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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양을 쫓는 모험
read 8341 vote 0 2010.06.22 (05:41:01)

1. 일본 만화와 드라마



2002년 이후에 아시아 국가들사이에서 배용준, 비 등의 스타를 필두로 한 한류문화가 인기를 끌더니, 요 몇 해 전부터는 반대로 한국에서 미국, 일본 드라마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미국 드라마는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를 그대로 드라마로 옮겨놓은 듯 했고, 일본 드라마는 일본의 만화를 드라마로 옮겨 놓은 느낌이다. 하여간 나도 한동안 일드(일본 드라마)에 심취하여 약 30 여 편 정도 본 것 같다. 


말하자면 길지만, 내가 어릴때만 해도 일본문화 컨텐츠는 접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TV에서 '마징가Z', '모래요정 바람돌이' 와 같은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긴 했지만, 그건 그게 일본 애니메이션인 줄 도 모르고 본 것이고... 제대로 일본 문화 컨텐츠가 한국에 들어오게 된 것은 1차 한일 문화개방인지 뭔지 하는 것 이후였다. 그 당시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었다.



무책임 함장 테일러.jpg 

↑ 무책임 함장 테일러



지금까지 인상깊게 본 애니라면, <에반게리온>, <무책인 함장 테일러> 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극장판 애니들, 그리고 인상깊게 본 드라마는 <HERO>, <CHANGE>, <춤추는 대수사선>, <결혼 못하는 남자> 등 이 있다. 이러한 일본의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보고 처음 느낀 것은 만화처럼 주변의 상황과 관계없이 과장된 코메디와 때때로 섬짓할 정도의 잔혹함 이었다. (잔혹함이란 별거 없다. 집단이 개인을 공격하는 것 자체가 잔혹함이다. 집단 따돌림이나, 집단 폭행이나, 집단 성폭행이나 매한가지다.)




2. 텃새와의 전쟁



한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이후 '일드'로 표기함)의 가장 큰 차이는 한국 드라마는 이야기가 남녀 주인공의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되는 반면, 일본 드라마는 주인공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조직에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일드 <HERO>는 사건에 휘말려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에 고시를 패스해서 검사가 된 주인공이 도쿄의 한 지방검찰청으로 발령이 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춤추는 대수사선>은 세일즈 맨이었던 주인공이 경찰 조직에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일드-체인지-01.jpg 


<CHANGE>는 헬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일본의 국회의원을 대신하여, 시골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의 둘째 아들이 졸지에 보궐선거에 나가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고, 한없이 떨어지는 여당지지율을 높이기 위하여 힘있는 자들이 계략을 세워, 주인공인 초선의원을 허수아비 총리로 세웠으나, 정치초보인 주인공 총리가 오히려 국민의 지지를 받고, 문제를 해결해나아간다는 이야기다.


모든 일본의 문화 컨텐츠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앞서 언급했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과 드라마의 공통점은 경직된 조직에 새로운 인물이 들어와서 조직을 변화시키고, 혁신을 이끌어낸다는 스토리 라는 점이다. 허술해보이는 주인공이 복잡한 문제를 너무나도 쉽게 해결하는 데에서 오는 명랑함이 있고, 그 주인공을 집단적으로 공격하는 기성세력의 잔혹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연인간의 삼각관계와 고부간의 갈등이 소재로서 자주 등장한다면, 일본 드라마에서는 경직된 조직과 혁신적인 개인 사이의 갈등이 주된 소재가 된다. 
어째서 이런 스타일의 드라마가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섬나라 특유의 폐쇄성 때문이다. 


섬나라니까 싸우면 도망칠 곳이 없고, 그러니 불만이 있더라도 꾹 참고 싸우지 말자는 것이 일본의 화(和)사상이고, 그렇게 여러사람의 의견을 하나로 통일하려다보니 힘의 논리로 의사결정을 단순화 시켰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힘의 밸런스에 민감하다. 상대가 조금이라도 약해졌다 싶으면 바로 배신이고, 바로 말투부터 바뀐다. 섬나라의 이것과 실용주의도 무관하지 않다.) 힘의 논리로 제어되는 조직은 사고가 경직되고, 그러다보면 문제가 발생하면 유기적으로 대응하질 못한다. 때문에 이런류의 스토리가 나오게 된 것이다.



