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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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430 vote 0 2016.02.23 (18:09:05)

1. 

나 일어나 이제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욋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을 짓고,

아홉 이랑 콩밭과 꿀벌통 하나

벌 윙윙대는 숲 속에 나 혼자 살으리.


2.

거기서 얼마쯤 평화를 맛보리.

평화는 천천히 내리는 것.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에 이르기까지.

한밤엔 온통 반짝이는 빛

한낮엔 보라빛 환한 기색

저녁엔 홍방울새의 날개 소리 가득한 그 곳.


3.

나 일어나 이제 가리,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에 철썩이는 낮은 물결 소리 들리나니

한길 위에 서 있을 때나 회색 포도 위에 서 있을 때면

내 마음 깊숙이 그 물결 소리 들리네.

 

###

 

예이츠의 유명한 '이니스프리의 호도'이다.

뭐 다들 한 번 쯤은 읽어봤을테고.


나 일어나 이제 가리.’ <- 누가 물어봤냐고?

니가 가든 말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여? 뻘쭘해진다. 에구 민망해.

 

첫 번째 연의 나 일어나 이제 가리

두 번째 연의 거기서 얼마쯤 평화를 맛보리.’는 대칭된다.


첫 번째는 멀리서 줌으로 당겨본 것이고

두 번째는 아웃포커싱으로 안을 들여다 본 것이다.


공간적으로 일을 벌렸다는 말씀.

이렇게 차례상을 벌여놓았는데 정작 제사를 받을 귀신은 없다.


이놈이 이거 자기 스스로 자기 제사상을 차린 놈일세.

지하철 시는 여기서 시가 끝난다.


그러면 시가 안 되어주는 거다.

숨은 전제를 기억해내자.

 

그렇다. 잿빛 포장도로 위에 서 있는 바로 당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도 솔직히 저기 가고싶었잖냐?


이게 사실은 내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 니들 이야긴뎅?

이거다. 아 반격 들어간다. 얼씨구.

 

이걸 해줘야 '오싸마리'가 되어서 시가 되어주는 거다.

아무리 짧은 시라도 반드시 형식은 있어야 한다.

 

옛 우물에 개구리 뛰어드는 소리. 퐁당.”

 

유명한 하이쿠다. 다들 한 번씩 들어봤을 터.

여기서 절창은 퐁당이다.


이거 꼭 있어야 한다.

옛 우물이라는 정적 공간과 개구리의 동적 공간


정과 동의 대칭으로 차례상을 벌였다.

판은 벌였는데 누가 먹나?


퐁당은 만인의 마음에 복제된다.

그렇다. 복제되어야 구조론은 완성이 되는 것이다.


옛 우물에 개구리 뛰어들다.’ <- 이걸로는 시가 안 되어주는 것이다.

'소리 퐁당'이 먹어주는 거다. 아주.

 

언어는 동사로 출발한다.

동사와 또다른 동사와 만나 대칭을 조직한다.


그걸로 문장은 되는데 자기소개가 된다.

그걸로는 남에게 말을 걸 수 없다.


자기 가족이나 친구와는 말을 할 수 있다.

'체험의 공유'라는 숨은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거다.

남자와 여자가 빵집에서 만났다 치자.


여자는 야 죽이는데.’ 하고 추임새를 넣어주기 원한다.

남자들은 설명충이 붙어서 이게 몇 년도에 생산된 보르드산 어쩌구.


씨바 누가 그거 물어봤냐고?

다음날 찢어짐.

 

여자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애드립과 추임새를 원하는데

남자는 지식자랑으로 들어가서 여자들에게 허세 부리는 걸로 낙인.


12.jpg


공대출신들은 특히 조심해야 함.

데이트 하면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설하면 안 됨.


숨은 전제는 여자와 남자 그리고 데이트, 빵집이라는

상황 자체가 이미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놓고 있다는 말이다.


전제를 다 깔아놨으니까 진술만 하라고.

추임새만 넣고, 애드립만 날리라고. 


갑자기 거기서 매스 이펙트 3탄이 왜 나와? 

근데 철학자나 지식인이 이렇게 숨은 전제를 깔고 들어가면


그건 자격이 없는 것이니 오백방을 피할 수 없다.

