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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굿길
read 5140 vote 0 2010.01.05 (20:26:15)

통짜, 현장 백성들이 흔히 쓰는 우리말이다.
금속을 녹여 여러 모양으로 갖가지 도구를 만들때 쓰던 틀인데 금형기술자 뿐만 아니라
지난 70년대, 80년대 산업사회 한국에서 손기술 자랑하는 웬만한 남자어른들 입에 붙은 말이었다.
[ 이어 붙이면 시원찮아..통짜로 만들어야 튼튼하지.. 통짜틀이 있어면 쉬울 것을.. ] 이렇게 썼다.

구조론은 삶의 현장에서 누구나 쓰는 통짜란 흔한 우리말을 세계지성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놓는다.
능청스럽게도 말이다. 그 자체로 혁명이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게 다가온다. 넉넉하다.


풍물판, 굿판에서도 통짜란 말을 쓰는데 흔히 쓰는 말은 아니고 아는 사람만 쓴다.
지난 시절 굿쟁이 선배들과 풍물굿 공부하러 남도를 돌아다닌 적 있다.
생전 처음 보고 듣는 장단과 가락과 디딤새와 발림을 쉽게 배우고 익힐 턱이 있나
늘 막히는 부분이 있으니 어쩔 도리 없이 선생한테 여쭌다.
[ 이 부분은 어찌 됩니까. 이 장단과 가락을 한번 더 쳐주이소. ]
그럼 선생은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들어라고 재현해주시는데..
웬걸 물어본 장단과 가락은 제쳐두고 굿거리 한마루나 한마당을 처음부터 끝까지 쳐 주시는거다.
잠시 한눈 팔면 물어본 부분은 어느 틈에 지나가버리고 그냥 멍하니 듣고 있게 된다.

여러 선생을 만났으나 대부분 선생은 그랬다.
요즘 쓰는 말로 눈높이 교육은 없었다.
그러니 어쩌랴..통째로 듣고 또 들을 수 밖에


뒷날 아는 사람끼리 통짜 이야길 시작했다.
풍물판에서 통짜 이야기 꺼내면 제법 아는 축에 드는 분위기.
갓 배움에 나선 아이들과는 다른 어른 세상 이야기..
첫 울림소리를 내놓고 진작 끝소리 갈무리를 어찌 해야할지 그려두고 있는 다른 세상이다.


통영오광대 춤장단은 풍물했다는 사람 누구나가 쉽게 알아듣는 몇가지 장단과 가락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재현하기가 쉽지 않다. 학생들 연주를 들으면 도통 멋이 나지 않는다. 깊은 소리맛이 없다.
내공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큰 뼈대없이 마냥 두들긴다.
내고 달고 맺고 푸는..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로 치닫는 기세와 흐름,
은근히 감질나고 또는 숨막히는 높고 낮음을 연출할 생각이 없다. 


사흘 밤낮 굿판에서도, 한나절 한바탕 굿마당에서도, 굿 한거리에서도 , 장단과 가락 하나에서도 통짜로 흐르는 뼈대가 있다.
울림 하나요, 한 장단을 성사시키는 리듬, 동그라미다. 한배다.


선생들은 말했다.
[ 한배 ]를 알면 다 안 것이여..하산해도 돼.. 아니면 아직 한배를 몰라..틀렸어..
잽이들 사이에선 제법 잘한다는 놈이 되려 미끄럼이고.. 별스럽지 않다 생각했던 친구가 인정 받았다.


한배를 알아야 흔들림없다. 몸으로 머금고 있는 것이다.
논두렁이고..마당이고..골목이고.. 북적대는 사람 사이에 끼여 마구잽이 난리굿판을 벌이고...
상쇠 머리 꼭대기 부포가 저 멀리 가물 가물 보이거나 아예 보이지 않아도
한배를 알아 같은 들숨, 날숨으로 가락과 장단을 지켜내고 다시 엮어갈 수 있다.


변주에 변주를 거듭하고 12박을 24박,48박,96박으로 한달음에 숨가쁘게 내리 달려 엇박에 엇박을 갈무리하더라도
태평하게도 다시 한배로 돌아온다. 동그라미 하나로 편안하게 되돌려 놓는다.
그러면 장구에선 기관총 소리가 난다. 재주가 모자라 내가 재현할 수는 없지만..


선생은 말했다.
[ 기남이 그 친구가 장구 치면 따발총 소리가 났지 그려...그랬지.]
옛 어른 말로 따발총.. 두다다다다당..두두두..두당당당... 거침없이 마구 쏟아낸다. 걷잡을 수 없이 나온다.
장구만 그러랴...태평소 날라리도 마찬가지.. 불면 모두 음악이다. 불면서 창의한다. 새 음악이 나온다.
동해안 별신굿 태평소 명인 김석출 선생이 그랬다.

 

풍물굿판에선 사물놀이 김덕수 천하다. 잘한다. 상품하나 잘 만들었다.
그러나 모자라다. 하늘 땅 열려있는 곳에서 펼쳐진 우리 음악만이 가진 야성의 멋이 없다.
아프리카 음악이 세계 대세다.
왜 일까? 여러 까닭이 있겠지만.. 사람 본성과 야성을 일깨우는 리듬과 장단과 고저를 품고 있다고 본다.

거칠고 두텁고 단순하지만 사람 혼을 쏙 빼놓는 우리 만의 리듬을 찾는 이가 없다.
세계 보편의 음악 그 꼭대기에 올려 놓으려 애쓰는 이를 보지 못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0.01.05 (21:27:03)






세상을 떠르르 울리는 큰 소리는
다만 악기들 사이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라

발 딛고 선 세계와의 부단한 박치기,
그에 따른 고통의 크기에 의해 토해내듯 울려져 나온다고 보오.

서태지도 학생일 때는 고통이 있어서 제법 소리가 났는데
요즘은 고통이 없어졌는지 황소울음 소리가 안 나고 참새소리가 나오.

고통이 없으면 명박산성에라도 박치기 해서 고통을 만들어야지
거기서 소리가 나는 거지.
프로필 이미지 [레벨:30]ahmoo

2010.01.05 (21:48:23)

얼쑤~!
짓밟히고 빼앗기고 무시당한 설움에 지지 않고
보편의 산맥에 우뚝 설 것이오.
[레벨:15]LPET

2010.01.07 (08:18:14)

사물놀이와 아프리카장단을 들으면 자다가도 인나는 사람이오. ㅎㅎ
사물놀이하면 김덕수밖에 모르지만,
'거칠고 두텁고 단순하지만 사람 혼을 쏙 빼놓는 우리 만의 리듬을' 꼭 들어보고 싶소이다.
[레벨:3]워터

2010.01.07 (09:07:39)

치열한 삶!, 삶의 밀도!,통짜 덩어리 시선!, 버럭~ 굿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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