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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967 vote 0 2020.11.27 (11:50:13)

    

    정의는 없다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와 같다. 상자를 열면 그 안에서 또 상자가 나온다. 그 상자를 열면 더 작은 상자가 나온다.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책은 두꺼운데 내용이 없다. 사례를 열거할 뿐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은 아마 정의는 상대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왜 그렇게 책이 두꺼워?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므로 장사는 된다. 그 책에서 배울 것은 책장사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는 장사꾼의 요령뿐이다. 물론 그 책을 읽어 본 사람들이 하는 말을 필자가 옮긴 것이다. 그런 알맹이 없는 책을 읽어주는 것은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본질은 하버드 간판장사. 유일한 소득은 '하버드 별거 아니네. 괜히 쫄았잖아.' 이런 거. 비싼 등록금 받고 이런 유치한 것을 논하다니. 사실 기계적인 정의는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정의는 평등의 종속변수이기 때문이다. 평등이 먼저 와서 일을 벌이고 정의가 뒤에 수습한다.


    엎질러진 물과 같아서 완벽한 수습은 원리적으로 없다. 엔트로피의 법칙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딱 보면 모르겠어? 바보냐? 전혀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매뉴얼을 정하면 된다. 공동체가 사전에 이 경우는 이렇게 하자고 규칙을 정하면 된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납득은 된다.


    마이클 샌델은 매뉴얼은 만들지 않고 기계적 판정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구구절절 반복하고 있다. 책만 무거워졌다. 기계적 판정 필요 없고 확률적 판단이 좋다. 개별적으로 판단하지는 않고 단체로 판단하므로 운이 어느 정도 작용한다. 아마 신이 인간을 심판한다면 어떨까?


    좋은 의도로 나쁜 짓을 했느냐, 나쁜 의도로 좋은 짓을 했느냐를 두고 골머리를 싸매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신이 아니잖아? 신의 고민을 인간이 대행할 이유는 없다. 인간은 적당히 패거리에 묻어가면 된다. 개인별로 낱낱이 심판하지 말고 그룹 단위로 묶어서 심판하자.


    이러면 대충 수습이 된다. 염라대왕은 많은 것을 고민하겠지만 인간은 매뉴얼을 잘 만들면 된다. 운전사가 핸들을 꺾지 않으면 한 명이 죽고, 한 명을 살리기 위해 핸들을 꺾으면 다른 차선에서 열 명이 죽는다. 그렇지만 다른 차선의 사고는 일단 내 책임이 아니다. 어쩔 것인가?


    마이클 샌델은 이런 식으로 배배 꼬았다. 쓸데없는 걱정이다. 사형대에 선 죄수를 죽이는 교도관의 책임은 없다. 버튼을 누르면 드론이 미사일을 날린다. 버튼을 누른 사람의 책임은 아니다. 전쟁을 결정한 사람의 책임이다. 이런 것은 물론 세세하게 규정을 잘 만들어야 한다.


    상관의 잘못인지 부하의 잘못인지. 명령대로 민간인을 살해하면 유죄인가? 부당한 명령을 어기고 상관에게 대들어야 하는가? 여기에 정답은 없다. 공동체가 합의하기 나름이다. 사실 이런 것은 정의와 별로 관계가 없다. 이건 법률을 운영하는 기술자의 전문지식에 불과하다.


    정의는 바른 의리다. 의리는 동료가 되는 원칙이다. 의리는 곧 평등이다. 평등으로 사건의 출발점에 서고 정의로 사건의 종결점에서 판정한다. 정의는 평등이 잘 집행되었는지 확인하는 장치다. 평등하게 출발점에 서야 한다. 마라톤을 하는데 한 명이 중간에 지름길로 온다면?


    그런 사람 있다. 마라톤 선수가 중간에 코스를 빠져나와 택시 타고 결승점 근처에 와서 다시 코스로 들어온다. 정의는 이런 것을 걸러내는 장치다. 그러므로 정의란 평등의 해석에 불과하다. 한 손에 저울을 들고 한 손에 검을 든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렸다. 왜 눈을 가릴까? 


    패거리 때문이다. 계급이나 성별이나 피부색이나 이런 외부변수에 휘둘리면 안 된다. 결국 평등의 문제다. 평등은 동료가 되는 절차다. 동료라야 사건에 함께 올라탈 수 있다. 동료가 아니면 타자다. 여기서 주체성이냐 타자성이냐. 주체성은 우리편이고 타자성은 적군이다.


