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1]이상우
read 1554 vote 0 2020.05.19 (15:09:09)

여덟 살 아들이 돌봄교실에서 여자애한테 맞았단다. 미술실에서 한 명이 자기를 때렸단다. 더 때릴라고 해서 손목을 잡으니 옆에 같이 있던 여자애가 플라스틱 물통으로 머리를 때렸다고 한다. 다행히 자기 머리가 돌머리라 별로 아프진 않았다고 하는데...
이거 웃어야 할지.

2년 전엔가도 돌봄교실에서 골목대장같은 - 정확히 말하면 대장도 아니고 그냥 제멋대로 친구들 패고 다니던 - 남자애한테 맞았다고 아내한테 얘기를 했었다. 왜 이런 건 나한테는 안하고 아내한테만 할까? 하긴 이안이가 엄마한테 말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그때 얻어 맞은 내용을 얘기할 때 울음을 참으면서 더이상 얘기 안하려고 감추려던 것이 기억난다. 보는 내가 짠했다. 약한 모습 보이고 싶지도 않고,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겠지. 당시 어린이집샘은 전혀 모른다고 했고, 심지어는 대질(?)심문을 하고서 그애도 이안이도 안그랬다고 해서 내가 열불이 났지만, 화를 참고 아내에게 코칭해서 샘에게 조근 조근 얘기하니 그 다음날 샘이 애들 노는 모습을 몰래 관찰하고 전모를 밝혀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자식이 맞고 들어왔다고 하면 기분 좋을 사람 아무도 없다. 애가 안쓰럽고, 아들을 괴롭힌 그애가 미워진다. 정말 얼굴 한 번 보고 싶고 단단히 혼쭐을 내서 다시는 못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어떤 상황에서 그랬을까, 걔가 왜 그랬을까, 우리 아들은 걔를 먼저 불편하게 안했을까, 걔가 때렸을 때 이안이는 어떻게 했을까. 기억이 사실과 상상속에서 오락가락 하는 만 6세 애들 속에서 진실을 알 수는 있을까?

이안이한테 담담하게 물어보고, 공감하면서 약간 위로도 해주고 친구안때렸다고 칭찬도 해줬다. 손목을 붙잡은 건 잘 한거라고 애기했다. 근데 애들도 본능적으로 아나보다. 적어도 지들 문제는 지들끼리 풀어야 한다는 것을. 아내가 돌봄샘에게 물어봐야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겠지만, 아들 말에 따르면 괴롭힌지 오래 되었다고 한다. 몇 번 그랬냐고 하니까 반복해서 하는 말이 '계속' 이다. 엄마한테 말해놓고 내가 확인차 물어보면 자기한테 자꾸 말하지 말고, 엄마한테 물어보라고 하는 걸 보면 자기도 안좋은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지난 번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자기 전에 아내한테만 그런 말을 한다.

아빠는 어렸을 때 동네 어린 애들 괴롭혔는데, 아들은 놀이터나 어디서나 아직까지는 누구한테 함부로 대하지 않고 그냥 성별 가리지 않고 잘 논다. 주로 놀이를 주도하기 보다는 애들이랑 신나게 놀면서 적당히 맞춰줄 줄 안다. 사실 언젠가 아들이 남자 애들이랑 격렬하게 싸우는 경험도 필요할 듯 한데 아직은 아닌 듯 하다. 폭력은 나쁜 거고, 친구에게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얘기하고, 그것도 안되면 피하라고 해서 그런지 주로 피해자(?)가 돼서 집에 온다.

한편으로는 학교폭력업무를 9년째 하고 있는 내가 아는 게 병이라고 교사마음 교사가 아니 더 조심스럽다. 그래도 학폭업무 오래 맡으니 뭐가 중요한지 알기에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거다. 불편함도 겪고, 속상한 일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면서 그렇게 자라는 거다. 부정적인 경험없이 바르게 성장할 수는 없다. 부정적인 경험은 안맞주치면 좋겠지만, 그건 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아들이 친구들과 불편한 일이 생길 때 어떻게 하면 잘 풀어갈 수 있을지 잘 배웠으면 좋겠다. 2년 전에 그랬던 것 처럼 이번도 잘 이겨낼 수 있겠지. 대한민국 학교폭력 최고 전문가가 아빠인데, 못할 리가 있나?


[레벨:11]큰바위

2020.05.20 (16:19:31)

교육부에서 시행하는 어울림 프로그램도 있고, 
나름 학교폭력 예방교육도 있고, 
회복적 생활교육을 통해 서클도 진행하는데 학교내의 안전사고는 줄어들 줄 모르네요. 


가능하다면 일선 교사들에게 업무가 추가 되지 않고 진행할 수 있는 초등부터 중등까지 상대방 존중, 평화감수성, 회복적 핵생생활 교육 등이 촘촘히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교육부가 안전한 교육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교과과정으로 (도덕이나 바른생활 과목으로) 이러한 내용을 마련할 수는 없을까 궁금합니다. 


어려서부터 훈련하지 않으면,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몇자 적어봤습니다. 


대한민국 학교폭력 최고 전문가를 응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구조론 매월 1만원 정기 후원 회원 모집 image 29 오리 2020-06-05 80163
2053 무한과 연속성의 차이 chow 2023-01-12 936
2052 장안생활 격주 목요모임 image 오리 2023-01-11 791
2051 수학의 기원과, 아랍 (페르시아)의 역할 image dksnow 2023-01-07 1304
2050 법과 현실의 특성에서 본 괴리, 불확정성원리 SimplyRed 2022-12-31 1503
2049 장안생활 격주 목요모임 image 오리 2022-12-28 1468
2048 장안생활 격주 목요모임 image 오리 2022-12-14 1878
2047 2002-2022 dksnow 2022-12-12 2037
2046 가설연역법에 기반한 상호작용 시스템 chow 2022-12-11 2039
2045 손주은이나 대치동 똥강사들보다 100배 낳은 최겸 image 3 dksnow 2022-12-07 4165
2044 장안의 화제 Open AI chatbot (ChatGPT) image 6 오리 2022-12-06 2566
2043 한국이 브라질을 작살내는 법 chow 2022-12-04 2118
2042 장안생활 격주 목요모임 image 오리 2022-12-01 1541
2041 12/1 유튜브 의견 dksnow 2022-12-01 1334
2040 대항해 시대 kamal 툴 dksnow 2022-11-21 1836
2039 장안생활 격주 목요모임 image 1 오리 2022-11-17 1832
2038 중국 농촌의 토지정책 1 mowl 2022-11-13 2272
2037 나의 발견 SimplyRed 2022-11-06 2566
2036 심폐소생술과 하인리히법 chow 2022-11-04 2595
2035 장안생활 격주 목요모임 image 오리 2022-11-03 2462
2034 현 시대에 관한 개인적일 수 있는 생각들.. SimplyRed 2022-10-29 3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