 나왔다. 5공 청문회의 극한에서 스타 노무현이 나왔고, 반칙 이인재에 반작용으로 대통령 노무현이 나왔다. 민감한 후각을 가진 사람이 있고, 자기의 의심을 쉽게 거두지 않는 자가 있다. 그런 사람이 선각자이고 예술가이다. 그는 생각을 비틀어 힘의 방향을 전환시킨다. 그것을 나는 깨달음이라 부른다. 그것을 나는 최초의 지성이라 부른다.



6. 주인의 길


 예술 > 자유의 학습 > 자기판단 > 지성 > 주인
 
 (입력)           (저장)              (제어)         (연산)    (출력)

다만 최초의 예술이 있되 누구나 자유롭지도 않은 것이고, 사람마다 느끼는 자유의 크기와 농도가 다를 것이다. 자유 또한 얼만큼 나를 자유화 할 수 있는가. 내 안에 얼만큼 자유를 담을 수 있는가의 단계가 있다. 폭력처럼 자유는 경험에 의하여 학습된다. 2002 월드컵에서의 뜨거웠던 거리응원을 경험한 세대, 남과북이 마주선 6.15 정상회담을 경험한 세대는 분명 길을 걷다가 사이렌 소리에 발길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맹새를 해야만 했던 세대와 다른것이다.

개인이 느끼는 자유의 크기만큼, 인간의 개성이 드러나고, 집단의 자부심이 아닌 개인의 자부심으로 살아간다. 앞서 말한것처럼 다양성은 방향이다. 권력의 분산이며, 개인의 진보다. 그리고 지성이다. 지식과 지성의 차이점은 지식은 지성의 결과물이고, 지식이 많은 것이 지성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의 지식이 생겨나기까지 고뇌했던 학자의 철학을 모르고, 단지 하부구조의 공식만 외워댄들 그것은 지성의 껍데기일 뿐, 지성인이 아니다. 지성은 스스로 가치판단을 하는 것이고, 그것으로 경지에 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이다.



7.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흔히 착각하기 쉬운 것이, 후진국은 독재, 선진국은 자유 가 아니고, 후진국은 보수, 선진국은 진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류의 역사속에서 이미 체계와 예술이 반복되고, 노예와 주인이 반복되어왔다. 최초의 야만이 있었고, 이후의 희랍의 사상들이 꽃을 피웠다. 중세의 암흑시대가 있었고, 르네상스가 다시 꽃을 피웠다. 제국주의와 냉전이 있었고, 포스트 모더니즘과 FTA의 시대가 왔다.

어느 한 쪽이 옳고 그름이 아니라, 무엇이 좋고 나쁨이 아니라, 인간이 환경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하는가이다.  선진국은 단지 부의 크기가 아니라, 시대에 따라서 획일화와 다양화가 개인의 판단에 의하여 유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갑작스레 전시가 되면 뭉치고, 긴장이 풀리면 흩어진다.

우리나라는 지난 반세기동안 계속해서 국가의 내부로부터, 혹은 외부로부터 필요 이상의 긴장을 강요받아왔고, 그리하여 폭력에 익숙해져있다. 故노무현 대통령은 '원칙과 전략의 차이'에 대하여 원칙은 타협할 수 없는 것이고, 전략은 타협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 쪽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나 국가의 원칙은 지키되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고, 그 길이 선진국의 길이다.

만약에 어느 영화에서처럼 외계에서 외계인 군단이 지구를 정복하려고 침략해온다면, 전 지구인들은 똘똘 뭉쳐서 그들과 전쟁을 해야할 지도 모른다. 그것이 '노예의 길'이다. '주인의 길'이다의 문제가 아니라 좋던 싫던 외부로부터 언제든지 그런 환경이 생겨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대처하는가이다. "환경이 이러니까 어쩔 수 없이 노예가 되는 거지."가 아니라, 개인의 가치는 훼손하지 않으면서 공공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길을 만들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 인간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집단의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진보의 끝이 거기에 있다.

 


[레벨:1]Full squat

2009.12.15 (17:32:59)

한기가 선화를 창녀로 만들었던것이 바로 그것이 깨달음이다. 그 나쁜남자의 마지막 5분을 아는사람이 진정한 깨달은 자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09.12.15 (18:51:12)






문란한 성생활에 대한 환상은 오류이기 쉽소. 수렵 채집기에는 보통 십수명, 많아야 수십명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부족 단위로
생활했는데 부족은 전부 가족이고, 가족은 모계 가장의 자녀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청소년들은 남자공동체에서 별도로 생활
하다가, 배고프면 집으로 들어와서 밥만 먹고 나가는 식으로 생활했으므로 성생활은 거의 불가능했소.

부부라는 것은 대략 없었소. 성생활은 일년에 몇 번 있는 족외혼에서 가능한데, 이런 축제행사는 보통 부족전쟁과 함께 벌어지
기 때문에, 반은 즉은 목숨이라 마흔살 넘은 남자는 씨족 안에 찾아보기 어려웠소. 모계로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남자들이 죄 죽어
버리기 때문. 몰래 이웃부족을 습격하여 약탈혼을 하기도 했지만 이 또한 목숨 내놔야 하는 일이고.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대략 어려웠기 때문에 인구가 늘지 않았소. 그 이전에 여성이 귀했소. 모계 가장이 자신을 보호
해줄 남자 자식을 원하기 때문에. 대신 동성애는 흔했소.
[레벨:15]LPET

2009.12.16 (09:05:30)

사람은 원칙의 수준으로 가늠되오.
동물의 원칙, 인간의 원칙이 다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정글의 법칙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더 높은 삶에 대한 경험이 없으므로 그런 삶이 있다는 사실조차 믿지 못하고,
예술로 간접체험하는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22]id: ░담░담

2009.12.16 (12:21:59)

'길' 이야기는 어려우나, 재미있소.
딴 애기요만, 주인도 왕도 노예제의 일부라오. 예비 노예.
윗 글,양모님의 본 글의 '주인'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오. 그동안 그리 써왔던 단어라는 거.
그러니, '시민'이나 '자유인' 하는 말들이 나오나 보오.
자유의 발견, 자유인의 발견이 있으면, 자유제의 발명이 시작되고, '제' 간의 경쟁이 있겠지요.
**
구조어사전 진도를 나가줘야 하겠소.
프로필 이미지 [레벨:14]곱슬이

2009.12.16 (15:50:55)

멋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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