    적이면 죽인다. 동료인데 적군행동을 한 자는 배반자다. 의리가 없다. 정의는 배반자를 물색한다. 누가 배반했지? 누가 동료에게 적대행동을 했지? 누가 규칙을 어겼지? 누가 마을 공동우물에 독을 탔지? 이것이 정의다. 사실이지 정의는 원님 지나간 뒤에 나팔 부는 격이다.


    저질러진 것을 수습할 뿐 근본해결이 아니다. 정의타령 필요 없고 평등타령이 중요하다. 완벽한 정의가 없는 이유는 게임이 진행되면 여러 외부사정이 끼어들어 변질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축구였는데 하다 보면 야구를 하고 있는 식이다. 그러므로 법률을 뜯어고쳐야 한다.


    정기적으로 판갈이해야 한다. 규칙을 바꾼다. 그것이 개혁이다. 완벽한 정의는 원리적으로 없고 게임의 오염에 따른 부단한 개혁이 있다. 해커와 보안처럼 둘은 상호작용한다. 정의는 방향을 제시하고 인간은 개혁으로 대응한다. 게임의 오염과 개혁의 상호작용은 영원하다.


    기계적인 정의가 없는 이유는 정의가 평등의 종속변수이기 때문이다. 평등이라는 상품을 판매했는데 하자가 나면 AS 해주는게 정의다. AS를 아무리 잘해도 문제가 생긴다. 모든 고객이 만족하는 이상적인 AS는 원래 없다. AS 받으러 서비스센터까지 가는 비용은 누가 내고?


    그 기간 동안 상품을 이용 못 한 부분은 누가 책임지고? 결국 평등이 중요하다. 완벽한 평등이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태어날 때부터 어떤 사람은 키가 작고 어떤 사람은 잘생겼다.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최선은? 게임 앞에서의 상대적 평등이다. 사건에 뛰어들 때는 평등하다.


    그러려면 부단히 사건을 일으켜야 한다. 그러나 갈수록 오차가 커지고 불평등이 누적된다. 조금씩 격차가 벌어져서 3세대를 지나면 재벌세습 말이 나오고 금수저 타령 나오고 피곤해진다. 625 직후에 한국은 평등했다. 죄다 잿더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런 식이다. 


    1) 정의는 평등에 종속된다.

    2) 평등은 게임에 참여하는 조건이다. 차별하면 게임은 불성립이다.

    3) 정의는 게임이 룰대로 평등원칙에 맞게 잘 진행되었는지를 판정한다. 

    4) 시간이 흘러 게임이 상당히 진행되면 내부반칙과 외부요인에 의한 교란이 난무해서 게임은 오염되고 평등의 의미는 퇴색된다.

    5) 정의는 매뉴얼을 잘 정하면 되고, 확률에 맡기면 되고, 개인이 아닌 집단에 책임을 물으면 되고, 일정한 간격을 정해서 본인이 만회할 기회를 준 다음에 심판하면 된다.

    6) 완벽한 정의는 불가능하고 정기적인 게임의 리셋이 필요하다. 

   7) 해커와 보안의 상호작용처럼 게임의 오염에 맞서는 개혁의 부단한 맞대응이 가능할 뿐이다. 

   8) 더 많은 게임과 더 새로운 게임과 정기적인 리셋으로 대응할 뿐 이상적인 해결책은 원리적으로 없다. 

   9) 게임의 총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상호작용을 증대시키면 게임의 오염에 따른 부작용은 완화된다. 

   10) 정의는 평등의 집행이며 평등은 동료가 되는 절차다. 

   11) 동료는 돕고 적이면 죽인다.

   12) 동료로 이루어진 집단은 흥하고 적이 섞인 집단은 망한다.


    정의와 평등 이전에 게임이 있다. 게임에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지가 중요하다. 사건에 올라탈 것인가 말 것인지가 중요하다. 게임은 주최측이 있다. 주최측에서 게임을 잘 운영해야지 축협이 개판인데 선수탓 하고 감독탓 하면 뭐하냐? 그게 다 뒷북이다. 답은 주최측이다. 


