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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465 vote 0 2017.11.16 (13:47:13)

고흐팬이라면 당연히 봐야할 영화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소.

일단 화면이 번쩍거려서 눈이 아프고 줄거리도 지나치게 음모론적이고 


이렇다할 결론은 없고 주인공인 우체부 아들은 고흐풍이 아닌 이상한 화풍으로 그려서

화면과 잘 어울리지 않고 또 상당부분 아이디어를 써먹기 위한 억지설정이었소.


어쨌든 아이디어는 괜찮았고 고흐 그림을 실컷 볼 수 있다는건 봐야하는 유일한 이유. 

아는 만큼 보인다고 영화 물랭루즈를 본 사람들은 몽마르뜨 언덕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의 모임 그리고 뚤루즈 로트렉과 고흐의 각별한 친교를 이해하겠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거기서 저 장면이 왜 나오는지 이해를 못할 것이오.


즉 고흐에 대해서 배경지식을 충분히 쌓고 보는게 좋다는 말씀.

결정적으로 왜 고흐인가 하는 본질을 건드리지 못한게 아쉬움이오. 


고흐가 뭐냐? 왜 고흐냐? 그림실력이나 이런걸 논하면 안 됩니다.

고흐라는 젊은이가 열심히 노력해서 정상에 오를 뻔 했는데 아쉽게 죽었다?


00.jpg


또다른 고흐 물랭루즈의 뚤루즈 로트렉.. 그의 인생은 고흐와 흡사하다.


뚤루즈 로트렉도 37살에 매독으로 죽었는데 압생트를 너무 마셔서 몸이 상한게 고흐와 같습니다.

고흐 역시 압생트를 너무 마셔서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정도가 되었는데


인상주의 화가들이 모였던 몽마르뜨의 물랭루즈부터 문제가 있습니다.

난삽한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있었다는 거지요. 당시가 실제 세기말이기도 했고요. 


세ː기-말, 世紀末
명사
  1. 1.
    한 세기의 끝.
  2. 2.
    유럽, 특히 프랑스에 절망적·퇴폐적 분위기가 지배하던 19세기 말.

세기말은 1차세계대전 직전 모든 나라들이 극우 인종주의로 치닫던 시대였소.
지식인들은 절망과 좌절에 빠져 술과 매독과 폐렴으로 죽어가던 시대였소. 

당시에 유행하던 낭만주의란게 이름과 달리 로맨틱한게 아니라 
극단주의로 치닫는 것이며 죽음을 노래하는 것이었소.

낭만주의 예술을 특징짓는 기본적인 속성은 
반항, 소외, 고통, 광기등과 같은 단어로 규정된다.[나무위키]

신고전주의가 강조하는 질서, 균형(proportion), 절제(restraint), 논리, 정확성, 적합성(decorum)
에 대한 반발로 개인의 경험과 정렬, 에너지, 내면의 기운을 강조하는게 낭만주의라면

둘의 대립을 변증법적으로 해소한 것이 리얼리즘이고 
떨거지 고흐와 난쟁이 뚤루즈 로트렉 및 변변치 못한 물랭루즈의 일당들은

퇴폐적인 생활을 하며 매독에 걸려서 독주 압생트를 마시고 맛이 간 것이며
인간의 어떤 경계를 넘어버린 것이며 그들은 한 줌도 안 되는 소수였고

인상주의가 제 대접을 받은 것은 고흐의 사망으로부터 10년 후
세기초인 1901년 고흐의 파리 전시회가 대박이 나면서였소.

우리는 당시에 이미 인상주의가 기반을 잡은 것으로 착각하지만 
당시는 투쟁과 변혁의 시기였고 고흐의 사후에 전시화가 대박을 냈기 때문에 

고흐에 의해서 바닥을 기고 있던 인상주의가 확연히 살아난 거죠.
만약 고흐가 자살하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렸다 해도 대박을 내려면 

상당한 시간과 인고와 투쟁이 필요했다는 말씀. 
세잔이 이론적으로 인상주의를 뒷받침해서 

지금은 인상주의가 다 먹었지만 당시는 당연히 아니라는 거.
그렇다면 아를의 고흐는 왜 죽었는가? 