1) 경직된 조직에 새로운 인물이 들어온다


2) 새로운 인물에 대한 견제와 텃세


3) 새로운 인물이 발상의 전환, 사건해결


4) 조직 내에서 우군이 점차 생겨난다. 혹은 주인공이 외부로 부터 우군을 끌고 들어온다


5) 조직이 혁신이 일어난다



일본인들은 외부로부터 누군가 나타나서 조직을 변화시키길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만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에 주된 스토리로 반복되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일본사회가 그렇지 못한 사회라는 것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현실 속에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본엔 희망이 없어!" 라고 말한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일본 만화나 드라마에서의 주인공은 언제나 조직의 내부와 외부세계의 축(가교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CHANGE>를 예로 들자면, 총리가 된 주인공의 눈높이는 국민(외부세계)에 있으면서, 동시에 몸은 정치의 중심(내부조직)에 있게되는 상황에 놓인다. 하나의 세계와 또 다른 세계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변화가 일어난다.




3. 에너지는 외부에서 온다.



일본 드라마를 예로 들었지만, 일본 드라마에서 그러한 조직의 성격이 두드러지게 표현되기 때문에 언급한 것일 뿐이고, 사실 이런 경우는 일본 뿐 아니라 조직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에서나 나타나는 문제다. 지킬 것이 있으면 보수화 되고, 보수화 되면 사고가 경직된다. 결국 누군가가 나타나서 "봐라! 저기 우리가 몰랐던 미지의 세계가 있다!" 라고 말해줘야 한다. 알렉산더가 그랬고, 마르코 폴로가 그랬고, 콜럼버스가 그랬다. 역사는 그렇게 진보한다.


에너지를 말하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에너지는 외부에서 온다. 그 에너지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서 또 그 흐름을 달리한다. 회사가 경직되는 것은 자본이라는 에너지에 무게추가 쏠리기 때문이다. 조직의 진보는 자본과 아이디어의 밸런스에서 나온다. 그것은 작은 회사 단위부터 큰 국가단위까지 할 것 없이 마찬가지다. 


자본 에너지로 어느정도 성장이 가능하지만, 결국 자본도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고, 자본은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필요로 한다. 아이디어가 자본을 끌어모으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직이 진보하려면 외부로부터 아이디어가 유입되어야 한다. 그런데 아이디어는 데이터의 형태가 아니라 사람 그 자체로 들어온다.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곧 인재다.



자연 > 문화 > 아이디어 > 조직 > 자본



자연이 문화를 낳고, 문화에서 아이디어가 나오고, 아이디어가 조직 시스템의 에너지가 되어, 자본의 증가라는 형태로 결실을 맺는다. 인재는 아이디어의 운반 매개이자 무형을 유형으로 전환시키는 축이 된다. 인재는 자연에서 복제하여 문명에서 창의한다.




4. 스티즈 잡스의 icon



스티브 잡스-02.jpg 



애플의 CEO인 스티브 잡스는 21세기의 가장 혁신적인 조직을 이끌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다. 모두가 아는 것 처럼 그는 1997년 애플의 CEO로 복귀한 이후 아이맥(iMac)을 시작으로, 아이팟(iPod), 아이폰(iPhone), 아이패드(iPad)를 연이어 히트시켰고, 추락하던 애플을 미국내 시가총액 2위의 기업으로 비상하게 하였다.


잡스는 세계 최초로 개인용컴퓨터(PC)를 개발한 사람이자, PIXAR의 CEO로서 세계 최초의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시장을 만든 장본인 이기도 하다. MP3플레이어인 iPod은 미국 전체 시장의 70%를 점유하였으며, iPhone은 스마트폰 시장을 열었다.


확실히 그는 성공한 사람이다. 세계 최고의 인재이자 혁신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이정도가 되자 서점에는 그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나온다. 한없이 그를 찬양하기도 하고, 그를 배우자고 난리다. 그 성공의 원인에 대해서 혹자는 프리젠테이션을 잘하기 때문이고, 또 혹자는 교섭기술이 좋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했다. 아이디어가 좋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성공하니까 그의 지랄성에 관하여는 제대로 말하지 않거나, 관대해지기 일수다. 잡스는 인재이기도 하지만 왕싸가지에 왕재수형 인간이다. 가장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었지만 그는 직장에서 가장 지랄맞은 상사인 것이다.



그런데 잡스가 애플의 CEO이자, 픽사(PIXAR)의 CEO일 수 밖의 없는 이유는 그가 결론적으로 돈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를 직원으로 부릴 만한 사장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한국이라면 단박에 면접에서 떨어질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의 원인은 사실 굉장한 행운이 작용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픽사의 애니메이션이 대박이 날 지는 정말이지 아무도 몰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잡스가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게 된 진짜 이유라면 바로 그가 외부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와 관련된 영화나 책에서는 비중있게 다루지는 않지만, 그는 20대 초반에 친구와 함께 몇 개월간 거지차림으로 인도를 여행했고, 수도승을 따라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그는 채식주의자가 되었고, 선불교를 수행하게 되었다.