    주최측이 되는게 주체성이다. 주체성을 이루는 것이 의리다. 의리가 답이다. 평등과 정의는 의리를 운영하는 절차다. 마이클 샌델은 게임이라는 본질을 보지 않고 시합 끝나고 난 다음 뒷북치고 있다. 게임을 성립시키는 것은 의리다. 도원결의가 먼저다. 먼저 의리를 찾아라.


    의리는 도와 친과 륜과 덕과 선과 신의성실로 조직되어 게임을 출범시킨다. 인간 사이에는 친親이고, 자연에서는 륜倫이다. 친과 륜은 의리가 물리적으로 정해져 있다. 회사나 동아리나 정당이나 모임이나 친구 사이에는 그것을 정해야 한다. 그것은 덕과 선과 신의성실이다. 


    의리는 자연법칙에 의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며 혹은 살아가면서 동료와의 신의성실에 의해 후천적으로 승인되기도 한다. 덕德은 의리를 추구하고 선善은 의리를 실행한다. 모든 것의 정점에 의리가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본능과 호르몬으로 친親이 작용한다. 


    부모가 자식을 학대한다. 정부가 개입하여 부모와 자녀 사이를 떼 놓는다. 옳은 결정인가? 호르몬으로 보면 정부가 잘못한 것이다. 매를 맞아도 친엄마가 필요하다. 그것이 친이다. 많은 경우 좋은 양부모보다 나쁜 친부모가 낫다. 물론 학대가 심하다면 강제격리해야 한다. 


    륜倫은 자연법칙에 따라 순서대로 집행하는 것이다.  LH공사가 터를 닦지 않았는데 건축업자가 집을 지을 수는 없다. 이건 기계적으로 정해져 있다. 예컨대 의사가 환자를 죽인다면? 의사라는 직업이 성립할 수 없다. 존재의 근거를 흔드는 것이다. 후건이 전건을 칠 수는 없다.


    이것이 륜이다. 덕은 집단 안에서 친을 행하는 부모가 되는 것이다. 누구 한 명이 나서서 어른 노릇을 해야 게임이 작동하는 상황에서 주도적으로 나서는 것이 덕이다. 곧 주체성을 실천하는 것이다. 동료를 적으로 보는 자는 나설 수 없다. 리더가 될 수 없다. 그게 타자성이다.


    선은 그런 부모에 의지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집단이 부모다. 집단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선이다. 도는 자연법칙이다. 구조론이 도다. 신의성실은 그러한 상호작용에 익숙해져서 상대의 대응이 예측되므로 손발이 맞고 패스가 연결되는 것이다. 예측되게 움직여야 한다.


    1) 도는 자연법칙이다.

    2) 친은 본능과 호르몬이다.

    3) 륜은 자연법칙에 따른 일의 우선순위다.

    4) 덕은 스스로 나서서 친을 조직하는 것이다.

    5) 선은 덕에 의지하여 행하는 것이다.

    6) 신의성실은 게임의 진행 중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세상은 게임이며 게임에 착수하게 하는 것은 의리이며 의리는 도와 친과 륜과 덕과 선과 신의성실이다. 이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은 평등과 계약과 신용과 예다. 이것을 사후에 판단하는 것이 정의다. 자유는 게임에 참여할지 말지를 본인이 정하고 결과도 책임지는 것이다. 


    게임의 출발점에서는 평등해진다. 정의는 반칙하는 자를 찍어낸다. 그들은 게임에서 배제된다. 동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덕이 있는 자는 스스로 동료를 조직한다. 도원결의로 친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주체성이다. 동료가 아니면 신의를 지킬 이유가 없다. 그것이 타자성이다. 


    선은 동료를 따른다. 거기에 맞게 행동한다. 륜은 자연법칙이므로 어길 수 없다. 친은 호르몬이므로 정의도 친을 꺾을 수 없다. 공자가 가족의 범죄를 변명하는게 도덕이라고 말한 이유다. 이런 것들로 인간은 게임을 한다. 시간이 흐르면 엉망이 되어버린다. 다시 게임할밖에.


    엔트로피의 법칙에 의해 게임은 반드시 오염되므로 새로 룰을 정해서 새로운 게임으로 갈아타고 나란히 출발점에 서는게 진보다. 내가 반칙을 열심히 해서 거의 다 이겨놨는데 왜 이제 와서 다른 게임으로 갈아타느냐고 항의하는게 보수다. 둘의 상호작용은 영원히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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