혜민처럼 애드립 넣고 추임새 넣는게 직업이면 쳐맞는 거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7]風骨

2016.02.24 (02:23:07)

문제를 제기하고 답을 하는 것이 언어의 기본인데,


이를 지키기는 자들이 드물다 보니 

옛날 사람들은 

'기-승-전-결'이라는 것을 만들어내었나 봅니다.


비유하자면

제사상을 근사하게 차리는 것이 기와 승

귀신을 불러와서 먹이는 게 전과 결.


중국에서는

시를 짓거나 문장을 쓸 때

대칭을 사용하는 것(흔히 말하는 대구)을 활용하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있었는데,


밋밋하게 대칭으로만 나갈 수는 없고

결국은 마무리를 지어야 했으니

기-승-전-결의 형식이 고안되었으며


이를 구현하는 것이 바로 

4줄(절구), 혹은 8줄(율시)로 이루어진

근체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단지 무미건조하게 

4줄, 8줄만 채우고 마는 경우가 생겨버리니

 

대칭은 적당히 하고

대칭을 넘어선 강렬한 임팩트로 마무리를 해보라는 것이  

3줄의 한국의 시조 형식이나

5-7-5또는 5-5-5로 전개하는 일본의 하이쿠일 것입니다.


이러한 시의 형식 발전 과정은

단순한 대칭을 넘어서, 그 대칭이면에 있는

숨은 전제를 잘 드러내게 하려는 의도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며,


또한

대칭을 넘어서서 비대칭으로 나아가라는

구조론의 원리와도 상통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됩니다.

[레벨:5]vandil

2016.02.24 (10:20:33)

숨은전제 찾기는 질,입자,힘,운동,량 중에 질을 찾는것 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여전히 어렵지만, 계속 찾아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6.02.24 (10:49:44)

어려울건 없죠.

보통 우리가 말을 대충하잖아요.

대충해도 다 알아먹는데 뭣하러 말을 엄격하게 합니까?

말을 복잡하게 해봤자 더 헷갈리기나 하지.

근데 말을 대충 하기로 하면 대충해서 알아듣는 말만 하게 됩니다.

쉬운 말만 하고 어려운 말은 안 하는 거지요.

그러다가 망합니다.

꼭 해야되는 말을 안 하니까 망하는 거죠.


글자 배운 사람들은 어려운 말에도 도전해야 합니다.

노자처럼 '심오한 진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포기한다.' 이러면 안 되죠.

왜 포기합니까? 말을 똑바로 하면 됩니다.

문장이 호응되게 하면 말을 똑바로 하는 겁니다. 


량을 말하면 운동이 전제, 운동을 말하면 힘이 전제, 

힘을 말하면 입자가 전제, 입자를 말하면 질이 전제입니다.

[레벨:5]vandil

2016.02.24 (11:14:06)

알겠습니다 ㅎ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6.02.24 (10:52:49)

엊그제 박근혜가 

'하니까 되잖아요' 하는게 무슨 뜻이겠어요?


박정희의 '하면 된다'..못하면 쪼인트를 까라는 말이죠.

'조선놈은 몽둥이가 약이니까 패면 된다.' 이 말입니다.


'조선놈은 몽둥이가 약이니'까.. 이게 숨은 전제.


http://is.gd/vHOhJx

[레벨:10]다원이

2016.02.24 (11:36:29)

숨은 전제 찾기.

요즘 가장 마음에 새기는 것 중 하나입니다.

그것을 알아차리면 말의 앞뒤가 맞아떨어지며 본심을 알 수 있다는 것.

이걸 염두에 두고 말을 들어보면 재미 있습니다.

새눌당 새퀴들 하는 말(글)을 보면 앞대가리에 보이지는 않지만 늘 괄호 속에 (...) 숨은 전제가 있죠.

(   )를 빼고 읽으면 천하에 좋은 말이 되지만 실상은...

(나는 금수저니까 면제, 그러나 내 노예인 니놈들은)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나 금뺏지 달고시포... 그래서 미친 짓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요~!

(니들 전화 도감청하고 계좌 추적하고 약점 잡아 빵에 보내고 싶으니) 국민 안전 위해 테러방지법 빨랑 통과시켜 주라~~

(나의 쫄다구 노예들인)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드리겠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6.02.24 (11:41:01)

좋소이다. ^^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오맹달

2016.02.25 (11:29:28)

눈에 쏙 들어옵니다. :)
[레벨:10]다원이

2016.02.24 (15:23:03)

우왕~영광~ 동렬님 댓글이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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