무엇인가? 그의 모든 영감은 20대 초반의 인도여행에서 온 것이다. 그때까지의 모든 식생활을 갈아치울 정도로 강렬한 동양문화의 정수를 본 것이다. 그가 어느 조직에 있어서가 아니라, 서양문명 속에 존재하면서, 동양문명을 가지고 들어와 그것을 모티브로 끊임없이 창의한 것이다. 혼을 쏙 빼놓는 말재주나 교섭기술은 부차적인 문제다. 


그는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소비자' 이기 때문이다. 그 지랄맞을 정도의 까다로움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5. 인재는 밖으로 나간다



스티브 잡스처럼 혁신적인 인재는 언제나 외부세상으로 부터 온다. 하지만 그것은 조직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얘기고, 인재라면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인도를 경험하고 와서 인재가 아니라, 인재이기 때문에 인도를 갔던 것이다. 


유럽의 문화를 진보시킨 인재들은 몰락한 귀족이나 망명한 지식인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뭐 하나씩 입에물고 계급을 뛰어넘고, 국경을 넘어서 결국 획기적인 결과물을 냈던 것이다.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로 갔고, 필그림은 신대륙으로 향했다. 국경을 넘으면 그 쪽 사람들은 누가 서울대 나왔는지, 지방대 나왔는지 관심 밖이다. 범죄자던 사기꾼이던 누구도 묻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존재할 뿐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환경 속에 오로지 스스로 존재함"에서 부터 시작한다. 그것이 존엄이다. 지역차별, 학력차별, 성차별을 하면 안되는 이유는 그것이 인재를 죽이고, 아이디어의 동력을 메마르게 하기 때문이다. 그릇이 커야지 인재를 담을 수 있고, 인재가 세상과의 소통을 이끌어낸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0.06.22 (09:41:16)

좋구려.
구조분석의 대가가 되셨소.

[레벨:17]눈내리는 마을

2010.06.22 (11:15:37)

일을 한다면 잡스같은 사람이 더 낳죠.
좋은 말 백번해주는것보다,
일이 되게 만들어놓고
홀로 밴드를 하건, 포도주를 먹건 하는게 더 이득.

같이 모여서 밤샘하고, 쥐어짜고, 그런건 안쳐주고...

한마디만 덧붙이면,
잡스가 인도여행으로 인해 눈이 뜨인건 사실이지만,
당시, 캘리포니아를 흐르던 달나라로 가겠다던 Jet Propulsion Lab, 버클리, 스탠포트같은
과학기술의 산실이 있었던것을 빼면 안됩니다.

IT잡들이 버블형태로 계속 나올수 있었던 것도,
기술 소스가 옆에 있었기때문.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양을 쫓는 모험

2010.06.22 (13:41:56)

잡스가 젋은 나이에 백만장자가 되었지만, 거듭되는 실패 끝에 결국 애플로부터 쫓겨나다시피 나오게 되었소. 그렇게 된 것은 스스로 자기의 입지를 좁히는 지랄성이 한 몫을 한 것이기도 하지만, 훗날 잡스가 밝혔듯이 잡스는 지가 성공을 해놓고도, 왜 성공했는지 몰랐다고 하더이다.

조지루카스로부터 헐값에 픽사(pixar)를 인수한 것도 원래 픽사의 그래픽 기술로 응용 프로그램이나 만들어보겠다는 심산이었는데,  Cal Art 출신의 존 래스터가 3D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로 대박을 치는 바람에 졸지에 부자가 되어버렸소. 물론 잡스가 지원사격을 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존 래스터가 3D 단편애니로 계속해서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 존 래스터는 이후 더 많은 애니메이터에게 감독의 기회를 주었소.

애플의 CEO로 잡스가 다시 돌아왔을 때, 영국 출신의 디자이너 조나단 아이브를 만나게 되오. 이후 아이팟, 아이패드, 맥북 등의 혁신적인 디자인은 그의 손 끝에서 나오게 되오. 잡스가 애플에서 실패하던 시절엔 없는 것, 애플에 돌아와서 성공할 때는 있는 것. 그것은 바로  Team 이었소. 인재풀이 생겨난 것이오. 픽사에도 애플에도 잡스의 말귀를 알아먹는 사람이 생겨난 것이오. 이들이 애플 조직 내에서 잡스류(流)를 형성했기 때문이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12]wisemo

2010.06.24 (20:38:02)

"조직의 진보는 자본과 아이디어의 밸런스에서 나온다."
" 차별은 인재와 아이디어의 동력을 메마르게..."
구구 절절히 '구조분석의 대가' 다운 향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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