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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592 vote 0 2021.07.01 (17:17:06)

    인생의 답은 하나다. 진리의 길은 하나다. 구조론은 일원론이다. 사람들은 일원론 앞에서 당황한다. 관점의 문제다. 세상을 사물로 보느냐, 사건으로 보느냐다. 사물은 많을수록 좋고 사건은 단순할수록 좋다. 세상을 사물로 보는 사람은 다원론을 좋아하고 사건으로 보는 사람은 일원론을 좋아한다. 


    공격하는 쪽은 지형이 단순한 평원을 좋아하고 방어하는 쪽은 지형이 복잡한 산악을 좋아한다. 강자는 일원론을 좋아하고 약자는 다원론을 좋아한다. 아는 사람은 일원론을 좋아하고 모르는 사람은 다원론을 좋아한다. 큰일을 하는 사람은 큰길을 좋아하고 작은 일을 하는 사람은 작은 뒷길을 좋아한다. 


    자기소개가 된다. 나는 다원론이 좋다는 말은 내가 작은 일을 하며 뒷길로 다니는 사람이고 약자이고, 못 배운 사람이고, 공격보다 수비에만 관심이 있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들키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원론을 좋아한다. 다수는 약자이고 아는게 없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종교로는 일신교를 믿으면서도 일원론을 반대한다. 기독교는 일원론인데도 귀신과 영혼과 사탄과 마귀를 주워섬기며 다원론을 실천하고 있다. 일원론으로 섬기고 다원론으로 사는 것이다. 


    구조론의 가르침에 흥미를 느끼고 찾아왔다가도 뭐야 일원론이잖아 하고 뜨악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진리를 피해 잽싸게 도망친다. 사물로 보는 관점 때문이다. 방어하려는 마음자세 때문이다. 약자의 포지션에 서기 때문이다. 싸우면 지기 때문에 숨을 곳이 많은 다원론을 좋아하는 것이다.


    UFO도 있고, 초능력도 있고, 초고대문명도 있고, 외계인도 있고, 신도 있고, 귀신도 있고, 악마도 있고, 요정도 있고, 사탄도 있고, 영혼도 있고, 유령도 있다고 생각한다. 유일신과 귀신이 공존한다면 일신교가 아닌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괴력난신을 좋아한다. 거기에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더 바보를 찾으면 괴력난신으로 제압하여 어깨에 힘을 줄 수 있다. 그들은 구석에 숨어 작은 권세를 찾아 귀신을 섬긴다. 그것을 다원론으로 포장한다. 


    사건으로 보는 관점을 얻어야 한다. 세상은 대칭으로 되어 있지만 대칭은 사건의 진행에 의해 다시 하나로 통합된다. 대칭은 의사결정 방법에 불과하다. 의사결정은 이원론적이고 사건의 진행은 일원론적이다. 궁극적으로는 일원론이다. 


    나무의 뿌리 쪽을 보면 일원론이고 가지 쪽을 보면 다원론이다. 나무에 숨으려는 새들은 다원론을 좋아한다. 나무를 베려는 나뭇군은 일원론을 좋아한다. 정답은 일원론이다. 통제가능성이 판단기준이기 때문이다. 일원이면 통제할 수 있고 다원이면 대상은 통제할 수 없다. 지식은 무언가를 하려는 것이지 하지 않으려는게 아니다. 지식은 출발이 일원론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있다. 둘은 대칭된다. 이원론이다. 그런데 소프트웨어 안에 또 다른 소프트웨어가 있다. OS다. OS 안에 또 다른 OS가 있다.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안에 또 다른 프로그램이 있다. 파일이다. 파일 안에 또 다른 파일이 있다. 그것은 정보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간다. 양파껍질을 까도 까도 계속 나온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대칭만 보면 이원론이고, 이러한 이어짐의 방향성을 보면 일원론이며, 대칭도 모르고 방향도 모르며 일일이 열거하면 다원론이다.


    존재란 무엇인가? 사건의 연결 그 자체가 존재다. 우리는 대칭 이분법에서 답을 찾는다. 정신과 육체, 영혼과 물질, 마음과 육신, 이성과 감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음과 양, 선과 악이다. 그런거 없다. 대칭은 허상이다. 대칭은 의사결정단위에 불과하다. 사건은 계속 이어진다. 바둑판 안에 바둑알이 모이고, 바둑알이 모여 기보를 만들고, 기보 안에 포석이 있고, 그다음에 중반 전투와 막판 끝내기와 계가로 이어진다. 그러한 이어짐이 존재다. 


    인간은 누구인가? 영혼도 육체도 존재가 아니다. 영혼과 그 영혼이 지배하는 육체와 그 육체에 의한 행위로 이어지는 연결이 존재다. 나는 누구인가? 그러한 연결의 주인이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맨 앞에는 머리가 있다. 꼬리를 이어가는 머리가 나다. 몸도 내가 아니며, 마음도 내가 아니며, 내가 관리하는 게임의 주최측이 나다.


    영화는 어디에 있는가? 필름에 있는가? 스크린에 있는가? 영사기에 있는가? 영사기에서 스크린으로 쏘는 광선에 있는가? 그 광선을 낳는 불빛에 있는가? 그전에 배우들의 연기에 있는가? 그 이전에 시나리오와 각본에 있는가? 그 영화를 보는 극장에 있는가? 영화를 본 관객들의 마음에 있는가? 도무지 영화는 어디에 있는가? 그러한 양파껍질들의 연결에 있다.


    사건은 하나지만 사건이 시공간과 만나면서 다양한 칼라를 획득하는 것이다. 일원이라야 오히려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다. 사건은 일에서 다로 전개한다. 다에서 일로 갈 수 없다. 방향이 맞지 않아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나무의 줄기는 하나지만 가지는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잎은 더 많다. 일원이 다원을 끌어안는 것이다.


    일원이냐 다원이냐를 따지는 뜻은 그러한 사건의 출발점을 찍기 위해서다. 첫 단추를 잘 꿰기 위해서다. 시작이 반이기 때문이다. 뿌리를 찾고, 토대를 찾고, 근거를 찾고, 원인을 찾고, 시작점을 찾아야 한다. 마땅히 첫 번째 싸움의 불씨를 지펴야 하는 위치는 그곳이다. 이후 일은 순조롭게 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역설이 작동한다. 뭐든 의도와 반대로 된다. 왼쪽으로 가려고 깜빡이를 넣었는데 오른쪽으로 핸들이 꺾여 있다. 헷갈리고 마는 것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더 높은 위치에서 보면 일원의 외길이 보인다. 바다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배에서 시작하므로 파도가 쳐서 반대로 되는 것이다. 정상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기슭에서 출발하므로 굴러온 돌이 뒤통수를 치는 것이다. 손해 보더라도 출발이 늦더라도 기초부터 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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