고흐만 죽은게 아니라 그때는 너도 나도 죽고 있었소.
당시는 처절한 반동의 시대이며 문명이 죽고 야만이 기승을 부리던 

빌어먹을 인종주의 전성시대였소.
그때는 조선도 망하고 친일파가 득세하고 

생각있는 사람은 모두 술 쳐먹고 뻗어 있었소.
그런 시대에 그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던가?

도원결의입니다. 태오는 고흐를 존경했고 둘은 한 몸과 같았으며
고흐는 고갱이나 좀 아는 사람들과 모여 평등한 동지가 되려고 한 것입니다.

노무현이 죽어야 동지가 되듯이 고흐가 죽고 뚤루즈 로트렉이 죽고 
뒤늦게 세력이 생기고 질에서 입자로 나아간 것입니다.

고흐는 왜 죽었는가? 고흐는 그의 그림을 얻었기 때문에 죽은 겁니다.
노무현은 할만큼 했기 때문에 떠난 것이며 고흐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흐는 오만하게 세상을 발로 차버린 것이며. 왜? 할 일을 했기 때문에.
저 역시 마찬가지 내 할 일을 했다면 나머지는 세상의 몫.

그들의 감당할 책임이며 중요한 것은 내 그림을 얻었는가 그러지 못했는가
내 그림을 얻었다면 고흐는 홀가분한 것이며 

내 정치를 얻었다면 노무현은 흐뭇한 것이며
세상이 족같으니 족같은 세상과 그만 사귀고 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상은 왜 죽었는가? 죽어야만 했는가? 천재는 죽어야 천재로 증명되는 것.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으면 날아가는 수 밖에 다른 수단은 없는 것이오.

고흐는 800점을 그렸고 1100점의 미완성 스케치를 그렸고 
그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내 행복했소.

극단적인 행복과 쾌감. 의기양양함. 넘치는 내면의 에너지 그리고 정념.
거기에 박자 못 맞춰주는 우스꽝스런 세상과의 기이한 불협화음 

그렇다면 잘난 내가 날아가야지. 날개를 펼쳐 훨훨 날아가는 거지.
그걸 이해 못하고 헛소리나 하는 바보들이 너무나 많아.

고흐는 그곳에서 그런 당신들을 비웃고 있지.
오래 사는게 장땡이라고 믿는 바보들은 절대 이해못하는 

천재들의 각별한 세계가 있소.
천재는 자기 그림을 얻었을 때 죽는다.

[레벨:9]Quantum

2017.11.16 (14:35:09)

깊고 넓은 평론 감사합니다.

[레벨:15]오세

2017.11.16 (15:09:15)

고흐, 그가 쏜 총에 온 인류가 맞았소

[레벨:5]김미욱

2017.11.16 (19:44:34)

자신의 작품이 자신의 내면과 동일한 에너지를 발산한다고 느낀 자, 죽음을 향해 맘껏 돌진하라.
프로필 이미지 [레벨:3]형비

2017.11.16 (21:04:39)

저도 주말에 보러 갈건데 기대되네요. 인간세상과 어울리지 못한 기괴한 자. 슬프고 아름다운 사람.
[레벨:22]양지훈

2017.11.17 (22:46:36)

유튭에서 제작 영상 보고 '미쳤다!!' 했는데... 개봉했군요.

봐야겠네요



[레벨:8]펄잼

2017.11.18 (21:32:07)

제곧내만 확인하고 영화를 보고와서 이 글을 보는데

왠지 이 얘기 하실것 같았음...ㅋㅋㅋ


나는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마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빈센트 반 고흐

[레벨:4]혜림

2017.11.19 (15:05:10)

제목부터가 좀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역시! 고흐의 붓터치는 심장을 뚫는 힘이 있어요.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봐도 마음을 움직이는데, 실제로 보면 얼마나 강할까요. 여튼 모작이래도 고흐 그림이라면 꼭 봐야죵.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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